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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의 진화 ‘신기함’에서 ‘신뢰’로

“#KBeauty”

44억 회. 틱톡에서 이 태그가 기록한 조회 수다. 단순한 숫자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하나의 현상이다. 화장품 분야에서 한 국가의 이름이 이렇게 브랜드가 된 적은 없었다. 프랑스 화장품이라고 하면 ‘샤넬’이나 ‘랑콤’ 같은 개별 브랜드를 떠올리지, ‘French Beauty’라는 카테고리를 떠올리진 않는다.

최근 글로벌 K뷰티 유통사 랜딩인터내셔널이 발간한 ‘K뷰티 제2의 물결’ 보고서는 이런 맥락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들은 K뷰티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물결이 ‘Korea’이라는 키워드의 신기성에 기댔다면, 두 번째 물결은 그 너머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숫자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K뷰티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9.3% 성장할 전망이다. 2023년 미국 시장에서의 수출액은 12억 달러. 프랑스를 제치고 최대 수출국이 됐다.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Z세대(16-24세)가 33%, 밀레니얼 세대(25-40세)가 43%. K뷰티 소비자의 연령대다. 이들은 평균적인 화장품 소비자보다 연간 270달러를 더 지출한다. Z세대는 여기에 5달러를 더 얹는다. 왜일까? 이들에게 K뷰티는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자 문화적 선택인 셈이다.

“Korea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충분히 써먹었어요. 이제는 그게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죠.”

한 뷰티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초기 K뷰티의 성공은 ‘귀엽다’는 이미지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판다 모양의 아이크림, 달팽이 크림 같은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SNS에서는 대박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한계가 있었다. 바이럴은 됐지만, 재구매율은 낮았다.

그래서 K뷰티는 이제 다른 길을 찾고 있다. 보고서가 주목한 건 ‘포용성’이다. 미국은 다인종 사회다. 다양한 피부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소비자들이 있다. K뷰티가 진정한 ‘메이저’가 되려면 이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COSRX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어떻게 미국 시장에서 성공했을까? 흥미로운 건 그들의 전략이다. ‘Korea’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성분에 집중했다. 과학적 신뢰성을 강조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접근이 더 ‘한국적’이었다. 기술력과 신뢰성이야말로 한국 제품의 강점 아니던가. K뷰티의 81%가 비건 포뮬러를 사용하고, 95%가 알코올 무첨가라는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K뷰티 구매의 68%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가 주 소비층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포라와 울타 같은 오프라인 매장은 여전히 중요하다.

왜일까? 화장품은 결국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리뷰를 봐도, 직접 발라보고 싶은 게 화장품이다. 그래서 K뷰티 브랜드들은 온라인에서의 바이럴 마케팅과 오프라인에서의 체험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결국 K뷰티의 제2의 물결은 ‘정체성의 재정립’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국적인 신기함’을 팔지 않는다. 대신 보편적 가치와 과학적 신뢰성을 추구한다. 이게 역설적으로 더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 K뷰티가 아니라 그냥 뷰티 아닌가?” 케이팝이 세계 음악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케이팝’ 그룹이다. 오히려 그들이 케이팝의 의미를 확장했다고 보는 게 맞다.

K뷰티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Korea’이라는 수식어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혁신적이되 신뢰할 수 있고, 트렌디하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것. 그게 바로 새로운 K뷰티의 정체성이 될 것이다.

이들이 다시 한 번 미국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가장 까다로운 시장이다. 다양한 인종, 문화, 취향이 공존하는 곳. 거기서 성공한다는 건,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가 된다는 의미다.

틱톡에서 Korean Skincare를 검색하면 수많은 영상이 뜬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K뷰티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더 이상 ‘한국의’ 뷰티가 아니다. 그저 ‘좋은’ 뷰티일 뿐이다.

어쩌면 이게 K뷰티가 꿈꾸는 미래일지도 모른다. 국적을 초월한, 하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무언가. 모순된 말 같지만, 우리는 지금 그 모순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을까? 글쎄, 적어도 방향은 맞아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문화 현상의 시작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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