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2천억 원. 한 나라의 경제를 지탱하는 작은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숫자다.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편의점 안에서 하루 종일 서 있는 자영업자의 한숨, 작은 공장에서 밤늦도록 불을 밝히는 중소기업인의 고민, 그리고 낡은 사무실에서 미래를 꿈꾸는 스타트업 창업자의 열정까지.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5년 예산은 전년 대비 2,991억 원이 늘어났다. 숫자만 보면 크지 않은 증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예산 속에는 766만 소상공인과 804만 중소기업인들의 미래가 담겨있다. 그들은 우리 경제의 그림자처럼 존재해왔다. 누군가는 그들을 ‘경제의 허리’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허리보다 더 깊은 곳, 뿌리에 가깝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소상공인들을 위한 지원이다. 배달비와 택배비를 한시적으로 지원하고, 신용이 취약한 이들을 위한 대출을 확대한다. 언뜻 보면 작은 도움일 수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벼랑 끝인 이들에게는 절실한 숨통이다. 폐업의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한 ‘희망리턴패키지’도 확대된다. 실패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딥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다. AI와 팹리스 분야에 특화된 지원이 새롭게 시작된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단순한 서비스를 넘어 기술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모태펀드 출자 예산도 확대된다. 정부가 마중물을 붓고, 민간 자본이 그 뒤를 따르는 구조다.
수출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테크 서비스 수출 지원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더 이상 한국의 수출이 제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글로벌 창업허브 건립도 시작된다. 한국이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를 꿈꾸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역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자율형 바우처와 지역특화 R&D 지원이 새로 시작된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스마트공장 고도화와 지역 제조AI센터 확충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소기업들이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흥미로운 것은 ‘점프업 프로그램’이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가는 길목에서 많은 기업들이 주저앉는다.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다. 성장통을 겪는 기업들에게 체계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민관 공동 상생협력 지원도 새롭게 편성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가야 한다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셈이다.
하지만 예산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집행이다. 정부는 신속한 재정 집행을 약속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돈이 정말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느냐다. 서류상의 지원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섬세한 집행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잊는다. 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 진짜 숲이 있다는 것을. 그 숲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스타트업이라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소리 내지 않고 자란다. 하지만 그 성장이 멈추면 우리 경제라는 땅도 메마르고 만다. 15조 2천억 원의 예산이 이 숲을 더욱 울창하게 만드는 비가 되길 바란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5년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한 투자다. 소상공인의 한숨을 웃음으로, 중소기업인의 고민을 희망으로, 스타트업 창업자의 열정을 현실로 만드는 씨앗이다. 이제 우리는 그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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