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50만 원이라도 포커판의 50만 원과 증권계좌의 50만 원은 무게가 다르다. 전자는 밤새 녹아내릴 수 있는 얼음이고, 후자는 천천히 부패하는 고기 같은 돈이다. 아니, 포커판의 50만 원은 좀비 같은 돈이다. 죽은 줄 알았던 돈이 어느 순간 다시 살아나 두 배가 되어있기도 하니까.
처음에는 몰랐다. 포커나 투자나 사업이나 전부 운칠기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운과 실력이 정확히 50:50도 아니었고, 사실은 그 비율 자체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운을 기다리는 동안 망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올인’을 좋아한다. 재개발 투기도 올인, 주식도 올인, 사업도 올인이다. 마치 이번 생에서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다음 생이 없을 것처럼 덤빈다. 하지만 진짜 프로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올인’은 마지막 카드가 아니라 첫 번째 카드였다.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 있어야 첫판부터 제대로 된 게임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포커판의 칩은 돈이 아니다. 주식의 차트도 돈이 아니다. 사업의 매출도 돈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점수판이다. 우리가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 감정을 얼마나 잘 다스렸는지, 리스크를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보여주는 점수판.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점수판만 바라보다가 게임의 본질을 잃어버린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가 갑자기 퇴사하고 창업을 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때가 왔다”고 했다. 그 친구의 사업은 1년 채 안 되어 문을 닫았다. 포커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봤다. “느낌이 좋다”며 올인했다가 하루 만에 파산하는 사람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다르다”며 빚내서 투자했다가 반토막 나는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모두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는 것. 하지만 진짜 기회는 그렇게 오지 않는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지나간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포커룸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한 번만 더.” 주식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이번에는 꼭.” 사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확실해.” 하지만 이런 말들은 대부분 패배의 전조다. 진짜 승자는 “한 번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매 순간이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니까.
결국 포커와 투자와 사업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불확실성이라는 깊은 강을 건너는 중이다. 누구는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너고, 누구는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또 누구는 다리를 직접 놓으려 한다. 방법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다.
다만 한 가지, 이 게임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기고 있을 때다. 지고 있을 때는 오히려 정신이 똑바로 박힌다. 하지만 이기고 있을 때는… 그때는 정말 무섭다. 마치 취한 것처럼 모든 것이 흐릿해진다. 그래서 진정한 승자는 승리의 순간에도 패배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처음 포커를 배웠을 때는 몰랐다. 주식을 시작했을 때도,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 가지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모두 불확실성이란 깊은 강을 건너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누구는 돌다리를 두드리며, 누구는 헤엄을 치며, 또 누구는 다리를 놓으며. 방법은 달랐지만 목적지는 같았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그게 이 세 가지 게임이 알려준 가장 소중한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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