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프로야구 시장이 전례 없는 변화의 국면을 맞았다.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 KBO 리그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최신 조사 결과는 이러한 변화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맥락적 향수(Contextual Nostalgia)’와 ‘숏폼 기반 콘텐츠 소비’로 대표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프로야구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삼성 라이온즈의 약진이다. 20-30대 응원 구단 조사에서 삼성은 17.2%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맥락적 향수’라는 새로운 소비 심리의 결과물이다. 2010년대 ‘삼성 왕조’ 시절을 유년기에 경험한 세대가 이제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엘도라도’ 응원가의 부활은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황금기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 응원가는 2024년, 새로운 세대의 입을 통해 다시 불리고 있다. 수만 명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떼창’ 현상은 단순한 응원을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팬들의 구단 선택 기준도 다채로워졌다. 전통적인 기준인 ‘연고지'(42.7%)가 여전히 1순위를 차지했지만, ‘좋아하는 선수'(32.4%), ‘구단 역사·전통'(26.7%)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두산 베어스의 사례다. ‘망그러진 곰’ 캐릭터와의 협업을 통해 MZ세대의 취향을 정확하게 공략, 새로운 팬층 확보에 성공했다.
프로야구 시청 문화의 변화도 뚜렷하다. 하이라이트 시청(73.2%)이 실시간 중계(62.0%)를 앞지른 것이다. 특히 40초 미만의 숏폼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티빙(CJ ENM)이 KBO 중계방송권을 확보하면서 도입한 ’40초 룰’이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했다.
야구장 음식 문화도 진화하고 있다. 여전히 치킨이 57.2%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지만, 그 의미는 달라졌다.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닌,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보영만두’, ‘농심가락 떡볶이’ 등 특정 구장의 시그니처 메뉴가 직접 언급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구단 간 라이벌 관계도 흥미로운 양상을 보인다. KIA-삼성, LG-두산의 라이벌 구도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독특한 심리적 역학관계를 보여준다. 특히 LG와 두산의 경우, LG 팬들의 61.4%가 두산을 라이벌로 지목한 반면, 두산 팬들은 39.5%만이 LG를 라이벌로 인식했다. 같은 잠실구장을 사용하는 물리적 근접성이 이러한 비대칭적 라이벌 의식을 형성했다는 분석이다.
2024년의 프로야구 팬들은 이제 단순한 스포츠 관람객이 아닌, ‘문화적 소비자’로 진화했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효율적인 콘텐츠 소비를 선호하면서도, 오프라인에서의 진정성 있는 경험과 커뮤니티 소속감을 중시하는 이중적 특성을 보인다.
2024년 프로야구 시장의 변화는 한국 스포츠 산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전통적인 팬심과 현대적 소비 트렌드가 만나 만들어내는 이 독특한 생태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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