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人] 콘텐츠 비즈니스, 관심을 쏟는 만큼 잘 된다.
근래 많은 부분에서 인식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불과 5~6년 전 만 하더라도 대중은 문화 콘텐츠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인색했다. 악의가 있어 그랬다기 보다는 습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0여 년 간 웹툰은 ‘무료’라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졌다. 이런 인식이 절정으로 치닫던 2013년, 웹툰을 유료로 서비스한다는 스타트업이 등장했을 때 업계 사람들은 취지에는 공감하나 사업성 측면에서 고개를 갸웃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평가받는 레진코믹스 이야기다.
레진코믹스는 2013년 6월 40편의 만화를 시작으로, 당시 무료웹툰 중심이던 시장에 최초로 ‘기다리면 무료, 미리 보려면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며 국내 웹툰 업계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켰다. 또 2015년 여름과 겨울에는 일본과 미국시장에도 직접 진출해 글로벌플랫폼으로 확장중이다.
올해 레진코믹스가 유의미한 수치와 함께 중국 시장에서도 콘텐츠 유료화의 길을 열고 있다.
중국 내 웹툰 플랫폼 콰이콴을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한 레진코믹스의 작품 ‘꽃도사’와 ‘최강왕따’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것’ 세 작품이 서비스 시작 3개월 만에 7월기준 누적 조회 수 17억을 기록했다. ‘꽃도사’의 경우, 3일 만에 라이크 114만 개, 댓글 8만 3천 개를 기록하며 주간 랭킹 1위에 올랐다. 중국웹툰 시장에서 유료 콘텐츠가 의미있는 성과를 내며 서비스되는 것은 이번 사례가 최초다.
지금까지 중국 웹툰 시장에서는 무료로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중국 리서치 기업 아이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중국 웹툰 이용자 수는 전년 대비 76.2% 증가한 7,075만 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성장중인 시장인 것이다. 중국 웹툰 플랫폼의 경우 한국의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처음에는 무료로 제공되거나 완결된 웹툰의 경우 유료로 전환하는 케이스를 찾아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유료로 서비스하는 웹툰의 경우 일정 기간 이후 무료로 전환하는 형태다. 무료 중심의 플랫폼들은 웹툰 자체보다 IP를 활용한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다.
레진코믹스(이하 레진) 중국 사업을 맡고 있는 안정진 IP 디렉터에게 현재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중국 웹툰 시장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 개괄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중국 웹툰 시장은 매출 등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지는 않다. 중국은 아직 무료로 서비스되는 것이 주류고 유료화가 무르익지 않은 시장이다. 하지만 큰 시장 규모를 바탕으로 웹 콘텐츠 수요가 늘고 있으며, 웹툰 이용자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등장과 웹툰을 기반으로 한 2차 콘텐츠 제작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 시장에서 레진이라는 외국 회사가 외국 콘텐츠를 앞세워 유료화를 진행하고 있다.
시기와 운이 잘 맞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좋은 콘텐츠는 지역을 벗어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을 전시하는 형태가 아니라 노하우가 쌓인 전문 인력이 현지시장에 통하는 콘텐츠를 검토하고, 방향을 고민하면서 서비스하고 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반응이 좋았다고 본다.
레진의 중국진출 시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중국 에이전시를 통해 비독점으로 여러 플랫폼에 론칭한 첫 시도가 있었다. 열심히 했으나 당시 중국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 한국처럼 수익구조를 가져갈 구조도 아니었고. 당연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례가 있기에 두 번째 진출 계획단계에서 고심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좋은 콘텐츠와 더불어 믿을만한 파트너가 함께했다.
작품에는 어느 플랫폼에 실려도 이상하지 않은 무난한 것이 있고, 누가봐도 레진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중국에서는 레진코믹스다움이 묻어나는 작품을 선정해 론칭했고 중국에 잘 맞아 떨어졌다. 그것이 유료화에도 도움이 되었다.
웹툰 플랫폼 콰이칸(快看漫画)을 파트너로 선택해서 중국에서 작품들을 론칭했다.
사실 첫 진출에 성과가 없었기에 두 번째는 준비 단계부터 매우 조심스러웠다. 유료화 경험이 없는 회사와 손을 잡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봤는데, 콰이칸은 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조건을 걸어야만 했다. 우리는 작가들에게 100% 유료를 게런티하기에 중국에서도 그렇게 진행한다는 것, 한 번 연재를 시작하면 수익성 유무를 떠나 끝까지 해야 한다는 것, 그외 기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들이었다. 콰이칸은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약속을 지켜줬다. 결정적으로 우리와 약속한 시기에 유료화도 진행해 주었다. 그것이 가장 크게 신뢰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양사가 협력해 작품 하나하나를 공들여 오픈했고 론칭 몇 일 만에 억 단위 조회수가 나왔다.
열심히 해도 시장이 조성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업체가 적극적이지 않거나 중간에 흐지부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우리도 끊임없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콰이칸도 적극적이었다. 매출과 수익을 낸 것도 의미가 있지만 업무를 하는데 있어 믿고 같이 할만한 파트너라는 신뢰가 들었다. 덕분에 2차 작품론칭 준비는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콰이칸은 어느정도 규모의 회사인가.
중국 웹툰 플랫폼 3대 서비스 중에 하나다. 콰이칸의 올초 DAU가 1000만이다. 국내 최대 웹툰 서비스보다 뷰가 높다. 콰이칸은 레진을 벤치마킹해 유료화에 성과를 내고있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형태도 유사하고 무료가 판을 치는 중국에서 좋은 작품만으로 성과를 내는 히스토리도 우리와 비슷하다.
세 작품의 3개월 누적 조회수가 17억 뷰다. 그정도면 중국시장에서 어느정도 인기가 있는건가?
최상위 작품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조회수다. 세 작품 다 중국에서 탑 10 안에 드는 뷰를 기록했다.
왜 그 작품들이 인기가 있었다고 보나? 작품 선택 기준이랑 맞닿을 텐데.
레진작품을 영어, 중국어로 번역한 해적판이 많다. 다시말해 그 언어권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는 작품이라는 거다. 해적판도 인기있는 작품이 뜨는거다. 그것을 근거로 선택한 작품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퀄리티가 높고 인기가 좋을 것이라 자체 판단한 작품도 있다.
구체적인 매출이나 수익을 공개할 수 있나?
그건 공개하기 어렵다. 기업과 기업 간 관계도 있겠지만 개인이 엮여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의미있는 규모라고만 알아달라.
해적판 때문에 이슈가 많을텐데,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자체 모니터링을 한다. 에이전시, 혹은 파트너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검색하고 리뷰해서 내부적으로 셧다운을 한다. 처음에는 끝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계속하다보니 조금씩 내려가는 추세다.
여담이지만, 중국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보라고 오픈한 것이 아니냐고, 외국에서는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더라. 돈을 내거나 저작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한국에 와서 처음 알았다고 했다. 반면에 영어권 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에 의아해 하는 것이 한국에서 ‘서비스는 무료’라는 인식이다. 한국에서 ‘서비스를 달라’고 하는 것은 ‘무료로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콘텐츠를 대하는 자세도 이와 같다고 본다. 중국에서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무료라는 인식이 강한데 합당한 대가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궁극적으로 해결이 될 거라 본다.
최근 중국도 저작권에 대해 제재나 계몽이 들어가고는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유료화 사업을 한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텐데.
파트너사들이 어려워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웹툰 등 콘텐츠가 무료라고 생각하는 대중을 상대로 어떻게 유료화 사업을 하느냐는 것이다. 파트너사들에게 우리 사례를 설명하며 설득하지만, 여전히 ‘그런데 정말 유료화가 될까’라는 질문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레진이 등장했을 때 한국은 10년 넘게 웹툰은 무료라는 인식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웹툰이 그렇게 서비스되는 상황에서 레진이라는 무명의 회사가 돈을 내고 웹툰을 보라고 했다. 그간 꾸준히 알리고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서 현재는 유료 웹툰이 자연스러워졌다. 레진 내부에는 노련한 전문가들이 있기에 콘텐츠가 성숙하고 완성도 있는 상태로 노출된다. 그것이 유료화를 용이하게 했다. 중국도 같은 방식이다.
중국에서 유료 결제를 한 주 독자층 연령대는 어디인가?
10대에서 20대다. 한국과 유사하다.
웹툰뿐만 아니라 콘텐츠 하나가 외국으로 나갈 때 많은 리소스가 투입된다.
작가의 노고가 가장 크겠지만, 그 작품이 해외로 나갈 때는 못해도 5~6명이 투입된다. 중간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노력이 있었기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본다.
웹툰 등 콘텐츠 사업은 번역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어감 등을 현지에 맞게 살리지 못 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수치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번역과 식자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맞다. 드라마나 방송에서 현장음없이 성우 목소리만 더빙으로 들어가면 어색하잖나. 번역과 식자도 잘 못 들어가면 몰입도가 확 떨어진다. 발음 등을 가지고 하는 말장난부터, 화폐 단위도 현지에 맞게 잘 바꿔줘야 한다. 원 작품에 카카오톡을 쓰는 것으로 나오면 중국어판에는 위챗으로 바꿔줘야 하고 KFC 칸판은 ‘컨더지(肯德基)’로 스타벅스는 ‘싱바커(星巴克)’로 변환해줘야 한다. 글자체도 화면에 어울리게 바꿔야 한다. 독자의 몰입을 돕는 것이다. 미묘한 차이를 가벼이 여길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해외독자가 레진을 통해 공식적으로 처음 한국 웹툰을 접하기에 퀄리티를 높이려고 세세한 부분에 신경쓰고 있다.
번역은 자체적으로 하나?
우리가 직접 하지는 않는다. 일본과 미국은 내부에서 컨트롤 하지만, 중국은 파트너가 맡고 있다. 물론 감수에는 참여한다.
근래 중국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IP에 대한 관심이 높다. 중국에서 IP사업 계획은 없는지. 게임이나 영상과 접목이 가능할텐데.
물론 크게 관심있다. 결론부터 말해 여러 분야에서 협업을 논의중이고 준비중이다.
웹툰을 가지고 게임을 만든다고 했을 때 성공의 여부는 우선 게임 자체가 잘 나와야 한다는 거다. 웹툰이 아무리 좋아도 게임이 잘 만든게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핵심은 그 업에서 잘 해줘야 한다. 기본기가 안 되면 처음에는 관심을 끌지몰라도 지속성이 떨어진다.
중국에서 IP를 강조하면서 한국 웹툰을 찾는 시도가 많다. 작년 제작년에 많은 중국 기업이 IP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다만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인기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IP랑 매칭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근래 정치적 이슈로 중국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말한다. 레진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데 있어 가장 힘든것은 불확실성이다. 성문화된 기준이 있다면 어떻게든 대응을 할텐데, 그런게 없다. 게임회사와 콘텐츠회사 상당수는 한국에 지사를 세우고 투자도 하고 싶어한다. 여전히 한국은 트랜디하고 한국에서 성공하면 아시아 국가에서 통한다고 여긴다. 중국에서 한국 기업으로의 투자결정이나 협업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실행에 있어서 서류나 송금 등행정상의 이슈는 얼마든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영화, 게임 등도 순조로이 계약이 진행되다가도,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직면하거나 계약 자체가 해지되는 케이스가 그런 예이다.
다만 웹툰시장은 아직 중국 정부가 관심을 가질만한 규모가 큰 시장이 아니다. 웹툰은 회사대 회사 계약으로 묶음상품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 하나, 작가 한 명이랑 계약하는 것도 있다. 때문에 아직까지 큰 제재나 이슈가 없다.
중국은 지명도가 낮거나 작은 회사가 라이센스를 취득할 때는 큰 문제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규모가 커진다음에는 쉽지 않다. 관심받기 전에 활동하는 것은 쉽고 자유롭다. 몇대의 사설서버로 뭔가를 하는 것은 별 문제없는데, 이것이 공장식으로 커지면 제재가 들어온다.
중국시장에서 마일스톤이 있을거라 본다. 올해 어느정도까지 성장을 전망하나.
일단 매출이 중요하겠다. 2차로 10개 작품을 추가해 올해 20작품을 내보낼 계획이다. 많이 나가기 보다 한 작품 한 작품을 잘 선정하고 유료화에 성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추가로 론칭할 계획인 IP사업도 있다. 레진은 작가 한 명 한 명과 연결되어 있기에 각각의 작품이 사장되지 않고 끝가지 연재되어 성과를 올리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미래에 대량으로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노하우를 쌓는 것이다.
레진은 국내에서 유료웹툰의 시작을 알렸고,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가고 있다. 그것이 동종 기업들에게 간접 경험이 되는 측면이 있다.
레진은 직접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길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그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특이하게 레진의 팬덤은 작가에게도 있지만 회사에도 있다. B2B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뛰는 것은 작가와 작품을 위한 것이다. 이 부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중국 진출을 하려는 콘텐츠 스타트업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콘텐츠 비즈니스는 완성된 제품을 제공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리, 운영, 마케팅,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피드백에 대한 상호작용도 필요하다. 관심을 두는 만큼 잘 되는 사업이다. 성과가 안 나온다 하더라도 과정이나 프로세스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경쟁자에게 쉽게 밀릴 수 있다. 그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