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人사이트] “인터뷰 마지막 단계는 재료를 다듬는 조각의 과정”
“제가 생각하는 인터뷰 콘텐츠 마지막 단계는 조각이에요. 인터뷰 대화는 덩어리를 얻어내는 과정이에요. 이 덩어리의 성분이 인터뷰마다 다르죠. 어떤 것은 대리석으로 이뤄지고, 어떤 것은 나무이고, 어떤 것은 흙이기도 할 거에요. 인터뷰이와 나눴던 대화의 성격과 내용, 재료들이 다 담겨있어요. 그걸 인터뷰의 핵심에 닿게끔 조각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 황선우 작가
인터뷰는 질문과 답변이란 형식을 취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상호 대화이고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준비된 질문만 한다면 굳이 얼굴을 보고 할 필요가 없다. 현장 상황에 따라 질문을 가감하며 좋은 답변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인터뷰를 읽는 독자는 인터뷰어가 아니라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듣길 원하고, 인터뷰 현장에 초대되길 바란다. 좋은 대답을 이끌어 내려면 적절한 질문도 필요하지만, 경직되지 않고 대답이 나오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같은 인터뷰이도 인터뷰어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지는 건 이런 부분이 크다.
카카오페이지의 ‘멋있으면 다 언니 : 황선우의 스압 인터뷰(이하 ‘멋언니’)’는 인터뷰어의 내공이 드러나는 콘텐츠이다. 질의응답이 막힘없이 읽히고 인터뷰이의 가감없는 매력을 잘 드러낸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지난 27일 열린 테헤란로 스터디클럽에는 ‘멋언니’ 콘텐츠를 주도한 황선우 작가가 연사로 나서 인터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하 발표 내용 정리.
인터뷰에 대한 갈증에서 시작한 ‘멋언니’의 시작
카카오페이지에서 ‘멋있으면 다 언니’의 진행과 인터뷰와 원고 작성 등을 맡고 있어요. 저는 99년에 일을 시작했으니 일을 좀 일찍 시작한 편이에요. 잡지사, 주간지를 거쳤고 주로 패션지에서 오래 일을 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커리어에 대해 고민이 많잖아요. 저 역시 그랬어요. 취재하고 글 쓰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 잘 맞고 재미있는 일인데,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하다 혼자서 한번 일을 해보자 싶었어요. 2019년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하는 시기와 맞물렸고요. 당시 제가 느꼈던 건 ‘아, 프리랜서로 사는 것도 괜찮구나.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왔던 커리어가 있기 때문에 나의 이름을 걸고 여러 의뢰를 받아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시간적인 자유도 누릴 수 있구나.’라는 거였어요.
책을 내고 바쁘게 관련 활동을 하던 2019년 가을에 카카오페이지 이수현 팀장에게 인터뷰 콘텐츠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프리랜서 일을 하며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인터뷰 일을 하고 싶다는 거였거든요. 혼자서도 칼럼이나 에세이 콘텐츠를 쓸 수는 있겠지만, 인물 인터뷰는 아무래도 미디어와 함께 해야 수월한 부분이 많아요. 물론 ‘일간 이슬아 시스템’을 만든 이슬아 작가같은 훌륭한 케이스도 있지만, 미디어에서 인터뷰 일을 의뢰받지 않으면 혼자 기획해서 진행하는 건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서 제안을 받은거에요. 그래서 ‘멋언니’에 씨를 뿌렸죠.
인터뷰는 ‘나와 인터뷰이 사이의 가능성을 찾고,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시도’
사전에서 단어 찾아보는 걸 좋아해요. 인터뷰의 정의에 대해서 찾아보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인이나 집단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주로 기자가 취재를 위하여 특정한 사람과 가지는 회견’이라고 나와요. 좋은 대화에서 그치지 않아야 하는 게 인터뷰의 목적이라고 봐요. 그래서 ‘멋언니’ 인터뷰를 할 때는 목적성을 가진 대화를 충실하게 나누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비포 선라이즈’ 라는 영화를 좋아해요. 그 영화에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너나 내 안이나, 우리 안에는 없을 거야. 신은 우리 사이의 작은 공간에 있을 거야. 이 세상에 마법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뭔가 공유하려는 시도 속에 존재할 거야.’라는 대사가 있어요. 제가 인터뷰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이 그 대사와 같아요. 우리 서로는 불완전한 존재지만 그 사이의 어떤 가능성을 찾고, 나와 타인은 너무 다르지만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시도인 거죠. 그런데 시도라는 건 항상 성공만 할 순 없어요. 실패하고 미끄러지더라도 그걸 향해가는 것을 잃지 않아야 되겠죠.
인터뷰이 선정 기준 ‘자신의 방식으로 현실을 바꿔가는 여성’
인터뷰를 할 때는 먼저 사전 준비 단계에서 기획을 하고 인물을 섭외하죠. 기획 단계에서 ‘이 인터뷰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어떤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를 명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틀을 세워놔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리고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사진 촬영 등 취재를 한 다음에 사후 정리 과정이 있습니다.
‘멋언니’는 전형성에서 벗어난 다양한 여성들의 일하는 모습들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성공한 남자의 이야기는 많이 조명이 되는데 반해 성공한 여자는 어떤 틀에 맞춰진, 전형적인 여성들만 소개되잖아요. 그래서 멋있으면서 자신만의 분투가 있고 자기 방식으로 현실을 바꿔 가는 사람을 다루려고 했어요. 세상의 룰에 따라서 크게 성공한 사람보다는 룰 자체를 바꾸고 있는 그런 여성들을 만나보고 싶었죠. 여성들도 근 미래, 먼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화두를 던져줄 수 있는 인물들을 만나보자 했죠. 그게 ‘멋언니’ 기획의 첫 그림이었어요.
이 인터뷰 콘텐츠는 된다. 되게 하겠다
‘멋언니’라는 타이틀이 생기기 전에 ‘황선우의 인터뷰 10’이라는 가제를 달고 있을 때 기획서를 쓴 적이 있어요. 카카오페이지에서도 인터뷰 콘텐츠는 처음 해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콘텐츠의 가치를 설명하는 단계가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인터뷰는 정말 매력적인 콘텐츠에요. 강연이 철저하게 준비해서 보여주는 화자의 이야기라면, 인터뷰는 인터뷰이 자신도 몰랐던 어떤 것을 우연의 미학으로 끄집어 내는 대화에요. 그래서 ‘인터뷰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 ‘이것은 될 것이다.’, ‘되게 만들 수 있다’는 걸로 설득했어요. 그걸 기획서에 담았죠. 지금 보면 턱도 없는 분량을 쓰겠다고 했어요. 회당 원고지 50매 내외로 하겠다고 써놨는데, 분량 체크를 다시 해봤더니 자야 작가편은 260매나 되더라고요. 하지만 첫 원고를 써보고서 확신했어요. 이건 길어야 된다고요. 짧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모바일의 장점이라는 게 축약이 아니라 오히려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쌓아가는 것이라 판단해 분량에 대한 기획은 다시 했죠.
인터뷰 섭외 메일은 원고를 쓰는 마음으로
섭외는 우선순위가 필요합니다. 10명을 만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절반 정도 만날 때 까지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라는 심정으로 조금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한 자리, 한 자리 줄어들수록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야 해요. 연락할 때는 저랑 일을 했던 분도 있었고, 처음 연락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내 얘기를 들어줄 거야.’, ‘날 만나줄 거야.’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고 임했어요.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에게 매력적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봐주지 않잖아요. 최대한 이 인터뷰 콘텐츠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얼마나 세상에 파장을 미칠지를 간절한 마음으로 알렸던 거 같아요. 그렇게 허락을 받아 내면 만나는 일정, 사진 스케줄 등을 조율해요. ‘어디서 인터뷰를 할 것인가’, ‘어디서 사진 촬영을 할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그걸 정하는 것 까지가 섭외단계에서 이뤄지는 일입니다. 섭외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거절당해도 좌절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너를 절대 보고 싶지 않아.’ 내지는 ‘너희 인터뷰에 내 시간을 내 줄 수 없어.’ 이런 거절보다는 서로 어떤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다음을 기약하고 나 자신에게도 ‘괜찮아. 다음으로 넘어가면 돼.’ 이런 식으로 다독이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한거죠.
섭외 메일을 쓸 때는 정말 마음을 다해서 써야 되는 거 같아요. 그렇게 해도 될까 말까 거든요. 원고 쓸 때만큼이나 공들여서 쓰는 게 섭외 메일입니다. 전주연 바리스타를 섭외할 때는 제가 접점이 전혀 없었어요. 이분이 다른 매체에 나오신 거는 좀 봤었지만, 연락처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그냥 정공법으로 모모스커피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전화번호를 보고 회사로 연락을 했죠. 회사 대표 메일이었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 회사 분들을 지칭하면서 메일을 썼어요. 내가 누구인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좋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죠. 장혜영 의원 같은 경우에는 의원회관에서 만나니까 장소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죠. 그 사람이 일하는 장소에 가서 인터뷰 하는 것의 장점은 말로 하지 않아도 공간에 놓인 그 사람의 생활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는 거에요. 예를들어, 장혜영 의원이 감독 일을 할 때 만들었던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 포스터가 붙어있기도 하고, 장 의원이 요즘 관심 갖고 발의하는 법안에 관련된 책들도 볼 수가 있죠. 그런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뷰에 담았어요. 그리고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경우에는 피아노가 놓인 공간에서 인터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따로 사용하는 연습실이 따로 없는 거에요. 그래서 피아노가 놓인 작은 공연장을 섭외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어떤 질문을 해야할까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그렇게 크게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이에게 하는 질문 내용 자체가 큰 차이는 없지만, 그걸 새롭게 물어보는 것, 방식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사전 조사가 중요하죠.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해왔고, 다른 인터뷰에서는 어떤 얘기를 했는지 가능한 다 찾아보는 편이에요. 하지만 조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인터뷰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좋은 인터뷰에는 충실한 사전 조사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플러스알파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질문을 준비해도 중요한 건 ‘인터뷰이가 어떻게 느끼고, 어떤 상태에 놓이는가?’ 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사전 조사도 인터뷰이와의 신뢰 형성에서 필요한 과정이죠. 인터뷰이가 책을 썼는데 제목도 모른다면 진솔한 얘기가 절대 나올 수가 없겠죠. 질문지를 사전에 준비해가긴 하지만 질문지를 다 소화하는 게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아요. 인터뷰이가 하는 얘기가 더 재미있다면 그걸 따라갑니다. 그럴 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질문지에서 어떤 이야기가 빠졌는지는 항상 의식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소화하려고 노력해요. 효율적으로 시간을 배분하고 긴장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거죠.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경청이 먼저라고 봐요. 질문지를 보면서 질문을 던지기 어려운 현장 상황도 있기 때문에 마인드맵을 그려가서 참고하기도 해요.
콘텐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진의 임팩트
‘멋언니’는 인터뷰 글뿐만 아니라 사진을 좋아해 주는 독자들이 정말 많았어요. 사진을 잘 나오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잘 찍는 사진가를 섭외하는 거에요. 그래서 ‘멋언니’는 처음부터 정멜멜 작가를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콘텐츠 제작 예산에서 제가 양보하지 않았던 부분이 이거였어요. 사진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를 해야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결과도 예상 밖으로 잘 나올거라 믿었고요. 사진은 ‘멋언니’라는 콘텐츠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아이덴티티였다고 봅니다.
인터뷰 마지막 단계 ‘녹취와 원고정리’는 조각의 과정
제가 생각하는 인터뷰 콘텐츠 마지막 단계는 조각이에요. 인터뷰 대화는 덩어리를 얻어내는 과정이에요. 이 덩어리의 성분이 인터뷰마다 다르죠. 어떤 것은 대리석으로 이뤄지고, 어떤 것은 나무이고, 어떤 것은 흙이기도 할 거에요. 인터뷰이와 나눴던 대화의 성격과 내용, 재료들이 다 담겨있어요. 그걸 인터뷰의 핵심에 닿게끔 조각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게 원고를 다듬는 마지막 단계라고 봅니다. 사실 이 과정이 굉장히 지난하고 힘들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방망이 깎는 노인이냐?”란 얘기도 들어요. 단어 하나하나, 표현 하나하나를 얼마나 더 붙들고 앉아서 다듬는가에 따라서 퀄리티가 굉장히 차이가 나요. 그래서 녹음을 이중으로 해요. 자칫 파일이 유실되면 재료 자체를 얻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멋언니’의 경우에는 긴 분량을 살리려고 했고, 또 원고를 붙들고 다듬는 기간이 굉장히 길었죠. 일단은 큰 덩어리를 쳐내고, 문답의 흐름도 재구성을 해서 배치를 바꾸고, 중요한 대화가 빨리 지나갔다면 문답을 더 쪼개서 속도 조절하는 작업도 했죠. 인터뷰 때 한 말이긴 하지만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것들도 체크하죠. 인터뷰이와 오프더레코드 사항에 대해서 조율을 하는거죠. 그걸 인터뷰이에게 다 보내서 확인했어요. 말 언어와 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말할 때는 편하게 이렇게 했지만, 너무 센 단어나 정확하지 않은 것들을 함께 확인하는 겁니다. 그렇게 콘텐츠가 릴리즈 되기 직전까지 여러 차례 수정 과정을 거칩니다.
“편안하고 오해 없는 인터뷰는 얼마나 희귀한가”
이슬아 작가가 ‘멋언니’ 인터뷰에 대해 ‘이렇게 편안하고 오해 없는 인터뷰가 얼마나 희귀한지.’라는 평을 본인 소셜네트워크에 올린적이 있어요. 그걸 읽고 제가 지향하는 바나 통했다 싶어 기뻤어요. 저도 인터뷰이 입장에서 인터뷰를 할 때 안심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내 진심이 어떻게 전달될까?’, ‘내가 했던 얘기가 정확하게 나갈 수 있을까?’ 라는 불안함이 있었죠. 그걸 걷어내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그 부분을 인터뷰이와 독자들이 알아줘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