Yes or NO : 실리콘밸리는 정말 누구에게나 열려있나요?
28일 열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2017’ 컨퍼런스에는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11명의 현지 창업가와 투자자,실리콘밸리 기업 재직자들이 연사로 나서 환상이 아닌 실리콘밸리의 현실을 이야기 했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 트랙은 패널토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패널로는 유튜브와 구글의 개발자를 거쳐 현재 글로벌 애드테크 회사 몰로코의 안익진 대표, 혼합현실 개발사 매직리프(Magic Leap)의 배수현 수석엔지니어, 구글에서 11년간 로컬라이제이션분야를 담당한 정금희씨가 나섰다. 세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 받은 뒤 실리콘밸리에서 10여년 간 일했다는 점과 구글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더레이터는 KTB네트워크 김천수 심사역이 맡았다.
(왼쪽부터) 정금희 전 구글PM, 배수현 매직리프 수석엔지니어, 안익진 몰로코 대표, KTB네트워크 김천수 심사역(사회)
실리콘밸리행을 결정한 당시 상황이 궁금합니다.
정금희 : 미국 뉴욕에 있는 기업에서 6년 동안 근무한 뒤 한국으로 왔다가 4개월만에 다시 미국으로 갔는데요. 일단 휴식이 좀 필요해서 대학원을 다녔던 몬트레이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시장체크를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구글을 포함한 지원한 회사 세 군데에 합격하면서 실리콘밸리를 선택을 했고요. 제가 동부에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11년 전 구글은 저한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대단한 결심이 있었다거나 실리콘밸리에 가서 성공하자는 그런 결심을 갖고 간 것은 아니었어요.
배수현 : 2008년 11월 말에 실리콘밸리고 갔어요. 제가 실리콘밸리를 선택한게 아니라 거기 있는 회사가 저를 선택한 거였어요. 당시 경제위기 시기라 잡오퍼를 받는게 힘들었는데, 오퍼가 딱 하나가 와서 그냥 간거였어요. 그냥 직장이 구하고 싶어서 갔고 다행히 잘 안착을 했습니다.
안익진 : 결혼을 했고, 공부(박사과정)를 계속 해야하나 고민하던 때에요. 그냥 구글닷컴 홈페이지로 들어가 지원을 했어요. 방학시즌에 일단 구글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재밌더라구요. 그래서 남게 되었구요.
실리콘밸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보시나요? 세 분의 경험이나 와닿는 사례를 이야기해 준다면요?
정 : 실리콘밸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공대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기업들에서 일해왔는데요. 운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실리콘밸리에 가서 커리어를 쌓아왔기에 그게 가능했다고 봅니다. 특히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엔지니어링팀은 일반적으로 개발자와 비개발자를 50:50으로 고용해요. 엔지니어가 5명이면 넌엔지니어리도 5명, 이런 식으로 뽑아요.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엔지니어만 필요한게 아니잖아요? 그 외 세일즈팀 마케팅팀 등 다양한 부서들이 존재하는데, 그런 부서에 다 엔지니어가 필요한건 아니잖아요. 실리콘밸리의 IT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면 문을 두드려 보세요. 열리는지 안열리는지 본인이 직접 체험하는게 중요해요. 실패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게 많거든요. 당장 안 열린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봐요. 앞으로 걸어가는 길 중에 하나의 단계일 뿐이니가요. 중요한 건 행동하고 직접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배 :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구글은 8, 10월이 되면 이듬해 인턴 인터뷰를 시작하는데요. 전세계에서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원서가 들어와요. 근데 한국에서 지원자는 굉장히 적어요. 그래서 인사팀에서 한 마디 하더라고요. 한국에 가서 놀러다니지 말고 대학에 가서 가서 이력서 좀 받아오든지 지원을 더 많이 하게 얘기 좀 하고 다니라고요. 인턴 인터뷰를 보면 우리나라보다 국력이 많이 떨어지고 교육열도 낮은 그런 국가들에서 많은 지원자가 와요. 저도 영어를 잘 못하는데, 저보다 더 못 하는 지원자들도 많아요. 근데 좋은 의미로 뻔뻔한 친구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 친구들은 실력은 좀 없지만, 자기가 왜 들어와야 되는지를 계속 설명해요. 반면에 제가 만났던 많은 한국 학생들은 영어를 못하고, 미국 비자가 없고, 미국에서 안 태어났다는 등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아요. 그런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실리콘밸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를 준다고 봅니다.
안 : 외국인으로 극복해야 되는 부분도 많아요. 요즘에는 양국 모두 정치이슈가 있어서 더 불안정해진 면도 있구요. 개인적으로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미국에서 좋은 학교 나온 친구들에 비해서 차별도 있을거고요. 하지만 상대적으로는 많이 열려있다고 봐요. 팔로알토 다운타운에 있는 파리바게트가 실리콘밸리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파리바게트인데 프랑스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 하는데 맛있으면 그냥 사람들이 가는거예요. 다시말해 내가 어떤 백그라운드인지 그런거에 상관없이 실력있고 잘 하면 인정해주는거죠. 역으로 한국에서 외국인이 와서 곰탕집 같은거 하는거 되게 힘들잖아요. 그래서 전 상대적으로 굉장히 열려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한국이 계속 필터링하는 사회에요. 국내 기업들이 한창 모바일에 관심이 많았을 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안익진님이 박사학위만 있었으면 우리가 당장 스카웃 해갈껀데, 아쉽다. 차라리 MBA라도 따지 그랬냐.” 이런 말 많이 들었었거든요. 오히려 역으로 ‘한국사회가 나한테 더 닫혀있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어요.
배수현님에게 질문드립니다. 이상적인 인터뷰 채용은 지원자가 충분히 많은 이상적인 사회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이 아닌가 싶은데요. 뽑을 수 있는 사람의 풀 자체가 작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배 : 반대로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왜 풀이 작은지’에요. 한국은 교육열, 교육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대학원까지 마치는 이들도 굉장히 많죠. 그만큼 스킬셋이 좋은 인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많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도 풀이 작다고 느낀다면 눈을 돌려야죠.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 인재들이 필요한데, 여기서 인력을 다 뽑을 수 없으면 일본을 가든지 미국을 가든지해서 어떻게든 충원해 일을 진행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금희님께 질문드립니다. 기존의 프로세스를 바꾸기 위해 엔지니어들을 설득할 떄 어떻게 했는지 유튜브 사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 : ‘인터내셔널라이제이션(internationalization)’이란 개념이 있는데요. 인터내셔널라이제이션이 잘 돼 있으면 번역을 할 때 굉장히 수월하고 로컬라이제이션 전 과정이 수월하게 돌아갑니다. 제가 유투브를 맡았을 때 문제점이 인터내셔널라이제이션 해놓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번역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로컬라이즈되어 제품이 나가면 번역의 문제인 것처럼 보여지죠. 하지만 사실 그건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엔지니어링의 문제거든요. 이런 문제를 예를 들어 유투브 엔지니어링 디렉터와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디렉터한테 보여줘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죠.
이번에는 안익진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오늘 강연에서 스피드를 굉장히 강조해주셨잖아요? 품질도 중요할텐데, 트레이드 오프(trade off)가 있지는 않은지요?
안 : 단순히 빠른게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끝까지 지속적으로 올라갈 수 있냐가 중요해요. 엔지니어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일단 Y축 로그를 취하셔야 돼요. 기울기가 빨리 올라가는게 아니라 변화율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올라갈 수 있느냐죠. 때문에 초기에는 굉장히 답답하고 느린 과정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초반을 잘해놓지 않으면, 그리고 큰 비전을 가지고 셋업을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속도를 낼 수가 없어요.
실리콘밸리에 가서 첫 후회를 언제 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을 하셨나요? 혹은 최근에는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요?
정 : 후회는 아니지만, 버겁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미국 학교는 토론으로 진행되는 문화인데 반해, 제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침묵이 금이라고 배웠어요. 말이 많은게 미덕이 아니었죠. 그런데 미국 기업에서 회의에 참석하면 자기의견을 가지고 남들을 설득해야 되요. 특히 구글은 인성이 좋은 사람을 뽑아 협업을 하면서 프로젝을 이끄는 문화에요. 그러려면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자기 의견을 제시해줘야 되요. 닭싸움같이 공격적인 게 아니라 타인을 설득할 수 있게 말을 해야 하는거죠. 처음에는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요.
배 : 힘들었던 이야기는 밤새서 할 수 있어요. 그중에 두 개만 말씀드릴께요. 처음에 구글에 들어갔을 때 어떤 프로젝트를 주길래 그걸 마치고 난 뒤 기다렸어요. 다음에 내가 뭘 해야 될지 우리 보스가 얘기해줄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보스가 ‘다음에 뭐할래’라고 물어보더라고요. ‘모르겠다’고 했더니 ‘네가 할건 네가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몇주 동안 혼란이 왔어요. 내가 찾아서 일을 해야하는데, 프로젝트들이 얼마나 크고 복잡하고 힘든지 전혀 계산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게 첫 번째 힘든 상황에 빠졌던 사례에요. 두 번째는 제가 만든 결과물을 같이 일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걸 가지고 엮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오랫동안 안 했다는 거에요. 나중에 다른 팀 사람들이 저를 평가할 때 ‘무능’하다고 평가를 하더라고요. 당시 좌절감이 느꼈죠.
안 :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제가 유투브에 조인했을 때가 인수되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어요. 유투브를 어떻게 수익화할지 한창 고민을 많이 하는 시기였죠. 회사에서도 중요한 프로젝트였었죠. 중요한 프로젝트이기에 지시를 내리는 헤드가 있고, 일관성있게 갈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매주마다 새로운 테크리드가 나타나는거예요. 이번주는 이렇게 하자고 하고, 다음주에는 저렇게 하자고 하는식이었죠. 이게 처음에는 굉장히 이상했는데 나중에는 저도 아이디어 있으면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사고체계가 바뀌는 경험이었어요. 저희 세 명이 구글에서 공통적으로 했던 경험이라면, 회사에서 시키지 않은 프로젝트를 스스로 찾아서 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는 거에요. 그게 저희가 구글에서 가졌던 가장 값진 경험이라고 봐요.
세 사람의 공통점이 실리콘밸리 경험이 있다는 것과 구글을 떠났다는 점인데요. 왜 구글에서 퇴사하게 되었나요?
정 : 11년간 한 곳에 있으면서 굉장히 번아웃(burn out)된 것이 커요. 지난 2년동안 굉장히 그 ‘언해피’했거든요. 어떻게보면 2년간 꾸역꾸역 다녔죠. 새로운 걸 하고는 싶은데 구글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에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너무 지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1년간 쉬자는 생각으로 결심했어요. 아마 구글이 아니었으면 더 일찍 나왔을 거에요. 지금은 여행 중이고요. 퇴사 전에는 고민이 많았지만 결정하고 나니까 구글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여행을 다녀서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냥 해피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행복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배 : 처음 구글에 들어갔을 때 회사 직원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중에 엔지니어링 디렉터도 있었는데요. 그 사람이 이제 막 입사한 저한테 ‘언제 떠날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이 회사가 편안하다고 느낄 때 떠나겠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배우는 속도가 느려질 때 떠나겠다’라고 답했어요. 구글을 나올 때 이유도 비슷해요. 작년 이맘때쯤 회사 일이 편해지면서 ‘대충 해도 다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좀 지체된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 순간 회사를 나와 다른 것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 : 구글은 좋은 회사에요. 밑에서 올라오는 아이디어들을 구현하게 많이 지원해주죠. 하지만 구글의 메인 비지니스와 너무 먼 아이디어는 실현하기 어렵기도 해요. 제 힘으로 제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를 떠났어요. 재미있는 것은 밖에 나왔더니 실리콘밸리가 또 하나의 커다란 구글같더라고요. 구글 다닐 때 아이디어가 있으면 디렉터나 BP를 설득해야 했다면, 밖으로 나온 다음에는 설득해야 하는 대상이 투자자들이더라고요. 나와서 더 좋은 것도 있었어요. 회사에서는 디렉터가 ‘No’라고 하면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야 되는데, 창업 아이디어는 어떤 투자자가 싫다고 하면 다른 투자자 만나면 되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세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뒤 실리콘밸리로 간 공통분모가 있는데요. 조언할게 있다면요?
정 : 저는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학교에서는 남녀평등을 배웠지만, 집에 오면 전혀 그런 문화가 아니었죠. 그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고, 항상 내가 원하는걸 다 시도해보려는 기질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별로 개념치 않는 편이에요. 저는 새로운 뭔가를 추구해야 에너지를 얻는 스타일이에요.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이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기질 때문이라고 봐요.
배 : 별다른건 없어요. 일을 잘하기 위해 남들 쉴 때 시간투자를 많이 했어요. 전 훌륭한 인재들과 경쟁을 해서 이길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약간 방향을 바꿔서 남들이 안가는 다른 길을 찾아 갔고요.
안 : 제가 실리콘밸리에 처음 갔었을 때는 파랑새를 찾아가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사실 파랑새는 우리집에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본질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글로벌이 중요하다 말하는데, 한국에 있는 것도 글로벌이잖아요. 대답은 멀리있지 않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