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기업 소프트웨어를 살 때 하지 말아야 할 것
“정부의 IT사업 발주 대부분은 일회성 SI가 많다. 이것저것 가져다 붙인 프랑캔슈타인을 요구한다. 오라클 등 미국 제품은 그대로 사면서 왜 한국 기업한테는 그걸 요구하나. 사주면서 기업을 죽이는 거다.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역할은 스타트업 등 민간기업이 잘 만든 소프트웨어와 제품을 그대로 가져다 써주는거다. 왜 굳이 부처에 맞는걸 따로 만들어야 하나. 전세계가 한국을 IT 강국으로 본다. 한국 정부가 쓰는 소프트웨어와 제품이라면 그것 자체가 큰 레퍼런스가 된다. 그 다음에 잘 하고 못 하고는 기업 역할이다.”
20, 21일 양일간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스타트업 생태계컨퍼런스’에서 투자업계, 스타트업, 연구기관 관계자가 업계 현안을 논하는 패널토론 자리가 마련되었다. 패널로는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 박성호 sv인베스트먼트 대표,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김애선 KCERN 책임연구원이 자리했으며,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가 좌장을 맡았다. 이하 패널토론 전문 정리.
SV인베스트먼트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해서 큰 성과를 냈다. 투자결정을 할 때 뭘 보고 했나.
박성호 에스브이인베스트먼트 대표 : 투자 대상 산업이 안 되다가 될 때는 이유가 있다. 그걸 찾는다. 그리고 CEO가 늘 중요했다. 투자했는데, 안 좋은 상황이 되면 책임을 회피하는 대표들이 있다. 90~2000년대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방시혁 대표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일반적이진 않다. 업종에 따라 다르다.
빅히트에 재무적 투자 뿐만 아니라 밸류업 지원도 했다. 김중동 상무(빅히트 발굴 심사역)가 노력을 했다고.
박성호 : 밸류업 지원은 회사의 투자 철학에 기인한다. 김 상무가 빅히트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하지만 업종마다 다르다. 바이오 기업에 그렇게 자주 찾아가면 불편해 할거다. 김 상무가 내가 안 가도 될 정도로 잘 했다.
빅히트같은 성과를 엔터 영역에서 또 낼 수 있을까.
박성호 : 나와야 한다. 하지만 우린 한국에서 못 찾아 중국을 봤다. 중국 텐센트와 한국 JYP가 합작한 그룹(보이스토리)에 투자했다. 엔터 산업은 연예인이 아니라 그 연예인을 육성하는 능력이 훌륭해야 한다. JYP가 방시혁 대표와 같은 역할을 할거라 봤고, 연예인은 중국 젊은이들이다. 작년에 데뷔했고 현지 인기가 높다. 새로운 모델이라 생각해서 단독으로 투자했다. 잘 되면 빅히트 이상의 성과가 나올거라 본다. 아무래도 시장은 중국과 미국이 크다.
SV는 글로벌 가치창출을 지향하고 매출 대부분이 외국에서 나온다. 한국시장은 작다고 보나.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한 서비스가 유니콘이 될 수 있을까.
박성호 : 한국시장이 작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엔터 영역은 불법 음원 등 특수성이 있다. GDP 대비 구매비율이 낮다. 확장성이 크기에 확률을 높이기 위해 외국을 보는거다.
김애선 연구원은 한국에 8개 정도 유니콘이 있다고 발표했다. 한나라에 건강도, 스타트업 활성도, 경제 건강성을 유니콘으로 보는건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김애선 KCERN 책임연구원 : 유니콘 개수만을 강조하면 그게 목적이 된다. 유니콘이 중요한 이유는 스케일업 생태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태계를 이끌고 조성한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체적인 유니콘의 비즈니스 영역은 온오프라인 융합인데, 여기에 규제가 많다. 국회에 계류되어 통과가 안 되는 것도 많다. 이 부분에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가 있다고 한다. 어떤 기준으로 구분해야 할까.
김애선 : 규제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마중물이면 된다. 규제 인프라 정책이 필요하다. 그 부분 인프라가 국내는 열악하다. 규제 수백만 가지를 분석하고 역량평가를 할 수 있나.
규제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정말 오래했다.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한 방법은 뭘까.
김애선 : 소비자의 목소리를 모아서 보여지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의 규제는 공급자적 관점에서만 논의된다. 타다가 대표적이다. 소수의 목소리가 전체를 대변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해 관계자에 소비자도 포함시켜야 한다. 블록체인 활용도 좋다고 본다.
알토스벤처스는 많은 유니콘 기업에 투자했다. 오늘 발표에서 고용과 해고를 잘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게 잘 안 되고있는 회사에 조언을 한다면. 가장 중요한건 뭘까.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 : 함께 창업했거나 개인적으로 친한사람이 회사에서 역할을 못 할 때 대표의 고민이 커진다. 그런 이슈로 상담하러 오는 대표들이 있다. 어느정도 잘 되고 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쉬운일이 아니지만, 회사에 도움이 안 된다면 과감히 정리하는게 맞다. 기분좋게 헤어지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와 입사 인터뷰를 한 사람에게서 피드백이 올 때가 있다. 임원의 질문이 형편 없었다거나, 프로세스가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들리면 걱정이 된다. 찾아가서 고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터뷰를 하러 온 사람은 고객이 될 수 있다. 그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일례로, 우아한형제들은 채용을 하면 그 직원의 배우자나 부모에게 대표 자필 편지가 담긴 꽃바구니를 보낸다. 회사에 대한 인상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초기기업의 지분관계는 어떻게 해야할까. 머리 안 아프게 해야할까, 아니면 계약서를 써야할까.
김한준 : 대표가 될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지분을 골고루 나누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냉정해야 한다. 지분을 가진 사람이 회사를 퇴사하더라도 매각을 마음대로 못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알토스벤처스에는 한국팀과 미국팀이 공존한다. 장단점은 뭔가.
김한준 : 시차가 있으니 누군가 일찍 일어나야 하고 누군가는 늦게 자야한다. 하지만 얼굴 맞대고 일을 해야하는 조직이 아니기에 쓸데없는 회의는 안 한다. 그럼에도 의사결정은 빠르다. 한국 문화는 이름 뒤에 타이틀을 붙여 호명하지만, 우린 이름만 부른다. 부자연스러운 시간 낭비는 안 한다.
의사결정이 빠르다는건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믿는 문화 외에 계약이나 경제적 보장 등 다른 장치는 없나.
김한준 :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함께 일하면 평생간다는 패밀리 방식이다. 회사가 잘 되면 모두가 잘 되는 방향으로 간다.
베스핀글로벌은 설립된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빠르게 성장했다. 2년이 채 안 되어 1300억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차기 유니콘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언제쯤 유니콘이 될까.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 아직 유니콘이 아니지만, 다음주에 될거다.
B2B 클라우드 뿐만 아니라 여러 O2O기업은 큰 폭의 성장을 하지만, 적자 경영을 하고있다. 근래 우버가 상장을 했지만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여론과 함께 유니콘 기업에 대한 우려도 많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걸까, 아니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할까.
이한주 : 삼성 반도체도 10년 이상 적자였다. 우버 공모가가 기대만 못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현재 가격의 반에 반만 해도 성공한거다. 한국 기업이 어디에 투자하면 좋느냐는 질문 많이 받는데, 근본적으로 틀린 질문이다. 삼성 반도체가 성공한 것은 한국이 반도체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크게 될 사업을 오래했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생겼을 때 한국이 철강을 잘 할만한 이유가 있었나. 현대차가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한국이 자동차를 잘 만들만한 여건이 되었나. 되는 사업이기에 된거다. 엔터프라이즈IT도 마찬가지다. 미국 기업만 할 이유가 있나.
B2C회사는 마케팅 및 고객 유입이 조직적으로 가능한데 반해, B2B회사는 고객처별로 페이스 투 페이스 세일즈가 이루어지다보니 멤버의 개인기가 회사의 성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비대면 SaaS로만 이루어지는 사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는데.
이한주 : 미국 엔터프라이즈IT 구조를 보면, 40%가 연구개발이고, 60%가 영업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찾기 힘든 인력은 개발자들이겠지만, 영업인력도 마찬가지다. 고액연봉자 중에 영업 사원들이 많다. 스스로 팔리는 제품은 없다. 좋은 제품처럼 보이게 마케팅을 해야한다. 영업 인력은 가치를 인정해주고 보상해주면 좋은 사람이 온다.
김한준 : 참고로, 알토스벤처스는 이한주 대표의 영업력에 넘어가 베스핀글로벌에 24시간만에 투자를 결정했다.
B2B사업의 성공을 위해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뭘까. 데이터를 풀어주는 것도 있을거고, 레퍼런스를 만들어주는 것도 있을거다.
이한주 : 한국에서 가장 큰 고객은 정부다. 그런데 정부의 IT사업 발주 대부분은 SI성이 많다. 부처에 맞는 걸 만들어 가야 사주는 구조다. 문제는 개발 기간은 같으나 결과물 IP 활용이 안 되는 일회성이라는 거다. 미국이 잘 하는건 보편성이 있는 제품을 만들게 해준다는 거다. 그런데 한국 정부 기관은 한국 기업에게 이것저것 가져다 붙인 프랑캔슈타인을 요구한다. 미국 소프트웨어는 그대로 사면서 한국 기업한테는 그걸 왜 요구하나. 사주면서 기업을 죽이는 거다.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역할은 스타트업 등 민간기업이 잘 만든 소프트웨어와 제품을 그대로 가져다 써주는거다. 왜 굳이 부처에 맞는걸 따로 만들어야 하나. 전세계가 한국을 IT 강국으로 본다. 한국 정부가 쓰는 소프트웨어와 제품이라면 그것 자체가 큰 레퍼런스가 된다. 그 다음에 잘 하고 못 하고는 기업 역할이다.
비슷한 질문인데, 국내 대기업 SI업체가 많다. 한국 B2B소프트웨어가 힘든 이유 중 하나일텐데. 어떻게 해야할까.
이한주 : 대기업 SI 업체는 없어져야 한다. 지난 30년 간 대기업 SI 업체가 한게 뭔가. 변변한 글로벌 제품을 만들지도 못 했다. 그저 계열사 일감을 부풀려 납품받는 역할만 하고 있다. 한국 IT에 투자도 인색했다. 게다가 한국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가져가면 정부처럼 이것저것 고쳐오라 주문한다. 클라우드 시대에 안 어울리는 방식이다. 앞으로는 기업에 필요한걸 가져다 쓸 수 밖에 없을거다. 그걸 못 하는 기업은 도태될거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한주 : 우리 이야기를 하자면, 베스핀글로벌은 대기업보다 더 많은 자금과 인력을 싸움터에 투입했다. 그들보다 더 투자하고 사람이 많지 않으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알토스벤처스는 한 회사에 오래 투자한다. 업계에 김한준 대표의 ‘더더더’는 유명하다. 알토스 와이파이 비번도 ‘더더더’더라. 회사를 바꾸지 않고 오래 투자하며 성장을 푸시하는 이유는 뭔가. 그리고 펀드 만료가 되도 크로스오버하는 자금도 있다. 펀드와 펀드의 시간차도 있을텐데.
김한준 : 전제조건은 회사가 빨리 성장해야한다는 거다. 회사 성장이 더디면 오래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 자본이 오랫동안 묶여있으려면, 회사 가치의 빠른 성장은 불가피하다. 잘 크는 회사는 LP들을 설득해 크로스오버한다. LP도 회사의 성장률이 높으면 거절하지 않는다. 오래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건 아니다. 제 때 못 나오고 가지고 있다가 망한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걸 추구한다.
박성호 : 보통 국내 펀드는 투자기간 3~4년에 운영기간 7년이다. 더 유지하고 싶어도 어렵다. 다른 펀드로 투자하려고 해도 한국에서는 앞뒤 모든 출자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해외는 우리보다는 쉽다. 미국에서는 운영사가 통지하면 연장이 되게 계약서를 많이 쓴다. 우리도 얼마전 8+2+2년으로 해외에서 펀드를 만들었다.
알토스벤처스는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운영사)에 초기 투자를 했다.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뭐였나.
김한준 : 일단 회사와 대표, 아이디어가 좋아서 했다. 그리고 쓰라린 경험도 한 몫했다. 과거 페이팔을 2~3번 만났음에도 투자를 안 했다. 그걸 후회하며 유사한 서비스를 찾아 내가 리드해서 투자까지 했는데 망하기도 했다. 그 응어리가 있어서 비바리퍼블리카를 눈여겨 본 것도 있다.
유니콘을 주제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박성호 : 유니콘이 많이 나오려면 투자자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히딩크 수준의 지도자가 많아야 박지성급 선수도 많이 나온다.
김한준: 모든 부분에서 경쟁이 치열해야 한다. 한국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되어야한다는 인식이 있다. 한 회사가 너무 잘되면 끌어내리려는 경향도 있다. 잘 되는 회사는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더 성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김애선 : 유니콘 비즈니스가 미래에는 일반화된 형태일거다. 한국에서 유니콘이 잘 뛰어놀 수 있는 환경, 스케일업 생태계가 조성되길 희망한다.
이한주 : 엔터프라이즈IT, 클라우드컴퓨팅이 미래다. VC들은 여기에 투자해야 한다. 이 영역에서 많은 유니콘이 나올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