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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이유, 하나의 가능성” 대만 스타트업들이 서울에 온 이유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열린 ‘로큰 타이베이 TEH(Rock’n Taipei TEH)’ 행사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c)플래텀

상황이 바뀌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대만 스타트업 교류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타이베이시 정부가 운영하는 TEH 프로그램에 전 세계 12개국 중 한국 스타트업의 신청률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변화의 배경에는 타이베이의 새로운 전략이 있다. 엔비디아의 AI 연구개발 센터 설립과 TSMC의 확장으로 아시아 AI 허브로 부상하면서, 타이베이시는 한국을 핵심 파트너로 지목했다. 그 결과가 바로 6월 26일 서울에서 열린 행사였다.

대만에서 온 스타트업 5곳이 모였지만, 이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GPU 부족 해결부터 ‘정’ 문화 활용까지, 완전히 다른 분야의 기업들이 각자 다른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TOii Games “게이머들이 구글번역기로 우리 게임을 해주더라고요”

대만 게임 스튜디오 TOii Games의 앨런 유(Allen Yu) 창립자에게 한국은 특별한 의미였다. 부산 게임쇼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중국어와 영어로만 제작된 게임이었는데, 한국 게이머들이 구글번역기까지 써가며 우리 게임을 해주더라고요. 대만 사람들도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려고 열정적이었어요.”

몰입형 게임을 개발하는 TOii Games는 이미 CJ ENM Asia와 협력해 한국-대만 공동 제작 콘텐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지적 재산권(IP)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기술을 보유해 함께 공동 생산하는 거예요. ‘내가 팔고 너희가 사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활용하는 교환 관계죠.”

유 창립자는 한국의 글로벌화 노하우에 주목했다. “K-팝이나 K-드라마는 이미 체계적인 방식으로 로컬 콘텐츠를 글로벌 시장에 맞게 발전시키는 SOP를 다 갖추고 있어요. 우리가 많이 배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Infinitix “GPU 한 장 구하려고 몇 달씩 기다리잖아요”

GPU 관리 솔루션 업체 Infinitix는 한국 AI 기업들의 현실적 고민에 주목했다.

“대만에서는 GPU 리소스 관리 플랫폼 같은 우리 사업이 설 자리가 많지 않아요. AI에 진짜 투자하고 발전시키려는 나라로 가야 의미가 있는데, 아시아에서 그런 나라가 많지 않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에요.”

가성욱 한국영업이사는 한국 기업들의 페인포인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GPU 한 장 구하려고 몇 달씩 기다리잖아요. 겨우 구해놓고는 제대로 활용 못해서 줄 서서 기다리고. 이게 지금 한국 AI 기업들의 현실이에요.”

Infinitix의 솔루션은 GPU 가상화다. “컴퓨터 한 대에 여러 계정 만들어서 돌아가며 쓰는 것과 같은 개념이에요. 누군가 사용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한국 시장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도 있었다. “한국 시장은 반응이 빠르고 확실해요. 그래서 우리도 시장 요구에 맞춰 제품을 고도화할 수 있고, 이는 다른 시장으로 옮겨갈 때 바로 적용될 수 있거든요.”

GiftPack “한국의 ‘정’ 문화가 우리 플랫폼과 완벽 부합”

AI 기반 개인화 선물 플랫폼 GiftPack의 아이리시 박(Irish Park) 한국지사 매니저는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였다.

“한국 기업들은 직원 이탈률 문제를 급여나 복지로만 해결하려 하지 않아요. 회사가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죠. 바로 ‘정’ 문화예요. 우리 플랫폼이 하는 일이 바로 이걸 자동화하는 거거든요.”

전 세계 1,400개 기업에서 25만 시간 이상을 절약해온 GiftPack은 320만 개 이상의 기프트 카탈로그를 보유하고 220개국 이상으로 배송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HRIS나 CRM 시스템과 연동해서 직원 개인의 취향과 기념일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선물을 자동으로 추천하고 배송까지 해주는 거예요. 기계적이지 않으면서도 확장 가능한 ‘마음 표현’이죠.”

현재 Pre-A 라운드에서 500만 달러를 2,000만 달러 기업가치로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인 GiftPack은 500-1,000명 이상 직원을 둔 한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에 집중하고 있다.

GliaCloud “9,000개 영상 광고가 보여준 한국 시장의 가능성”

AI 영상 제작 솔루션 GliaCloud는 한국에서 이미 구체적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한국의 한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위해 9,000개 이상의 영상 광고를 제작했어요. K-콘텐츠 붐으로 인한 한국의 디지털 콘텐츠 시장이 정말 고도화되어 있더라고요.”

판옌 쿵(Fanyen Kung) 파트너십 매니저는 한국 클라이언트들의 특별함을 발견했다.

“다른 나라 클라이언트들은 영상 편집 툴을 원해요.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영상이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직접 만들 시간은 없어’라고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그래서 기획부터 제작, 납품까지 원스톱으로 해드리는 거예요.”

GliaCloud는 단기적으로 한국 에이전시와의 파트너십을, 중기적으로는 주요 미디어, 광고, 전자상거래 기업과의 협력을 계획하고 있다.

Cosmofii “특수교육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 곳”

특수교육용 AI 솔루션 ‘AI SOLLY’를 개발하는 Cosmofii는 다른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동기로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

“전 세계적으로 특수교육 교사가 부족해요.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은 늘어나는데 말이죠. 한국의 선진 기술 인프라와 높은 혁신 수용성을 보면, 우리 솔루션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AI SOLLY는 생성형 AI와 증거 기반 특수교육 방법론을 결합해 아이들의 소통 능력 향상을 돕는다. 가상 동반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들이 더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Cosmofii는 한국에서 특수교육에 대한 관심 증가와 특수학교 설립 확대 트렌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TWSE “외국 기업들이 국내 기업보다 뛰어난 성과”

대만증권거래소(TWSE)의 캐시 황(Kathy Huang) 매니저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대만 상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현재 저희 거래소에 상장된 외국 기업 88곳의 성과가 국내 기업보다 뛰어나요. 평균 P/E 26에 매출 성장률이 265%거든요.”

대만 자본시장의 특징도 설명했다. “외국 투자자가 시가총액의 40-45%를 보유하고 거래액의 38%를 차지하며, 현지 소매 투자자가 일일 거래량의 50%를 담당해 시장을 매우 유동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기업들에게는 문화적 친근감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대만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대만 투자자들은 한국 문화와 전자산업에 이미 익숙하거든요.”

각자 다른 어려움, 각자 다른 해법

물론 모든 기업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각자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Infinitix는 언어 장벽과 해외 솔루션에 대한 보수적 접근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엔비디아나 구글 같은 유명한 곳은 받아들여도, 어느 정도까지만이더라고요.”

GliaCloud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은 국내 기업을 선호하는 편이고, 이미 다른 큰 기업의 제품을 쓰는 분들은 다른 솔루션을 꺼려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각 기업마다 나름의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TOii Games는 “신뢰를 쌓기 위해 양쪽 모두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으려 한다”며 공동 투자 모델을 제시했고, Infinitix는 “고객의 마음이 열리게 하는 전략”으로 PoC 프로젝트를 통한 단계적 접근을 택했다.

타이베이시가 제시하는 ‘양방향 플랫폼’

타이베이시는 한국 스타트업 유치를 위해 창업 비자, 디지털 노마드 비자, PoC 지원금, 기업 매칭 시스템 등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 TEH 프로그램에는 에이수스(ASUS), 시스텍스(SYSTEX) 등 대만 대표 ICT 기업들이 참여해 선정된 AI 스타트업에 공동 연구개발과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24년에는 고양시 창업기관 GIA와 MOU를 체결해 영화·음악·콘텐츠 기술 분야 협력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5가지 이유, 하나의 가능성

GPU 부족 해결, 정서적 관계 자동화, 게임 문화 교류, 영상 제작 효율화, 특수교육 혁신. 각기 다른 5개 분야의 대만 스타트업들이 한국에서 발견한 기회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에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었다. 한국이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것이다.

9월 ‘스타트스피어 타이베이’에는 한국의 음악, 버추얼 아이돌, AI 음성 합성 분야 기업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10월에는 6개국 스타트업들이 모이는 AI 데모 데이도 열린다.

서울에서 만난 대만 창업가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됐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두 나라가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TOii Games 앨런 유의 마지막 인사가 그 답을 암시했다. “한국은 정말 멋진 나라예요. 저희도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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