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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벤처투자, 봄기운을 만나다

우리는 숫자에 무심하다. 때로는 숫자가 사람의 뒤에 숨어 보이지 않게 되고, 때로는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버려서 할 말이 없어진다. 2.6조원. 2025년 1분기 한국 벤처투자 시장에서 쏟아진 돈의, 아니 희망의 액수다. 숫자는 냉정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가움이 아니라 온기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벤처투자는 2.6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나 증가했다. 벤처펀드 결성 규모도 3.1조원으로 20.6% 늘었다. 코로나 이후 쓸쓸했던 시장, 2022년 말부터 위축되기 시작했다가 지난해 소폭 반등하더니 올해 들어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벤처투자 호황기였던 2022년 다음으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이다. 숫자는 말한다, 무언가 변하고 있다고.

단순히 올해의 현상이 아니다. 2024년에 이미 벤처투자는 반등의 신호를 보냈다.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는 2023년 대비 9.5% 증가했다. 그리고 올해 1분기에는 더욱 가파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22년의 그 화려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여전히 조심스럽다. 당시 1분기에는 무려 3.9조원이 투자됐다. 자본의 세계에는 항상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종종 두려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다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통계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돈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투자자들은 다시 한번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아마도 성공의 가능성이 실패의 두려움보다 더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너무 오래 주저하다 보면 더 큰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모두 AI를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100억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비상장 스타트업 26개사 중 10곳이 인공지능 또는 바이오 기술 기반이었다. 그 중 뤼튼테크놀로지스는 2025년 1분기에만 무려 830억원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인공지능 기술로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이 기업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5월 초 중기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기술이 바꾸는 세계의 풍경이 이제는 투자자들의 선택에도 뚜렷하게 반영되고 있다.

셀락바이오는 강원도 원주에서 시작해 2025년 1분기에 171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2024년에 창업한 그들이 벌써 이런 성과를 거두다니. 지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종종 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다.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업의 성장은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피투자기업 업력별 투자실적을 보면, 창업 3년 이내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가 전년동기 대비 81.7%로 크게 증가했다. 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혹은 실패를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3년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이런 불확실성에 더 많은 돈을 걸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민간 부문의 참여다. 금년 1분기 벤처펀드 결성액 중 민간출자 금액은 2.6조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31.1% 증가했다. 민간 부문의 출자는 1분기 벤처펀드의 83.5%를 차지하며 신규 펀드결성 증가를 주도했다. 특히 ‘연기금 및 공제회’, ‘금융기관’이 전년동기 대비 각각 47.8%, 41.4%나 늘었다. 일반법인도 37.7% 출자를 확대했다.

이것은 심상치 않은 변화다. 정부가 아닌, 시장이 스스로 판단하고 투자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항상 사회적 목적을 갖는다.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투자한다. 하지만 민간은 다르다. 그들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갖는다. 수익이다. 민간이 돈을 움직인다는 것은 수익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금액은 늘었지만 피투자기업 수는 12.8% 줄었다. 기업당 투자금액은 53.6% 증가했다. 더 적은 기업에, 더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 투자자들이 선별적으로 기업을 고르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이 더 신중해졌다는 뜻일까, 아니면 더 과감해졌다는 뜻일까. 적은 수의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확신을 가진 승부수를 던지는 일이니까.

이러한 투자 집중 현상은 벤처 생태계의 특성을 보여준다. 잠재력이 높은 기업에 더 많은 자금이 제공되고, 그만큼 기대치도 높아진다.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판단이다. 그들은 지금 특정 분야, 특정 기업에 더 많은 가능성을 보고 있다.

벤처라는 단어는 모험을 뜻한다. 투자자들은 이제 다시 모험을 시작하고 있다. 그들이 선택한 모험의 방향을 따라가 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 방향이 보인다. 인공지능, 바이오, 콘텐츠. 이것이 중기부 발표에서 확인되는 주요 분야다. 중기부의 곽재경 투자관리감독과장은 “작년부터 벤처투자 규모가 증가세로 전환되고, 금년 1분기도 투자와 펀드의 증가가 지속되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향후에도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에 활발한 투자가 지속되고, 민간의 벤처펀드 출자가 확대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 및 모태펀드 출자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2.6조원. 이 돈은 어디로 흘러갈까. 그리고 이 돈이 만들어낼 변화는 무엇일까. 수많은 청년들의 꿈이 여기에 실려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경제 지표의 회복이 아니라 한 사회의 활력, 미래를 향한 움직임이다. 투자의 흐름이 바뀌면, 산업의 방향도 바뀐다. 그리고 산업의 방향이 바뀌면,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달라진다.

숫자들은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이야기도 있다. 창업 3년 이내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가 81.7%나 증가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꿈을 품고 시작했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꿈을 믿어주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숫자는 말한다. 봄이 왔다고. 얼었던 시장이 다시 녹아내리고 있다고.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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