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스타트업 용어사전 #1] 돈을 빌린다는 것의 의미 … 그리고 투자계약서
스타트업 투자유치를 ‘성공’으로 표현하는 것에 다소 거부감이 있다. 스타트업이 확장 혹은 내실화의 동력을 얻는 것은 응원할만한 일이지만 성공이라 볼 근거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등 기업이 단순히 투자자(사) 등으로부터 돈을 많이 빌린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닐것이다. 사업계획에 비추어 상환 계획을 면밀히 짜서 이자 및 원금 상환계획을 짜야 한다. 이자 및 원금의 상환을 지체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 수 있다.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정책자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순수한 자금지원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낮은 이자의 대출방식이다. 순수 자금지원은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치지만 선발되면 갚을 필요가 없는 지원금이다. 낮은 이자의 대출방식은 이자가 낮다고 할지라도 대출 형식이기에 반드시 자금 상환을 해야 하는 빌린 돈이다.
정부가 됐든 민간 벤처캐피탈(VC)가 됐든 일반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면 일정기간 동안은 이자만을 지급하지만 기간이 만료되면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투자계약이다. 어떻게 체결하고 어떤 조항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투자계약은 형태와 법적성질이 천차만별이다. 다만, 돈을 대여해주는 계약의 기본은 이른바 ‘소비대차계약’이다. 소비대차 계약은 소위 ‘돈을 빌려주는 계약’이다. 잘 갚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사업이 잘 되지않아 정해기 기일에 이자나 원금을 주지 못하는 경우 문제가 된다. 이럴경우 민-형사상 책임이 따른다.
민사상으로 제때에 이자를 갚지 못하면 투자자가 이자 지급을 청구할 수 있고, 이 역시 이행하지 못 할 경우 민사상 만기 전에 투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또한 연체행위로 인해 투자자 등에게 손해가 발생하였음을 투자자가 입증한다면 손해배상까지 해야 될 수도 있다(민법 제 551조). 형사상으로 위와 같은 경우 사기죄(형법 제347조 제1항)가 성립될 수 있다. 만약 대여받고 갚지 못 하는 원금 액수가 5억이 넘어가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어 가중 처벌된다. 물론 이자나 원금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사기죄가 되지는 않는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투자계약의 종류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리고 어떤 것을 주의해서 봐야할까?
CB, RCPS, BW … 투자계약의 종류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탈의 투자 형태는 크게 CB(Convertible Bond, 전환사채), RCPS(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 전환상환우선주), BW(Bond with Warrant, 신주인수권부채권) 3가지다. 쉽게 설명하자면, CB는 자금을 대출받는 형태지만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것이고, BW 역시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으로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CB와 BW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CB는 채권자가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기로 하면 채권자에게 확정이자와 함께 만기 시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 빚의 성격이 있다. RCPS는 전환상환우선주를 뜻한다. 과거에 CB는 회사 재무재표에 부채로, RCPS는 자본으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회계기준이 바뀌면서 둘 다 부채로 잡힌다. 즉, 투자를 받는 금액만큼 연간 회계 재무재표에 부채가 생기는 거다.
투자기관 입장에서 봤을 때 언제 CB로 투자하고 언제 RCPS로 투자할까?
회사의 리스크가 높을 때 CB로 투자하고 상대적으로 회사의 리스크가 낮을 때 RCPS로 투자한다. 다만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닌 작은 스타트업의 경우 CB로 투자를 할 조건이 많지 않기에 대부분 RCPS 투자로 진행된다. RCPS는 우선주를 뜻한다. 배당이 우선된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상환권도 있다. 우선권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상환우선주, 전환우선주, 전환상환우선주다. RCPS는 말 그대로 (보통주로)전환할때도 있고 상환할 때도 있는 주식을 말한다. 상환조건(만기), 전환조건, 우선조건(배당) 등 키워드가 있지만, 눈여겨 볼 부분은 투자기관에 의결권도 있다는 거다. 투자기관 입장에서는 가져갈 것 다 가져가는 형태다. 하지만 악질적 형태라고는 할 수 없다. 회사는 자금이 아쉬워서 투자를 받는 것이고, 투자기관은 리스크에 대한 안전장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90년대 벤처버블 시절에 ‘게이트’로 불리우는 대형 악재를 경험해 봤기에 계약서에 이런저런 조건들이 많이 삽입되는 것도 있다. 또 벤처캐피탈 99%는 자사의 자금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다. LP(유한책임투자자)라고 불리우는 제3자로부터 자금을 받아 펀드를 결성해 투자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손해를 보면 VC는 다시 펀드를 모집하기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조항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VC에게 무조건 투자금을 상환해야 하나?
투자 계약서에 조항이 많다는 것은 VC의 자금회수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피투자사는 반드시 투자사에게 투자금을 상환해야 할까? 무조건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무조건 상환해야 하는 경우는 사채다. 법적으로는 이익잉여금(누적된 단기 순이익)의 범위 내에서 상환하게 되어있다. 이게 벤처캐피탈의 장점이다. 사업이 잘 안 되어 회사가 망하면 손실처리하면 끝난다. 다만 일부 계약서 중 상환받아야 될 금액이 모두 충족될 동안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계약이 있다. 피투자사는 그런 조항이 없는지 유의해서 살펴봐야한다.
예외가 있긴 하다. 회사의 경영진이 계약을 위반하는 사례다. 위반을 할 경우 투자사는 일방적으로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연복리 20%대 위약벌이 적용된다. 참고로 복리는 투자 후 3년이 지나면 거의 30%다. 5년이 되면 원금의 50%대다.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상환전환우선주의 배당 역시 할 수도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회사의 결정이다. 하지만 상장 전에 이익금이 많이 쌓여있다면, 투자사가 배당을 하라 압력을 넣을 수 있다. 배당률 역시 정하기 나름이다. 배당율 제로(0)로 하는 것이 베스트지만, 통상적으로 1~2%정도다.
투자계약서에서 눈여겨 볼 조항
회사가 망할 경우를 대비한 투자자 보호조치가 계약서에 반드시 들어간다. 중요한 내용이 많지만, 그중에 눈겨겨 볼 부분은 ‘청산 및 잔여재산 분배에 관한 우선권’이다. 회사가 망할 경우 배분에 대한 내용이다. 투자사는 원금과 이자를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원금의 최소 두 배 이상을 가져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 룰이다. 만약에 5억을 투자했다면 10억 이상을 가져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적 이슈가 많다. 어찌보면 명분성 조항으로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물론 하드웨어 사업과 소프트웨어 사업의 차이는 있다.
계약서에 주식 처분과 관련된 일반적인 조항들 외 보편적이지 않은 조항들이 있을 수 있다. 리픽싱, 콜옵션, 풋옵션, 청산우선권(Liquidation Preference) 등이 그것이다. 이 조항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동의해버리면 나중에 문제가 될 여지가 크다.
특히 M&A요구권 조항은 주의해서 봐야한다. 과거에는 거의 없던 조항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계약서에 들어가 있다. ‘회사가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상장을 하지 못하면 투자자가 M&A를 요구할 경우 무조건 응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이다. 원치않게 회사를 매각하는 경우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사례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종종 발생한다. 해외 VC와 투자금이 들어오는 추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발행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이 어렵다면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나 변리사들에게 자문을 해도 되겠다. 애매한건 그냥 넘어가면 안된다.
투자는 보통 투자필요성의 검토 -> 투자 형태의 결정 -> 투자자 물색 -> 주요 투자 조건 협의-> 계약서 협의 및 확정-> 내부 절차 이행/ 계약체결,이행 등 절차로 이뤄진다.
- 필요성의 검토 : 필요자금선정, 내부 조달 가능 여부 검토,지분 희석화 등 수익 구조 검토
- 투자 형태의 결정 : 자본 관련 투자(우선주 발행), 부채 관련 투자(기보,은행에서 빌리고 하는 등)
- 투자자 물색 : 외부에서 IR 많이 하기
- 주요 투자 조건 협의 : 텀시트(Termsheet)를 통한 주요조건협의. 이때 텀시트엔 회사 가치는 얼마인지, 투자하면 얼마나 받는지, 우선주인지 보통주인지 등등이 간단하게 명시돼있다.
- 계약서 협의 및 확정 : 계약서를 근거로 협의를 하는 과정.
투자계약 상의 주요 조항은 당사자, 우선 주식, 진출 및 보장, 확약, 주식거래에 관한사항, 투자자의 경영 감시권, 계약의 위반 및 종료, 기타 조항 등이 들어간다.
- 당사자 : 투자자,피투자회사,이해관계인
- 우선주식 : 우선주식의 내용,우선주식의 발행 및 인수, 선행조건
- 진술 및 보장 : 설립 및 존속,법령 준수,재무제표 및 장부 기타 자료,지식재산권,중대한 부정적 변경의 부존재,분쟁,실사 자료의 정확성, 피투자회사의 진술 및 보장,이해관계인의 진술 및 보장
- 확약 : 피투자회사의 확약,이해관계인의 확약
- 주식 거래에 관한 사항 : 이해관계인의 주식 처분 금지,투자자의 우선매수권,투자자의 공동매도권,투자자의 매도청구권
- 투자자의 경영 감시권 : 투자금의 용도 및 제한,이해관계인의 경업금지,퇴사 금지,투자자의 협의권,투자자의 동의권,보고 및 자료제출
- 계약의 위반 및 종료 : 계약의 해제.해지,손해배상,위약벌
- 기타 조항
VC는 천사도 악당도 아니다.
계약서만 놓고보면 벤처캐피탈이 악당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VC도 자신의 돈으로 투자를 한다면 계약서를 이렇게 쓰진 않을거다. VC는 펀드결성(LP)에서 성과를 못 내면 다음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안전장치를 계약서에 다수 넣는 것이다. 투자기관마다 표준계약서가 다 다르지만, 내용은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다만 해외 투자사의 계약서가 조금 더 엄격한 경우가 많다.
국내에 벤처캐피탈이라 불리우는 곳이 300여 곳이 넘는다. 그중에 벤처투자에 철학이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투자자를 만나는게 피투자사의 복이라면 복이다. 그리고 그런 투자자를 찾는 것도 스타트업 창업가가 해야할 일 중에 하나다.
투자는 언제고 있을 결말을 위해 기업이 받는 도움이며, 이는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하는 채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