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만나는 중국의 한국인 #3] 푸싱그룹 이재철 전무,”진짜를 만들어봐야 진정한 실력이 드러난다”
중국 푸싱그룹(復星• FOSUN)은 1992년 설립해 2007년 홍콩거래소 메인보드 상장, 2017년 말 기준 자산규모 90조를 돌파한 거대 민영기업입니다.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2000’에서 416위에 오르기도 했죠.
푸싱그룹은 100여개 달하는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리조트기업 클럽메드(Clubmed), 명품브랜드 랑방(Lanvin)등이 있죠. 푸싱그룹을 이끄는 인물은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궈광창 회장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궈 회장이 34살의 이재철 씨를 발탁해 전무로 임명한 것입니다.
이재철 전무는 국내 LG생활건강에서 중국 시장의 기회를 엿봤고 알리바바 티몰로 이직해 소비자 데이터를 다룹니다. 이후 허마셴셩으로 부서를 옮겨 유통의 미래를 경험했다고 하는데요. 시대의 대세인 ‘데이터’를 읽으며 지금에 이르렀다는 이 전무는 자신을 이끈 주요 동인을 호기심과 실행력이라고 말합니다.
사회 초년병 때 몸으로 부딪히며 궁금증과 문제를 해결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해결하려는 성격이었죠. 20살 땐 ‘호텔리어’라는 직업이 궁금했어요. 일을 경험해보고 싶어 무작정 이력서를 가지고 국내 모 호텔에 찾아갔습니다. 당시 호텔 인사팀장이 도어맨이라도 괜찮으면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도어맨으로 시작해 벨보이까지 일해봤어요. 속살을 직접 경험해보니 후련해지더라고요. 그만큼 직접 부딪쳐 보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첫 직장 LG생활건강에서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지역 해외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어느날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상무님이 우리 제품이 어디서, 얼마나 판매 되는지 궁금해 하더라고요. 이를 ‘유통 커버리지’라고 하는데, 전체 채널별 비중을 알고 싶어 하신거죠. 입사 1년차인 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바이두에 검색해봤습니다. 수백만 개의 백화점, 편의점 등이 빨간 점으로 표시돼 있었어요. 이 중 ¼ 정도 부분을 표시해두고 출장 간 1주일 동안 그 지점을 찾아 다니면서 위치가 맞는 지 알아봤습니다. 그게 맞기만 하면 커버리지 파악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출장 후에 그걸 정리해 상무님께 보여드렸고 고과 인정을 받았어요.
주니어 때는 대부분 본인이 생각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두각이 잘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차별점을 만들려면 남들보다 빨리 뛰고 행동을 빨리 해야 합니다. 단순노동처럼 보여도 꾸준히 실행한다면 업무 파악에 큰 도움이 돼요. 그게 주니어 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리바바로 이끈 것도 호기심… ‘절박한 의지’를 보여주다
첫 직장에서 약 5년간 근무를 하며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게 더 많았어요. 특히 소비자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구매하는지 명쾌한 답을 얻기 어려웠어요. 결국 데이터가 없이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즉, 소비자만 이해한다면 그 분야의 ‘온리원(Only One)’이 되겠더라고요. 중국 주재원 파견으로 일할 기회를 물색하고 있었지만 주재를 나가려면 몇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문제는 가서도 소비자를 직접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몸만 현지에서 일한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때 제 눈에 들어온 회사가 알리바바에요. 제가 원하는 것이 그 회사에 있더라고요. 이직을 고민했죠.
일부러 중국 출장의 기회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바로 중국 전자상거래 동향을 스터디한 것을 보고서로 만들어 윗선에 제출하는 방식이었죠. 어차피 이 자료는 윗분들도 필요한 것들이었어요. 자연히 저를 찾으셨고, 동향을 파악할 겸 출장도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그 과정에서 알리바바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자리에선 회사 소개 및 브랜드 제품, 협업 내용을 공유했는데 그럴 때마다 제 매력도 열심히 어필했습니다. 일이라는 건 사람과 호흡을 맞춰 하는 것이니 제가 그 조직에 잘 맞을 수 있음을 보여준 거죠.
마침 알리바바에선 소비재 산업 이해도가 있고 플랫폼 스터디가 돼 있는 한국인을 채용하겠다는 니즈가 있었어요. 그 때 총 3번의 화상 인터뷰를 제안 받았는데요. 2번은 자비를 써서 비행기를 타고 본사에 찾아가서 봤습니다. 그 정도의 간절함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알리바바로 이직했습니다. 몇달 간은 고생 많이 했어요. 팀장으로 갔지만 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 팀원도 충원시켜주지 않더라고요. 의지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습니다.
시대를 이끌 새로운 트렌드, ‘허마셴셩’으로
2년6개월 정도 티몰에서 근무 했어요. 거기서 입점 브랜드 심사, 인지도 제고 및 마케팅 업무를 해봤습니다. 일하면서 느낀건 온라인 커머스 성장이 어느 순간 한계가 오지 않을까라는 것이었어요. 그 시점에 ‘신유통’이라는 개념이 생겼어요. 허마셴셩을 간 뒤 알리바바를 처음 알았을 때와 같은 충격을 받았죠. 유통의 미래를 본 듯 했습니다. 허마셴셩 사업을 담당하는 고위직에게 그곳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원하는데로 됐어요. 허마셴셩에서 제 업무는 구매 총괄이었어요. 여행 다니는 기분으로 일했습니다. 캐나다에서 랍스터를 사거나 칠레에서 체리를 구매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녔죠.
장난전화인줄 알았던 푸싱그룹으로부터의 러브콜…2번의 협상 끝에 원하는 조건을 얻다
미국에 출장을 갔을 때 푸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장난전화인 줄 알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는데 정말 궈 회장이 있더라고요.궈 회장은 푸싱그룹이 데이터 플랫폼 비즈니스를 도모하고 있다고 했어요. 4차산업혁명 시대는 데이터를 가진 자가 승자가 된다는 걸 알고있는 거죠. 이를 위해 플랫폼 비즈니스 DNA를 가졌고 여성 소비자를 잘 아는 젊은 외국인이 와줬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알리바바에서 일이 재미있었지만, 이직을 결정했어요. ‘진짜’를 만들어 봐야 진정한 실력이 드러난다는 말을 새기며 살았어요. 진짜를 만들기 위해선 창업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게 투자와 신규사업이라고 봤습니다. 즉 데이터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이가 돈과 정보가 흐르는 투자 업무를 하게 된다면 대체 불가한 인재가 될 거라 여긴 거죠.
협상 조건은 원하는 만큼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 받는 것이었습니다. 협상은 2번에 걸쳐 이뤄졌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었어요. 알리바바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세계적으로 성장 속도가 빠른 기업 내에서 제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거든요. 알리바바에서의 성장이 협상 테이블에서 무기가 되더군요. 그렇게 투자 및 해외신규사업개발 업무를 맡아 하게 됐습니다.
언어, 동료에게 피해 안 가는 정도만 해도 된다…단 회사에서 배우자는 생각은 금물
해외 취업을 위해 언어는 필수죠.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현업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은 갖춰야 합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HSK 급수나 토익 점수와 같은 구체적인 수치로 요구하진 않아요. 일 할 때 무리 없는 정도를 원합니다. 확실한 건 실무에 방해 안 되는 정도는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 때문에 일이 진행 안 되면 곤란하죠. 게다가 회사는 배우는 곳이 아니에요. 배운 것을 활용해야 하는 곳임을 인지하고 사전에 준비해두시면 좋겠습니다.
중국은 도전의 무대
중국은 넓은 시장에서 취업과 창업을 통해 다양한 이들과 일해볼 수 있는 기회의 땅입니다. 여전히 중국에 대해 편견이 있고, 부정적인 인상을 가진 분들도 계시겠죠. 5년 전만 해도 포춘이 선정한 전세계 500대 기업 중 중국 기업은 20개 수준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100개가 넘습니다.
한국엔 일자리가 너무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지탱했던 큰 줄기 산업의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채용 문을 닫고 있어요. 이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리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소비재를 잘 만드는 국가로 알려져 있어서 중국에서 취업하기 용이해요.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 중국에 오는걸 권합니다. 더 많은 소비자와 호흡하며 트렌드를 이끄는 ‘데이터’를 보며 일해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