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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 정신 잇는 한중 벤처 협력…스타트업 상하이서 재회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중국 상하이 국제회의중심에서 열린 한·중 벤처스타트업 서밋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의 속도와 규모, 한국의 신뢰와 안정성이 결합된다면 매우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중국 상해국제회의중심(上海国际会议中心)에서 열린 ‘한·중 벤처스타트업 서밋’에서 새로운 한중 협력 모델을 제안했다. 2016년 사드(THAAD) 배치 이후 위축됐던 양국 스타트업 교류가 10년 만에 정부 차원에서 본격 재개된 자리다.

이 대통령은 “과거의 수직적 분업을 넘어 경쟁 속 협력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한중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한중 협력이 ‘한국의 자본과 기술, 중국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중국의 기술 수준이나 자본의 축적량이 대한민국을 따라잡는 것을 넘어서서 추월하는 단계가 됐다.” 이 대통령은 변화한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경쟁적 협력, 협력적 경쟁 관계”를 새로운 한중 협력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시장 시스템은 경쟁을 본질로 하고 그 경쟁 속에서 성장 발전을 이루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경쟁적 요소를 회피할 수도 없고, 또 회피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혁신은 어느 한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고, 독자적인 기술력만으로 완성되지도 않는다.” 이 대통령은 조선 실학자 박제가가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며 동아시아 근대 기술 발전에 기여한 사례를 들며, “한국의 벤처스타트업 생태계가 중국의 거대한 혁신 창업 환경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양국은 더 큰 성장의 해법을 마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중국이 혁신 창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민간의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벤처 30년의 역사를 발판 삼아 국가 창업 시대로 대전환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과거의 자본 투입형 고속 성장 모델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이 대통령은 “창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국가가 함께 부담해 실패가 좌절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자산이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청년과 혁신 인재들이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양국 스타트업, 벤처캐피탈(VC), 대기업 등 벤처 생태계 관계자 약 400여 명이 참석했다.

양국 유니콘이 한 무대에

‘한·중 창업생태계, 연결을 넘어 공동 성장으로’를 주제로 열린 메인 세션에서 양국 대표 스타트업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 대통령도 ‘한·중 벤처스타트업과의 대화’ 세션에 직접 참여해 현장 소통에 나섰다.

뉴로테크 유니콘 브레인코의 한비청 대표와 의료 AI 기업 루닛의 서범석 대표는 양국을 오가며 기술 혁신을 이끌어온 경험을 공유했다. 한비청 대표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활용한 의료·재활 혁신 사례를 소개하며 과학기술 협력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했다.

중국에 진출해 활동 중인 마음AI 최홍석 대표와 시엔에스 안중현 대표는 양국의 기술 역량과 시장 강점을 결합한 협력 가능성을 제시했다. 안중현 대표는 정부 창업 지원 사업을 계기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경험을 공유하며 “청년 창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 검증의 기회”라고 말했다.

중국 신흥 AI 4대 기업 중 하나인 미니맥스의 옌쥔제 대표는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중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속도와 규모를 설명하면서 “한국의 우수한 인재와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초상은행국제(CMBI)의 훠젠쥔 대표는 중국 투자자 관점에서 본 한국 스타트업들의 강점을 설명하고, 글로벌펀드를 통한 한·중 벤처투자 협력 구상을 밝혔다. CMBI는 중국 10대 상업은행인 초상은행의 자회사로, 자산운용과 투자은행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서비스 기관이다.

이 대통령은 “보통 원자재, 생산, 서비스, 교역, 정부 차원의 협력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현장에서 스타트업·벤처 분야 협력 가능성에도 특히 주목하게 됐다”며 “정부는 양국 기업인과 창업가들이 협력하고 공동의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천졔(陈杰) 상하이시 부시장도 “AI, 바이오, 집적회로 등 선도 산업과 미래 제조·미래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과의 협력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 측이 반도체(집적회로) 분야 협력을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KVIC-CMBI, 한중 공동 벤처펀드 체결

이날 ‘한·중 투자 컨퍼런스’에서 한국벤처투자(KVIC)와 CMBI가 글로벌펀드 체결식을 가졌다.

CMBI가 운용사(GP)로 참여하는 이 펀드는 한국 모태펀드가 1,000만 달러를 출자하고, 총 2,500만 달러(약 365억 원) 규모로 조성된다. 펀드는 모태펀드 출자금액 이상을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 가교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한·중 비즈니스 밋업’에서는 양국 스타트업과 투자자 간 실질적인 비즈니스 매칭과 투자 상담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전시관에는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스타트업 10개사가 참여했다. 벤타엑스, 메타디엑스, 밀리어스, 링키스, 그리니쉬, 제니데이, 씨드로닉스, 왈라, 시엔에스, 에버트레져가 중국 투자자와 기업을 대상으로 혁신 기술과 제품을 선보였다.

중국 측에서는 상하이 기반 로봇 스타트업 아지봇(AgiBot)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전시해 주목을 받았다. 아지봇은 CES 2026에서 미국 시장에 공식 진출하며 A2·X2·G2 시리즈 휴머노이드를 선보인 기업으로, 현재까지 5,000대 로봇을 출하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이번 방중의 큰 목표는 한중 양국 간에 약간은 훼손된 협력 관계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거기에 더해서 새로운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늘을 계기로 양국의 혁신 인재들이 서로의 머리를 맞대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10년 만의 재회, 남은 과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중국의 기술 수준이나 자본 축적량이 한국을 추월하는 단계가 됐다”는 솔직한 현실 인식이다. 과거 한중 협력이 ‘한국 기술 + 중국 생산’이라는 수직적 분업 구조였다면, 이제는 그 전제 자체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과제도 있다.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限韓令)으로 롯데,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등 중국 사업 비중이 높았던 한국 기업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정치적 관계가 다시 경색될 경우 사업 환경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리스크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창업 위험을 국가가 함께 부담”하는 정책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실패를 자산화한다는 선언은 매력적이지만, 실제로 재기 지원 시스템, 연대보증 폐지, 파산 후 신용회복 기간 단축 등이 어디까지 제도화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번 서밋에서 몇 가지 구체적인 진전이 있었다. KVIC-CMBI 글로벌펀드(2,500만 달러)라는 투자 채널이 마련됐고, 미니맥스가 한국 인재 확보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명했다. 상하이시 부시장이 미중 기술패권 경쟁 한복판에서 반도체 협력 확대를 직접 언급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연결’에서 ‘공동 성장’으로. 양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실제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 후속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플래텀 중국 연구소장 / 편견 없는 시각으로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현지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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