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은 국가의 사전 대응 실패 결과”…”사후 약방문 보다 범죄 예방 정책 필요”
“정부가 인터넷 사업자에게 도입을 강제하려는 의무강화 조치는 통신비밀 침해의 가능성 등 여러 문제가 있고, n번방 사건에 정밀하게 대응할 수 없는 대책들로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 박성호 사무총장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이하 인기협) 주최로 28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앤스페이스에서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를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소위 ‘n번방 방지법’이라고 불리고 있는 관련 법률 개정안들의 내용이 디지털 성범죄 재발방지에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문제가 있다면 어떤 내용의 보완이 필요한지 등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발제를 맡은 최민식 교수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 방지 법안 실효성 검토’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최근 다양화·조직화 되어가고 있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변화 양상을 설명하고, 불기소 처분이 40% 이상인 디지털 성착취 범죄 처리 결과에 대해 비판했다. 이어 최근 디지털 성착취 범죄 방지와 관련한 법안 개정 움직임에 대해 “국회와 정부는 법제 양산이 아닌 여러 법에 산재되어 있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 관련 규정 정비를 통해 효율적인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진 토론은 이상직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가 사회를 맡았고, 김현경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정진근 교수(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황용석 교수(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구태언 변호사(법무법인 린), 김가연 변호사(오픈넷), 박성호 사무총장(한국인터넷기업협회)이 참여했다.
김현경 교수는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반복되는 원인 분석이 선제되어야 한다”며, “그 원인은 지나치게 낮은 형벌로 인한 법의 위하력 상실과 국제공조 역량의 미흡에서 시작되는데,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인 ‘방심위의 先삭제, 後심의 절차 도입’, ‘OPS책임강화 규정’ 등은 모두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진근 교수는 “최근 논의되는 ISP에 대한 규제는 n번방의 책임을 범죄자가 아닌 ISP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여 문제의 핵심을 희석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며, “ISP를 범죄의 방조자로 보는 입법태도에서 벗어나 수사와 증거보전 그리고 범죄자 처벌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입법안이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황용석 교수는 “범죄의 수단인 기술 체계 자체를 범죄 행위로 인식하는 사회적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며, “여론을 의식한 입법이 법체계의 불완전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간을 들여 법령 간의 관계 등 법체계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가연 변호사는 “기업 차원에서 디지털 성범죄물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업자가 모든 정보를 모니터링 하는 등 엄청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영세한 곳은 플랫폼 사업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였고, “실효성 없는 의무를 신설하기보다 디지털 성범죄 신고가 들어왔을 때 바로 차단·삭제하도록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 규제를 장려하고, 디지털 성범죄물의 피해자를 빨리 찾아서 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구태언 변호사는 “성착취물 모니터링 법안은 공공의 실패를 또 다른 실패로 덮으려는 것이다. 범죄자들이 텔레그램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 이후 경찰이 주범을 검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가의 사전 대응 실패를 보여 준다”고 지적하며 “N번방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으로 국내 플랫폼의 불합리한 역차별이 발생하면 국가데이터 및 국부의 해외 유출 초래로 이어질 수 있다. 실효적 대안으로 성착취물 범죄에 대한 감청허용, 잠입수사의 법제화 및 증거능력 등 사후 약방문 보다 범죄를 예방하는 국가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긴급토론회를 주최한 박성호 사무총장은 “강제수사권 또는 조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부가통신사업자 전체가 온라인 서비스에서 유통되는 이용자의 게시물, 대화내용 등에 불법촬영물이 있는지 여부를 분석하게 될 경우 통신의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의 대안들은 사건의 본질에 정밀하게 대응할 수 없는 대책들로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하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전기통신사업법, 저작권법, 정보통신망법 등 현존하는 규제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