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협지(創俠誌), 창업의 도(道)를 구하는 자 – 강호초출(江湖初出) 2-1
2. 강호초출(江湖初出) 2-1
창업강호(創業江湖)에는 덕흑란로(德黑蘭路)라는 곳이 있다. 이 곳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지역으로 원시무림 당시 강호를 진동시키던 문파들이 자웅을 겨룬 전설의 무림성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무능한 조정의 핍박과 세외무림의 도전이 곂치면서 다수의 문파가 자취를 감춘 뒤 예전의 위상에는 크게 못미치는 과거의 성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들어 다시금 덕흑란로에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이는 원시무림의 규모에는 못 미치나 독문비기를 가진 작지만 강한 문파들이 다수 등장하는 현재의 동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창도자(創道子)는 이 덕흑란로를 느릿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강호출도의 첫 행선지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점화파(點火派)가 위치한 잠실(蠶室)에서 가깝다는 것이 컸다. 더군다나 창도자에게 덕흑란로는 그저 서책으로만 접해본 곳이었기에 별다른 감흥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덕흑란로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생각을 고쳐 먹어야 했다. 도로 좌우 둔덕에서 심상찮은 예기(銳氣)가 다수 느껴졌기 때문이다. 창도자는 강호 사정에 밝은 염화선생의 제자인지라 각 문파 무공에 대하 어느정도 분간할 수 있었지만 이 예기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기운들이었다. 하지만 하오문(下午門)에서 풍기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창도자의 이번 여정은 본인의 자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출도 당시만 해도 사부 염화선생에게 반발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덕흑란로에 들어선 이후 그러한 반감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더불어 강호를 종횡하며 일가를 이룬 두 사형들에 대한 존경심까지 들었다. 특히 지난해 중추절 덕흑란로에 지혜공간(智慧空間)이란 표국을 연 시앙라이 사형을 한 번쯤 찾아가 볼껄이라는 후회도 밀여왔다.
“부끄럽구나. 강호가 넓은줄은 알았지만, 지근거리 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은 내 불찰이다. 잘 나왔다. 잘 나왔어.”
블도자가 외침에 가까운 혼잣말을 하고 있을때, 덕흑란로를 가로지르고 있는 수로에 제법 큰 유람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
창도자는 그 유람선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감지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닌 백여개에 가까운 것이었고, 종류 또한 다양한 형태였다. 이는 100여명에 가까운 다양한 문파의 고수가 저 유람선에 승선해 있다는 의미였다. 창도자가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러한 관측이 가능한 것은 점화파 본문내공의 기초가 상대의 기운을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창도자는 특히 이러한 관측술에 능했다. 그의 경지는 사형인 조민희나 시앙라이도 한 수 접어주는 부분이었다.
‘분명 평범한 유람선이 아니다. 뭔가 있다…’
더군다나 유람선 뱃전에서 흔희 볼 수 있는 유람객들 역시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팔괘(八卦) 진법에 맞춰 위치한 무사들이 사위(四圍)를 예리한 눈초리로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창도자는 크게 마음이 동했다.
‘내부를 살펴보고는 싶지만, 저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해 줄 것 같지는 않고…어쩐다…’
창도자가 곰곰히 생각을 하고 있을때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보게 소협, 뭐 하나 묻겠네.”
창도자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자신이 고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척까지 누군가 다가올때 까지 몰랐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염화선생 조차 마음먹지 않는한 그의 이목을 속일 수 없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청의 중년인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이가 길 가운데 멈춰서서 미동을 하지 않으니 눈에 띄이는구만. 뭔 생각이 그리 깊어 사람이 옆에 오는 것도 모르는겐가? 하하하”
청의인이 빙글거리며 다시 말을걸자 창도자는 황급히 포권하며 답변했다.
“인사드립니다. 점화파의 창도자입니다. 무슨 분부라도 있으십니까?”
“염화대협의 문하시구면? 분부는 무슨… 그저 하나 묻고 싶은게 있네. 자네 저 배에 타고 싶은겐가?”
창도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생각이 너무 손쉽게 읽힌듯 싶었다. 경험의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사부를 알고 있는듯 싶어서 친근감이 앞섰다. 게다가 말투로 들어보아 염화선생과 강호 배분이 비슷한 위치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협께 제 마음을 들켰군요. 저 유람선 안에서 뭔가 굉장한 일이 벌어지는 듯 싶어서 흥미가 있기는 합니다만…”
“말끝 흐릴거 없네. 겁내지 말게. 겁내지 말아(不要害怕). 뜻이 있으면 길이 있게 마련일세. 나 역시 저 배에 볼일이 있는데 함께 들어갈텐가?”
창도자는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청의인이 자신에게 딱히 악감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창도자는 정중히 다시 포권했다.
“불초 대협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 은혜는…”
청의인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창도자의 말을 끊었다.
“은혜랄 것도 없는 하찮은 일일세. 별것 아닌일로 타인에게 빚을 지우는 것은 내 소신과 맞지 않아. 그리고 나 역시 홀로 들어가는 것이 다소 적적했는데 벗이 있으면 좋은일일세.”
“그럼 염치불구하고 대협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외람됩니다만, 여쭙겠습니다. 저 배에 어떤이들이 승선해 있는지 아십니까? 한 배에 문파를 달리하는 100여명의 인물이 있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무림집회라고 벌이고 있는건가요?”
청의인은 조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네는 저 배에 100여명의 인물이 있다는 것과 각기 다른 문파라는 것을 어찌 아는가?”
“제가 사부님께 배운것 중에 유일하게 어줍잖은 흉내를 내는것이 상대방의 기운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아… 염화선생의 연토회(研討會) 무공이 거기까지 진보했는가? 어린 제자가 이럴진데…”
청의인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맞네. 소협이 감지한대로 저 배에는 100명이 조금 안되는 인물들이 승선해 있네. 게다가 몇몇을 제외하고 거의 다른 문파 사람들이지. 그리고 그네들 대다수는 차기 무림을 이끌 후기지수 들이지. 그들이 지금 저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통해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 내는 중일세.”
창도자는 청의인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더더군다나 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청의인은 이내 창도자의 마음을 알아차린듯 싶었다.
“이왕 함께하는거 소협도 함께 다른이들과 연구를 해볼텐가?”
창도자는 적잖이 당황하여 두 팔을 과하게 흔들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감히 어찌 제가…”
“겁낼것 없네. 겁낼것 없어. 두려움이 가득차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마련이지. 망설이다보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마련이지. 자만하지 않는다면 배우는 바가 있을걸세. 게다가 염화파의 제자라면 자격은 충분하고 넘치네.”
청의인은 창도자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앞장서 유람선 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창도자는 황망하였지만 기회를 놓칠세라 청의인의 뒤를 쫓았다.
“외람됩니다만, 대협의 별호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별호일세. 강호 동도들은 나를 가르켜 그저 ‘불파(不怕)’이라 부른다네. 이름 따위야 나조차 잊은지 오래일세.”
창도자는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는 이름이 있었다.
‘불파도인(不怕道人) 이희우‘
정파와 사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불파투자(不怕投資)‘라는 사자후 무공으로 강호를 진동시키고 있는 일대 무림고수의 별호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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