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게으름과 두려움 부추기는 게 사업가가 할 일은 아니다.
홍용남 대표에겐 어느 날, 포도막염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건 13살짜리 아이가 세상에서 처음 겪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였다. 다행히 더 늦기 전에 치료를 받아 영구 실명은 면했다.
그의 삶은 유독 극단을 오갔다. 약한 몸으로 태어난 데 반해 성격은 강해 모든 선생님이 꺼리는 문제아였다. 그러나 그저 건강하게 자라달라고만 하던 부모님이 마음에 쓰이기 시작할 때부터는 생활 습관을 180도 바꿔 공부만 했다. 실업계고등학교 내에서도 밑바닥을 치던 성적이 수능 2등급까지 치솟았으니, 그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학생이었다.
그가 남들 눈에는 겁 없이, 친구들 눈에는 거침없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두려울 게 없어서였다. ‘빛이 없는 세상’보다 더한 고통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 일도 포기할 줄 몰랐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그가 가진 강력한 무기는 ‘포기하지 않는 것’ 하나였다.
사업가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블로그에는 세상만사를 고민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그의 글에 감응했고, 필자 또한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는 그의 감칠맛 나는 글을 읽다가 문득 그 너머에 더 많은 이야기보따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을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나는 책상을 따로 빼서 선생님 옆에 앉아야 했던 아이였다. 수업시간에 혼자 그림 그리고 책 보고 놀았다.
집도 가난한데, 공부도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내 인생은 망했구나 싶었다. 부모님께 죄송했다. 고등학교 1학년 3월 모의고사를 본 이후로 공부를 미친 듯이 하기 시작했다. 해보니 공부가 재미있었다. 한편으로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이 갑자기 귀신에 들린 듯 밥 먹고 공부만 해서 무서웠다고 한다.
대학교에 가서는 그냥 논 게 아니라 미친 듯이 놀았다. 고등학교 때 공부만 했으니 이번에는 유흥의 극단까지 가보고 싶었다. 군대에 가서는 다시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버트런드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 철학자들의 책을 주로 읽었고, 뇌과학과 심리과학, 사회공학 책까지 포함해 200여 권을 읽었다.
극단을 경험해본 후에야 ‘중도’가 어느 지점인지,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선이 어느 정도의 선인지 알 수 있었다. 그 결과, 사업이 하고 싶어졌다.
왜 사업이 하고 싶어졌나.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평생의 업을 사업으로 정했다. 업(業)이라는 건 살아가는 이유이고, 창업이란 살아가는 이유를 창조해낸 건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딘가에 소속된다면,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걸리는 속도가 느릴 것 같았다. 실패할지언정 사업을 통해 내가 원하는 세상을 좀 더 빠르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사업을 해서였다. 나도 그처럼 그런 위치, 지식, 지혜를 갖춰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이 아니면 내 삶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강렬하게 살다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심오하게 사업에 접근하는 거 아닌가.
나는 이상한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생각과 상상을 많이 했다. 가끔 빈혈이 오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라는 존재의 낯섦. 그때부터 궁금한 거다. ‘나는 뭐지?’, ‘나는 그냥 껍데기일까?’, ‘나는 에너지일까?’, ‘인간이란 뭐지?’, ‘죽음이란 뭐지?’
나라는 인간이 태어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유전적인, 카르마적인 설계에 따라 인류에 공헌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 자신이 잘난 건 아니지만, 인류의 괴로움을 없애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걸 고민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인류에 기여하는 게 무엇이냐는 것.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는 인류에 대한 고민이 있고, 내 방향과 어긋나는 사업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방향과 어긋나는 사업이란.
나는 사람들의 게으름을 해결해주는 사업을 싫어한다. 게으름을 해결해줄수록 사람들은 귀찮아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떠먹여 주는 게 다가 아니다.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무한정 많다. 다만 니즈만능주의나 고객지상주의로 인해 인류에게 맞지 않는 걸 제공하면 전체가 위험해진다. 어느 벤처캐피탈(VC)이 “사람들의 게으름을 공략하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슬펐다. 사업가는 그걸 해결해줌으로써 돈을 벌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고객은 자기만 알고 게을러진다.
고객이 정답이라는 말은 인간이 정답이라는 말과 같다. 인간은 어리석으며 원하는 걸 충족시키고자 하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정답을 모른다. 가슴 깊이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존재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에게 계속 햄버거를 사주면 성인병에 걸려 일찍 죽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치이다. 로마를 망하게 한 것도 사람들의 니즈를 잘 충족시켜주던 콜로세움 때문이었다. 만약 소수의 계몽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사업 기회로 이용한다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는 아이에게 햄버거를 계속 사주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고객이라는 인간을 사랑한다면, 그들이 해달라고 졸라도 해주기 싫은 것들이 보이게 돼 있다.
자본주의는 이대로 가다가는 폭발할 것 같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고, 인구 절벽이 오고 있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돈을 절댓값으로 보지만, 부자는 투자의 개념으로 본다. “1억을 벌었다.”가 아니라 “10% 수익을 올렸다.”고 말한다. 부자는 기존의 부를 갖고 투자하여 더 큰 부를 더 빠르게 축적한다. 이런 현상은 부자가 악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이다.
지금 하는 사업은.
‘비캔버스(BeeCanvas)‘라는 화이트보드 기반의 협업 도구를 만들었다. 비캔버스를 활용해 파일, 링크, 유튜브 등에 흩어진 다양한 정보를 한 공간에 넣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생각을 자유롭게 배치함으로써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 생각해낼 수 있도록 도우며, 사람들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낀다.
브런치 작가 활동도 하고 있다.
사업을 하면서 실패의 공포는 내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내겐 ‘자본주의가 폭발했을 때 서로 미워하는 사회가 오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있다. 인류가 처한 문제는 엄청난데, 내가 사업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건 상대적으로 너무 태평한 것이다.
그런 마음에, 인류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 작가 활동도 하는 것이다. 나는 “입 다물라.”는 말이 제일 싫다. 이 세상에 아무도 ‘깝’ 안 치면 인류는 발전할 수 없다. 전문가만 글을 쓸 수 있다는 분위기, 생각을 공유하면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고쳐져야 한다.
뭐라도 하는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있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각을 제시하는데, 전문적인 배경이 없으면 조용히 하라는 건 잘못된 문화라고 생각한다. 난 앞으로도 열심히 글 쓸 거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사업가는 어려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똑똑한 사람은 어려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불편함을 해결해주면 돈 줄 거에요?”라고 말하는 게 사업가의 소명이 아니다.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걸어야 한다.
인류에게 닥친 문제를 푸는 건 군인도, 정치인도, 경제학자도 아니다. 이제는 사업가이다. 궁극적으로 시대정신을 불어넣고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오바마보다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이 더 컸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는 게 있었다. 그걸 ‘결사’라고 한다. 인류에 대한 사랑이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이든 말이다. 우리 팀은 비전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가 같아 뭉쳤다. 결사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원문 : [우리지금만나 12] “인간의 게으름과 두려움 부추기는 게 사업가가 할 일은 아니죠.”
안경은 앱센터 외부필진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즐깁니다. 글로 정리해 사람들과 공유할 때 신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