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업으로 대변되는 창업이 각 나라의 경제 화두다. 각 나라마다 스타트업이 향후 국가경제를 이끄는 동력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조에 따라 국가를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도 다수 탄생했다.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IMF 이후 ‘벤처’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IMF는 대한민국에 많은 창업자를 필연적으로 탄생시켰다. 인터넷망이 전격 보급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정부가 모태펀드로 지원하고 민간 창업자 · 벤처투자자들의 경험과 역량이 축적되면서 제2벤처붐이 도래했다. 정부도 대기업 중심에서 혁신 중소벤처 주도로 경제성장 정책을 전환하고 벤처,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과 제도혁신을 추진하는 중이다. 이에따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글로벌 수준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고 평가 받는다.
다만 스타트업 생태계가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절대적인 기업 수는 물론이고 투자 자본, 인재까지 편중되어 있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의미있는 도전을 이어가는 지역 창업가들이 있지만 토양비옥도가 낮은 곳에서 양질의 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렇다면 수도권에 편중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있을까. 지역 창업생태계의 활성화를 제언하기 위해 지역 스타트업, 투자사, 창업 지원기관, 대기업, 대학교 등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 100여 명이 부산에 모였다.

스타트업 민간 협력 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서밋’ 첫 행사가 부산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7월 27, 28일 양일간 열렸다. 이번 행사는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역 생태계 발전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서밋에는 총 25명의 연사 및 모더레이터가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아젠다를 제시했다. 참가자들은 이틀에 걸쳐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현황 분석, 지역 생태계에 필요한 것들, 투자자와 공공의 입장에서 바라본 지역의 기회와 한계, 민간 입장에서 바라본 지역의 강점과 약점,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독일에서 창업한 이은서 123 Factory 대표는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등 독일의 지역 창업 생태계 특징을 공유했다.
독일의 창업기업 밀도는 높은 편이다. 인구 8,440만 명인 독일의 스타트업 수는 약 7만여 개이며 2020년 기준 스타트업 종사자는 41만 명, 2030년에는 97만 명이 될 거라 예상된다. 독일은 2030년까지 100억 유로의 예산을 투입해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은서 대표는 “독일 스타트업의 메카는 베를린이다. 한 해 500개의 신규 스타트업과 8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독일 스타트업 투자액(31억 유로) 중 58%가 이곳 스타트업에 투자된다.”며 “베를린 창업 생태계는 다양성, 개방성이 어우러진 생태계다. 창업자의 약 43%가 외국인으로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고, 스타트업 종사자 60% 이상이 독일 이외일 정도로 외국인 친화적인 비즈니스 환경이다. 우수한 인재, 투자환경,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만드는 생태계”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독일 창업 생태계의 장점이라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교류가 활발하고 이에따른 M&A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역사와 전통 산업의 경제 구조가 같지 않고 한국이 더 나은 부분도 많다.”며 “한국 지역 창업 생태계의 글로벌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서울이 24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타 도시는 한참 미치지 못 한다. 전반적인 상향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과학과 기술의 도시로 불리우는 대전은 인구당 벤처기업 수가 수도권 못지 않게 증가세인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는 대전의 장점으로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등 도시와의 접근성, 지적 자본 및 재교육 터전, 기술 기업에 특화된 환경, 다수의 액셀러레이터를 통한 초기 기업 지원, 16개 정부출연연구소와 KAIST를 통한 기술력 확보 용이성’ 등을 들었다.
김 대표는 양질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되려면 ‘밀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전 투자 생태계는 지난 10년 간 확실히 많이 좋아졌다. 향후 ‘딥테크, 딥사이언스 창업은 대전’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려면 지역에 애정있는 기업가를 많이 육성해야 하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과 ‘이슈’와 ‘공간’의 밀도를 높여야 창의성도 성장한다. 그리고 서울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처럼 토포필리아(topophilia)를 느끼게 하는 상징도 필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김대표는 대전을 비롯해 아산, 오송, 청주를 연결하는 충청권 엔젤투자 허브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노태석 BNK벤처투자 부장은 동남권 생태계를 소개했다. 부산, 울산, 경남은 수도권을 제외하고 제도와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노태석 부장은 “스타트업은 지역이 당면한 이슈의 거의 유일한 돌파구이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의 관심과 의지도 높다. 하지만 산학연에서 여전히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이 낮다. 기관과 지자체는 가시적인 KPI를 지향하고, 담당자가 순환보직으로 자주 바뀌며 정책적 속도가 느리다. 아울러 액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탈, 스타트업씬에 체리피커와 유령 지사가 존재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남권 생태계가 실버케어, 관광 비즈니스 중심으로 성장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까지 7년 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을 역임한 전정환 커뮤니티엑스 대표는 “2023년 현재 제주 스타트업 생태계는 규모는 작지만 다채롭고 탄탄하다. 항공우주, 신재생에너지, 모빌리티, 로컬크리에이터 등 다양한 기업이 있고 크립톤과 MYSC 등 다수의 액셀러레이터가 진출한 지역이다. 하지만 8년 전인 2015년 제주는 1차 산업과 단체 관광산업에 편중되어 있었고, 지역 창업 기관도 없었으며 스타트업 투자도 없었다.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지역 생태계가 없어서 놓친 스타트업 선순환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비수도권 스타트업 생태계의 공통 문제점으로 ‘정부 주도의 탑다운 산업 육성에 의존하는 것, 획일적인 산업구조, 다양성과 창발성의 민간 커뮤니티 부족’을 들었다. 그는 “제주창경을 맡으며 고민한 것은 스타트업 생태계, 커뮤니티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었다.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는 중간지원 조직의 역할을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 ‘공공과 기관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선택한 것은 기관의 단기 성과를 위해 생태계를 해치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창업자가 아니라 공공의 성과만을 위해 일하는 것,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공공이 민간 대신 성과 올리기, 지역의 타 기관과 경쟁하며 서로 성과를 빼앗기, 단기 성과 달성을 위한 큰 예산과 큰 규모의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지양하기로 했다. 반대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지역의 혁신 주체를 발굴하고 지역에 없는 주체는 유입시켜 연결하는 것, 성공한 마중물 사업도 생태계가 성장하면 일몰시키는 것,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심사위원, 투자자, 행정, 의회, 언론 등)와 함께 학습해서 성장시키는 것,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식을 창출하고 공유해서 변화를 가속화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기조 속에 생태계 성장과 함께 기관의 역할도 끊임없이 변화시키려 했다. 이런 7년 간의 노력 속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전했다.
끝으로 전 대표는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는 것은 ‘운 좋은 기회가 많아지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비전으로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워간다면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투자자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지방소멸 타개책으로 ‘창업 인재 육성’, ‘엔젤 투자와 성장펀드 활성화’, 그리고 양질의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국가경쟁력이 창업 생태계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시대정신은 창업이고, 혁신의 주역은 단연 스타트업”이라며 “지역 창업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기업가 정신교육을 통해 창업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엔젤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규모있는 성장 펀드가 있어야 지역에 뿌리내리는 기업이 만들어 진다. 아울러 장기간 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 이용관 회장은 “VC 91.3%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지역 기업과 모험자본 간 거리가 멀다는 의미이다. 거리가 멀면 VC가 기업을 발굴하고 관리하는 것이 불편하고, 사업을 이해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 현실적으로 수도권 VC가 자주 지역에 가서 스타트업을 파악하고 투자 결정까지 하는 것이 쉽지않다. 투자 결정도 늦어지게 하지만 투자 이후 사후관리에도 장애로 작용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회장은 지역 투자기관 또는 관계사와의 협업을 통해 물리적 거리로 발생하는 비정량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스타트업 모수가 많지 않기에 스케일업 펀드를 운영하는 대형 VC가 정주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액셀러레이터 등 지역 기반 투자기관이 역량을 강화하고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정량적으로 측정이 안되는 요소를 파악하고 신뢰를 공영화해준다면 지역에 VC 자본의 유입이 늘 것이다. 고무적인 부분은 액셀러레이터는 VC보다 상대적으로 지역 편중이 적다는 거다. 액셀러레이터 34.1%는 비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서밋 주최자인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제 2의 벤처 붐 이후 양적으로 질적으로 한국 스타트업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수도권과 지역이 균형있는 동반 성장은 이루지 못 했다. 기업과 인구의 수도권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고 대학도 힘을 보태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하다고 평가된다.”며 “이번 행사에서 각 지역이 그리는 바람직한 생태계 구상과 동반 성장 방안이 심도있게 다뤄졌다. 앞으로도 이런 논의가 지속되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사 발표 외에도 이번 서밋에선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투자를 하거나 창업가를 육성하고 있는 민간과 공공 액셀러레이터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세션에는 양경준 크립톤 대표, 이경섭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혁신실장, 김천희 포스코홀딩스 벤처밸리플랫폼섹션 리더, 권순용 UNIST 산학협력단장이 연사로 무대에 섰다.
난상토론은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됐다. 먼저 이기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이재훈 경상남도청 창업지원단장, 하상용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 패널로 나서 ‘공공의 입장에서 바라본 지역 생태계의 기회와 한계’에 대해 토론했으며 이어 정현정 마크앤컴퍼니 심사역의 진행으로 김영덕 디캠프 대표, 이지훈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사무총장,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김태영 테라릭스 대표가 민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지역 생태계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논의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권오상 퍼즐랩 대표, 김광현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가치창출단장, 이용관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장, 박승록 중소벤처기업부 디지털혁신과 과장이 연사로 나서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올바른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한편 부산에서 개최된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서밋은 올해 첫 행사를 시작으로 지역을 달리해 매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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