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미디어: 프리젠테이션 #2] 파워포인트는 죄가 없고 프레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일반 기업에서는 여전히 파워포인트가 곧 프리젠테이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있는 반면,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프리젠테이션에서 소프트웨어의 종류를 막론하고 슬라이드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트렌드인 듯하다. 실제로 필자는 작년에, 어느 실리콘밸리 클라이언트 본사에서 하루종일 계속된 홍보 담당자 회의에 참석했었는데 모든 순서가 슬라이드 한 장 없이 진행되었다. 주최측이 슬라이드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각국 홍보담당인 참석자들에게도 ‘발표할 것을 생각해 오되, 절대 슬라이드로 만들어오지 마라. 띄워 주지 않을테니까!’ 이런 주문까지 했었다.
그러나, 청중을 고문하는 빽빽하고 지루한 슬라이드 폭탄만 아니라면, 이미지와 텍스트를 적절히 사용한 최소 분량의 슬라이드는 프리젠테이션 보조도구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Death by PowerPoint‘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최근 미움을 받고 있는 파워포인트는 사실 아무 죄가 없으며, 혜성과 같이 등장해 프리젠테이션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슬라이드의 대안으로 떠오른 PREZI 또한, 그 신기하고 재미있는 ZUI (Zooming User Interface)에 오히려 울렁증을 호소하는 청중도 적지 않은데, 이 또한 프레지의 죄는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말해 보면, 나쁜 프리젠테이션 소프트웨어는 없다. 나쁜 프리젠터가 있을 뿐.
효과적인 슬라이드를 제작하는데 있어 첫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프리젠테이션 = 슬라이드’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슬라이드 혹은 어떤 프리젠테이션 소프트웨어나 비주얼 툴도 모두 보조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염두에 두고 전체 프리젠테이션 기획의 일부로서 다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중요한 것은 프리젠테이션 전체이지 슬라이드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프리젠테이션 전체를 압도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인 보조도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극도의 세심함이 필요하다. 오늘은 파워포인트나 키노트와 같은 슬라이드형 프리젠테이션에 촛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자. (프레지에 대해서는 이 연재의 마지막 편에서 좀 더 할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Death by PowerPoint와 Slideument를 피하려면
지루함으로 청중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슬라이드가 속출하는 이유는, 제안서나 보고서를 파워포인트로 만들고 이를 그대로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로 사용하는 관행 때문이다. 국내 기업에서는 만연한 일이고 영어권에서도 빈번한 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는 흔히 slideument라고 표현되는데, 프리젠테이션 전문가 Garr Reynolds가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Presentation Zen이라는 책의 저자이자 같은 이름의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는 레이놀즈는, 강렬하고 세련된 이미지 하나와 몇 단어의 텍스트만을 올린 슬라이드를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Zen style 프리젠테이션을 대세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비즈니스 프리젠테이션의 현실에서 다소 극단적인 면이 있다. 그럼 여기서 잠깐, 동일한 내용을 담은 실제 슬라이드 몇 장을 들여다보며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 보자.
우선 Slide Mistake A 를 보면 언젠가 들을 기회가 있었던 어느 외국인 임원의 무슨 얘긴지 모를 프리젠테이션이 아련히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영어권의 서투른 프리젠터가 자주 사용하는 스타일로서, 생각나는 것을 bullet point로 죽 적어 놓은 이런 슬라이드는 그대로 프리젠터의 대본이 되며, 청중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반면, Slide Mistake B는 텍스트만 영어일 뿐, 스타일이 우리 나라 관공서의 흔한 슬라이드 형식이다. 관공서 슬라이드는 표를 유난히 선호하며, 텍스트 만으로는 성의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에 의미없는 비주얼 효과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데, 오히려 더 지루해 보이고 메시지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고쳐보면 좋을까?
이번엔 해결책이자, 절충안인 Slide Makeover (Solution) 편을 보자. 세 가지 포인트를 우선 시각적인 thumbnail로 정리하고 한 두 단어로만 구성된 텍스트를 키워드로 매치해서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앞에서 소개한 Garr Reynolds같은 전문가나 Guy Kawasaki가 본다면, 각 키워드만으로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위 메시지로 들어간 bullet point들을 못마땅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예술로서의 프리젠테이션이 아니라 현실적인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스피치가 매우 유창한 발표자라면 하위 메시지를 생략한 슬라이드를 쓰는 것이 더 좋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실에서나, 혹은 발표자의 설명을 들을 수 없는 SlideShare에 올리는 자료라면 이 정도로 약간의 부연 설명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키워드는 확실히 청중의 눈에 들어오도록 볼드로 크게 처리하고 하위 메시지는 선택적으로 읽을 것을 감안하여 작게 처리해서 ‘강약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절충안은 어디까지나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로 기능하는 범위 내에서이며, 보고서나 제안서같은 문서와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SlideShare에 올리기 위한 자료라 할지라도 virtual presentation의 차원으로 생각해야 하며, Word나 Pages로 작성해서 PDF로 공유하는 것이 더 적합한 문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슬라이드의 미학: 스타일과 디자인에 신경쓰라
훌륭한 슬라이드 디자인은 단지 눈이 즐거워서 좋은 게 아니라 아이디어의 구조와 흐름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장치로서 필수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특별히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에 대한 스타일 가이드라인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슬라이드 디자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일례로, 트위터의 프리젠테이션 스타일 가이드는,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프리젠테이션 소프트웨어로서 애플 키노트를 중심으로 설명이 되어 있는데, 폰트와 색조 지정은 기본이고, 그라데이션을 사용하지 말 것과 슬라이드 장이 바뀔 때 지나치게 현란한 효과 사용을 자제하라는 내용도 있다. 전반적으로, 엄격하리만치 미니멀리즘적인 슬라이드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트위터라는 기업의 정체성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간결함’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함의 미학’이 생명인 일반 프리젠테이션의 경우에도 충분히 유효한 지침들이라 하겠다.
그런데, 요즈음은 모두가 미덕으로 생각하는 단순함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이는 프리젠터의 두 가지 욕심에서 기인하는데, 하나는 전편에서도 다루었듯이 정보를 잔뜩 넣으려는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시각적 효과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미지와 효과를 과도하게 사용하려는 욕심이다. 슬라이드에서 모든 시각적 요소는 프리젠터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이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슬라이드 상의 이미지 선택 또한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는 메시지와 연관성이 높고 이해를 돕는 것이어야 하겠지만, 때로는 충격 요법으로 메시지와 정반대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수도 있다. (앞의 Slide Makeover에서 BE HUMAN이라는 키워드에 로봇 이미지를 쓴 것처럼) 다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이미지나 너무 상투적이면서 조잡한 클립아트 이미지를 쓰는 것 (제휴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어디서나 쓰이는 악수하는 클립아트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 등)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심지어 stock image를 절대 쓰지 말고,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이나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이미지를 사용해야 한다고까지 말하는데, 자신의 회사 및 제품, 서비스를 처음 선보이는 스타트업이라면 프리젠테이션 자체도 참신성이 중요하므로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이다. 다만, 슬라이드를 만들기 위해 매번 사진을 찍으러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일반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인터넷에 있는 이미지도 활용 가능하나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안전성이 100%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Creative Commons Search 사이트에 리스트업되어 있는 웹페이지들을 통해서 이미지 검색을 하면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는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요즘처럼 스마트 기기가 발달되어 있는 시대에는 평소에 주제별로 몇몇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가 (이를테면, 회의 장면 등은 여러분의 회사에서도 찍어 둘 수 있다.)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하는 것도 신선한 느낌의 슬라이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겠다.
또한, 텍스트는 메시지를 언어적으로 전달하며 이미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존재하지만, ‘서식’이라는 옷을 입는 순간부터 슬라이드 비주얼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서 수준높은 비주얼의 슬라이드가 완성된다.
슬라이드 작성시 이것만은 잊지 말자
그밖에도 슬라이드에 대해 못다한 말이 많지만, 마지막으로 독자님들이 기억하셨으면 하는 사항 두 가지만 짚어보고 오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 슬라이드는 프리젠터의 프롬프터가 아니다.
슬라이드는 당신이 하는 이야기에 대해 청중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해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당신의 대본이어서는 안된다. 즉, 프리젠터의 스크립트는 슬라이드 위에 있어서는 안 되며, 그래서 파워포인트나 키노트에 발표자 메모 기능이 따로 있는 것임을 잊지 말자.
- 영어 프리젠테이션의 경우 슬라이드 텍스트를 국문으로 먼저 쓰고 번역하지 말자
정부 부처에서 즐겨 쓰는 ‘신성장동력’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고자 진땀을 흘려 본 사람이라면 이 당부의 의미를 알 것이다. 우리가 비즈니스 프리젠테이션에서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은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 영어에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이를 억지로 번역해 놓으면 매우 어색한 텍스트가 되고 만다. 힘들더라도 처음부터 영어로 슬라이드 텍스트와 스크립트를 작성하자. Plain English면 된다. 원어민이 만들었다 할지라도, 아무도 이해 못할 업계 용어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슬라이드라면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슬라이드에 올릴 텍스트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앞에서 여러번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스피치의 문제는 별개이지만 말이다. 그럼 다음주에는 정성들여 기획하고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을 무대에 올릴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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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미디어: 프리젠테이션] 연재주제
-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은 청중의 스마트폰보다 흥미로운가?
- 파워포인트는 죄가 없고 프레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 프리젠테이션 그 결정적 순간
- PowerPoint, Keynote, Prezi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