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엄과 탄핵의 정치적 격변을 거쳐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헌정 위기 속에서 치러진 21대 대선에서 49.42%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이 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성과를 강조하는 정부”를 천명하며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법무법인 바른이 이날 발간한 ‘이재명 정부 출범에 따른 주요 정책 전망 및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새 정부는 집권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정치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전례 없는 속도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노동정책부터 에너지 인프라까지 5개 핵심 분야에서 예상되는 정책 지각변동과 함께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대응 전략을 담고 있다. 특히 “정책 변화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갈릴 것”이라며 “선제적 준비 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과중심·과감한 변화’ 내건 새 정부, 7대 핵심 공약 제시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경제정책의 핵심은 △AI 세계 3대 강국 도약 △경제성장의 대동맥인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주가지수 5000시대 개막 △ABCDEF 글로벌 첨단기업 육성 △과학기술 R&D 예산 확대 △벤처투자시장 육성 △북극항로 시대 국가대응체계 구축 등 7개 분야다.
특히 AI 분야에는 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GPU 5만개 이상 확보와 국가 AI데이터 집적 클러스터 조성, ‘모두의 AI’ 프로젝트 추진 등이 포함됐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서해안에, 2040년까지 한반도 전체에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해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ABCDEF 전략에서 A는 AI, B는 바이오, C는 콘텐츠, D는 방위산업-우주항공, E는 에너지, F는 제조업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글로벌 첨단기업을 육성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첫 번째 변화: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체계 혁신
노동정책 분야에서는 주 4.5일제 도입이 가장 주목받는 변화다. 새 정부는 장기적으로 주 4일제까지 확대할 계획을 제시했다. 임금체계도 연공서열 중심에서 능력·성과 중심으로 전환하고, 포괄임금제 폐지를 검토 중이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도 대폭 확대된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비정형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가 추진될 전망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해 노동조합의 파업권과 교섭력도 강화될 예정이다.
문제는 기업 규모별로 영향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높아 집단행동 가능성이 우려되며, 주 4.5일제 도입 시 생산성 저하가 예상된다. 중견기업은 전문 인력 보유로 인한 임금 부담 증가가, 중소기업은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규제 강화에 가장 민감할 것으로 분석됐다.
스타트업의 경우 노동법 강화로 인재 확보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임금공개 요구나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에 따른 행정 부담이 증가할 전망이다.
두 번째 변화: 이사 책임 확대와 소수주주 보호 강화
상법 개정도 기업 경영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다중 대표소송제 도입을 통해 소수주주 보호도 대폭 강화된다.
비상장 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이 전자 주주총회를 도입할 수 있게 되어 소액주주의 참여 기회가 확대된다. 감사위원 개별 선출을 통해 대주주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기업 내부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부작용 우려도 크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로 경영진이 더욱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리스크 기피와 혁신 경영보다는 법적 책임 회피성 판단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개입 위험도 증가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경영진 교체, 배당 확대,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하며 단기 이익 추구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경영권 분쟁이나 위임장 대결, 공개매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 및 내부통제 체계 고도화, 주주 커뮤니케이션 강화, 행동주의 투자자 대응 전략 수립, 자회사 경영 체계 정비 등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 번째 변화: AI 100조 투자와 반도체 특별법
AI와 반도체 분야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정책 영역이다. AI 분야에 100조원을 투자하고 GPU 5만개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고성능 GPU 확보와 국가 AI데이터 집적 클러스터 조성, AI 단과대학 신설과 병역특례 확대 등 인재 양성에도 집중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통한 신속 지원과 국내 생산·판매 반도체에 최대 10% 생산세액공제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완공으로 RE100 달성을 지원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도 가속화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의 거시적 접근과 민간의 실무적 요구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경제계는 AIDC(AI데이터센터) 구축 지원, 제조 AI 활성화, 중소기업 AX 산업 기반 마련, 한국형 LLM 구축, 데이터 활용 규제 완화, 고급 AI 인재 양성 등 구체적인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전력수급 문제와 인허가 지연, 인재 양성에서의 민간 의견 반영, 노동규제 완화 등이 주요 과제로 지적된다. 기업들은 민관 협력모델 구축, 데이터·전력·인재확보 전략 수립, 정책변화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 조정 등에 나서야 한다.
네 번째 변화: 신성장동력 산업 전방위 육성
신성장동력 산업 정책은 항공·방위·우주·조선산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항공 분야에서는 MRO(정비·수리·분해) 산업 강화, K-공항 모델 해외 수출, K-UAM(도심항공교통) 산업 육성이 핵심이다. 김포공항 혁신지구를 UAM 허브로 조성하고 관련 R&D 투자를 확대한다.
방위산업에서는 첨단 국방 AI 기술 기반 구축과 항공기·미사일·위성 등 전후방 산업 육성이 추진된다. KF-21 후속 차세대 전투기 개발과 독자 기술 기반의 항공기 엔진 개발, 방위산업 수출기업에 대한 R&D 세액 감면 정책도 포함됐다.
우주항공산업에서는 경남 우주항공국가산업단지를 글로벌 중심지로 육성하고, 발사체·위성체·지상장비 등 우주산업 전반의 R&D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조선업에서는 스마트·친환경 미래 선박 시장 선점과 중소 조선사 경쟁력 강화가 목표다.
경제계는 더욱 구체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위성체계·발사체·지상장비 통합 지원, 핵심부품 및 지능형 로봇 개발 지원, 바이오의약품·정밀의료 등 첨단기술 상용화 지원, 첨단전략산업에 대한 직접환급 제도 도입 등이 주요 요청사항이다.
다섯 번째 변화: 에너지 고속도로와 RE100 산업단지
에너지 정책은 이재명 정부의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다. 2030년까지 서해안에 20GW 규모의 해상 풍력단지를 조성하고, 2040년까지 ‘U’자형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를 완공해 전국에 해상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대규모 산업지역을 연결하고 전국에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그린수소·히트펌프 등과 연계한 분산형 에너지 체계도 구축한다. AI 기반 지능형 전력망을 활용해 에너지 자립마을을 조성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햇빛·바람 연금’ 확대도 주목할 만하다. 전남 신안군 사례처럼 태양광 발전소를 통해 주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전국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도 만만치 않다.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에 필요한 총투자 규모가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한전의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 지원이나 민간 투자 유치가 불가피하다. 송전망 구축 과정에서 지역 주민 반대와 사회적 갈등도 예상된다.
산업계는 안정적 전력 공급과 전기요금 인상 우려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어 사전 이견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업 형태별 맞춤 대응전략 필요
보고서는 정책 변화에 따른 기업들의 대응전략을 규모별로 세분화해 제시했다. 대기업의 경우 노사 협상을 통한 유연근무제 도입, 성과중심 임금체계 전환, 그룹 차원의 컴플라이언스 센터 운영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중견기업은 근로시간 단축 시 고효율 근무체계 구축, 임금체계 재편에 따른 전문 컨설팅, 안전투자와 산재보험 보장 확대 등에 집중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중앙정부에 현실적 어려움을 알려 유예나 보완책을 모색하고, 기초 안전교육과 시설 보강 등을 통해 제도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워라밸과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경쟁력을 제고하고, 직원 계약서와 규정을 재정비해 법 위반 리스크를 사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선제적 대응이 기업 생존 좌우”
법무법인 바른은 “정책변화가 기업에 성장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많은 도전과제를 동반한다”며 “기업들은 장기적 전략을 갖추고 민첩한 정책 대응능력을 강화하며,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CEO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이 기업의 미래 전략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전략적 컨설팅을 통한 사전 대응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구체적 대응방안으로 △정책변화 분석 및 대응전략 수립 △민관협력 및 정책대응 네트워크 구축 △기술개발 및 R&D 투자조정 △시장변화 대응 및 민첩한 전략 수립 △신규투자 및 재정조달 방안 마련 등을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의 ‘성과중심·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이 예고된 가운데,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 여부가 향후 생존과 성장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책 변화의 파고 속에서 기회를 잡는 기업과 도태되는 기업 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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