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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재명 정부가 스타트업에 보내는 신호’ – 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의 시선

안준한아도바 대표

“이재명 정부가 스타트업에 보내는 신호” – 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의 시선

정치는 스타트업의 일상에서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규제, 세금, 인재, 투자 환경 등 모든 경로에서 창업자의 손목을 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바뀌는 대선은 우리가 일하는 공기의 성질이 바뀌는 순간이고,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하나, 인터뷰 한 문장이 생태계 전체의 온도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제도와 낡은 규제와 싸우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 중이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말과 정책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늠하는 나침반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은 여러 차례 “공정한 시장 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지난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도 “대기업, 플랫폼 기업의 독점은 혁신을 저해하고,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며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당선인의 주요 경제 공약에도 반영되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강화, 불공정 약관 시정, 데이터 독점 규제 등의 내용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스타트업의 생존 조건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읽게 한다.

이는 우리 같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큰 기술기업과 경쟁하며 살아남아야 했다. 유통, 광고, 검색, 결제, 플랫폼 입점 등 어느 하나 자유로운 것이 없었다. 만약 공정한 생태계 조성이 실제로 정책으로 이어진다면, 스타트업이 아이디어와 실행력만으로 더 나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는 “국가가 창의산업을 직접 육성하겠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예산 지원을 넘어서, 콘텐츠 제작과 유통, 글로벌 진출에 있어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에 앞장서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 입장에서 특히 “정부가 글로벌 플랫폼 진출을 지원하고, K콘텐츠가 단발성 흥행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발언은 인상 깊었다. 콘텐츠 플랫폼은 결국 글로벌 스케일을 지향해야만 수익구조가 성립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국경 밖을 본다는 점은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기대만큼이나 걱정되는 지점도 있다. 이 당선인은 “성장만 외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며 분배와 공정의 가치를 강하게 강조한다. 저서 『인간의 삶을 위한 정치』에서도 “성장 없는 분배는 허상이고, 분배 없는 성장은 폭력”이라는 말을 썼다. 그 말은 맞다. 문제는, 이 균형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플랫폼 공정화, 데이터 소유권 강화, 비정규직 보호,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같은 의제들은 대부분 스타트업과 무관하지 않다. 창업 초기에 단 세 명으로 돌아가는 팀에도 법적 책임과 보고 의무가 중층적으로 쌓이면, 혁신보다는 회피가 먼저 작동하게 된다. 공정이 현실로 가는 길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미세 조율이다. 탁상공론으로 강제될 때, 스타트업은 그 정책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다.

또 하나의 관건은 ‘정부의 역할’이다. 이 당선인은 “국가가 선도 투자자로서 모험 자본의 기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기본금융’과 함께, 정부가 직접 초기 기술기업에 투자하거나 R&D를 연계해 창업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과학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특히 수익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AI, 헬스케어, 딥테크, 기후기술 스타트업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정부는 투자자가 되어야지, 경영자가 되어선 안 된다. 투자 후 간섭, 사후 규제, 정산 위주의 관리로 이어진다면, ‘정부 돈’은 민간 시장보다 더 느리고, 더 보수적이며, 더 회피적인 자금이 된다. 창업자는 스프레드시트가 아니라 사람과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관리는 리스크를 줄이지만, 리스크가 없다면 스타트업도 아니다.

또 하나, 글로벌 진출을 돕는 정부의 역할에 있어 중요한 건 ‘이해’다. 단순한 수출 지원이 아닌, 각국의 미디어법, 저작권 정책, 현지화 전략에 맞는 실질적 동반자여야 한다. 콘텐츠는 언어, 문화, 정서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사업이다. 이 당선인이 ‘문화는 투자’라고 말한 것처럼, 콘텐츠 스타트업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길게 봐야 수익이 나는 구조다. 그런 만큼 일관성 있는 정책, 중장기적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스타트업 3.0 시대’에 접어든 첫 번째 정부가 될 것이다. 1.0은 벤처붐이 있었던 산업화 세대의 연장선이었다. 2.0은 플랫폼 기술과 스마트폰이 주도한 시대였다면, 이제 3.0은 기술이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으로 떠오른 시대다. 이 시대에 스타트업은 더 이상 ‘어린 기업’이 아니다. 작지만 빠르게, 사회와 시장을 동시에 움직이는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빠르다. 하지만 빠르기만 한 건 아니다. 방향이 맞을 때만 빠름이 의미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공정, 혁신, 창의, 분배는 매력적이다. 이제 중요한 건, 그 말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느냐다. 글로벌을 바라보는 콘텐츠 스타트업은 ‘지금’에 민감하다. 시장의 온도와 트렌드는 매주 바뀌고, 글로벌 경쟁자는 늘 새로운 카드를 꺼낸다. 그 사이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허락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이재명 정부가 스타트업에 보내는 신호가 있다면, 그것은 ‘기회’여야 한다. 기회를 제도화하고, 제도를 유연하게 만들며, 유연함을 믿어주는 것.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한국을 넘어 더 멀리 간다. 플랫폼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고, 콘텐츠는 그 안에서 국경을 넘는다. 창업자가 원하는 건 허락이 아니라 자율이다. 신호가 오면, 우리는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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