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어느 인터넷 기업 회의를 참관하면서 적지 않은 문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대표 : 이것 좀 하려고 하는데 하실 수 있죠?
개발자 : 아뇨? 이건 못하겠는데요?
대표 : 하기 싫다는 건가요?
개발자 : 아뇨. 이건 기술적으로 안 되는 거에요.
당시 상명하복이 명확하던 기업에서만 8년 째 근무하고 있던 시절이라 이런 대화 패턴은 낮설고 생소했다. CEO가 업무지시를 내리는데 안 된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직원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니 상하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가 보편적인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물론 이러한 대화는 현재도 중견 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일것이다.
인적규모가 작은 ICT스타트업은 CEO와 팀원의 명함 상 직책 구분은 있을지언정 일에 대한 구분은 모호하다. CEO는 경영이 가장 우선시 되지만 그외 대외홍보, 세무관련 업무를 봐야 할 때도 있고, 개발자는 서비스 개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디자인도 해야하고, 필요하다면 영업을 할 수도 있다. 디자이너는 본연의 업무 외 마케팅 등에 참여할 때도 있다. 다시말해 너나 할 것 없이 시급한 업무에 투입되어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CEO는 재능있는 사람이 하게 마련이지만, CEO와 팀원 간 능력 차이가 크면 좋은 팀구성이 아니다. 스타트업에서 CEO와 팀원은 함께 일하는 동료지, 일을 지시하고 지시 받은 일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팀원은 ‘발칙한’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CEO를 불가침의 능력자로 남겨두어서는 자신의 커리어 패스에도 도움이 안 된다. 어느기업 대표든 완벽한 사람은 없다. 창업 연차가 짧은 스타트업 CEO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수 차례 창업을 통해 노하우를 가진 대표가 아니라면, 당신의 CEO 역시 배워가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보면 얼추 맞다.
하지만 팀원이 명심해야 할 부분은, CEO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해도 그를 만만하게 봐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는 어쨓거나 당신이 선택한 회사의 CEO고, 회사가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가장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팀의 얼굴이다. 그를 무시하는 것은 자기가 속한 조직에 대한 부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그 회사의 대표를 점차 꼰대로 변모시킨다.
물론 쥐죽은 듯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CEO와 팀원, 팀원과 팀원 간 부딪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건강한 조직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감정과 감정이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회사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건전한 충돌이어야만 한다. 팀원은 CEO에게 모자르는 부분, 회사에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자신의 역할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스타트업 팀원이다. 스타트업 팀원은 시키는 일만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인턴이면 충분하다. 스타트업의 팀원은 회사에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스타트업 팀 구조는 수평적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경영진과 팀원 간 대화가 자유롭고 팀원의 의견이 경영에 반영되는 경로가 짧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도 경영자와 팀원 간 암묵적 룰을 둘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고려할 부분은 CEO의 업무지시에 대한 팀원의 피드백이다. 물론 CEO의 말도 안되는 지시나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업무지시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 못할 일을 떠 맡는 것은 업무지시를 내린 사람이나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나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상황에서 팀원이 경영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은 무엇일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패턴이 있겠다.
CEO : 이 것 좀 해줬으면 하는데 하실 수 있나요?
팀원 : 말씀하신 대로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런 대안이 있는데 이런식으로 진행해 보면 어떨까요?’
여기에서 하나 덧붙이자면, 팀원은 CEO가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날그날 치고 들어오는 업무에 매몰되면 몇 수 앞을 보기 힘들다. 회사의 CEO는 눈앞의 업무를 보기보다는 조금 더 멀리 봐야 하는 위치다. 그에게 회사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자는 것이다. CEO는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시 된다. 하지만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팀원들까지 그것을 당연시 해서야 되겠나. 그의 업무를 분담해 주자. 그에게 시간을 주자.
대외에서 인정받는 CEO는 본인의 능력이 최우선 되겠지만, 팀원이 인정하고 도와주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팀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대표치고 대외에서 온전히 인정받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당신 회사의 CEO를 꼰대로 만들것인가? 아니면 멋진 경영인으로 만들것인가? 당신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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