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tartup’s Story #473] 세상의 ‘벽(wall)’을 ‘예술(art)’로 바꾸는 스타트업

과거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 회화였다. 같은 영화라도 극장마다 다른 표현력은 볼거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은 멀티플렉스의 등장, 디지털 실사출력이 대중화되면서 1990년대 후반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근래 서울과 춘천, 부산 등지에서 아이유, BTS, 노홍철, 손흥민 등 유명인을 그린 거대 벽화가 소셜네트워크에서 화제를 모았다. 과거 극장 간판을 연상시키는 이 벽화들은 인증샷 배경으로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를 제작하는 주체는 ‘이프비’라는 스타트업이다. 이프비는 광고주에게 의뢰를 받은 뒤 건물주와 협의해 일정 기간 벽에 옥외 광고를 진행하고 다시 원복하는 ‘월디(Walld)‘라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수익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방치된 벽의 가치를 높여 노후 지역에 활기를 넣는 도시 재생을 추구한다. 그간 CJ 티빙, 교보생명, 티맵모빌리티, SK가스, 현대자동차 등 기업을 비롯해 서울시등 지자체, 여러 연예인 팬클럽이 클라이언트가 되어 이프비와 손을 잡았다. 최근에는 NFT(대체불가능토큰)를 통해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프비 한종혁 대표의 개인 서사는 평범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부터 취업이 아니라 창업이 꿈이었고 무작정 떠난 세계 여행에서 현재 아이템을 찾았다. 대기업 투자 심사역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창업을 안 하면 생기는 병’에 걸려 스타트업 대표로 나섰다. 두 번의 실패를 거쳐 현재 아이템을 궤도에 올리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종혁 이프비 대표 ⓒ 플래텀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창업은 언제부터 염두에 뒀나요. 

경영학과를 간 건 창업을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고등학생때부터 아이디어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뭔가 생각날 때 마다 적었고, 그걸 현실화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죠. ‘월디’ 모델은 제가 하고 싶었던 많은 것 중에 하나입니다.

미술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6세때 해외 경험이 계기가 됐어요. 세계여행을 했는데, 여러 나라에서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미술이 재미있고 우리 삶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그때 제대로 느꼈던 것 같아요.

-48개국을 도는 세계여행을 했어요. 뉴욕에서 인턴 생활도 했고요. 

대학생 기자단 활동을 했는데, 인터뷰이 거의 모두가  오랫동안 여행을 가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더라고요. 저한테도 그런 경험을 해보라고 조언을 해서 뭔가 있구나 싶었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서 세계여행 다녀온 작가가 쓴 책을 봤는데 너무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어요.

해외 인턴 생활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어요. 영어실력을 높인다는 생각에 우선 미국에 학생비자로 갔어요. 미드 가쉽걸에 한창 빠져 있어서 뉴욕을 선택했고요. (웃음) 휴대폰 개통을 하려고 통신사 지점에 갔는데 우연히 어떤 한국분을 도와드리게 됐고 보답으로 식사초대를 받았죠. 그분이 어느 건축설계회사 CEO였는데, 제가 여러 대기업 공모전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더라고요. 당연히 한다고 했고 바로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여담인데, 미국인들과 일을 하다 보니 정말 영어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 한국말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어요. 한국인을 만나도 영어로 이야기할 정도로요. 어학원도 병행하다보니 영어실력이 빨리 늘더라고요. 영어가 충분히 성장했다고 느낀 뒤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세계여행을 떠났죠. 그 여행이 지금 제 사업의 바탕이 되었죠.

-계획과는 다르게 창업이 아니라 취업을 먼저했어요.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어요. 부모님이 제가 창업을 한다고 하니 걱정이 많았거든요. NHN 전략투자팀에서 근무했는데, 회사 생활 3년 6개월은 만족스러웠어요. 창업을 좀 미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런데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안 하면 탈이 난다고 하잖아요. 몸에서 이상 징후가 하나 둘 생기더니 나중에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병원에 몇 번 실려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퇴사를 하고 창업을 하니 아픈 것이 씻은 듯이 다 나았어요. 그래서 농담 삼아 신내림을 받았다고 말하곤 해요. (웃음) 원하는 일을 하는 게 제 팔자 같더라고요.

-월디에 앞서 여러 아이템으로 사업 시도를 했어요. 

첫 아이템이 유기동물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입양을 돕는 거였는데 시원하게 실패했죠. (웃음) 두 번째가 스트리트 아트를 의류로 제작하는 아이템이었어요. 결론부터 말해 실패했는데, 그 모델이 제대로 작동 안 한 가장 큰 이유는 큰 그림을 사이즈만 줄여서 본래의 스트리트 아트 느낌이 부족했다는 거예요. 여러 디자이너와 작업을 했지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멈췄어요. 그다음에 생각한 것이 진짜 스트리트 아트를 그려보는 거였어요. 세상에 빈 벽들이 굉장히 많아서 비즈니스모델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죠.

월디 스트리트 아트 포트폴리오. 손흥민 스트리트 아트는 외신에서도 주목했다. (사진=월디 홈페이지) 

-월디는 ‘벽 공유 플랫폼’을 표방합니다. 스트리트 아트와 상업 광고를 결합한 모델이에요. 이 모델을 생각한 배경은 뭔가요. 어떤 가설을 세웠나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소위 ‘핫플레이스’가 늘어나고 있고 그곳에 광고를 하고 싶어하는 기업들도 많아요. 그런데 마땅한 광고 매체가 없었고, 핫플레이스에 어울리는 홍보 수단으로 스트리트 아트만한게 없다고 봤어요. 해외서는 오래된 도시와 스트리트 아트가 만나서 시너지가 나고 있어요. 스트리아트를 통한 광고를 흔하게 볼 수 있고요. 베를린, 멜버른, 뉴욕 브루클린 등지에 유명 기업의 스트리트 아트 광고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또 순수 미술 전공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률이 낮은데, 순수 미술 전공자들은 더 어려워요. 국내에 정말 훌룡한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그들에게 수익모델을 제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 의미있겠다 싶었죠.

그리고 건물주는 공실률이 증가하는 상황임에도 임대료를 인하해야 된다는 압박이 있어요. 수익은 줄어드는데, 정부의 정책은 건물주들에게 세금부과를 많이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건물주, 광고주, 아티스트를 한 데 잇는 벽 플랫폼 ‘월디’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처음에는 에어비엔비처럼 건물 벽을 광고 등 용도로 공유하는 형태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벽에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일정 기간 벽에 옥외 광고를 진행하고 다시 원복하는 모델을 생각했어요. 건물 벽과 관련된 시장들은 이미 존재하지만 파편화되어 있어요. 그것들을 한 군데 다 모으는 플랫폼을 저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더 나아가 노후한 도시를 다시 살릴 수 있고요.

-팀빌딩은 어떻게 했나요. 

시작 당시는 아이디어만 있을뿐 미술, 광고, 건물쪽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어요.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일을 잘하는 인재들을 영입해서 팀빌딩을 했어요. 결과물이 빨리 나오는 작업이다 보니 믿어주는 사람들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 같아요. 운 좋게도 우리나라 최고의 멤버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처음에 작가들과 어떻게 접점을 만들었나요. 설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듯 싶어요.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통해서 발굴했어요. 작가들이 인스타그램에 작품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 보이면 무작정 DM(Direct Message)을 보내고 만나자고 했죠. 월디라는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작가들이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티스트들의 니즈를 먼저 맞춰보기로 하고 ‘백 투 노멀’이라는 코로나 종식기원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모두다 갈망하는 코로나 종식을 주제로 스트리트 아트를 구현한건데, 해외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작업이었어요. 첫 시도인데 신문 지면은 물론 TV에까지 나오는 등 호응이 좋았고, 그때부터 작가들도 호응을 해주더라고요. 잘하는 사람 옆에 또 잘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작가들의 소개와 소개가 이어지면서 다음 작업도 함께 하게됐죠. 최근에는 같이 해보고 싶다고 먼저 연락 주는 경우도 많아서 행복합니다.

-NFT 관련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어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의 일환으로 NFT 작품 전시회를 시작했어요. NFT 소유주는 NFT의 가치가 높아지길 바라고, 아티스트는 본인 작품이 많이 알려지길 바라요. 작품이나 NFT는 사람들이 많이 알면 알 수록 가치는 높아져요. 두 계층의 공통된 니즈를 발견하고 5월 성수동을 시작으로 국내 곳곳에서 NFT 작품 전시회를 진행하려고 해요.

NFT라는 것이 가상 공간에 있는 자산이잖아요. 그걸 벽을 통해서 현실로 이어주는 건데, 저희는 ‘현실 민팅(Minting)’이라고 불러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하던 일의 역발상이죠. 우리가 아는 NFT는 보통 작은 화면으로 보는 거잖아요. 그걸 큰 사이즈로 볼 때의 느낌이 다를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자산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쉽게 오르지 않아요. 부동산 자산이 있다면 도로나 지하철이 개통되는 등 변화가 있어야 변화가 생기듯이요. NFT도 가치가 올라가려면 액션을 취해야 되요. 제일 가치가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대중들이 많이 알아보는 것이고요. 가상세계에 있는 것을 현실세계 벽으로 소환을 해서 가치를 높이는 거죠. 소유주들이 요구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넣어가면서 가치를 높이는 행위를 미술적으로 풀어가려고 해요.

-NFT 프로젝트로 꿈꾸는 미래가 있을텐데요.

근래 연예 기획사들이 NFT 발행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저흰 그들의 NFT 데뷔 무대가 월디가 되게 만들고 싶어요. 가수들이 컴백할 때 음악방송을 통해 하듯이요. 또는 월디가 직접 기획을 해서 소속 작가들을 성장시키고 수익을 나누는 작품 채널링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NFT 시장에서 중간 역할을 하고 싶어요. 올해 안에 다양한 것을 시도해볼 계획입니다.

-상업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상업적인 작업 요청도 들어올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작년 월드비전, 교보생명과 함께 포항에 있는 보육원 벽면에 그림 그리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저희가 콘셉트를 잡아서 작품을 그렸는데, 이국적이란 평을 들었어요. 행정안전부와 함께한 프로젝트도 있어요. 갈산초등학교 앞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들이 30km 속도 제한에도 불구하고 평균 50-60km 로 달렸어요. 그래서 학교 앞이니 조금 주의해서 운전해 달라는 메시지를 스트리트 아트를 통해 구현했어요. 초등학교 1-3학년 학생들의 그림을 받은 후 스트리트 아트와 섞어서 메시지를 담았죠. 서울시와 함께 충무로에 명예의 벽도 그렸죠. 그곳에 우리나라 영화 흥행 순으로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그려 놓았죠.

그리고 올해 예정되어 있는 것 중에 하나는 ‘2022년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NFT아트를 만드는 겁니다. 매년 국내를 비롯해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시를 해 볼 생각이예요. 미술로도 충분히 재미난 것을 많이 할 수 있고, 수익도 낼 수 있다는 것을 미술작가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기존에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뭐였나요. 

케이팝 스트리트 아트 쪽이 제일 반응이 좋았어요. 잘 그려준 작가의 힘이겠죠. 춘천에 손흥민 선수 스트리트 아트도 호응이 많아요. 그려 놓은지 한참 되었는데 지금도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후발주자들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월디만의 고유 역량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월디의 사업은 관계 비즈니스예요. 건물주, 광고주, 아티스트라는 이 세 이해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을 결합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건물주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건물주부터 호감을 사는 일은 더 쉽지 않고, 아티스트한테 호감을 사는 것은 더 쉽지 않은 일이에요. 따라서 만들 수는 있겠지만 월디처럼 운영하기도 어려다고 봐요. 똑같이 운영한다해도 저희가 먼저 선점한 영역이기에 따라잡기도 수월하지 않을 거고요. 잘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많이 바인딩을 많이 시켜 놓았기에 들어와도 가져갈 것이 많지 않아요. 후발주자가 저희와 똑같은 퀄리티를 내고 싶겠지만 그러한 퀄리티를 낼 수 있는 작가들이 저희에게만 있는 상황인 거죠.

월디의 가장 큰 장점은 비즈니스를 다양하게 만들어서 벽의 활용도를 높인다는 겁니다. 해외 스트리트 아트를 우리나라로 가져와 ‘케이팝 스트리트아트’라는 것을 만들었고, ‘컨스트럭트 아트’라고 해서 건물에 옷을 입히는 방법을 생각했고, ‘NFT 스트리트 아트’까지 만들었어요. 저흰 계속 새로운 것들을 선점해서 만들어 나갈 거예요. 대중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브랜드들은 앞서가기 때문에 가치가 높은 거잖아요. 그런 초격차(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가 월디라는 브랜드의 가장 큰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종혁 이프비 대표가 지난 5월 열린 디캠프 디데이x지역리그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이프비는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 플래텀

-사업을 하며 난관이 많이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앞선 창업에서 실패했을 때 다양한 감정을 느꼈어요. 아무래도 가장 힘든 순간은 초창기 멤버들이 이탈해 나갈 때예요. 홀로 남겨진다는 느낌이 굉장히 슬펐고, 상실감이 크다보니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어요.

저를 변화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제일 처음 했던 것이 그냥 마음을 놓는 것이었어요. 요즘은 창업 환경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뭐든 다시 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했죠.

계속 걱정만 하다 보니 한도 끝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새로운 것만 생각하려고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 전환점에서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인 게임을 포기했어요.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하나 있으면 각오가 생기잖아요. 그 대신 이런 저런 것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계속했죠.

-실패에서 배운다고 하잖아요. 나름 원칙같은 게 생겼을텐데요.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사람을 무턱대로 많이 뽑으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사람이 많으면 뭔가 빨리 이루어질 것 같았어요. 그게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최소 인원으로 운영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두 번째는 모든 일에 대표가 다 간섭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칫 신뢰관계가 깨지고 일도 마이너스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믿고 맡겨요.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게 독려해요. 종료 후에 논의하며 고칠 것을 찾는 편이죠. 중간 과정에 관여하다 좋은 인재를 놓친 경험에서 배운겁니다. 이 두가지는 꼭 지킵니다. 실수는 반복하면 안 되니까요.

-사업을 하면서 가지게 된 자신만의 마인드가 있다면요.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게 만들자’에요. 그러려면 시작을 크게 알리는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가수 아이유와 BTS를 크게 그려놓은 이유이기도 해요. 시작을 눈에 띄게 했더니 일이 연결되더라고요.

한종혁 이프비 대표 ⓒ 플래텀

-창업자는 외롭다고 하죠. 그러한 외로움과 고민들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저는 창업한 뒤로 하루도 안 빠지고 일기를 쓰고 있어요. 내용 대부분이 결심과 다짐 아니면 후회죠. 하루를 헛되게 보냈다면 스스로를 질책하고, 잘 보냈으면 칭찬하고, 다짐한 게 있으면 되짚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쓰고 있어요. 스타트업 대표님들도 일기를 썼으면 좋겠어요. 외로운 마음이 들 때 도움이 됩니다.

-몸과 마음 모두 치열한 창업 과정을 겪어 왔어요. 같은 어려움을 겪는 창업자들이나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실패가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요소라는 건 많이들 들었을 거예요.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다고 해서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위험이 클수록 그만큼 얻는 것이 많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넘어져서 죽지만 않는다면, 다시 일어나보는 것은 좋은 경험입니다. 너무 힘들다면 길을 잠시 바꾸는 것도 좋겠죠. 쓰러졌다고 바로 일어날 필요는 없잖아요. 창업 이전 생활로 다시 돌아가서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넘어져서 아프다면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일어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넘어졌다 바로 일어나면 화가 난 상황이잖아요. 그런 상태데서 뭔가를 하면 더 크게 실패할 수도 있어요. 마음을 가라 앉히고, 머리를 차갑게 식힌 다음 냉정하게 자신의 아이템을 되돌아봐야 같은 실수가 반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이프비의 비전은 뭔가요. 월디로 뭘 이루고 싶으세요. 

서울 한강을 기준으로 남쪽은 코엑스 중심의 디지털 광고가 중심이 되고, 강북은 구도심 답게 월디가 주도한 아날로그 광고가 중심인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한강다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오고가며 서울의 상반된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아직은 먼 이야기고 쉽지도 않겠지만 그것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멜버른이나 브루클린과 같은 그래피티와 스트리트아트가 가득한 도시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현재 기준으로 미래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월디가 자리를 잡고 저희 일이 규모있는 산업이 된다면 이 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거예요. 미술학과에 벽화 관련 수업도 생길 수 있고 저희 내부에 교육 프로그램이 생길 수도 있을 테죠. 그때 저희 파트너 작가들이 출강할 수도 있을 겁니다. 3D 프린팅으로 건물을 만드는 시대가 온다고 하잖아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벽도 쉽게 튜닝할 수 있는 건데, 그 시대의 중심이 되는 플랫폼이 되고 싶어요.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learn about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and tell their stories.

댓글

Leave a Comment


관련 기사

인터뷰

[Startup’s Story #501] ‘식탁 뒤의 혁신’ 마켓보로 임사성 대표의 9년 여정

인터뷰

[Startup’s Story #499] 오후두시랩, 지구의 체온을 재는 사람들

인터뷰

[Startup’s Story #498] “‘혼자’가 아닌 ‘함께’의 가치” 키햐를 이끄는 세 명의 공동창업자

인터뷰

[Startup’s Story #497] “박제된 과거가 아닌 살아숨쉬는 현재로” 버틀러리의 한옥 스테이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