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이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자계약 연대책임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자 유치 과정에서 연대책임을 요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어반베이스 창업자의 투자금 반환 소송 사례가 알려지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코스포가 지난 11월 14일부터 20일까지 회원사 창업자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6%가 투자계약 과정에서 연대책임을 요구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연대책임으로 인해 심리적 위축은 물론, 가족의 경제적 피해, 법적 분쟁, 재정적 압박 등 실질적인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메타버스·프롭테크 스타트업 어반베이스의 사례는 연대책임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반베이스는 누적 2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하던 유망 기업이었으나, 투자 시장 악화로 회생에 실패했다. 이후 초기 투자사인 신한캐피탈이 창업자 하진우 대표를 상대로 투자금 12억 원(원금 5억 원과 연 15% 이자)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하 대표의 자택은 가압류 상태다.
하진우 대표는 “창업자로서 실패를 인정하고 모든 책임을 감당하고자 했지만, 가족의 집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호소했다. 신한캐피탈은 2017년 체결된 투자계약서의 ‘회사가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불가능할 경우’ 조항을 근거로 상환권을 행사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코스포 조사에서 응답자의 78%가 연대책임이 창업 활동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한 창업자는 “연대책임은 창업 의지를 말살하고 벤처투자 본연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벤처캐피탈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전제로 한 투자”라며 “대출과 스타트업 투자는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보통 2~3번의 실패를 통해 성공적인 기업이 탄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투자자와 창업자는 위험을 함께 감내하는 동반자적 관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듯 응답자의 94%가 창업자 연대책임 금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특히 연대책임 경험자들 사이에서는 97%라는 압도적 다수가 관행 개선에 찬성했다.
구태언 코스포 법률지원단장은 “VC가 창업자의 개인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회수하는 등 벤처투자의 본질에 어긋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연대책임 조항 삭제와 같은 추가적인 제도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투자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스타트업과 투자자 간의 법적 분쟁이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팬데믹 시기 급증했던 투자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양측 간 갈등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해외에서도 소프트뱅크와 소셜 미디어 스타트업 IRL 간의 소송, 블록체인 기업 런더월드와 전 CTO 간의 분쟁 등 유사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벤처 투자 생태계 전반에 걸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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