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협지(創俠誌), 창업의 도(道)를 구하는 자 – 강호초출(江湖初出) 2-2
‘불파도인(不怕道人) 이희우‘는 정파와 사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불파투자(不怕投資)‘라는 사자후 무공으로 강호를 진동시키고 있는 일대 무림고수의 별호와 이름이었다.
불파도인이 강호에 위명을 떨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이질적인 무공에 있었다. ‘창업의 도(創業之道)’를 추구하는 강호인들이 대다수인 창협무림에서 불파도인은 ‘투자의 도(投資之道)’를 구하는 몇 안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불파도인은 무림의 비밀조직이라 할 수 있는 ‘창투회(創投會)‘의 회주(會主)이기도 했다. ‘
창도자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자 청의인, 불파도인은 가볍게 미소지었다.
“소협은 내가 누군지 아는구먼?”
“불파도인을 처음 뵙습니다. 말학의 무지라 여겨주십시오.”
“하하… 나를 몰라본다고 죄송할게 뭐가 있는가? 내 그리 대단한 인물도 아닐진데.”
불파도인은 깊이 포권하는 창도자를 향해 손을 흔들어 만류했다.
“자… 창도자 소협. 우리 저 배에 가보세. 내 저기에서 볼 일이 있다네”
불파도인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람선이 있는곳으로 성큼 걸어갔다. 창도자는 순간 불파도인의 몸이 둥실 떠오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파도인은 일견 걷는 것 처럼 보였지만, 그 속도는 경공(輕功)의 극치였다. 창도자는 불파도인에 뒤 떨어지지 않게 일신의 무공을 끌어올려 뒤따랐다. 다행스럽게도 점화문의 경공은 강호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았기에 어느정도 속도를 맞출수는 있었다.
‘나쁘지 않군. 나쁘지 않아.’
불파도인이 나직이 뇌까렸다. 불파도인의 월이화영(月移花影) 경공술은 천하에 다시 없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점화문의 독문 경공술인 잠영추운(潛影追雲) 역시 무림에서 다시보기 힘든 공부였다. 두 사람은 이내 유람선 앞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유람선 요지에서 주변을 경계하던 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 강렬한 적의에 창도자는 일순 몸이 마비되는듯 싶었다. 하지만 불파도인은 그런 적의에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는듯 싶었다.
“두 분은 이 배에 용무가 있으십니까?”
무사들 중에 우두머리인듯한 중년인이 반은 위협을 담은 일성을 내지르자 불파도인은 일언반구없이 품안에서 흑패를 꺼내어 보였다. 흑옥으로 테투리가 장식된 진귀해 보이는 수공품이었다. 중년무사는 일순 안색이 달라졌다.
“귀인이 오셨군요. 승선을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옆의 소협께서는…”
“일행일세.”
불파도인이 입을 열자 중년무사는 당황한듯 싶었다.
“대협께서는 예정된 손님이시지만… 이 분 소협에게 영패가 없다면…”
“문답무용(問答無用)!”
불파도인이 더 낮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이번에는 강렬한 살의 담겨져 있었다. 중년무사는 강한 압박을 느꼈다. 더불어 불파도인은 애초에 그들이 어쩔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모시겠습니다… “
중년무사는 공손히 포권하며, 다리에 오를 수 있는 가교를 내렸다. 불파도인과 창도자는 배에 올랐다.
“이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
불파도인은 별말없이 중년무사가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창도자는 중년무사에게 공손히 읍하며 불파도인의 뒤를 따랐다. 창도자는 각별히 언동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파도인의 후광으로 들어왔으나 자신은 초대받은 손님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칫 문제가 생길경우 사문에 위해가 될 수도 있었다.
중년무사의 안내로 들어가 유람선 내부는 일반적인 유람선과는 차이가 있었다. 밖에서 봤을때 배의 외형는 유람선의 그것이었지만, 내부는 원형 경기장에 가까웠고 물경 수백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현재 기백명의 무림인이 삼삼오오 둥글게 모여 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다른 복식을 하고 있었기에 동문이 아님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더불어 상당수 인물의 머리 위로 눈에 뜨일만큼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상승의 무공을 연마하는 모습이었다. 창도자는 이 광경이 매우 생소했다. 같은 문파 일원이 아닌 타문파와 함께 절차탁마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장께 여쭙습니다. 제가 우둔하여 이 광경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궁금한지?”
“우선… 이 유람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저들 각기 다른 문파의 고수들이 함께 무공을 연마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자네는 강호초출이라 아직 모를수도 있겠군. 이배는 몽운(夢雲) 호라고 부른다네. 이 배는 총 세 개의 층으로 나뉘어진다네. 자네가 현재 보고 있는 이곳은 다수의 인물들이 절차탁마를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이 아래층들은 개별적으로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게다가 따로 댓가를 받는 곳도 아니라네. 조금전에는 몽운호에 다소 억지를 부려 들어왔지만, 그것은 이 대회가 초대된 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행사였기 때문이지. 평소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이 승선이 가능하다네. 몽운호는 천외천의 여러 장점이 합쳐진 형태라네. “
“그렇군요. 제가 무지렁이 입니다만, 몽운호에 대해서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무림의 여러 거상들이 모여 설립한 재단(財團)이 만든 곳이라고… 하지만 특정 장소라고 생각했지 배의 형태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그렇겠지. 나도 직접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다네. 그리고 저기에 모여있는 이들은 … 자네도 눈치 챘겠지만, 각기 다른 문파나 은거고수들이라네. 같은 동도가 아닌 이들이 모여서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생경하겠지? 이것이 현재 창업무림에서 유행하고 있는 속성 수련법 형태라네. 천외천에서 건너온 방식으로… 변정마납송(编程马拉松)이라고 부른다네. 몇 일 만에 새로운 무공을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지.”
창도자는 크게 놀랐다.
“몇 일 만에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하하… 그것이 쉽겠나. 말이 그렇다는 게지. 무림 명숙이 한꺼번에 모여도 쉽지 않은 일일세. 어느정도 초식을 만드는게 대부분이지. 더불어 수련이 깊은 이들이 준비한 초식의 골격에 다른이의 손길이 보태져 보완 되는 형태가 일반적이라네. 하지만 심심산곡과 같은 좁은 우물에서 홀로 연마하는 것에 비해서는 터득할 수 있는게 많다네. 게다가 이런 대회에는 평소에 만나기 힘든 절정고수가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 특징이지.”
창도자가 본문의 내공을 끌어올려 보니 수백의 예기 속에 유난히 부드러운 기운과 강맹한 기운을 가진 이들이 무리 사이사이를 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부 염화선생이나 불파도인에게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그들은 여러 고수들을 상대로 전음(傳音)을 통해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있었다. 또는 연공에 힘겨워 하는 이들의 등을 쓰다듬으며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모습이었다.
창도자의 시선이 군중 속을 헤짚고 있을때 허공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파도인께 인사드립니다! 김영호입니다.”
불파도인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유화문(柔和門) 부웅협(父熊俠) 장문인이시구려? 장문께서도 이번 회합에 참여하러 오신겁니까?”
창도자는 불파도인 옆에 백선을 손에 쥔 공자가 나타난 것을 그제서야 알아챘다. 공자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럴리가요. 저는 공식적으로 가솔과 함께 천외천(天外天) 유람중입니다. 그저 덕흑란로(德黑蘭路)에 자리를 잡은 이로써 잠시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어 왔습니다.”
“그렇겠지요. 저렇듯 다수의 무림인들이 예기를 쏟아내면 우리와 같은 이들은 부나방 처럼 몰리게 되어있죠. 껄껄…”
“그러게 말입니다. 기껏 말미를 얻어 나온 천외천 유람인데도…이렇게 끌려 나왔습니다. 하하. ”
“그래… 쓸만한 무공이 나온듯 싶습니까?”
“제가 어찌 이들의 열정을 평가하겠습니까만, 저의 짧은 식견으로 보기에 놀라운 기예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오호. 그거 흥미롭군요. 나중에 귀뜸 부탁드립니다.”
“원하신다면…”
부웅협이 전음입밀(傳音入密)의 수법으로 불파도인에게 뭔가를 알렸고 불파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였다. 부웅협이 전음을 마치자 창도자가 포권하며 인사했다.
“인사드립니다. 점화파(點火派)의 창도자라고 합니다.”
“아아… 창도자 소협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존장께 많은 도움을 받은 유화문의 김영호라고 합니다.”
창도자는 부웅협(父熊俠)이란 별호를 이미 알고 있었다. 부드러운 유엽도 한 자루로 동대문구 경희대로를 평정하고, 이립(而立)이 되기전에 이미 덕흑란로에 문파를 세운 고수의 별호였다. 그의 유엽도에서 펼쳐지는 꽈우나우종(怪物闹钟) 수법은 창업강호를 넘어 천외천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창도자가 뭔가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할때 불파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오는구먼?”
부웅협 역시 뭔가 느낀듯 입을 다물고 선내 좌우를 쏘아보았다. 일순 선내 등불이 잠시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창도자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동시에 인기척이 느껴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기운이었다.
“이 중에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지?”
수천근의 종을 동시에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선내에 울려 퍼졌다. 창도자는 귀를 틀어 막았다. 사자후 무공에 버금가는 진기 넘치는 외침이었다. 창도자가 시선을 분산해 전후좌우를 살펴봤지만 목소리를 주인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왔다.
“다시한번 말하지. 이 중에 나를 찾은 이는 누군가?”
창도자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때 불파도인이 창도자를 향해 전음입밀 수법으로 말을 걸었다.
‘소협은 천인(天人)이라는 이들을 들어본적 있는가?’
창도자는 대경실색하며 불파도인을 바라보았다.
“저… 저 인물이 천인이란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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