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人사이트] 기술 회사의 단계별 투자 전략…재무투자부터 전략투자까지
“투자 유치 후 통장에 잔고가 쌓인 회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이 ‘생존’이다. 기업은 성장하기 이전에 생존을 해야한다. 많은 투자금을 믿고 성장에 대한 큰 그림만 그리면 생존에 대한 계획이 부재하게 된다. 통장에 돈이 있다고 멀리있는 것만 바라볼 게 아니라 당장 눈앞 고민부터 해야한다. 이윤창출을 위한 생존전략이 투자 초기부터 병행 되어야 한다. 큰청사진도 중요하지만 일단 먹고 살아야 한다.”
2일 네이버 D2스타트업 팩토리(D2SF) 주최로 열린 ‘Tech Meets Startup’ 컨퍼런스에서 수아랩(SUALAB) 문태연 부대표가 기술 스타트업의 투자유치 과정을 공유했다.
수아랩은 지금까지 네 번의 투자를 유치했고, 각 단계별로 목적이 달랐다. 제품 개발을 위해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사업 초기엔 리소스가 분산되지 않는 재무적 투자를 받았고, 이후엔 사업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대형 고객사 또는 제휴사의 전략적 투자유치를 했다.
문태연 부대표는 어떤 목적으로 투자를 유치해왔는지, 투자 조건은 무엇이었는지, 상용화 이전 단계에서 기술 잠재력을 어떻게 보여주었는지, 투자 유치 후 자금을 어떻게 썼는지 등을 말했다. 이하 강연내용 정리.
“투자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목적에 맞는 투자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돈을 받는 것보다 목적에 맞게 쓰는 것이다.”
경영학원론 첫 페이지에 보면 ‘경영이란 돈이나 사람 등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목표 달성을 하는 것’이라 쓰여져있다. 우리는 기술기반 회사로써 저 말을 ‘경영이란 무제한적인 돈과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목표를 먼저 정의하고 그 목표에 필요한 돈과 사람을 확보하여 운영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수아랩이 투자관점에서 목표설정을 어떻게 하고 운영했는지를 말하려 한다.
우리가 투자받을 때 고려사항은 ‘목적에 맞는 돈을 받는 것, 목적에 맞는 투자조건을 만드는 것, 목적에 맞게 쓰는 것’ 세 가지였다. 투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기술기반 회사에게 있어 시기별 어떤 목적이 있을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하고, 투자 조건은 어떻게 만들어 가야할지, 전략투자 등에서 기술회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무엇일지도 살펴야 한다. 돈을 받는 것보다 목적에 맞게 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투자금 운영 결과를 봤을 때, 투자 유치 당시의 목적, 시점, 규모가 적정했는지를 살펴봐야한다.
수아랩은 4번의 투자를 유치했다. 앞선 두 번(2015년 4월 엔젤투자, 2016년 6월 시리즈A)은 연구개발이 필요한 시기에 외주를 안 할 수 있어서 한 재무투자였다. 2017년 8월 시리즈B는 전략투자와 재무투자를 섞은 형태였다. 고객사로부터 납품을 전제로 한 전략투자 형태였다. 2018년 7월 시리즈C는 중국 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라운드였다.
외주개발 그만하자,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위한 초기 투자유치
창업 후 2년 간 수아앱은 초기 외주개발로 유지되었다. 가죽검사 알고리듬, 지폐검사 알고리듬, 황사-먼지-비 제거 알고리듬, 인쇄물 검사 알고리듬, 아프리카TV 방송효과 플랫폼 등 2년 동안 11개의 외주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이 지체되고 있었다. 우린 딥러닝을 연구해 제조업에 빨리 적용하고 싶었다. 목적과 상관없는 외주개발에 리소스가 쓰이면 안 된다 여겼다. 그래서 회사 경쟁력의 재고를 위해 재무투자를 검토했다.
엔젤투자와 시리즈A투자 유치 목적은 외주개발을 그만하고 AI연구에 집중하는 것, 투자조건은 온전한 기업가치로 재무적 투자를 받는 것이었다.
투자자에게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관건은 아직 열리지도 않은 딥러닝 잠재시장의 규모를 어떻게 추산해 설명해야 할지였다. 즉, 보이지 않는 시장을 증명해야 했다. 또 그 시장에서 우리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확신을 줄 것인지였다.
우린 신기술로 인한 잠재시장을 효용 기반으로 계산해서 제시했다. 제조업 기존 검사시장이 7조 원 규모였고, 우리가 열려는 시장은 총 34조 원이라 설명했다. GDP상위 9개 국가의 공장 근로자수도 보여줬다. 사람이 검사하는 시장이 얼마이고 우리 솔루션을 활용하면 얼마인지를 산정해서 제시했다. 그리고 실제 우리가 납품을 했거나 논의 중인 영업상황도 근거로 보여줬다. 잠재시장의 세부 구성을 친숙한 사례, 끈이있는 사례로 증명했다. 잠재시장의 산업별 구성도 구체적으로 그렸다. 그 산업에 딥러닝이 들어갈 때 새롭고 큰 시장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잠재시장 내 우리가 연착륙해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고객사에게 부탁해 시장의 불편함, 우리 기술의 효용성을 설명하는 인터뷰 영상을 찍기도 했다. 우리 입이 아닌 고객의 입으로 IR을 한 것이다. 당시 대기업에서도 우리 솔루션을 검토하고 있었다. 수아랩 솔루션을 써본 그 회사 임원도 흔쾌히 투자사 인터뷰를 수락하고 잠재투자자와 만나주기도 했다.
신기술로 인한 잠재시장을 효용 기반으로 잠재시장을 보여주고 세부 구성을 친숙한 사례로 증명한 뒤 고객(잠재고객)의 입으로 증명한 것이다. 투자자를 설득할 때 위 세 가지가 도움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믿음을 줬다. 결론적으로 이 투자유치를 발판으로 최고 AI인재를 영입했다. 목적에 맞게 자금을 운용한 것이다.
‘시리즈B’ 대형 고객사에 독점 납품을 전제한 전략적 투자 유치
엔지니어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와해성 기술로 생긴 틈은 홀로 뚫고 가는 것이 어렵다. 틈이 열리는 시간이 길지 않고 생각보다 금방 닫혔다고 봤다. 신규 업체가 후발로 나오는 것도 위험 요소이지만, 기존 강자들이 기술을 내재화해서 가지고 있던 강점을 극대화할때가 가장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혼자 기술개발하고, 생산하고, 수출하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는 사업이 힘들다고 봤다. 그래서 외부와 손을 잡고 더 빨리 가기로 했다. 전략적 제휴도 있겠지만, 투자로써 피를 섞어서 신뢰기반으로 같이 가는 것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시리즈B에서는 대형 고객에게 전략적 투자를 유치하기로 했다.
시리즈B는 시장 선점을 위한 공격적인 운영비 확보, 대형 고객사와 납품을 전제로한 제휴가 목적이었다. 투자조건은 재무적 투자와 전략적 투자를 병행하기로 했다. 특히 납품을 조건으로 한 투자이기에 납품 조건에 대한 세부 협의가 관건이었다. 결과적으로 투자를 받아 조직규모를 확대했다. 투자이전 39명에서 1년 사이 89명으로 인원을 늘렸다. 투자를 유치한 고객사에는 대량으로 납품했다. 전략투자의 효용을 잘 살렸다고 자평한다.
소스코드 공개, 독점권 … 투자과정이 녹록치는 않았다.
B라운드 투자유치 과정에서 기술회사라면 다들 겪는 문제가 발생했다. 소스코드에 대한 소유권 및 판매 독점권 이슈였다. 조직이 너무 빨리 크다보니 비효율성도 생겼다.
큰 회사가 작은 회사와 기술제휴를 할 때 관심있는 것은 그 회사가 개발한 제품과 좋은 연구인력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면 소스코드일거다. 공동개발이라면 함께 소유하는 것일테고 특허나 실용신안 등으로 소유권을 구분하기도 한다. 처음에 만나고 논의를 한 A사는 모회사의 전 계열사에 우리 소프트웨어를 납품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A사가 추진하는 플랫폼에 수아랩 솔루션을 심고싶다고 했다. 이 부분 논의만 3~4개월 했다. 어느정도 이야기가 진전된 다음에 소스코드 이야기가 나왔다. 그 회사 플랫폼에 우리 솔루션을 적용하려면 소스코드를 오픈해야 했다고 하더라.
우리 같이 작은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소스코드 오픈은 우리 기술이 다 드러나는 것이기도 했다. 내부 논의를 거쳐 ‘수아랩은 어떠한 경우에도 R&D의 본질인 소스코드를 오픈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우리 의견을 전달하니 A사에서 소스코드 전체가 아니라 접합부분만 오픈하는 조건부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들였음에도 A사와는 투자와 납품이 없던 이야기가 됐다.
그 다음에 시리즈A 라운드에 참여한 투자자의 소개로 B사와 전략적 투자유치 이야기를 시작했다. B사도 A사와 마찬가지로 소스코드 오픈이슈로 처음에는 결렬되었다. 소스코드 빼면 우린 죽는다고 했다. 대신에 B사에서 받은 데이터로 취득한 기술은 세미나도 하고 블록 다이아그램도 오픈하며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소스코드 오픈 이슈는 B사가 합의해줘서 잘 마무리 되었다.
그 다음은 독점권이 이슈였다. 예를들자면, B사에 우리 제품을 납품하는 대신 경쟁사에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 제시받은 범위가 너무 넓더라. 그래서독접권 범위조절을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틈과 문은 닫히고 있었고 독점권 대상이 우리 사업에서 큰 부분이 아니면 선택의 문제라고 봤다. 그런 과정을 거쳐 B사로부터 전략적 투자유치를 완료했다.
시리즈B 투자 과정에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
시리즈B 투자 과정에서 잘한 것은 기술 오픈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지킨 것,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필리핀 공장에 대량 납품을 성공한 것, 그리고 대기업 레퍼런스 확보를 한 것이었다.
반면에 아쉬운 점은 제휴협상이 처음이다 보니 끌려다녔다.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모두 테이블에 꺼내 놓아야 했는데 들어온 제안이 좋은지 나쁜지만 고민했다. 선제적 제안이 부재했던거다. 또 상대방이 물어보면 그제서야 고민하고 원칙을 세웠다. 이전까지 기술 오픈에 대한 원칙, 독점권에 대한 원칙, 제품 커스터마이징 정도에 대한 수용 범위, 엔지니어 장기 편장 파견 프로젝트 진행 여부 등 원칙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중국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의 전략적 투자유치
시리즈C 투자유치는 중국 현지 업체와의 영업제휴, 납품 등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중국에 있는 대형 제조그룹 A의 자회사 B를 통해 그룹사 전체에 제품을 납품하는 영업 에이전트 계약을 전제로 협상을 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얼마전 우리 제품의 시연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었고 발주 대기 중이다. 그대로 진행되면 중국시장에서 좋은 레퍼런스를 얻을거다. 회사의 가장 큰 캐시플로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상대방의 급진적 제안으로 기존 목적이 희석되버린 것이다. 투자 이야기를 하려고 갔는데 우리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역제안이 왔다. 본래 목적을 잊고 거기에 한참을 허우적대다가 처음으로 돌아왔다. 또 전반적으로 불리한 협상조건을 받기도 했다. 장기전 양상으로 갔다.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회사 IR을 할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 B사의 회장이 있었다. B사는 중국 대기업 A그룹의 자회사였다. 일주일 뒤에 중국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우린 기회다 싶어 전략 투자 기반 영업제휴를 상정하고 납품에 대한 조건 등을 준비해서 갔다. 그런데 마주 앉은 자리에서 대뜸 회사 인수 이야기가 나왔다. 함께 조인트 벤처를 만들자 했다. 우린 A그룹에 파는 계약을 생각했는데, B사 회장은 중국 시장에서 팔자고 제안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논의였고 그런 경험도 없었다. 게다가 우린 중국 법인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논의를 한 뒤 원래 우리 생각대로 가자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B사 회장을 만나러 갔다. 숨기지 않고 다 꺼내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우릴 믿는다면 납품 솔루션부터 하며 신뢰를 쌓자고 했다. 순서대로 하고 싶다고 했다. 4일동안 점심, 저녁 샌드위치만 먹어가며 계속 이야기했다. 다행스럽게도 B사 회장을 설득할 수 있었다. 이후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어있는 상호독점, 독점범위 조정, 법인 간 충돌이슈, OEM, 소스코드 등 세부조건도 조율했다. 그게 마무리가 되어 투자를 받고 사업적인 제휴도 맺었다.
시리즈C 협상테이블에선 전술전략이 아니라 솔직하게 이야기 한 것이 주효했다.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니 원하는 것을 얻게 되더라. 앞선 전략투자 경험에 의해 독점권, 수익 분배 등에 대한 원칙을 수립하여 활용한 것도 잘 했다고 본다. 아쉬운 점은 B사와 A그룹을 잘 몰랐다는 것이다. 그 회사를 면밀하게 공부했다면 데이터 활용이나 번들판매, 라이센스 제안 등 더 다양한 제휴를 할 수도 있었을거다. 회사의 이해도가 떨어져서 세밀하고 심도있는 제안을 못 한 것이 아쉽다.
4번의 투자유치 과정에서 배운 것
투자는 목적을 가지고 받아야 한다. 모든 것을 혼자할 수는 없다. 스케일업을 위한 다양한 전략투자 옵션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은 접근이다. 상대의 급진적인 제안에 초기 목적이 흔들리는 것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투자를 받으려면 잠재시장을 증명해야 하고, 제휴원칙을 세워야 한다. 협상을 할 때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 제안할건 제안하고 포기할건 포기해야 한다. 투자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돈은 언젠가 떨어진다. 넉넉한 통장 잔고가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생존과 성장을 같이 생각해야 한다.
2013년에 설립된 수아랩은 제조업에서 딥러닝을 활용해 불량검사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전체 110명 인원중 65%가 엔지니어인 기술회사다. 수아랩은 인공지능 이미지 해석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머신비전 기술로 검사가 어려웠던 분야에 딥러닝 머신비전 검사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제품으로는 제조업 딥러닝 검사 솔루션이 있다. 이 제품은 딥러닝 머신비전 소프트웨어, 장비를 비롯해 전기-전자 제품, 자동차, 식품 등 다양한 제조업 분야 제품 검사에 적용이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딥러닝 검사 라이브러리인 ‘수아킷(SuaKIT)’은 5픽셀 이하의 작은 크기 불량도 검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