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협지 외전] 봄은 봄이로되 진정한 봄은 아니로구나!
“봄은 봄이로되 진정한 봄이 온것은 아니로구나 (春來不似春) “
봄이 오려면 몇 달 더 있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스승은 뜬금없이 봄과 관련된 시구를 읇고 있었다. 그 옆에 두눈을 감은채 바위에 기대어 정오의 햇볕을 쬐고 있던 제자가 말을 받았다.
“전한시대 흉노의 왕에게 시집가는 궁녀 왕소군이 남긴 시가 아닙니까? “
“그렇지. 왕소군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쓴 시지. 원래 시에는 ‘호지(胡地)에 무화(無花)하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즉 ‘오랑캐 땅에는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라는 의미지. 지금에는 ‘꽃샘추위’를 이를때 사용하기도 하고, 정치적 의미로도 사용되고는 하지. 더불어 현 창업강호를 이를 때도 사용될 수 있겠구나.”
“창업 강호에 봄이 왔으되 진정한 봄이 온건 아니다… 라는 말씀이신가요? “
“창업강호는 얼핏보기에는 점점 만개해 가는 봄꽃의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몇해 전 개벽(開闢) 이후에 다양한 무공과 문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 않았느냐. 과거 척박한 환경에 비하면 정말 좋아진거지. 더군다나 이제는 천외천(天外天)을 눈여겨 보는 문파가 한 둘이더냐. 그러나 양적 증대가 질적 증대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아니 양적증대는 질적 하락을 불러일으키기 쉽겠지. “
스승은 반쯤 뜨고 있던 눈을 완전히 감아버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런 양적, 질적인 면을 배제하더라도 강호는 현재 과도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파나 무공이 늘어나기야 더 늘어나겠지만, 어중간하게 숫자가 많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제대로 된 연마가 되어야지. 관의 지원도 하루이틀이고. 모르긴 몰라도 눈에 띄는 무공이나 문파가 나오지 않는다면 관의 관심은 다른곳을 향할테지.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니 뭐라 할 것도 없겠다만. 초기에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자생력이 있어야 할거야.”
“어딘들 그렇지 않은 곳이 있겠습니까? 차츰 규범이 잡히고 조화로운 공간으로 강호가 정립되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면에서 선배 고인들 및 강호 장로들이 여러가지 무공비급의 전파와 수련법을 아낌없이 설파하고 있고요.”
” 그렇겠지. 네가 말한대로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이제는 문파를 닫더라도 주화입마에 빠지는 이는 많이 줄어들었지. 하지만 아직도 너무 극단이야. 특히 중간 문파들이 부족해. 이래서는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지. 또한 창업강호는 무공초식따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강호인들 스스로 자기개발을 향한 노력에 따라 유지되고 정화되는 곳일터… “
“그렇다면 스승께서 말하는 ‘과도기’란 것 이후에는 어떤식으로 강호가 변할거라 예상하시나요? “
“적어도 올 한 해는 무공증진의 최적기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눈에 띄는 고수나 문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내년 혹은 내후년에는 지금처럼 우호적인 생태계는 아닐듯 싶구나. 나 역시도 강호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기에 확실히 맞다고 자신할 수는 없구나. 그러나 이러한 조짐은 선견지명이 없다 하더라도 쉬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지.”
” …….!! “
“강호는 몇몇의 거대문파나 절대고수가 좌지우지 하는 곳이 아니란다. 대다수의 강호인들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을정도로 천천히 움직여 성숙하게 만드는 공간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지. ‘한 사람이 열걸음을 앞서나가는 것보다는 100인이 한걸음 나아가는것(一人百步 不如 百人一步)’이 세상에 더욱 도움이 되는 이치와 같다. 제대로 흘러간다고 할 수 있지. 다만 현 강호는 이제 갖 걸음마를 배운 어린 아이와 같단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이미 성숙한 성인의 그것을 닮아있지. 몸만 어른인 아이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몸만 어른인 이 어린 아이는 사춘기를 맞이해서 정신적인 성숙을 위한 성장통을 조용히 겪고 있는 중이지.”
“그렇다면… 이 창업강호가 변화없는 정체기를 벗어나는데 강호인의 한 사람인 저는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까?”
” 너에게도 어린시절 사춘기가 있었겠지? 너희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이 어찌해주시더냐?”
” 아…… “
” 그대로 하렴. 그 이후에야 진정한 봄이 오지 않겠느냐?”
말을 마치고 스승은 제자를 보며 미소지었다. 제자 역시 마주보고 미소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 사춘기를 맞은 어린 아이라…. “
햇볕이 봄날처럼 따뜻한 오후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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