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시대, 정부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경쟁력 재고를 위해 각국의 4차산업혁명 대비가 한창이다. 대혁신의 시대인 셈이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혁신, 융합, 그리고 스타트업이다. 민간주도 실리콘밸리는 물론이고 중국의 대중창업 만중혁신 기지들, 영국의 테크시티, 프랑스의 프렌치테크, 칠레의 스타트업 칠레, 에스토니아 이레지던시 등 정부주도 스타트업 육성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향후 국가경제를 이끄는 동력이자 저성장시대 경제 활성화 핵심 전략을 스타트업에서 찾는 것이다.
중국의 스타트업 지원 기조는 정부가 계획을 세우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유형이다. 제2, 제3의 TAB(텐센트, 알리바바와 , 바이두)를 통한 경제부흥과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다. 기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창업과 관련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국가신흥산업 창업투자 인도기금을 조성했으며, 창업 등기비용 철폐, 창업 행정절차를 지역정부에 이양하는 등 창업 절차를 간소화 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 구현이 가능하게끔 인프라도 구축되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수년 만에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롤모델은 차고 넘친다. 동기부여가 된 청년들은 앞다투어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 공무원들의 역할이 크다. 광둥성 선전시 바오안구에서 창업과 IT혁신 부문 실무 책임을 맡고있는 인지아린 과장은 지역정부의 창업지원정책 기본 골격을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의 역할은 환경조성’이라 말했다. 그는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선전시와 바오안구의 쌍창(쐉창 双创)’ 정책의 기본 골자는 민간주도다. 정부는 기관과 회사가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뒤에서 세제혜택 등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이다. 더 신경쓰는 것은 스타트업과 유관 기관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업과 창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리는 한편, 기업과 학계 등 각 영역이 협력하는 모델을 추구한다.”라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 규제라는 외부요인이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인지아린 과장은 “중국은 정부가 민간에 개입할 여지는 있다. 밀접해 있는 것이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창업팀에게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문제에 당면했을 때 돌아갈 필요없이 정부가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는데 있어 중국이라는 국가 구조가 더 좋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의 말대로 선전시는 창업 환경을 민간 영역에 힘을 싣는 형태로 조성한다. 바오안구의 경우 액셀러레이터와 코워킹스페이스를 지원해 민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지원이 흐르게끔 한다. 창업팀의 입주비용 등을 보조해서 초기 리스크를 관리하고, 복잡한 행정적 절차는 관이 찾아가는 서비스로 해소한다. 창업가와 창업팀이 사업을 하는 것에만 매진하게끔 조치한 것이다. 중국 공무원들이 이렇듯 적극적인 배경에는 스타트업 육성과 성장이 그들의 승진 고과에 반영된다는 것이 크다.
한국의 스타트업 인프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성되어 왔다. 모태펀드를 비롯해 엔젤과 기업이 나서 자금적인 부분에서 지원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정부, 국회가 앞장서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민간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도 아닌 신중한 중재자적 입장을 고수하다보니 기업의 보폭과 보조가 맞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문제는 2인 3각이라 민간이 먼저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몇년 간 창업 생태계 개선사항 1위에 오른 ‘규제’부분이다.
규제는 게임의 규칙이다.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평균적이고 공정한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창업 현장에서 규제가 지탄받는 이유는 전세계가 디지털 시대로 넘어왔음에도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30년 전에 만들어진 규제가 지금도 존재한다. 규제혁신에 대한 정부 관계자와 기존 사업자들의 공감대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진행되는 규제혁신도 탑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부처마다 말하는 원리가 다르고, 가이드도 부족하다. 규제를 시대에 맞게 계속 합리적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엔진, 시스템이 부족한 것이다.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는 ‘ABF in Seoul 2018’ 미디어컨퍼런스에서 “(블록체인 관련 사업) 법률검토 과정에서 변호사가 100개 중에 90개는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지난 1년 간 ‘하면 안 된다’,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만 줄기차게 들었다.”며 “앞으로 불법이라 명시된 것만 아니면 다 시도하겠다. 기회가 있으면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간다.”고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다른나라의 사례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따라할 필요도 없다. 4차혁명을 대변하는 신기술과 신사업이라 해도 국가시스템, 국회의 입법시스템과 정부의 행정시스템 위에 있지도 않다. 국회와 정부의 적절한 이해와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도 현장의 줄기찬 요구에 긍정적인 대책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규제 샌드박스다. 현행 규정에 맞는 기준이 없어 허가 자체가 불가능했던 신산업·신기술들이 내년 1월부터 허용하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과 구역 내에서 규제를 면제 및 유예해 주는 제도다. 혁신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출시 가능성을 자유롭게 타진해 신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취지다. 영국은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핀테크 활성화를 끌어냈다.
보이는 규제도 문제지만, 사회에 퍼져있는 혁신에 대한 거부감도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다. 이전 3차례의 산업혁명이 기존 산업을 무너트린 형태였다는 것도 한 몫한다. 4차혁명이 융복합으로 기존 산업을 활성화 시킨다는 설명은 전달되지 않는다. 새로운 사업, 서비스가 등장하면 사고를 칠거라는 인식도 크다. 저신뢰 사회인 셈이다.
국내 스타트업을 활성화시키고 지원하는 것은 사기업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경제협의회와 리서치앤리서치가 발표한 ‘디지털경제 및 창업혁신 관련 조사’ 에 따르면, ‘스타트업’, ‘인터넷’ 등 디지털경제가 ‘제조업’, ‘대기업’에 비해 향후 일자리 창출 및 경제기여도가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살아남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이 답이라 말하는 것이다.
6일 인터넷기업협회 주최로 열린 굿인터넷클럽은 지속가능한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묻는 자리였다.
이번 행사는 “파괴적 혁신의 시대, 정부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안정상 수석전문위원(더불어민주당), 석종훈 실장(중소벤처기업부), 임정욱 센터장(스타트업얼라이언스), 김성준 대표(렌딧) 등 총 4명이 패널토크에 참여하고, 박성호 사무총장(인기협)이 진행을 맡았다.
패널들은 공통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혁신 움직임과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는 데 우려하며,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혁신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상 수석전문위원은 “혁신은 사회 모든 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들어서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며, “정부는 아직 현 상황에 대한 인식능력이 부족한 듯하다. 이제라도 과감하게 결연하고, 속도감 있게 집중적으로 규제혁신 드라이브를 걸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는 R&D, 투자 등에서는 적극 나서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민간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양면성이 있어야 한다. 관료조직에 대한 종합평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공무원 제도가 제대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특히, 과기부, 산업부, 중기부는 철저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석종훈 실장은 “규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위기의식과 이해조정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다”면서, “대통령, 장관이 의지를 가지고 규제해소되는 게 있고, 실무자의 유권해석만으로도 해결되는 게 있다. 이런 면에서 규제 영역을 세분화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프랑스의 ‘스테이션F’를 방문하면서 미래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것은 단일 벤처기업이 아닌,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떻게 역동적으로 조성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임정욱 센터장은 “스타트업 투자도 활성화되고, 이전에 비해 인공지능 등 신기술 분야 투자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미국, 중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라이드쉐어링, 자율주행차, 원격진료 등의 혁신서비스가 우리 일상에 큰 변화를 주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는 젊은이들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미래를 위해 의사결정을 하고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해야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높은 리더십과 용기가 필요하다.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기존에 없는 것들을 시도하려는 창업가들을 응원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준 대표는 “최근 통과된 규제 샌드박스 제도로 그림자 규제가 많이 없어질 거라고 기대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민간에서 시장을 주도할 수 있어야 신사업들이 활발히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거티브 규제로 진일보하는 과정 중에 사회안전망 측면에서 정부가 면밀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그 밖의 것들은 전향적으로 열린 구조로 갔으면 한다”면서, “열린 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에게 정책결정 결과를 책임지는 게 아닌, 혁신정책을 얼마나 추진했는지 등을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