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두 종류의 투자자가 있다. 누군가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자와,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흙을 처음 밟는 자. 네이버 D2SF는 후자의 길을 택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115개의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한국 기술 생태계에 새로운 지도를 그려왔다. 그들은 지도 없는 곳에서 지도를 만드는 일을 했다.
“네이버 D2SF는 시장을 만드는 첫 번째 기업에 투자합니다. 네이버도 스타트업에서 출발한 기업이고 현장에서 문제를 맞닥뜨리면서 고민했던 팀이라,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의 변화가 감지될 때 누구보다 빠르게 공감하고 지지하는 문화가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양상환 네이버 D2SF 센터장은 13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미디어 라운지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네이버 D2SF는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는지보다, 이들과 네이버가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불확실성을 품은 초기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양상환 센터장의 이 말에는 십 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네이버의 기업형 벤처캐피탈 D2SF는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들과 협력하기 위해 출범했다. 투자한 스타트업의 99%가 시드 또는 시리즈A 단계였다. 이것이 D2SF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다른 투자자들이 ‘실적’과 ‘증거’를 요구할 때, D2SF는 ‘기술’과 ‘가능성’을 보았다. 특히 인공지능(AI)이나 버추얼, 로보틱스 등 각 기술·산업에서 첫 시도에 나선 기업들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 그것은 마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도에 새로운 땅을 표시하는 일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5.2조 원. 이는 D2SF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현재 기업가치다. 2021년 70팀 대비 약 4배 증가한 수치다. 더 인상적인 것은 96%라는 높은 생존율이다.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수치다. 국내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3년 지나 생존율이 평균적으로 70%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마치 사막에서 만개한 꽃밭과도 같은 기적이었다.
양 센터장은 “D2SF는 재정적 압박 부담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초기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던 것 같다”며 “개척자의 위치에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저희의 원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퓨리오사AI라고 생각한다. 2016년 미팅 때 퓨리오사AI가 제출한 지원서를 보면, 5장짜리 장표가 전부였다”고 했다.
“우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AI 반도체 칩을 설계한 ‘퓨리오사AI’를 지원했습니다.” 양상환 센터장의 목소리에는 긴 겨울을 견뎌낸 나무의 단단함이 있었다. 이어 “3개월 동안 네이버와 퓨리오사AI가 첫 번째 AI 반도체 칩 스펙을 같이 디자인했다”면서 “어느 정도 시점에 어떤 스펙의 칩을 만들면 좋을지 등을 네이버에서 엔지니어를 데려와서 토론하고 분석해 합의안을 끌어내 첫 투자를 단행했다. 8년이라는 기간을 투자 유치에 있어 고생했는데, D2SF는 그 팀이 이런 포부와 의지에 걸맞는 미래를 맞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퓨리오사AI는 법인 설립 직후부터 D2SF의 지원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았을 때, D2SF는 이들의 가능성을 믿었다. 마치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별을 혼자 바라보는 천문학자처럼. 로봇SW 기업 최초 상장사인 ‘클로봇’, AI 데이터 플랫폼 선구자 ‘크라우드웍스’, ‘노타AI’ 역시 D2SF가 발굴한 기업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개척자들이다. 그리고 이 개척자들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네이버 D2SF는 네이버와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발굴하고 있다. 여러 요소를 판단해 투자 결정을 진행하지만, 핵심은 네이버와의 사업 연계 가능성이다. 이 때문에 네이버 D2SF가 투자한 115곳 중 64%가 현재 네이버와 사업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별자리를 이루듯, 각각의 점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초기 투자에 주력하는 것도 이와 연관성이 높다. 초기 투자자로 합류하는 것이 네이버와의 시너지를 만드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D2SF의 투자 철학은 단순히 자금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입주공간, 클라우드 인프라 등 다양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가속화한다. 이는 숫자로도 증명된다. D2SF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한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은 스타트업보다 9배 빠르게 성장했다. 마치 좋은 물과 비옥한 토양이 식물의 성장 속도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실제 네이버 D2SF가 두 차례 투자한 물류 스타트업 ‘테크타카’는 네이버의 핵심 사업부인 쇼핑과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네이버쇼핑과 긴밀히 협력해 주7일 ‘네이버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며 당일 출고율 99.9%를 기록 중입니다.” 테크타카의 양수영 대표는 D2SF와의 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네이버 D2SF가 예비 창업 단계에서부터 발굴해 시드 투자를 진행한 모션캡처 솔루션 기업 ‘무빈’도 네이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과 기술 협업을 진행 중이다.
최별이 무빈 대표는 “초기 창업가들이 리스키하다고 표현되는 문제점들이 네이버 D2SF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증명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면서 “초기 스타트업이 네이버와 연계할 정도로 비즈니스적으로 많은 요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고 힘줘 말했다.
“우리와 함께 성장해 온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10년이 지난 현재,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진출해 성장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상환 센터장의 이 발언에는 또 다른 여행을 앞둔 이의 결기가 담겨 있었다.
양 센터장은 네이버를 비롯한 기술 기업들이 현재 맞닥뜨린 파도로 AI를 꼽았다. 글로벌 자본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국경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기술 경쟁의 장이라는 점에서 버겁다는 설명이다. 스타트업들은 더 큰 시장과 자본을 필요로 한다. D2SF는 이들이 글로벌 무대에 설 수 있는 교두보가 되기 위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 중이다. 이는 마치 작은 배를 타고 대양으로 나가야 하는 항해사들에게 더 큰 배와 나침반을 마련해주는 일과 같다.
이에 네이버 D2SF도 더 큰 자본과 자원을 발굴하기 위해 북미 시장으로의 진출을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D2SF US(미국)를 개설하고, 현재 그로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D2SF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81%가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했으며, D2SF 역시 지난해 10월 실리콘밸리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그는 “한국의 유망한 스타트업을 잘 발굴해서 키울 수 있는 한국 자본의 역할이 있다면, 이들이 글로벌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총알과 연료 탱크가 필요한데 이걸 채울 시장은 바깥에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 스타트업이 북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반대로 해외 스타트업이 한국 시장에서 생태계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도록 양쪽에 적용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기술로 출발해, 기술로 성장한, 기술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의 메시지는 D2SF의 근본 철학을 담고 있었다. 기술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는 자신의 경험을 후배 스타트업들과 나누고 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낸 자가, 뒤따라오는 이들을 위해 빛을 밝히는 것과 같다. 10년간의 여정이 그려낸 지도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경로를 가리키고 있다.
D2SF의 10년은 단순한 투자 성과를 넘어, 한국 기술 생태계의 성장과 가능성을 기록한 살아있는 역사다. 그리고 이 역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들이 열어갈 미래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지도의 빈 공간을 채워갈 이들이 이제는 한 명이 아닌 수백 명이라는 사실. 이것이 D2SF가 10년 동안 이룬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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