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6] 스타트업이 밀레니얼과 일하는 법 : 시(詩)팔이를 떠올리며
지난 글(‘방시혁 대표님께 드리는 글 :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 답하며’)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아,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들과 해외 유명 인사들의 대학 졸업식 축사를 쭉 둘러보게 됐습니다. 그들의 축사는 이미 전 세계 30여개국 언어로 번역돼 유투브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더군요.
축사 성공의 비밀 : 유머
저의 관심은 그 축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이었습니다. 무엇이 이들의 축사를 특별하게 만드는지 궁금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명성 때문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억 단위를 넘어가는 동영상 조회수는 반복 재생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자꾸 돌려보게 만든 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던 중 미세하지만 결정적일 수 있는 단초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머’였습니다. 그들의 축사는 도입부에 반드시 유머를 담고 있더군요. 청중을 단숨에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경쾌한 유머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커버그의 부드러운 유머
“학장님, 이사진, 교수진, 동문들, 친지들과 자랑스러운 부모님들, 관리위원회(웃음), 그리고 세계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는 졸업생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2017년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 中)
저커버그는 도입부에서 관리위원회(or 행정위원회)를 불쑥 언급합니다. 자신의 퇴학 여부를 최종 결정했던 곳이죠. 졸업식 축사 첫 마디에 슬쩍 자신의 자퇴 이야기를 얹은 것입니다. 장대비가 쏟아진 당일, 하버드 야외 졸업식장은 그렇게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커버그의 자연스런 유머가 베풀어 놓은 진동 때문에 비를 긋는 우산들까지 형형색색 춤을 추게 된 것이죠. 그는 이렇게 첫 인사를 맺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러분께서는 제가 못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제가 이 연설을 끝마친다면, 제가 하버드에서 뭔가를 제대로 끝낸 첫 번째 일이 될 겁니다(웃음). 2017년도 졸업생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저커버그는 이날 대학을 중퇴한 지 13년 만에 하버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2년에 하버드에 입학한 그는 2004년 5월 자퇴했습니다. 때문에 저커버그의 이 말은 우선 하버드에 입학했음에도 공부로 이룬 건 그 무엇도 없었다는 겸양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축사 초반 청중의 긴장을 한껏 누그러뜨리는 부드러운 유머로도 작용했습니다. 그의 뒤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식장을 내려다보던 졸업식 내빈들의 의자도 좌우로 흔들거리기 시작했고요.
잡스의 무뚝뚝한 유머
자신의 즐거운 진통(?)을 소재로 청중을 사로잡은 건 저커버그 뿐만이 아닙니다. 애플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 역시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 도입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세계 최고 대학에서 여러분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은 제게 큰 영광입니다. (Pause) 사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입니다(웃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잡스는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중퇴했습니다. 그 후 청강을 하며 대학 주변에 머물다가 1년 반 후에는 완전히 대학을 떠났죠.
연설 초반, 웃음기 하나 없이 단상에 오른 잡스가 대략 10% 정도 웃음기를 충전하고 내놓은 이 한마디에 스탠포드의 표정은 그제야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잡스는 바로 본론으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잡스의 연설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건 내용의 탁월함 때문이었겠지만, 그 이륙을 도운 건 유머 덕분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툴 가완디의 블랙 유머
외과의사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로도 유명한 아툴 가완디는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졸업식 축사 첫 마디를 이렇게 장식합니다.
“칼텍이 제 역할을 잘 했다면–‘물론 그렇겠죠?’(웃음)–여러분은 이제 모두 과학자입니다.”
이날 축사의 제목은 ‘과학에 대한 불신에 맞서서’였습니다. 그는 미신과 우상 숭배가 여전히 넓게 퍼져있는 미국 사회에 경적을 울리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그 미신을 제거하는 데 대학조차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였기 때문에 그는 시작부터 블랙 유머를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경쾌하게 압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죠.
해외 대학 졸업식 축사를 보면 도입부엔 항상 이렇듯, 유머가 존재합니다. 청중의 마음을 단번에 가져오는 묘기이자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요약하는 비기로 기능하는 것이죠.
한국 사회의 진지함, 혹은 느끼함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졸업식과 각종 기업 행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저의 경험을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해보죠. 언론계 및 스타트업계를 종합해 말씀드려보건대, 두 업계가 주도하는 행사 첫머리에서 제가 웃음기를 안고 연사에 주목했던 적은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대중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언론 주최 행사나, 창의력으로 똘똘 뭉쳐 주류에 균열을 내겠다는 포부로 창업한 스타트업이나, 행사 첫 표정은 모두 매한가지였습니다. 다들 어찌나 진지하신지, 비장미마저 느껴질 정도여서,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그 풍경을 스케치해볼까요. 대부분 첫 마디는 “존경하는~”으로 시작합니다. 얼마나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은지, 그렇게 시작된 내빈 소개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츰 청중들의 눈꺼풀을 무겁게 만듭니다. 당대의 과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혜안을 기대하고 자리한 청중들에게 이는 도통 관심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이어 무대에 차례로 등장하는 연사들은 대부분 ‘당위’와 ‘근거가 부족해보이는 희망’들로 가득한 무지개색 언어로 연설을 맺고는,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뿌듯한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옵니다.
연사들의 이같은 열정과는 반대로, 청중들은 마치 나라잃은 사람처럼 다시 눈을 감습니다. 유명 인사들의 말을 전하는 기자들의 기사 역시 하나같이 천편일률로 변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훌륭한 메시지를 내놓는다 해도, 그 내용을 담는 그릇이 유머를 담을 만큼 넉넉하지 않다면, 우리는 다시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신년기획 : 유머!
올해 유력 신문사 6곳(경향·동아·조선·중앙·한겨레·한국)의 ‘신년기획’을 검토하는 이 자리에서 갑자기 ‘유머’를 이야기한 건, 최근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유머’를 화두로 각각 대형 인터뷰(“타인과 나누는 웃음엔 다른 세계 상상하는 힘 있어”)와 커버스토리(‘유머니즘’ 건강한 웃음 = 살아가게 하는 힘)를 게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획이 이즈음에 크게 실린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재미없는 사회’라는 것을 방증하는 일일 것입니다. 와중에, ‘90년생이 온다’는 말이 무성하고 몇 해 뒤엔 2000년생들과 일하는 시대가 곧 다가온다는데, 그들과 더불어 최전선에서 살아남아야할 스타트업 경영진들은 여기에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으신지 자연스레 궁금해졌습니다.
휴머니즘을 끌어안은 ‘유머니즘’
사실 이들 매체가 ‘유머’를 소재로 한 기사를 내놓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 가장 글 잘 쓰는 사회학자 김찬호(성공회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출간한 <유머니즘>(부제 : 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문학과 지성사, 2018)의 여파 때문입니다. 유머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부족한 실정에서 김 교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비교 분석하며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생활 세계는 사뭇 건조하고 때론 삭막하다. 여기에는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가난과 전쟁. (중략) 그렇게 권위주의와 서열 의식이 자리 잡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대화에서 유머가 조미료에 머물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죠. 당신과 나 사이에 유머가 작동하는가 여부가 관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더불어 “유머는 스킬이 아니다.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면서 의미의 변주를 즐기는 정신이다”면서 “이를 위해선 주어진 상황을 낯설게 바라보는 관점과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그 움직임을 포착하는 직관도 필요하다. 유머러스한 발상과 표현은 사물을 참신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열어준다”고 말합니다.
돌아가는 듯하지만, 가장 빨리 도착해있는 것이 유머라는 뜻일 것입니다. 삶의 여백이 없으면 유머도 숨을 쉴 수가 없겠죠. 가장 펄떡거리며 생동해야할 스타트업 행사들이 ‘한없이 낮은 숨결’(이인성)로 가라앉아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네 스타트업들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바쁘고 때론 형식적입니다.
하상욱을 말한다는 것
최근 친분이 있는 한 문학평론가와 술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하상욱 시인과 그의 작품들을 이야기 소재로 올려 봤습니다. SNS 시인으로 불리며, 자기 자신을 ‘시(詩)팔이’로 소개하는 유쾌한 작가 하상욱의 작품들에 대한 그의 코멘트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SNS에서만 대접받는 풍토가 영 못마땅하게 여겨지던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나도 그의 시를 사실 즐겨 읽는다”면서도 “본격 비평 주제로 삼기엔 그래도 좀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상욱 시집 <시 읽는 밤 : 시 밤>과 <서울 시>는 전통 시작법으로만 평가한다면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새 시대에는 새 문법이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문학도 진화해가는 것일 텐데, 그에 어울리는 비평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이 시대착오로 보였습니다. 문단 역시 여전히 ‘본격 문학만이 비평 대상이라는 도식에 사로잡혀 있구나!’ 하는 생각에 공연히 씁쓸해졌습니다.
시대를 꿰뚫는 노회찬의 본질 유머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노회찬 의원은 유머로 삶의 아이러니를 품어낸 드문 정치인이었습니다.(그의 정치적 입장은 여기서 별개로 합시다) 김 교수도 노 의원의 유머 감각을 높이 평가하면서 책에 인용했더군요. 노 의원은 기득권의 저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서 판이 새까맣게 됐어요. 그러니 이제 판을 갈아야합니다.”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처 설치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촌평했습니다. “동네 파출소 생긴다고 하니까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스타트업이 밀레니얼과 사는 법
그러니까, 도대체가 그것이 미학적 아방가르드이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갖춘 주장이든, 재미가 없는 것은 용서받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실존’ 찾아 허우적거리던 5070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기승전‘병맛’의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입니다.
문화의 변방인 줄로만 알았던 그들이 소비 시장을 움켜쥐는 날이 지금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몇몇 스타트업 대표님들의 강의와 연설을 듣다가, 아니 사실은 졸다가, 이젠 우리도 좀 변해야한다는 자각에 몇 글자 남겨봅니다. 종업원들이 웃고 있는 상점에는 강도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웃음의 경제 가치를 생각해야할 때입니다.
필자 소개 : 레이먼드 권(Raymond Kwon) / 前 <한겨레신문> 기자, 어쩌다 <한국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콘텐츠 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카운터컬쳐>(Counter-culture) 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mail : raymond@counter-cultur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