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일 하이퍼커넥트 대표 “사업은 실패해도 경영에서 실패하면 안 된다”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신 주요 뉴스 중 하나로 하이퍼커넥트의 M&A(인수합병)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영상 메신저 ‘아자르’ 운영사인 하이퍼커넥트가 미국 나스닥 상장사 ‘매치 그룹(Match Group)’에 피인수된 것.
소셜 디스커버리 앱 ‘틴더’ 등 40여개의 소셜 앱을 서비스하고 있는 매치 그룹은 북미, 유럽, 일본 등 글로벌 빅마켓 내 비게임앱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매치그룹이 하이퍼커넥트를 인수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우선 자사 서비스 성장에 하이퍼커넥트의 기술이 필요했고, 아시아 시장과 소셜 디스커버리 산업 확장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를 위해 매치그룹이 지출한 인수 자금은 17억 2,500만달러(한화 약 2조 원, 지분 100%)에 달한다.
2014년 설립된 하이퍼커넥트는 비디오 및 AI 기반 기술기업으로 글로벌 이용자 비중이 99%에 달하는 영상 메신저 ‘아자르’를 필두로 영상 채팅앱 ‘하쿠나’, 영상 기반 소셜디스커버리 데이팅 앱 ‘슬라이드’, 그리고 B2B 엔터프라이즈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웹RTC(실시간 통신 기술)를 세계 최초로 모바일 환경에 상용화해 자사 프로덕트에 적용한 하이퍼커넥트는 세계 수준의 인공지능 기술과 경험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실제 프로덕트에 필요한 실용적인 기술 과제에 집중, 영상통신 기술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기술적 성과를 이뤄왔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9일과 10일 이틀간 강릉에서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2022’ 키노트 연사로 나선 안상일 대표는 “아자르는 한국 스타트업신에서 나온 독특한 사례”라며 그간 사업 과정을 압축해 설명했다.
하이퍼커넥트의 주력 서비스인 아자르는 2012년 첼시로 이적한 ‘에당 하자르’에서 따왔다. 그 선수처럼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아자르는 2017년 세계9위를 기록한 뒤 2018년 7위, 2019년 5위를 하는 등 비게임앱 매출 세계탑랭커로 성장한다. 한국 토종앱이 소셜&데이팅 분야에서 글로벌 탑랭커가 된 것이다.
이런 서사를 만들어 낸 배경에는 팀의 역량이 있었다. 이색적인 부분은 하이퍼커넥트는 안상일 대표를 비롯해 창업팀 3인 모두 글로벌 경험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비유학파 엔지니어 출신들이었고 영어도 잘 하지 못 했다. 당시 안 대표는 해외에서 IR이나 발표를 할 때 모든 원고를 외워서 했다.
안상일 대표는 “창업팀 세 명이 모두 엔지니어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서비스가 전세계에서서 사랑을 받은건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하이퍼커넥트가 여느 스타트업과 다른 출발을 한 것은 론칭 첫 날부터 매출을 내며 성장했다는 것이다. 서비스 출시 첫 날 2만 원, 마케팅비와 서버 비용을 빼고 첫 달 200만원 이익을 냈다. 인수합병 전 해인 2020년에는 2,600억 원을 기록했다. 서비스 이용자 99%가 해외 이용자이며, 매출 99%로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글로벌 역량의 근간에는 기술이 있었다. 영상통화가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에 선보인 모바일 영상 기술(web RTC)이 대표적이다. 후일 카피캣이 1000여 개가 등장했지만 오리지널 기술이 있었기에 끊김없는 성장이 가능했다.
알토스벤처스와 소프트뱅크에서 120억 원 규모 투자유치를 했지만, 그 돈은 고스란히 통장에 남아있다. 만일을 대비한 24개월치 비상금이자 채용시 필요한 신뢰자금이었다. 안 대표는 “소프트뱅크와 알토스벤처스라는 네임벨류가 필요했다. 우리 서비스는 한국에서 만들었지만 이용자 대부분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내서 엔지니어 등 인재를 리쿠르팅하려면 이정표를 만들어 놓아야 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아자르가 글로벌 서비스가 된 배경에 대해 안 대표는 “타이밍, 운이 좋았다. 앱마켓 랭킹 혜택을 받아서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고도 유저가 모였고, 모바일 비디오 태동기였기에 입소문이 난 것도 주효했다. 그리고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었다. 나는 실력이 부족한 개발자지만 공동창업자인 슈퍼 엔지니어 정강식과 용현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선 실패한 창업과 하이퍼커넥트의 차이는 팀과 시기의 차이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안 대표는 “설명이 필요한 유머는 실패한 유머다. 마찬가지로 문화와 언어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설명이 필요없는 심플한 UI(사용자 환경)를 만들려고 했다. 쉽게 이해하고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다. 그게 글로벌 진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봤다”라고 말했다.
여타 B2C서비스가 유저를 모은 뒤 과금 정책을 펼치는 것에 반해 하이퍼커넥트는 서비스 초기부터 매출을 발생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안 대표는 “앞선 사업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빚지지 않는 사업을 추진했다. 유저가 많다고 서비스가 잘 된 아니다. 회사의 수익에 기여하는 고객이 많아야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진성고객인 유료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하이퍼커넥트는 아자르 이용자가 해외에서 많이 들어오자 본격적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추진한다. 글로벌 서비스를 만든 경험이 없기에 ROI와 통계학 등 데이터에 기반해 타겟국가를 선정하는 등 기계적 선정방식을 취했다. 안 대표는 “서비스 초반 동일한 마케팅 금액을 200개 국가 앱마켓 등에 집행한 뒤 어떤 패턴으로 이용자가 유입되는 지 분석하고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지역에 예산을 집중했다. 유저 획득 비용이 낮았기에 가능했던 전략이다. 이런 사이클로 서비스를 알렸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이 통했던 것은 앱 오리지널리티라는 큰 강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퍼커넥트의 web RTC는 세계 최초 기술이었고 그걸 적용한 아자르는 세계 최초의 모바일 앱이었다.
피인수된 매치그룹과는 2019년 처음 만났다. 매치그룹 관계자들이 전용기를 타고 하이퍼커넥트에 방문했다. 당시 매치그룹도 아자르와 같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고 하이퍼커넥트는 매치그룹을 경쟁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종종 연락을 하는 관계로 이어지다 매치그룹 새 CEO인 샤르 듀베이가 취임했다. 당시 매치그룹은 하이퍼커넥트를 인수하거나 투자하려고 했었다. 샤르 듀베이의 첫 업무도 하이퍼커넥트에 인수 관련 이메일을 보내는 거였다.
안 대표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재미있는 건 모든 적지 않은 규모의 M&A임에도 모든 과정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이었기에 필요한 부분은 이메일, 화상 미팅으로 했고, 계약 체결도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양측이 직접 만난 것은 인수합병이 된 지 몇달 뒤였다.”라고 회고했다.
안 대표는 글로벌 사업을 할 때 영어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글로벌 사업을 하면서 가장 후회했던 게 영어다. 투자자들로부터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회사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란 얘기도 들었다. 만약 세계 시장에 관심 있는 창업자라면 영어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사업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었다. 아자르 출시 초기 이용자가 데이트 상대방의 성별 정체성을 고르도록 하는 ‘프리미엄’이란 기능이 있었다. 함께 일하던 외국인 직원이 성평등 관점에 어긋난다고 지적해 바로잡았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성평등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의 사업 철학은 ‘사업은 실패해도 경영에서 실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스타트업이 엑시트(exit, 자금회수)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실 실패하는 스타트업이 훨씬 많다. 스타트업이 한 서비스에만 몰입하다 보면 잃게 되는 게 굉장히 많다. 창업자들은 그걸 가지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곤 한다. 근데 상당히 많은 경우 피봇팅(Pivoting 사업 모델 전환)을 몇 번 하게 되는 데, 그 순간 팀 멘탈리티가 깨진다.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돈도 부족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팀이 깨지곤 한다.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해도 사람과 돈이 없어서 어렵다. 이건 다 앞선 실패에서 겪은 내 경험이다.”라며 “하이퍼커넥트를 창업할 때 실패 가능성을 상정하고 경영 계획을 짰다. 아무리 새로운 시도라 하더라도 대부분은 실패할 거다. 실제로 중간에 접은 프로젝트도 많다. 이걸 항상 경영 계획에 넣어놓고 일을 하고 있다. 자금이 모자라지 않았음에도 펀딩을 한 배경도 혹시 모를 일에 대한 대비였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경영 철학이 ‘사업은 실패해도 경영에선 실패하지 않는다’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