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人] 이병선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양질의 창업 생태계, 선순환 구조 만들 것”
2014년 출범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8주년을 앞두고 있다. 창업기업의 성장과 함께 커가는 기관임을 감안해볼 때 지원역량 수준도 높아지는 추세이다. 특히, 지역 창업기업이 원활하게 성장할 수 있는 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해 공공 액셀러레이터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혁신센터-참여기업 간 유기적인 연결과 지역적 한계를 벗어난 광역권 특화사업 발굴 등 각각의 자원을 한데 모으는 행보도 진행 중이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제주창경)는 공공 액셀러레이터로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제주도 출연금으로 우수 보육기업과 유망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시드머니를 투자해 30여개 사에 13억 1000만 원을 투자(12월 기준)해 후속투자로 826억 원을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아울러 공공 액셀러레이터에서 흔치 않은 엑시트(투자 회수) 사례도 만들어 냈다. 이런 부분을 인정받아 지난해 공공부문 우수 창업기획자로 선정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도 수상했다.
이병선 제주창경 센터장을 만났다. 이 센터장은 오마이뉴스와 문화일보 등 언론사를 거쳐 카카오 부사장으로 대외협력 업무를 총괄한뒤 지난해 제주창경 센터장에 취임했다. 이 센터장은 도내·외 규관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지역 생태계 저변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창경은 공공 액셀러레이터로써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나.
우리 미션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제주에 양질의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좋은 생태계는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보육하고, 투자하고, 스케일업시켜서 엑시트한 뒤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제주창경이 7년 간 노력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보육하는 부분은 뿌리를 내렸다고 본다. 지금은 지역 창업 생태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비어있는 부분인 ‘투자’ 연결 고리를 만들고 있다.
-지역 창업 생태계가 과거 대비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다만 스케일업, 성장속도는 수도권 기업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 좋은 스타트업이 꾸준히 발굴되는 부분도 취약하다는 의견이 있다.
제주 지역에서는 좋은 스타트업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제주에서 스타트업 발굴 과정은 크게 두 가지 통로가 있는데, 로컬 크리에이터와 테크기업 육성이다. 제주는 이 두 가지 분야에서 큰 강점이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는 지역 자원들을 활용한 창업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풍부한 지역자원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덧입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이다. 제주는 매년 중기부가 선정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 최다 선정 지역이다. 테크기업들은 규제 특구 등 제주 지역 실증사업을 통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항공, 에너지, 자율주행 등 영역에서 스케일업 중인 테크 기업들이 다수 있다.
-전국 19개 창조경제혁신센터 중 제주센터만의 특징은 뭔가. 지역 특성상 외부에 많이 열려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제주는 순수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정주인구가 늘고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한 달 살이 등 장기 여행을 온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거다. 이런 토대에서 2018년 오픈한 제주창경은 단순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창업 생태계 구축이라는 관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완벽하지 않지만 가능성이 확인된 단계까지는 와 있다고 자평한다.
-시드머니 투자사업에서 첫 이익실현을 했다. 상장을 계획하는 민간 우주항공기업 ‘컨텍’의 주식 중 1/3을 매각해 원투자금 대비 14배 넘는 금액을 엑시트했다. 공공 액셀러레이터의 엑시트 사례는 흔치 않다.
컨텍은 항공우주연구원 출신 이성희 대표가 민간 항공우주산업을 한국에서 해보겠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창업 당시에는 아무도 그런 포부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성희 대표가 제주에 와서 문을 두드렸고 제주창경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고 투자를 했다. 컨텍과 같은 엑시트 히스토리가 제주 창업 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거다.
-엑시트한 자금은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재투자에 사용되나.
공공기관 입장이기에 민간 VC와는 달리 살펴볼 것이 많다. 법리 해석을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할 거다.
-제주창경은 지난해 공공부문 우수 창업기획자로 선정되어 장관 표창을 받았다. 제주가 명실공히 창업 허브가 되려면 무엇이 조금 더 필요할까.
현재 제주창경은 30여 개의 적지 않은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1단계 투자는 어느 정도 정착이 된 상황이기에 그다음을 고민하고 있다. 그간 제주 스타트업은 시드 라운드 이후 다음 단계 투자를 받으러 육지로 가야만 했다. 지역 생태계로 보면 구멍이 있는 것이고 뼈아픈 부분이기도 했다. 보육하고 초기 투자해서 궤도에 올려놨는데 육지로 나가면 제주라는 아이덴티티가 없어지고 제주 기업이라는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프리 A 라운드까지는 제주에서 가능하게 하려고 민간과 협력해 여러 펀드를 결성 중이다.
-지난해 방문했을 때보다 센터에 활기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와는 다른 운영을 하고 있을텐데.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춰있던 보육 과정을 재가동했다. 액셀레이팅 프로그램을 재설계했고 현재 8개 기업이 입주해 사업을 담금질 중이다. 이들을 보며 제주 스타트업 생태계가 굉장히 넓어지고, 깊어지고, 풍성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역 스타트업을 봐 왔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업이 있다면. 제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혁신 기업 사례를 들어 준다면.
로컬 자원을 기반으로 한 창업이 굉장히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또 좋은 기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빈집 재생 기업 ‘다자요’가 있는데,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통해 세상에 없던 모델을 만들어서 확장 중이다. 우리가 지난해 하반기에 투자한 ‘베러댄서프’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 이 회사는 서핑을 테마로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제주 해양레저 관광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테크 기업 쪽에서는 아무래도 컨텍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컨택이 앵커 기업이 되어 항공우주 산업 클러스터가 생기길 기대하고 있다. 순환 경제를 추구하는 테크기업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포트폴리오 기업 중에 이동형 친환경 발전기 개발사인 ‘이온어스’는 착실하게 성장 중인 우수 기업이다. 퀀텀솔루션(배터리의 재사용을 위한 배터리 중개 플랫폼 서비스 제공사)과 제로시스(청록수소 생산시스템과 수소연료전지파워모듈을 개발하는 수소에너지 분야 스타트업)도 굉장히 큰 가능성을 갖고 있다.
-제주창경의 투자심사 프로세스를 이야기해 달라. 민간 VC는 시드 단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 ‘창업자’, 혹은 ‘창업팀’이라고 하는데.
시드 단계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민간 VC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창업자와 창업팀이다. 투자 기업을 선정할 때 경험 있는 민간 VC 및 도청 관계자와 함께 종합적으로 심사를 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투심 대상이 된 기업들은 제주창경이 보육한 팀이거나 프로그램을 하면서 한두 번씩 만나본 팀들이 대부분이기에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결정 과정의 심도는 더 깊다고 할 수 있다.
민간 VC와 같은 전문 인력을 갖추기는 어렵지만 수년간 진행해온 투자 경험이 축적되어 내부 역량이 크게 올라갔다. 제주창경만의 프로세스를 만들었고, 여러 가지 지원 프로그램과 연결되게 구성해 놓았다. 지금은 민간 VC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크립톤과 제주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한 개인투자조합을 결성했고, 비전벤처파트너스와 제주 벤처투자조합도 결성한다.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가 제주창경이 조성하는 펀드 출자자로 나선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외 어떤 민간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나.
브릿지스퀘어, 카카오벤처스, 디캠프 등 기관과 지역 창업 생태계 강화에 필요한 부분을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 특히 제주에 VC를 대상으로한 리모트 워크 공간, 워케이션 장소도 마련할 계획이다. 제주 스타트업과 접점을 넓히려는 의도이다. VC들이 제주에 자주 와야 제주 스타트업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 아닌가. 관련 프로그램을 올해 운영할 계획이다.
-민간 VC 심사역은 투자에서 성과가 나면 인센티브를 받는데, 공공기관은 그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책임 있는 투자를 하려면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지속 가능한 투자가 이루어지려면 인센티브 제도가 공공에 걸맞는 방식으로 도입되면 좋을 거다. 민간 방식을 100% 도입하기는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성과 보수가 있어야 담당자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나. 도입만 된다면 또 하나의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관련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혼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제도 관계자들과 논의를 하려고 한다.
-현재 투자 경색기, 혹한기가 왔다고 한다. 올해도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투자 혹한기인 것은 맞지만, 창업 생태계의 경색기는 아닌 것 같다. 호황과 위기 상황은 주기적으로 오는 것이다. 자본시장 경색은 기업가치가 높은 기업들, 특히 IPO를 앞둔 회사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 거다. 하지만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는 기회의 시기일 수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은 시드 투자의 적기라고 본다. 제주창경이 더 많은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렵다고 느끼겠지만 미래 사이클은 바뀌게 마련이다.
-제주에 신공항이 들어설 예정이다.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겨나겠지만, 반대로 해외 스타트업, 인재들을 제주로 유입시킬 수도 있을 거다. 정부도 워케이션 비자 프로그램을 시행할 계획이다.
올해 글로벌 사업 계획이 있다. 첫 번째로 생각하는 대상 지역은 일본인데, 국제 정세와 양국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다시 주목해야 될 시장이라고 본다. 제주와 일본이 연결된다면 우리 기업이 많은 아웃풋을 낼 수 있을 거다. 또 제주의 로컬 뱅크인 제주은행이 우리의 출자자이다. 제주은행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우리 스타트업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거다.
해외 스타트업이나 개발자들을 제주로 유입시키는 환경도 관계 기관과 협의를 해서 조성할 계획이다. 제주가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인재를 연결해주는 지역이 된다면 더 나은 생태계가 될 거다. 국내 개발자 커뮤니티와 해외 우수 개발자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길 기대하고 있다.
-제주에 다수의 스타트업 지원 기관이 존재하는 데 공동으로 뭔가를 도모할 계획은 없나. 공공과 민간을 떠나 모든 기관의 목적이 스타트업의 길잡이가 되어 성장시키는 것이 아닌가. 중지를 모으면 더 큰 임팩트가 있을텐데.
중요한 아젠다이고 지역 생태계에서 풀어야 할 큰 과제라고 보고 있다. 협업해서 파이를 키워 나누는 것이 더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데, 이전에는 각각의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요원했다. 그래서 지난해 제주 스타트업 협회에서 하는 행사에 가서 각 기관 관계자들에게 “2023년에는 행사를 각각 하지 말고 다 같이 하자”고 이야기 했다. 구체적으로 ‘제주 스타트업 위크’라고 명명하고 일주일정도 기간을 정해서 스타트업 행사를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현장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구체적인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연초 협의체가 구성될 예정이다.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과 아이디어, 열정이 있다면 과감히 도전하면 좋겠다. 그런 도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같은 공공기관의 역할이다. 도전해서 실패하더라도 경험이 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공 액셀러레이터 입장에서 노력하겠다.
-지원하는 입장이 아니라 창업자 입장에 설 계획은 없나.
창경 일이 우선이고 스스로도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자리에서 최대한 성과를 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다음 도전은 아직 먼 이야기다.
-임기 중 반드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제주창경의 미션과 동일하다. 제주에 창업 선순환 구조를 완성도 높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창업 단계에 맞는 보육과 투자를 하고 스케일업을 도우려 한다. 외부 기관과 협력하는 한편 내부 역량을 강화시켜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사업을 추진할 거다. 테크와 로컬크리에이터가 균형있게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