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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50.5점의 의미…스타트업이라는 불확실한 희망에 대하여

21일 열린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4’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정영현 코르카 대표, 김종우 서울경제진흥원 창업본부장,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플래텀

무엇이 사람들을 스타트업으로 이끄는 걸까. 십 년 전만 해도 그 대답은 단순했다. 혁신, 도전, 자유, 그리고 폭발적인 성장의 가능성. 하지만 2024년의 대답은 훨씬 더 복잡하고 모호하다. 마치 청년들의 연애관이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 것처럼.

나는 최근 몇 달간 스타트업 생태계의 여러 주체들을 만나왔다. 창업자, 투자자, 직원들, 그리고 이 세계로 들어올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현대 한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희망과 불안, 도전과 좌절, 열정과 회의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공동 발표한 올해 스타트업 트드 리포트에 따르면, 창업자들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매긴 점수는 50.5점이다. 간신히 절반을 넘긴 이 점수는 묘하게도 우리나라 국민 행복도 지수와 비슷하다. 64.8%가 작년보다 상황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목소리에서 절망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2023년의 혹독했던 겨울을 지나온 이들의 담담함이 느껴졌다.

한 창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는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터널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우리가 터널 안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어요.” 이 말에서 묘한 위안을 느꼈다. 불확실성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모호함이라는 걸 그들도 알게 된 걸까.

정부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더 냉정했다. 54.6점이라는 점수는 마치 중학교 시절 받았던 수학 성적표를 보는 것 같다. 간신히 패스는 했지만, 결코 만족스럽지 않은 점수.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컸다.

투자 유치 과정의 어려움은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의 성장통처럼 느껴졌다. 회사의 가치를 증명하고, 제품의 가치를 설득하는 과정. 그것은 마치 연인에게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야 하는 것과 비슷했다. 숫자와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투자자들의 이야기는 또 달랐다. 리포트에 따르면, 52.6점이라는 평가 점수에는 현실주의자들의 냉정함이 배어있었다. 58%가 작년보다 상황이 악화됐다고 말한다. 경기 불황과 고금리라는 두 개의 그림자가 투자 시장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했다. 한 투자자는 이렇게 말했다. “돈이 비싸지면 모두가 보수적이 됩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 같은 거예요.”

그러나 더 흥미로웠던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스타트업 재직자들 중 단 41.5%만이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 숫자는 마치 현대인의 결혼 만족도처럼 씁쓸하게 다가왔다. 자율성과 수평적 문화라는 장점이 있지만, 그것이 낮은 보상과 불안정성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스타트업의 ‘혁신적/창의적’ 이미지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첫사랑의 환상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것처럼. 한 재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롭고 흥미진진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죠. 혁신적인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걸요.”

대기업 재직자들의 시선은 더욱 흥미로웠다. 단 19.5%만이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고려한다는 통계는, 마치 안정된 직장인이 모험가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실제로는 선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워라밸과 안정성이라는 확실한 가치 앞에서, 혁신과 도전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는 큰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다.

한 대기업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가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하지만 그건 아마도 남의 연애를 부러워하는 것과 비슷할 거예요.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면 또 다른 고민이 있겠죠.” 이 말에는 현대인의 양가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취업준비생들의 생각은 더욱 복잡했다. 단 4.5%만이 스타트업 취업을 첫 번째로 고려한다는 통계는 충격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44%가 스타트업 취업을 옵션으로 생각해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마치 현대 청년들의 연애관과도 비슷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처럼.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시리즈 A 이전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안정적인 선에서의 모험을 찾는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 같았다. 한 취업준비생은 이렇게 말했다. “큰 스타트업은 이미 대기업과 비슷해져 버린 것 같아요. 차라리 작은 곳에서 시작해서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2025년을 향한 전망은 마치 오늘날의 결혼관처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경제 위기의 가능성이라는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금리 인하라는 희망의 빛줄기도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대와 위치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창업자들은 이 불확실성을 기회로 보려 하고, 투자자들은 위험으로 인식하며, 직원들은 현실적인 고민거리로 받아들인다. 마치 같은 구름을 보면서도 어떤 이는 비를, 어떤 이는 햇살을, 어떤 이는 그저 구름을 보는 것처럼.

결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혁신과 안정, 도전과 현실, 이상과 실제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타협하는 장소. 그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마치 현대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정의하고 추구해가는 것처럼.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가장 본질적인 스타트업의 정신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여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결국은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길이라는 것.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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