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트렌드

스타트업 가치평가의 풍경

바다에는 풍향과 조류가 있고, 산에는 지형과 암질이 있듯 스타트업 가치를 측정할 법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마치 칼질하듯 단정하게 말한다. “스타트업 가치평가? 전통적 방법으로 하면 되지.” 그들은 모른다. 전통적 기업 가치평가가 스타트업에선 소용없다는 것을. 이는 내 생각만이 아니다. 다미아노 몬타니, 다니엘레 제르바시오, 안드레아 풀치니라는 연구자들이 발표한 논문 “스타트업 기업 가치평가: 현재 상태와 미래 동향(Startup Company Valuation: The State of Art and Future Trends)”에서 이미 체계적으로 밝힌 사실이다. 그것은 독립군에게 정규군 전술서를 내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스타트업이란 생물체는 기묘한 특성을 지녔다. 과거가 없고, 비교할 상대도 없으며, 만질 수 있는 것보다 만질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이런 존재를 숫자로 재단하려니 칼끝이 허공을 베는 셈이다.


전통적 방법의 한계

비용 접근법은 자산과 부채를 잰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자산은 대개 벽이나 책상이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 있다. 창업자가 품은 생각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놓을 수 있는가.

수익 접근법은 미래 현금흐름을 본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미래란 안개 속 등대와 같아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다. 확률적이고 불확실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확정된 숫자로 표현하려 한다.

시장 접근법은 비슷한 회사와 비교한다. 그러나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 똑같은 스타트업도 없다. 더구나 스타트업은 대개 이익은커녕 수익조차 미미하다. 이런 상태에서 비교란 마치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이를 보고 그 아이의 평생을 예측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안적 방법들

학자들과 실무자들은 이런 난관 앞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실물옵션법은 금융 이론에서 영감을 얻었다. 창업자의 선택은 하나의 옵션이다. 시작한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이 방법은 그런 선택의 가치를 측정하려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이론으로만 남아있을 뿐, 실전에서 쓸 만한 도구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벤처캐피털법은 성공 시나리오를 그리고, 그때의 가치를 높은, 아주 높은 할인율로 현재가치로 환산한다. 이 방법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곧 한계다. 단 하나의 시나리오만 그리니, 세상의 복잡함을 담아내지 못한다.

퍼스트시카고법은 좀 더 현실적이다. 최선, 가능성 높음, 최악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그린다. 각각에 확률을 부여하고, 가중평균을 낸다. 그러나 그 확률은 결국 누군가의 주관적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수정된 DCF 방법은 다모다란이라는 학자가 제안했다. 그는 스타트업의 특성을 고려한 여러 조정을 했다. 하향식과 상향식 접근법으로 현금흐름을 예측하고, 생존 가능성을 조정하고, 창업자 의존도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복잡하고, 많은 입력 변수가 필요하다.

투자자들은 좀 더 단순한 방법을 원했다. 그래서 ‘3분의 1 규칙’, ‘버커스 방법’, ‘스코어카드 방법’ 같은 것들이 나왔다. 이들은 엄밀한 학문적 근거보다는 투자자들의 경험과 직관에 기반한다. 최근에는 웹사이트에서 간단히 값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가치를 계산해주는 도구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단순화는 또 다른 위험을 낳는다.


가치평가의 현재와 미래

지금 스타트업 가치평가는 어지러운 수로의 풍경과 같다. 정확한 지도는 없고, 다만 여러 갈래 길이 있을 뿐이다. 몬타니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논문에서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과거가 아닌 미래에 주목하고, 확률을 활용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미래의 가치평가 방법은 이 세 가지를 모두 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방법이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방법을 함께 써보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질적 요소도 고려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고, 정기적으로 재평가하는 것뿐이다.


스타트업 가치평가의 예술과 과학

스타트업 가치평가는 과학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 그것은 흐르는 시냇물의 소리를 악보로 옮기는 일과 같다. 소리는 들리지만, 그것을 온전히 기록할 방법은 없다. 단지 우리는 근사치를 적을 뿐이다.

숫자와 수식에 속지 말자. 그 뒤에는 항상 가정과 판단이 숨어있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쓰는 높은 할인율? 그건 그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마치 어두운 밤길을 갈 때 등불을 높이 드는 것처럼.

각 방법은 나름의 미덕과 결함을 지녔다. 실물옵션법은 복잡하지만 유연함을 포착하고, 벤처캐피털법은 단순하지만 제한적이며, 퍼스트시카고법은 포괄적이지만 주관적이고, 수정된 DCF는 정교하지만 까다롭다. 버커스와 스코어카드 방법은 이해하기 쉽지만 표면적이다.

스타트업 가치평가는 예측이 아니라 성찰이다. 그것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일 숫자가 아니라 가능한 값의 범위를 이해하고, 불확실성의 근원을 알고,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인식하는 것이다.

몬타니와 그의 동료들의 논문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그들의 연구는 스타트업 가치평가의 현재 상태를 해부하고 미래를 예견했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학자와 실무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스타트업 가치평가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과정이다. 완벽한 방법은 없으나, 우리는 가진 도구와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합리적 판단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그것이 스타트업 생태계가 계속 숨쉬고 자라도록 하는 토양이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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