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로의 물을 구입하려면 1.25유로를 내야 한다고요?
독일에서 물과 음료수를 구입할 때는 명시 되어 있는 가격보다 0.25유로를 더 지불해야 한다. 가격을 잘못 고시하고 있는 것일까? 정답은 “Nein(독일어로 No)”이다. 이런 가격 차이는 독일의 공병 보증금제도 ‘판트(Pfand)’ 때문에 생긴다. 2015년에 OECD에서 발표한 세계 자료에 따르면, 독일이 재활용률 1위(65%, 2위 한국 59%) 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판트 덕분이다. 세계 녹색기업 탐방조사 프로젝트 GET은 직접 판트를 체험하고 조사해보았다.
판트는 음료를 판매할 때 페트병과 유리병 보증금을 부과하여 판매하고, 병을 돌려주면 보증금을 다시 돌려주는 제도로 우리나라의 소주병, 맥주병 보증금 제도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제도는 네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는 소비자 가격의 보증금 포함 여부이다. 우리나라는 소주, 맥주의 소비자 가격에 공병 보증금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독일은 보증금을 제외한 가격을 고지한 후 판트 보증금 0.25유로가 더 추가됨을 나누어 알려준다. 전자의 경우 보증금이 포함된 가격이 음료의 가격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보증금의 존재감이 미미한 반면에 후자는 음료의 가격과 보증금을 나누어 고지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공병에 추가적인 보증금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다. 이는 분리수거의 유인책이 되는 보증금 제도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둘 째, 두 나라는 보증금 제도의 적용 대상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소주병과 맥주병 두 종류만 보증금을 돌려 받을 수 있지만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페트병과 유리병, 그리고 캔이 제도의 대상이다. 하지만 와인병과 판트 로고가 그려져 있지 않은 몇몇의 페트병, 유리병들은 예외로 이들은 구매 시 보증금을 내지 않고 또한 돌려 받을 수도 없다. 독일에서 보다 넓게 제도를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가격에서 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우리나라에서 편의점 기준 1660원의 소주를 구매한 후 공병을 돌려주면 100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즉, 1560원의 음료 가격에 100원의 보증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음료의 가격과 상관 없이 페트병 0.25유로, 유리병 0.08유로(병의 재활용 여부, 크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러하다.)를 돌려받을 수 있다. 소비자 물가가 저렴한 독일의 특성상 음료들이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0.25유로는 음료 소비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0.5유로짜리 물을 구매하면 보증금은 무려 음료 가격의 50%가 된다. 이는 독일의 높은 판트 이용률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판매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차치하고 그 금액만 놓고 보더라도 매우 큰 유인이 된다. 1개 재활용하는데 약 300원은 돌려받게 되는 데, 이는 한국의 100원보다는 훨씬 높은 가격이다. 이렇게 빈 병, 캔을 몇 개 재활용하면 금새 천원 단위의 돈이 쌓이게 되어 다른 식품이나 생활품을 살 수 있다.
마지막은 공병을 수거하는 방법의 차이이다. 편의점이 없는 독일은 SSM(Super Super Market)은 아니지만 동네 슈퍼도 아닌 중간 규모의 마트가 대중적이다. 이런 마트의 모든 매장에는 공병 수거 기계가 존재한다. 공병 수거 기계에 판트로고가 그려진 공병을 넣으면 기계가 자동으로 스캔하여 기계의 화면에 넣은 페트병, 유리병의 수, 그리고 받을 수 있는 돈을 알려준다. 가져온 모든 공병을 다 넣었다면 버튼을 누르면 된다. 영수증처럼 생긴 금액이 적힌 종이가 인쇄되고 물건 구매 시 종이를 제시하면 그만큼의 비용을 할인해준다. 물론 현금으로 직접 받을 수도 있다. 공병 수거 기계는 유리병은 차곡차곡 쌓아놓고 페트병은 수거 즉시 압축한다. 기계를 이용하여 공병을 수거하는 방법은 우리나라의 수거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접근성이 좋지만, 병에 그려져 있는 로고나 병의 형태가 훼손되었을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고 네모난 페트병은 스캔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이런 정책 덕분에 독일에는 특이한 광경들이 펼쳐진다. 주말 아침에 판트 기계 앞에 줄 서 있는 많은 사람들, 거의 다 마신 페트병을 들고 다니는 관광객들에게 “너 이거 다 마셨으면 나 줄래?”라고 물어보는 홈리스, 커다란 쇼핑카트에 페트병과 유리병을 가득 담아 마트로 향하는 집시들은 판트를 실행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이다. 반면에 길거리에 페트병이 나뒹굴고 있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다. 이런 작은 차이들은 판트가 독일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판트는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여러 유럽 국가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는 국가적 차원의 재활용 보증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번 소개한 녹색기업 Lemon Tri가 판트 시스템을 활용하여 사업화해서 분리수거 솔루션을 제공하고, 분리수거율 증진에 힘쓰고 있다. 아직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판트를 체험해볼 수 있다. 경기도는 스타트업 수퍼빈과 협력하여 페트병과 유리병을 수거하는 자판기 “네프론”을 설치했다. 최근 몇몇 대형마트 지점에 도입된 공병 수거 기계들을 통해서도 독일의 판트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는 독일 여행을 하며 판트가 주는 재미와 수익이 쏠쏠하여 물을 다 마신 공병을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고 다니곤 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이런 정책이 도입된다면 좋겠다!”라며 부러워했다. 실제로 병과 캔 4개 정도 재활용했을 뿐인데 우유 2L를 사 마셨을 뿐만 아니라, 나중엔 모아서 판트한 돈으로 식당도 갔다.
하지만 에디터가 만난 한 독일의 Zero Waster는 “보증금이라는 인센티브가 미미한데도 분리수거를 잘 하는 한국이 더욱 좋은 분리수거 문화를 가진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터는 여전히 공병 수거 기계가 대중화가 한국의 분리수거 효율성을 더 높여줄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어쩌면 독일을 넘어 OECD 1위의 재활용 국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글 : Project GET(Green Enterprise Travel) / 일상을 지키고 만드는 기업, 녹색기업을 만들어나가는 패기넘치는 청년들입니다. 300일 동안 세계를 돌며 수많은 녹색기업들을 직접 탐방하며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일상을 만들고 있는 기업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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