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페이월의 역설

뉴스를 지키려던 장벽이 뉴스를 죽이고 있다

2023년 6월 1일, 타임 웹사이트에서 페이월이 사라졌다. 제시카 시블리 CEO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접근은 전 세계적인 필수 과제”라고 선언했다.¹ 뉴스를 지키려던 페이월이 오히려 뉴스를 죽이고 있다는 뼈아픈 자각이었다.

같은 해, 뉴욕타임스는 1,100만 구독자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350만 명에서 정체되어 있었다. 두 언론사 모두 고품질 저널리즘을 추구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뉴스 유료화에서는 품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이월은 언론사를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터넷이 광고 수익을 파괴한 자리에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야 했다. 독자들이 양질의 저널리즘에 직접 돈을 내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뉴스 업계는 새로운 딜레마에 빠졌다. 10년 전에는 ‘무료의 저주’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제는 ‘유료의 저주’에 빠졌다. 무료일 때는 돈을 못 벌었고, 유료가 되니 독자를 잃었다.

부자들만의 게임

뉴스 유료화는 자본 집약적 게임이다. 성공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뉴욕타임스는 번들링 전략으로 승부했다. 뉴스뿐만 아니라 요리, 게임, 스포츠까지 묶어서 팔았다. 디애슬래틱을 인수하고, 워들을 사들이고, 쿠킹 앱을 개발했다. 막대한 투자가 들어갔다. 그 결과 뉴스만 구독하는 사람은 전체의 15%에 불과해졌다. 뉴스 회사가 뉴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반면 자본이 부족한 언론사들은 페이월 경쟁에서 밀려났다. 테크크런치는 2024년 2월 유료 서비스 ‘테크크런치+’를 폐쇄했다. 쿼츠는 페이월을 내리고 로그인월로 후퇴했다. 이들은 페이월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혼란을 반복했다.

페이월은 결국 돈 있는 언론사만 할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수십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곳만이 페이월을 성공시킬 수 있다.

포기했더니 더 벌었다

더포워드는 페이월을 포기했다. 2023년 12월, 121년 역사의 유대인 언론사는 모든 기사를 무료로 풀었다.² 대신 독자들에게 기부를 요청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페이월 철회 후 첫 3개월 동안 독자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했다. 12월에는 103%나 뛰었다.³

같은 시기,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페이월을 유지하며 검색 트래픽이 55% 급감했다. 더포워드는 페이월을 포기하고 수익이 늘었고,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페이월을 유지하며 독자가 줄었다. 이 정반대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같은 시대, 같은 조건에서 정반대 선택이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독자들은 더포워드가 페이월을 없애기를 원했고, 그 대가로 특별한 혜택을 원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독자 조사 결과였다. 사람들은 페이월이 싫었다. 뉴스에 돈을 내는 것은 괜찮지만, 뉴스에 장벽을 치는 것은 싫어했다.

가디언은 영리했다. 웹사이트는 완전 무료로 열어두고, 대신 기사 하단에 ‘에픽’이라는 후원 요청 메시지를 달았다. “당신이 지금까지 읽은 기사 수는 6개입니다. 독립 저널리즘을 지원해주세요.” 개인화된 메시지였다. 이 방식으로 가디언은 독자 수익 1억 파운드를 달성했다.

페이월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뉴스를 지키려고 쳐놓은 장벽이 오히려 독자들을 멀어지게 했다. 장벽을 허물자 독자들이 돌아왔고, 더 많은 돈을 냈다.

AI가 가속화하는 페이월의 죽음

AI 검색이 등장했다. 구글 AI 오버뷰, 챗GPT, 퍼플렉시티가 뉴스 사이트의 트래픽을 빨아들이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의 검색 유입 트래픽은 3년 전 대비 55% 급감했다.⁴ 사람들이 뉴스 사이트를 직접 방문하지 않는다. AI가 요약해주는 정보면 충분하다.

흥미로운 것은 AI가 뉴스 산업에 미치는 이중적 영향이다. AI가 뉴스를 위협한다지만, 동시에 뉴욕타임스는 AI로 광고 클릭률을 32% 높였다. 같은 기술이 어떤 언론사에는 독이고 어떤 언론사에는 약이다. 차이는 AI를 막으려 하느냐, 활용하려 하느냐에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AI가 페이월을 우회한다는 것이다. 퍼플렉시티는 robots.txt 규칙을 무시하고 포브스의 유료 기사를 긁어가 답변에 활용했다.⁵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페이월 기사 10개를 모두 정확하게 식별해 무료로 제공했다. 언론사들이 공들여 쌓은 페이월이 AI 앞에서는 무력하다.

페이월의 기본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는 독자가 뉴스를 읽으려면 언론사 웹사이트를 방문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페이월을 만나고, 결국 구독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AI가 뉴스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출처 링크를 클릭할 이유가 없다.

검색 유입이 줄어들면서 페이월 전환의 기회도 사라지고 있다. 한 번의 클릭으로는 구독이 일어나지 않는다. 최소 10번은 페이월을 만나야 독자가 구독을 결심한다. 그런데 그 10번의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뉴스는 혼자 살 수 없다

뉴욕타임스의 성공 비결은 뉴스를 포기한 것이었다. 성공한 뉴스 회사가 뉴스를 포기하는 역설이다. 2023년 1분기 358만 명이던 뉴스 구독자는 2025년 1분기 179만 명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⁶ 하지만 전체 수익은 늘었다. 요리, 게임, 스포츠를 포함한 번들 상품이 전체 구독자의 50%를 차지했다. 뉴스 회사가 뉴스로 망하고 뉴스가 아닌 것으로 산다는 뜻이다.

페이월을 성공시킨 언론사들을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요리와 게임이 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B2B 서비스가 있고, 이코노미스트는 컨퍼런스 사업이 있다. 모두 페이월 이외의 수익원을 가지고 있다. 페이월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뉴스는 시기에 따라 구독 전환의 부침이 심한 콘텐츠”라고 뉴욕타임스는 인정했다. 트럼프 범프 같은 특수 상황이 아니면 뉴스만으로는 지속적인 구독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쉽스테드도 마찬가지다. ‘풀 틸강’이라는 번들 상품으로 6개 신문, 44개 잡지, 수십 개 팟캐스트를 하나로 묶어 팔았다.⁷ 이 번들이 전체 디지털 구독 수익의 10%를 차지했다. 구독자의 60%가 번들 내에서 3개 이상의 제품을 사용했다.

뉴스는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다. 뉴스만으로는 월 구독료를 받기 어렵다. 요리 레시피, 게임, 팟캐스트, 이벤트 할인 등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뉴스 회사가 뉴스 이외의 것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페이월 너머의 뉴스

페이월의 역설은 명확하다. 뉴스를 지키려던 장벽이 오히려 뉴스를 죽이고 있다. 승자독식 구조는 소수의 거대 언론사만 살아남게 했다. 나머지는 페이월을 포기하거나 다른 수익 모델을 찾아야 했다.

AI 시대는 이 역설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페이월로 막아놓은 정보를 AI가 무단으로 가져가 무료로 제공한다. 독자들은 언론사 웹사이트를 방문하지 않는다. 페이월을 만날 기회조차 사라지고 있다.

해답은 페이월 너머에 있다. 가디언처럼 무료 접근을 보장하면서 독자의 자발적 후원을 받는 방식. 더포워드처럼 페이월을 포기하고 멤버십으로 전환하는 방식. 뉴욕타임스처럼 뉴스를 넘어선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

이 모든 방식의 공통점은 하나다. 페이월 도입 이전에 이미 브랜드 충성도가 높았던 곳들이라는 것이다. 가디언의 독립 저널리즘, 더포워드의 공동체 정신, 뉴욕타임스의 권위. 페이월은 충성도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충성도를 수익으로 바꾸는 도구였다. 충성도 없이 페이월만 올린 언론사들이 실패한 이유다.

페이월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뉴스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장벽이 아니라 연결로, 차단이 아니라 초대로, 독점이 아니라 공유로. 뉴스를 지키는 진짜 방법은 뉴스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풀어주는 것이다.

페이월의 역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해답은 무료와 유료 사이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다. 뉴스의 미래는 독자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는 것에 있다.


참고문헌

  1. 이성규, 「뉴스 유료화의 새로운 시도와 퇴보」, 『2025 2nd WORLD MEDIA TRENDS』, 한국언론진흥재단, 2025, p.20.
  2. 상게서, p.29.
  3. 상게서, p.31.
  4. 상게서, p.35.
  5. 상게서, p.34.
  6. 상게서, p.11.
  7. 상게서, p.13.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댓글

Leave a Comment


관련 기사

스타트업

메타·엔트로픽과 어깨 나란히…트웰브랩스, AWS 베드록 진입

Uncategorized

AI 쇼핑 강화 효과…네이버플러스 스토어, 구매 전환율 2배↑

스타트업

튜닙, AI 캐릭터 간 다자간 대화 가능한 ‘디어메이트 v3.0’ 출시

스타트업

댓글몽, 출시 16개월 만에 소상공인 1만 고객사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