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VINA] “베트남 진출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현지 벤처캐피털, 스타트업의 조언
베트남의 정해진 미래, 그리고 ‘스타트업’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베트남은 2021년 수출비중 8.8%로 수출액 3위를 차지하는 나라이자 아세안 10개국 중 한국과의 교역 1위, 투자 1위를 차지하는 경제 협력 국가이다.
베트남과의 교역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무역과 투자가 같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한 분야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두 분야가 동시에 성장한다는 뜻은 해당 국가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고 베트남이 최근 들어 주목 받는 배경이다.
일견 베트남은 한국의 개도국 시절을 연상시키지만 스타트업 투자규모 기준으로 보면 10여년 전 수준과 같다. 베트남국가혁신센터(NIC)와 도벤처에 따르면, 베트남 스타트업들이 지난해 14억 4200만달러(약 1조 8,900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코로나19사태 이전인 2019년(8억7400만달러)대비 150%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투자유치액이 크게 늘어나고 글로벌 투자펀드들의 투자사례도 크게 늘어난 것은 현재보다 미래 발전 가능성을 높이 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은 이미 4개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을 보유한 국가이다. 베트남 유니콘은 한국이나 미국, 중국의 유니콘 기업 유형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베트남의 첫 유니콘기업은 6,000만 명이 사용하는 베트남판 카카오톡 ‘잘로’ 운영사 VNG, 두 번째는 베트남에 무현금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VN페이이다. 암호화폐기반 게임 ‘엑시인피니티’ 개발사 스카이마비스(Sky Mavis)와 전자지갑 플랫폼 모모(Momo)는 지난해 유니콘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베트남 정부도 기존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부딪치자 질적 업그레이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러한 경제 전략에 스타트업 육성이 빠지지 않는다. 베트남 정부는 2025년까지 600개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프로젝트 844’를 진행 중이며, 이 중 100개 기업이 최소 2조 VNDG(약 8,544만 달러)의 투자를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 차세대 베트남 창업 유니콘을 만들고 구축하기 위해 금융·정책 인센티브 등 정책도 내놓고 있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10여년 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되던 시절의 용광로가 베트남에서 재연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은 차기 기술 유니콘의 발흥지로 유력하다. 베트남 시장에 투자하는 엔젤투자자와 VC들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2021년에 가장 많은 투자금을 확보한 상위 스타트업 산업군은 핀테크가 26.6%로 가장 많았으며, 이커머스(20.3%), 에듀테크(17.2%), 헬스케어(7.8%), 서비스(6.3%) 순이었다. 특히 보고서는 애그테크(농업) 영역이 잠재력이 높다고 조언한다.
창업자를 키우기 위해 학생 창업지원과 여성창업지원 사업도 추진 중이다. 기업가정신 캠페인도 활발하다. 베트남 소재 대학과 연구소는 중앙 부처 및 지방 당국과 협력하여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기업가정신을 홍보하는데 적극적이다.
‘생산기지’가 아닌 ‘시장’…’용광로’에 뛰어든 K-스타트업
국내 스타트업도 수년 전부터 직간접적으로 베트남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앱 마켓을 통한 서비스를 넘어 현지에 지사 등을 설립해 발을 딛고 사업을 추진 중인 기업도 상당수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자회사로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다수이지만, ‘마켓사이공‘처럼 본사를 두고 로컬 사업을 벌이는 스타트업도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베트남 시장을 선택하는 배경에는 높은 인터넷 접근성과 스마트폰 사용 비율,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젊은 인구, 디지털 경제에 대한 정부 지원 등 전반적으로 스타트업에 유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활용에 적극적이고 소비성향이 강한 MZ세대가 인구의 절반이라는 점이 크다. 인구 1억 명의 거대 신흥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한 스타트업이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로컬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투자 혹한기가 왔다고 평가되지만, 베트남은 예외에 속한다. 베트남에는 현재 약 3,800여 개의 스타트업이 있으며 11개의 스타트업이 1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200개 이상의 투자펀드가 운영되고 있다. 베트남 과학기술부 산하 기술기업 상용화 개발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베트남의 혁신 스타트업은 88건의 투자 거래를 기록하며 13억 달러 이상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특히 금융 기술, 게임, 교육, 의료, 전자상거래에서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스타트업이 선수로 뛴다면 뒤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코치들도 존재한다. 현지 비즈니스 정보를 비롯해 공간, 네트워크 지원을 해주는 기관들이다. 대표적으로 코트라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현지에 거점을 두고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더인벤션랩, 더벤처스, 넥스트랜스처럼 베트남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발견하고 국내외 스타트업에 투자를 집행 중인 벤처캐피털도 있다. 더인벤션랩은 8월 기준 베트남에 진출한 15개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주요 포트폴리오사로는 오케이쎄, 고투조이, 고미, 바이비, ABC스튜디오 등이 있다. 더벤처스는 베트남 로컬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현재까지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 ‘찹(CHOPP)’, 베트남의 육아 이커머스 플랫폼 ‘위케어(wecare)’ 등 로컬 스타트업 11개 사에 시드투자를 집행했다.
‘한국(인)’이라는 ‘프리미엄’이 통하는 나라… 하지만 현지 진출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베트남이 아무리 유력한 시장이라 해도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지에서 투자와 사업을 해온 인사들은 준비가 전제되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당부한다.
더벤처스 박은선 심사역은 “베트남은 한국(인)이라는 프리미엄이 있는 나라”라고 말한다. 박 심사역은 베트남 현지에서 창업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의 말처럼 베트남은 한국에 우호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2021년 1월 24일에 발표한 ‘2021년 국가이미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한국의 국가 이미지 평가에서 베트남은 95%의 긍정 평가를 내며 조사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터키(92.2%), 필리핀(92%), 태국(90.8%) 순)를 나타냈다.
박 심사역은 “베트남은 분명 기회가 있는 나라지만 현지 사업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외국 스타트업이 베트남 현지에서 투자유치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베트남에 자회사를 세워 비즈니스를 하는 형태가 많은 이유다. 한국에서 펀딩을 받아서 베트남에다가 돈을 써야하는 상황인데, 그럴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규제도 감안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베트남 시장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할 수 있는 정부 제재가 있을 수 있다. 정부가 어느날 ‘오늘부터 무엇을 금지한다’라고 하면 바로 단속이 나오고 그걸 어기면 패널티가 있다. 변화무쌍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업종 선택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스타트업 중에 기존에 없던 사업을 하는 곳도 많다. 한국처럼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국가도 있지만, 베트남은 아직 그정도 수준은 아니다”라며 “베트남 소비자에게 우리 서비스가 왜 필요한지, 왜 혁신인지 설명하면서 사업을 하는 건 스타트업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의식주처럼 말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서비스가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고, 로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노이 IT지원센터 문민 매니저는 베트남 현지에 걸맞는 로컬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 매니저는 “현지에서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 상당수가 다른 나라에서의 성공방식,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다 낭패를 맞본다.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통한 것이 베트남에서도 그대로 통할 것이라 믿고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한국 내에서도 사업을 할 때 시장조사와 지출 계획 등을 세우는데, 리스크가 더 큰 해외 시장이라면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맞는 접근방식”이라며 “베트남에서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인력 채용을 비롯해 기업 운영방식을 현지 기업처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플레이오토 이상민 베트남 지사장은 베트남이 유력한 시장임에는 분명하나 쉬운 시장은 아니라고 말한다. 플레이오토는 이커머스 비즈테크 전문 기업으로 베트남에 지사를 설립하고 비즈니스를 진행 중이다.
이 지사장은 “베트남이 경제 성장률과 출산률 등을 살펴보면 미래가 유망한 것은 분명하다. 현재 라자다와 쇼피 등이 경쟁적으로 투자를 하며 이커머스 영역이 넓어지고 있지만 이커머스 규모는 13조 원 정도 밖에 안 된다. 인구 5천만의 한국이 200조 원 규모인 것에 비하면 매우 작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은 구매층이 많고 구매 단가도 10%이상 오르는 추세이기에 이커머스 영역에선 기회가 많다. 하지만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그걸 잡으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화장품 등 K-뷰티가 유망하다는 인식이 있다. 이 지사장은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화장품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낸 곳이 거의 없다. 너무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유통 과정에서 수수료 등을 제하면 마진률도 높지 않으며 할인까지 들어가면 남는 것이 거의 없는 구조다. 제조사가 현지에 지사를 설립해 직접 진행하는 경우가 아니면 버티기 쉽지 않다. 보통 신규 화장품은 시장에 1년 정도 투자를 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반응과 인지도를 쌓은 뒤 오프라인 매장에 풀어야 의미있는 성과가 난다. 하지만 베트남에선 그게 쉽지 않다. 최근에는 고급화 전략, 아이디어 상품이 더 소구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 지사장은 현지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HR(인적 자원 관리)을 들었다. 그는 “베트남 직장인 평균 월급이 50만원 정도인데, 한국 평균 월급 수준의 퍼포먼스를 기대하면 안 된다. 베트남 직원들 상당수가 먼 미래보다 당장의 현실을 중요하게 본다. 얼마라도 많이 주는 곳에서 제안이 오면 이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걸 염두에 두고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