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tartup’s Story #135] 글로벌진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구분! 사이러스 황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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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블레이어를 서비스하고 있는 사이러스의 대표 황룡입니다. 블레이어는 2009년 부터 운영되어 온 가장 오래된 인디 음악 서비스입니다.

음원 시장에는 저작권 이슈가 있는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그 저작권에 대한 부분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여담이지만, 저작권법과 관련해 역사적인 사건이 하나가 있었어요.

어떤 사건인가요? 

서태지가 저작권 협회를 탈퇴한 일이에요. 개념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해야 하는데요. 저작권에는 크게 두 가지 개념이 있어요.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이데요. ‘저작인격권’은 내가 만든 음악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그것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이 감상해주길 바라는 거예요. 리메이크에 관련된 이슈가 이것과 깊게 연관되는데요. 예를 들어, 서태지에게는 이재수 사건이 있어요. 이재수라는 패러디 가수가 서태지 음악을 패러디 하면서 처음으로 저작인격권이라는 개념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거거든요. 사실 이전에도 패러디가 흔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됐는데, 이재수 사건 결과는 리메이크라고 인정하긴 어렵고 패러디물이라는 법원 판결이 났어요. 이 사건으로 저작인격권의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된 거고요.

보통 사람들이 저작권이라고 말할 때의 개념은 ‘저작재산권’이에요. 저작권 신탁제도로 설명을 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저작권 신탁 제도는 펀드 같은 거예요. 내가 펀드를 맡기면 어디에 투자를 하던 그에 대해 수익금을 줄 의무가 있는 거잖아요? 저작권 협회와 저작권자 관계도 그런 거고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있어요.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특정기업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면 그 기업에 음악을 주기 싫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거죠. 맡긴 거니 신경 쓰지 말라는 개념인 거에요. 펀드의 개념이라서 수익만 가지고 이야기 되는 거니까 당연한 거로 여겨지는 거죠. 그런 문제로 인해 서태지는 ‘나는 저작인격권이 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탈퇴 하겠다’하고 저작권 협회를 처음으로 탈퇴해 버렸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저작권 협회를 탈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또 그 전까지는 탈퇴 규정이란 것도 없었어요. 서태지가 탈퇴한 것도 규정이 없어서 소송 단계를 밟은 걸로 알고요. 아무튼 그 사건으로 저작권을 무조건 신탁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태지처럼 개인이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알려진거죠.

그래서 만들어진게 블레이어고요? 

그렇죠. HTS(Home Trading System, 집이나 사무실에서 주식거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처럼 플랫폼만 만들어주면 저작권자가 거래를 손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게 블레이어에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작권법을 푸는 것도 그렇고 인디음악이 대상이었다면 팬덤현상이 크지도 않았을 텐데요.

사실 이게 굉장히 오래 걸리는 사업이에요. 하지만 굉장히 오래 걸릴 줄 모르고 시작한 사업이었고, 지금도 오래 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웃음)

저작권자들 조차 저작권의 개념을 잘 몰라요. 원래 저작권 단체는 1개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2개로 늘면서 저작권이 이슈화가 된 거에요.

저작권 단체가 한 곳만 있으면 장점도 있어요. 예를 들어 방송국을 상대로 저작권자인 개인이 협상을 하게되면 협상력이 현저히 떨어져요. 그래서 저작권 협회가 여러 저작권자를 대신해 방송국과 협상을 하고 비용을 받는데요. 한 군데만 있으면 아무래도 협상력이 강하다는 거죠. 그런데 부패했을 경우 답이 없다는 단점이 있어요.

저작권 신탁단체가 한 곳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어요. 그 한 곳이 앞서말한 단점이 있다는 의견이 있어 왔고요. 어쨌든 이런 이슈가 있을 때 서태지가 협회를 탈퇴했고, 그 뒤에 어떤 변화가 있을 듯 싶었지만, 달라지는건 없었어요. 그래서 블레이어가 그 역할을 해보고자 했던 건데, 쉽지 않았어요. 이유는 4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음악과 관련된 사업은 역시나 쉬운일이 아니네요. 인디음악가들을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을 듯 해요.

사실 사업 전에 저는 인디밴드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홍대를 한 번 가본 적도 없고, 인디 공연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사업을 하면서 좀 부딪혀보니까 작은 기획사나 인디음악가들은 저희 같은 회사들을 ‘잠깐 하다가 없어질 회사들, 진정성도 없고 그저 기회주의적 회사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더군요. 실제로 음악 업계 사람들을 데리고 뭔가 해보려다가 끝이 안 좋은 경우가 굉장히 많았던 거예요. 그런 부정적인 학습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사기꾼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린 거고요. 어쨌든 이건 오랜 시간 동안 저희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극복이 됐어요. 회사 이름을 말하면 ‘들어본 것 같아요’ 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는 된 거죠.

국내 시장의 인디음악분야와 저작권에 대한 한계성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블레이어의 모델과 방향에 대해 한계를 느꼈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비즈니스를 조금 더 크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국가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어요.

국내 저작권 이슈는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세요?

저작권자들이 리스크를 감내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멜론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멜론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아요. 물론 저도 멜론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아예 유통채널을 바꾸든지 아예 시장을 파괴할 만한 시도를 해보든지 했으면 해요. 그런데 그들의 변은 위험한 시기에 투자를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합당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에요. 솔직히 말해 그들 주장이 맞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그 시장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을 때 그들은 투자를 했고 그래서 돈을 번 거죠. 리스크를 감내한 사람이 결국 이긴 케이스죠. 그런데 뮤지션들은 한번도 리스크를 감내해 본 적이 없어요. 손익에 민감하다 보니 굉장히 근시안적이죠. 저는 멜론에 음원을 주면서 멜론에서 음원을 소개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니냐고 그들에게 되묻고 싶어요. 퍼센테이지 비율이 너무 높다고 멜론에 대해 비판들을 하는데요.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고 있어요. 떼 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제가 봤을 때는 멜론에 요구해봤자 되지도 않을 거예요.

그런면에서 보면 ‘브로콜리너마저’ 그룹은 영리해요. 꾸준히 유통 마진을 없애는 시도를 하고 있거든요. 시장이 한정적인 것을 인지해, 자신의 퍼센테이지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결정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접근이 더 생산적이라고 봐요.

지금에야 동남아시아를 눈여겨 보는 기업들이 많지만, 사이러스는 일찌감치 태국 시장으로 진출했어요. 흔한 케이스는 아닌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어려운 시장이라 했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랐어요. 각 나라가 가진 시장 규모와 내가 진입할 수 있는 시장 규모는 다른 거라고 생각했고요. 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가 과거에 돈을 벌었던 건 곳은 미국이 아니라 중동이나 동남아와 같은 나라에요. 우리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나라에 가서 그들이 못하는 일을 해주고 그에 대한 비용으로 수익을 냈던 거죠. 마찬가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못하는 나라에 가서 대신 해주고 수익을 얻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글로벌 진출과 실리콘밸리 진출이 동의어처럼 쓰이기도 하는데요.

글로벌 진출을 이야기 할 때 대부분 실리콘밸리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진출하면 멋진 일이긴 하겠지만, 우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가능성을 놓고 봤을 때, 내가 다리 뻣고 누울 자리가 많은데, 굳이 빼곡한 곳에 가서 하려는 건 본질적 동기보다 어떤 맹목성이 있는 것 같아요. 실리콘밸리에 가고 싶다고만 하지, 왜 가느냐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을 못하는듯 싶고요. 그런 관점에서 저는 동남아 시장을 봤고 태국 시장이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태국 시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우선적으로 기준을 삼았던 건 일단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아야 된다는 거였어요. 적으면 매력도가 떨어진다고 여긴 거죠. 흔히 동남아 시장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데요. 동남아 시장은 다 로컬이에요.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이 같은 경제권이라고 말하는데 제가 보기엔 다 로컬 대 로컬이란 거죠. 사실 각각의 로컬들이 모여서 글로벌이 되는 거고요.

두 번째는 기술적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으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런 관점에서 싱가폴이나 베트남은 좀 애매했어요. 우리보다 조금 못하는 수준인 거지 현저한 차이가 나는건 아니거든요. 결국 남는 시장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이었는데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는 태국에 비하면 GDP가 현격히 낮아요. 그래서 GDP가 어느 정도 높고, 엔터테인먼트 산업 규모 등 전체적인 걸 고려해보니 남는 곳이 태국 시장이었던 거죠.

2012년 당시 페이스북을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 ‘라우드박스(LoudBoX)’를 론칭하셨어요. 지금이야 페이스북을 이야기 하면 시장에서 먹히지만, 당시에는 어땠나요?

제가 이걸 준비했을 때가 2012년 말 정도였는데요, 당시에는 페이스북이 이렇게까지 성장하지는 않았어요. 우리나라 페이스북 가입자가 백만 명이다. 더 적을 수 있다. 실 사용자는 그것도 안된다 면서 설왕설래 할 때예요. 그 때 인디기획사들을 만나면서 서비스 소개를 했는데요. 그쪽 반응은 ‘다 싸이월드 하고 있는데 페이스북을 누가 하느냐’, ‘외국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 잘 되는 거 봤느냐’, ‘네이버 카페가 훨씬 낫지 그걸 왜 해야 하느냐’ 였어요. 더불어 페이스북 페이지도 개념을 설명하기가 애매했어요. 설명을 해도 못알아 듣고, 알아듣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웃음) 차라리 트위터가 낫지 않냐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런 상황 속에서 서비스를 만들긴 했어요.

처음에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붙이는 앱이었어요. 페이스북 페이지가 예전에는 대문을 만들어 놓는 게 있었거든요. 그 대문앱을 만든 거죠. 미국 밴드 페이지의 한국 버전처럼 뮤지션들이 자기 콘서트 일정을 걸어놓는 식이었죠. 뮤지션이 자기 페이지에 설치를 하면 콘서트나 이미지샷을 올려놓을 수 있고요. 자기 음악을 유튜브에서 가져와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콘서트 일정 등을 광고할 수도 있었어요.

그 앱을 2AM 정진운, 리쌍, 015B 등 뮤지션들이 쓰기 시작하니까 동남아,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트래픽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유튜브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법적 이슈는 없었나요?

당시엔 없었어요. 문제가 될 때쯤 피봇(pivot : 사업 아이템 전환)하기도 했고요. (웃음) 그리고 당시 크게 문제로 삼지 않았던 이유는 공식 페이지에서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걸어놓는 거라서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어요.

그때 이슈는 아이튠즈였어요. 저희가 그때 아이튠즈 링크를 걸 수 있는 다운로드 버튼을 만들어 놨는데요. 막상 시작해 보니 이게 너무 불편한 거예요. 왜냐면 당시는 페이스북이 모바일 앱이 없고, 웹으로만 이용하는 추세였거든요. 그런데 아이튠즈를 누르면 아이튠즈 뮤직스토어가 연결이 돼야 되는데 연결이 제대로 안 돼 쓸모없는 링크였어요. 게다가 페이스북 사용자가 쓰는 건데 외부로 빠지게끔 하는 것도 번거로운 프로세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죠. 더불어 페이스북이 굉장히 커질 것 같았고 국내에서도 성장을 할 것 같은데 내부에서 돌아가게끔 하는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아예 페이스북 내부에 음악 서비스를 넣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피봇을 한거죠. 그게 라우드박스에요. 시작은 뮤지션 홍보 페이지였는데, 이것을 쳐내고 아예 음악 서비스를 만든 거죠.

재미있었던 건, 저희가 실제로 개발을 하고 인디 레이블들을 다시 찾아갔을 때가 초창기 서비스 설명을 한 뒤 9개월 정도 지났을 때인데요. 페이스북에 대한 인식이 완전 상황이 바뀌어 있었어요. 그래서 한 달 안에 그 레이블들이 다 설득이 됐어요. (웃음) 그래서 또 예언을 했죠. 페이스북 ‘좋아요(LIKE)’를 빨리 늘려주셔야 된다고요. 나중에는 좋아요를 돈 주고 사야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죠.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 그랬는데, 진짜 그렇게 됐잖아요? 어쩌다보니 페이스북 전도사가 된 거예요. (웃음)

재미있네요. 조금 돌아갔는데, 현재 라우드박스는 태국에서만 서비스 운영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현재 태국에서만 서비스 하고 있어요. 유저도 모두 태국인이고요. 우리나라는 장르적인 한계가 있어요. 아이돌 음악 위주로 소비하잖아요? 물론 그걸 문제라고 말하는 게 아니예요. 취향이 편중된 근본적인 원인들을 따지자면 무수하게 나열 할 수 있겠지만, 한국인들의 정말 그 장르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는거니까요. 우리나라가 특수한 걸 수도 있는 거고요. 음원을 사는 사람이 듣고 싶은 걸 듣는다는데 그걸 문제라고 볼 순 없다고 봐요. 단지 저희가 다루는 게 인디였을 뿐이죠. 아이돌 음악 같이 인기 있는 장르를 제외한 모든 장르가 인디였던 거고요. (웃음)

이제 태국 시장 진출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겠군요? (웃음)

좌충우돌했어요. 저희가 태국에 처음 갔을 때 한 게 태국의 모든 CD를 사서 리핑한 뒤 실제로 트리밍을 한 거였어요. 그걸 한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SM, JYP, YG, CJ E&M 을 합친 수준의 엄청 큰 태국회사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려야 했는데, 딱히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 회사는 타이팝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회사예요. 여담이지만, 태국은 기본적으로 어떤 산업이든 선도기업이 존재해요. 그런 회사가 시장 점유율 50-70%를 넘고요. 우리나라와는 다른 환경이죠.

두 번째는 태국에 대한 데이터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인구 통계 수치를 제외하고 대중 음악 선호도나 CD 판매량, 현재 인기 연예인 등 데이터가 거의 제로 수준이었어요. 태국에서 오래 산 사람도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니까요. 현지에서 물어본 사람마다 답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데이터를 모아야 했어요. 그런데 태국은 보급 속도가 엄청나더라고요. 굉장히 빨리 변화하기 때문에 유용한 데이터가 못 되는 경우가 많아요. 더불어 언어도 영어권이 아니니까 서칭하기도 힘들고요. 아마 동남아 진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데이터가 없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남아 진출할 땐 무조건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저흰 현지 파트너를 섭외하기도 어려웠기에 일단 부딪혀 보자고해서 직접 갔어요. 무작정 현지에서 음악을 서비스 해보면 오차가 있겠지만, 가장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타이팝이라 불리는 음악을 모두 다 수집을 했죠.

태국에서는 몇 명이서 그 작업을 하셨나요?

인턴 한 명과 저, 단둘이서 했어요. 당시에는 태국에 CD 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어요. CD가 없는 것은 일일이 스캔을 떴어요.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말이죠. (웃음) 이름 안 뜨는 것도 다 찾아 했고요.  무척 자세히 봐야 했어요. 우리가 모르는 글자라서 CD와 맞게 돼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요. 태국에 가서 1~2개월 동안 DB작업을 했죠. 그 과정을 거쳐 데이터를 디지털화 했고요. 아마 저희가 그런 데이터를 만든 유일한 회사일 거예요. (웃음)

모르는 문자면 아예 그림 맞추기였겠군요. (웃음) 집계된 데이터에 대해 이야기 해 주신다면요?

일단 태국에서의 인기 가수들과 인기 장르가 나왔어요. 락, 힙합이 가장 인기가 높더라고요. 한국은 아이돌 아니면 어쿠스틱이었던 것에 비해 태국에서는 어쿠스틱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어요. 발라드 정도 포함되고요. 어찌보면 우리나라 90년대 취향과 비슷했어요. 또 팝시장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잘 안 되는 장르가 인기가 많았던 거죠.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원인을 살펴 보니 태국에 외국인들이 많이 오고 있더라고요. 사실 우리나라와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팝시장 영향을 많이 받아요. 전세계 주류는 락장르였고, 태국도 락 밴드가 인기가 많더라고요.

마침 그때 서칭포슈가맨(Searching for Sugarman)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됐는데, 그 영화는 로드리게스라는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예요. 미국에서는 2집까지 내고 인기가 없어 사라진 그저그런 가수고요. 그런데 이 사람의 LP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게 돼요. 그러다 남아공에서는 거의 비틀즈와 견줄 정도의 인기를 얻게 되죠. 반사회적이고 은유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 보니 남아공에서 국민 가요화 됐다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로드리게스는 자기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줄 모르고 있었고, 30년 후에 팬들이 그를 찾게 되죠. 그리고 남아공으로 가게 되고, 로드리게스가 공연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니 남아공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지러졌죠. 이 영화의 타이틀이 그래서 ‘미국에서 ZERO, 남아공에서는 HERO’ 였는데요. 이걸 보고 딱 꽂혔죠. ‘우리나라에서는 인기 없는 가수나 장르가 해외에서는 주류 장르가 될 요소들이 있겠다’ 라고요.

K-POP을 생각해보면요. 다른 나라에서 좋아할 음악이 간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음악이 간 거 거든요. SM, JYP, YG만 해외진출이 가능해서 간거고, 대부분 평균치 이상의 성적을 거뒀어요. 또 하나 태국에서 확인한 건 J-POP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현재 K-POP이 J-POP을 대체하고 있어요. 두 개가 굉장히 비슷한 거지만 한국 가수들이 더 노래 잘하고, 잘생기고, 춤도 잘추고 하니까 퀄리티가 J-POP를 넘어선 거죠. 결국 K-POP이 갑자기 뜬 게 아니라 J-POP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대체한 거였어요. 즉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음악이 간 거죠.

가장 좋은 해외진출 전략은 현지인이 좋아하는 음악이 가는 거라고 봐요. 지금은 K-POP이 아이돌 음악에 국한돼 있지만, 동남아나 다른 나라에서 좋아할 만한 음악들이 간다면 인기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동안 스트리밍하던 타이팝을 국내 인디음악으로 대체를 하신 거군요원래 계획한대로 태국회사(현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존재감을 알리셨나요?

네. 두 달 정도 작업하는 중에 연락이 오더라고요. 처음엔 그 회사의 법무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요. 그래서 ‘불법으로 뭔가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당신네들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는데 회신을 안주더라. 우린 저작권을 침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고 대응했죠. 안 먹혔고요. (웃음) 그래서 내리라고 하면 내리겠는데, 기술적으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죠. 다행히 기다려줬고요. 그래서 한 달 만에 딱 내렸어요.

그 한 달 동안 국내 뮤지션들을 모은 거군요?

그렇죠. 한 달의 유예시간을 얻어서 인디레이블들을 또 만나고 돌아다녔고, 스무 개 업체 섭외에 성공했어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옥상달빛, 브로콜리너마저 이런 뮤지션들 음악을 집어 넣기 시작했고요.

저희가 무료로 인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데요. 무료라는 건 서로 합의가 돼야 하는 거거든요. 그들에게도 무료로 내보내야 할 동기가 필요하잖아요? 마침 인디들은 스트리밍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게 아니어서 이야기가 잘 됐어요. 현지에서 인기를 얻고 공연을 하고 싶다는 입장이었던 거죠. 또 동남아 시장은 음원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기도 했아요. 그런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수월하게 영업이 된 거죠.

태국 시장에서의 에피소드는 없으셨나요?

이건 정말 여담인데요. 앞서 태국에는 데이터가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다보니 저희가 처음에 태국에서 모바일 서비스를 준비할 때 블랙베리로 한 거예요. 그것도 왜 그렇게 됐나면, 저희 팀원 중에 유학 온 태국인 친구가 있었어요. 번역 일 하던 똑똑한 친구였고요. 그 친구가 태국에서 모바일 서비스를 하려면 블랙베리로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전수조사를 할 때도 진짜 그런 것 같이 보였던 것도 있었고요. 그 친구 말을 철썩같이 믿었죠. 그런데 저희가 준비가 끝난 후 갈 때는 블랙베리가 없는 거예요. (웃음) 블랙베리를 많이 썼던 이유는 BB메신저 때문이었어요. 태국인들이 그걸 많이 쓰기에 핸드폰 OS를 못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던거죠. 그런데 바뀌더라고요? 라인으로 대체가 된 거예요. 더불어 스마트폰이 비싸니까 그렇게 빨리 보급이 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많이 보급되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중고폰 상다수가 그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고요. 동남아가 변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했잖아요?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생각보다도 훨씬 빨랐어요. 문화 충격을 받을 정도로요. (웃음)

블랙베리 용으로 만든 서비스는 어떻게 됐나요?

오픈할 필요조차 없었죠. 아무도 안쓰니까요. (웃음) 분명 개발하기 전에는 다 쓰고 있었는데, 개발하는 게 몇 달 걸리잖아요? 우린 블랙베리를 써본 적이 없으니 공부도 해야했고, 파는 곳이 많지 않아서 어렵게 구해서 실제로 써보면서 개발 다 했는데, 아무도 안 쓰고 있는거죠. 어쩔 수 없이 론칭을 못했어요. (웃음) 참고로 현재는 IOS 버전 런칭을 준비 중입니다.

현지에서 수익모델은 어떻게 잡고 있나요?

저희는 일단 가입자 수를 최대한 많이 늘려서 아주 적은 금액을 부과할 생각이에요. 태국은 90%가 불법이에요. 우리나라 2000년대 초반처럼요. 이 상황에서 아이튠즈 모델을 가져가면 안 먹히는건 자명한 사실이고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하는 건, 최대한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고 점진적으로 서비스 퀄리티와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거예요. 소비자에게 돈을 내도 될 당위성 자체를 만들어주자는 거죠. 시장을 양성화 시키는 방법이 우리나라 모델과 같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음반 시장이 불법이었다가 현재는 합법화로 많이 넘어 왔거든요.

합법화의 중요한 요소는 뭐였다고 보세요?

일단 스티리밍으로 넘어오면서 많이 합법화가 됐어요, MP3 파일이 많이 없어졌잖아요. 그리고 모바일로 넘어오면서도 또 많이 변화했고요. 결국 스트리밍과 모바일, 이 2가지 기술적인 변화가 합법화로 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태국에서 이런 움직임이 지금 나타나고 있고요.

불법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태국을 문제로 인식할 게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노하우, 경험들을 투입시켜 그 시장을 합법화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K-POP이 됐든 뭐가 됐든, 국내 컨텐츠 산업들이 가서 돈 벌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왜 합법화 안하느냐, 합법화해야 한다’고 말로만 하면 안되는 게, 그들은 기술이 없거든요. 우린 기술이 있어서 가능한 거고요. 특히 태국이나 필리핀은 IT인력이 없어요.

그 역할을 지금 해주고 계신 거군요.

시도해보고 있는 거죠. 아직 스트리밍, 모바일 쪽으로 키플레이어가 부족해요. 태국의 기술이 따라와 줄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변화가 빠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키플레이어가 돼 줄 회사가 없어 보여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생각하는 베스트는 규모있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서 마켓을 만들고, 합법적인 시장을 점진적으로 만들어 갔으면 하는거예요. 90%가 불법이라는 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90% 남았다는 거거든요. ‘90% 시장이 불법이라 우리 들어가면 망할 거야’ 라는 시선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90% 남았다’고 볼 수도 있는 거죠.

어려운 과정을 거쳐왔지만,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하고 계세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K-POP 의 한계가 느껴져요. 소위 3대 기획사를 축으로 아이돌 음악 편중의 현 시장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장르적인 편차는 리스크에요. 거대 기획사는 차치하고 당장 문제는 레이블들이예요. 이쪽은 기획력이 부족해요. 비용 충당도 힘들고요. 게임 산업이 다양한 라인업을 시도하는 것처럼 음악 시장도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태국이라는 로컬에 진출한 유경험자로서 글로벌 진출에 대해 조언해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스타트업들이 이제는 보이는 부분보다는 실속을 따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태국이라는 시장이 저희 회사에 돈이 안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우리와 동반 성장도 가능할뿐더러 미국보다 가깝기도 해요.

특히 태국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이 매우 우호적이에요. 한국이라는 나라 이미지가 플러스 요인이에요. 후광효과를 업고 가는거죠. 데이터가 부족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회사가 늘면 데이터는 자연히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회사나 서비스 이야기 보다 저작권 이슈와 태국이야기를 더 많이 한 것 같네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근일간 또 다른 서비스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플래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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