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도 모르는 소비자 마음 #5] “내가 은행처럼 보이니? 아니야. 나는 소매업체야!”
“그간 우리에게 가장 큰 손해를 끼친 말은 바로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이다.” – 그레이스 호퍼
The most damaging phrase in the language is: ‘It’s always been done that way.’ -Grace Hopper
“절벽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추락할 것인가!” 핵심 역량의 종말 Vs 핵심 역량의 변신 – 아수라 백작의 얼굴
코로나19로 매일매일 즐거운 축제가 열렸던 미국 디즈니랜드가 휴장에 들어갔다. 다음 소식은 뻔하지 않는가. “꿈의 나라, 4만여 명 해고”이다. 일시 해고 기간에도 직원들에게는 의료보험 혜택은 유지하고, 연차나 보수는 삭감하지는 않을 예정이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디즈니랜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미키 & 미니 마우스’일텐데, 오늘은 귀엽지만은 않은 ‘레밍’이라는 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레밍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 많이 서식하는 일명 ‘나그네쥐’라고 불리는 동물이다. 이들에게는 집단 자살을 하는 기이한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생물학자들은 레밍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집단 자살을 한다고 분석했다. 즉, 레밍은 빠르게 번식하는 특징이 있는 바, 스스로 수가 너무 많다고 느껴지면 집단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분석이다. 레밍은 개체 수가 많아지면 다른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현재는 지각변동에 의해 대륙이 갈라지고 예전에 하나로 붙어 있던 지역들 사이에 절벽이 생겼다. 즉, 환경의 변화가 온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레밍의 유전자속에는 과거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지도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화된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그 지도를 따라 계속 자신들의 길을 가는 레밍의 고지식한 행동이 집단 죽음으로 직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솔직히 레밍과 직접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니기에 무엇하나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와 유사한 선상에서 아주 흔한 신화도 하나 강제 소환하겠다. ‘이카루스 패러독스’이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뜨거운 기운이 밀랍을 녹일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그러나 난생처음 비행을 맛본 이카루스는 흥분한 나머지 아버지의 주의를 잊어버린다. 그리하여 한없이 높이 날아오른다. 태양에 너무 가깝게! 결국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내려 날개는 떨어져 나가고, 이카루스는 바다에 추락하여 목숨을 잃는다.
이 이야기는 일시적인 성공에 취한 기업인이 자기도취에 빠지고, 그리하여 결국은 회사를 망쳐 놓는 경우를 일컬을 때 많이 인용된다. 즉, 태양(=성공)에 도달한다고 들뜬 마음으로 지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해서. 이카루스의 신화와 나그네쥐의 슬픈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각자의 교훈이 있 을 것이다.
Case1. “내가 은행처럼 보이니? 아니야. 나는 소매업체야!” – 業 자체 재정의를 통해 살아난 ‘소매업의 가면을 쓴 은행’ 이야기
캐나다 TD Bank가 2007년 85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미국 Commerce Bancorp(커머스 은행) 사례는 ‘하던 대로 하면 망하지만, 변신하면 성공하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America′s Most Convenient Bank’라는 슬로건의 Commerce Bancorp는 대형 경쟁사가 넘쳐나는 시점에서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위해 業의 정의 자체를 바꾼다. 고객들이 높은 금리만큼 양질의 서비스와 편리함도 중요시한다는 판단하에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개념을 은행 지점에 도입한 것이다. 이에따라 은행 지점을 ‘Store’, 직원을 ‘Retailer’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Top Tier Player가 아닌 이상, 전형적인 금융의 본질에만 매달리면 당장 절벽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감지했을거라 본다. Commerce Bancorp는 은행이라 생각할 수 없는 시스템을 업무에 도입했다.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은행업무를 보는 ‘Drive-Thru’, 계좌개설과 동시에 ATM 카드 즉시 발급, 당좌대월 수수료가 무료인 데빗카드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요일에도 지점을 열고 평일 운영시간을 오후 8시까지 연장했다. 또 창구업무와 후선업무 간의 차이로 오후 6시 이후 거래는 당일에 처리되지 않는 pain point를 해결하는 시스템,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콜센터, 고객이 편하게 집에 있는 저녁시간에 실시하는 해피콜 등도 진행해 편의성을 높였다.
이러는 가운데, 누군가가 Commerce Bancorp의 창업자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어떻게 은행인데, 일요일에도 직원들이 출근할 수 있느냐?”고. 이에 창업자인 버논 힐 2세는 “Walmart는 24시간 영업을 합니다”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한다. 투철하게 은행이 아닌 일반 소매업의 방향성을 천명한 것이다.
Commerce Bancorp의 또 다른 USP(unique selling point)는 Penny Arcade라 명명한 동전계수기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한 점이다. Penny Arcade 상단에 동전을 부어 세려고 하면 터치스크린에 Penny라 불리우는 캐릭터가 나와 동전을 바로 셀 것인지, 아니면 동전의 금액을 추측하는 게임을 할 것인지 묻는다. 만약 고객이 게임을 선택할 경우, 동전의 추측 금액과 실제 금액의 차이가 1.99달러 이내일 경우 ‘Penny Prize’라는 리워드를 제공한다. 동전의 계수가 프린트된 영수증을 창구직원에게 제출하면 고객이 원하는 바에 따라 리워드 금액을 계좌에 예금하거나 현금으로 제공한다. Penny Arcade는 특히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와서 즐거운 저축을 할 수 있도록 자극했다. 이외에도 ‘Summer Reading Program’ 등을 통해서 어린이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강화해 어린이들이 흥미를 지니고 평생 고객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미래의 고객까지 확보하는 ‘다 계획이 있는 영민함’을 보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미 여기에 있었다.
여기까지가 다가 아니다. 이들은 단순히 소비자 대상의 마케팅 전략뿐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 수행 방식도 새로운 業에 정렬시켜 버린다. 내부 마케팅의 일환으로 직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WOW! Department’를 신설, 성과가 우수한 직원들에게 코스튬 플레이팀을 보내는 깜짝 이벤트를 진행한다. 또한 은행 상품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퀘에서 대규모의 플래시몹(Flash Mob)의 전개, 전체 3만여 명의 고객과 2만여 명의 직원들에게 20달러가 들어있는 녹색 봉투를 제공하는 이벤트, 자동화 기기가 꽃다발 등 선물과 감사 인사를 전하는 Automated Thanking Machine의 설치 등 프로모션 성격의 프로그램도 도입한다. 고객 대상의 Fun, 직원 대상의 Fun을 통해 기업 내외부 브랜드 정체성 확립을 도모한 것이다.
또 일별로 고객의 은행 추천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프로그램인 ‘Customer Wow Index’를 통해 은행의 본분인 금융업 본질에도 충실하게 임한다. 이들은 경쟁이 치열한 금융환경에서 소매금융의 기본에 집중하면서 타 은행과의 차별화를 추구했다. 솔직히 전 세계적으로 금리 경쟁이 격화되고는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은행간의 뚜렷한 차별성은 없지 않은가. 이들은 이러한 절벽과도 같은 상황에서 ‘소매업’이라는 새로운 業의 개념을 은행업에 차용하여 고객만족, 재미 및 편의성이 가미된 자신들만의 블루오션을 창출했다.
다른 경쟁사 은행들이 가져가는 일반적인 핵심 역량의 프레임 속에서 머물지 않았다. 레밍의 쥐처럼 앞 줄에 있는 친구 쥐의 발자국을 따라 가지 않은 것이다.
Case2. 쇠퇴의 징조를 감지, 핵심 역량을 탈바꿈하여, 코로나19 시대에서 승승장구하는 후지(Fuji)
콜롬비아 대학 비즈니스 스쿨 교수이자, ‘트위터에서 팔로우해야 할 비즈니스스쿨 교수 10인’으로 불리는 리타 건터 맥그래스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경쟁 우위가 지속되는 시대는 끝났다. 일시적 경쟁 우위(Transient Competitive Advantage)를 끊임없이 획득해야 한다.”
그녀는 전 세계 시가 총액 1조 클럽의 상장 기업 5,000개 중 2000년 이후 10년 동안 수익과 순수익을 매년 5%이상 성장시킨 10개 기업을 분석한 뒤 이들의 성공 DNA를 ‘일시적 경쟁 우위를 지속적으로 획득한 것’으로 해석한다. 변화의 시대에 민첩하게 적응해 나갔다는 것으로, 과거 성공 방정식인 이카루스 패러독스에 빠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한때 세계 최고 기업이었던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및 스마트 폰 보급으로 인해 2012년 결국 파산한 것, 이는 너무 유명한 전설이 되어버렸다. 반면, 경쟁 기업인 후지 필름은 어떠한가. 이들은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라는 절박함으로 혁신에 성공한다. 필름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후지는 사진 필름 공장, 현상소, 특약점 등의 업무를 단순화, 집약화하는 가운데 자사의 기술력을 철저히 분석한다. 그리고 관성을 탈피해 변신을 추구한다. 필름 사업을 통해 축척한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화장품 및 제약 업체가 된 것이다. 우선 필름 생산의 주원료인 콜라겐과 사진 변색 방지에 사용하던 항산화 성분인 아스타키산틴을 활용해 피부 재생과 노화방지 화장품 사업으로 진출한다. 필름 사업에서 화장품 사업으로 변신한 것도 WoW인데, 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필름 제조를 통해 확보한 자사 고유의 화학합성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항인플루엔자 의약품 개발에 주력해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까지 성공한다.
이들의 민첩함은 위기의 펜데믹 시대에도 통한다. 후지필름은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 신종플루 치료약으로 알려진 ‘아비간’을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서 최대 7배 증산에 나섰다고 한다. 이를 위해 후지필름 와코준야쿠(후지가 인수한 시약 기업)는 약 11억 3200만원을 투입해 1개월에 30만명분의 아비간 제조가 가능한 의약품 중간재 생산능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리타 건터 맥그래스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쟁우위의 종말/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 How to Keep Your Strategy Moving as Fast as Your Business>에서 성공한 10대 기업은 ‘안정성(Stability)과 민첩성(Agility)이 양립하면서도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 모순덩어리 같은 것을 한 몸에 안고가는 기업이라니.
한 영역에서 성공한 기업일수록 혁신은 구호일 뿐 실천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이를 극복하려면 파도타기를 즐기듯 일상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더 이상 마이클 포터가 이야기한 ‘지속적 경쟁 우위’는 없다. 지금 하는 일을 더 잘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당신의 업에서 유효기간이 경과된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감지하고, 현실을 인정하고, 솔선해서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이다. 피곤한 사회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변화에 능숙한 것만이 지속적인 경쟁우위’가 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 당신과 나는 살고 있다. 경영과 마케팅에서 단어 그대로의 ‘sustainable’는 호랑이 할아버지가 담배피던 시절에만 통용되는 것으로 판결나는 것이 아닐까.
박소윤 : 마케팅 & 브랜드 전략 컴퍼니 Lemonade&Co. 대표 및 Small Data 전문가. 경영학 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外 홍익대학교 석박사 통합과정에서 마케팅 강의중이다. 대기업, IT회사, 브랜드 & 마케팅 컨설팅 기업 등에서 10년간 직장 생활 후, Lemonade&Co.를 설립해 다수의 광고 회사와 마케팅 & 브랜드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저서로는 <AI도 모르는 소비자 마음(교보문고, 예스24)>, <마케팅 관리론―핵심 실무 중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