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품계약을 체결하고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발주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손해를 본 것 같은데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제품을 납품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해당 계약에서는 거래조건의 대강만을 정하고 구체적인 제품의 품목이나 수량, 단가 등은 발주를 통해 따로 정하기로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납품업체의 입장에서는 계약을 체결하고 납품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음에도 상대방이 회사 사정 등의 이유를 들어 발주를 하지 않아 닭 쫓던 개처럼 허탈한 상황이 놓이기도 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납품업체는 하염없이 발주를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을까요?
1. 기본계약을 통해 상대방에게 발주의무가 인정되는지 확인하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하여는 가장 먼저 상대방이 계약을 위반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 사안에서 상대방이 발주를 하지 않는 것이 계약위반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기본계약에서 상대방에게 발주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기본계약상 상대방이 발주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면,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계약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손해배상 청구의 첫 번째 요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상대방과 작성한 계약서를 펼쳐서 확인해 봅시다. 만약 계약서에서 ‘발주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거나 더 나아가 발주시기나 최소발주수량 등 발주에 관한 내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면 상대방이 발주의무를 부담한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약서상 상대방에게 발주의무를 지우는 내용이 없더라도, 우리 법원은 계약 체결의 동기, 목적, 업계의 거래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발주의무를 지우려는 의사였던 것으로 볼 만한 사정이 있다면 발주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계약서의 표현이 모호한 경우에는 계약 체결의 히스토리와 업계관행 등을 들어 상대방이 발주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려는 의사였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발생한 손해가 무엇인지 확인하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손해가 발생하였어야 하고, 해당 손해가 상대방의 계약위반으로 인한 것이어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막상 소송을 제기하려고 하면 실제 발생한 손해가 무엇인지, 또 상대방의 위반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이 사안에서도 상대방이 발주를 하지 않은 것뿐 적극적인 침해행위를 한 것은 아니므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수 있고, 아마 손해배상을 요구받은 상대방도 이렇게 주장할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 법원은 발주의무를 부담하는 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거래를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경우에는 이행이익, 즉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었더라면 얻게 되었을 이익이 손해가 된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납품업체로서는 발주가 이루어졌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산정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3. 기본계약을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발주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하여는 기본계약에 상대방에게 발주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주의무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발주단가의 범위나 최소발주수량 등의 조건을 대강이라도 정할 경우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것이 매우 용이해집니다. 만약 발주를 위해 납품업체가 비싼 장비를 구입하여야 하는 경우라면, 발주하지 않을 경우 장비 비용을 지급한다는 조항 등을 기본계약서에 미리 포함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발주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는 경우라도 이러한 최소한의 조건들은 기본계약에 반드시 포함시켜 두시기 바랍니다.
을의 입장에서 계약서에 이런 저런 내용을 추가하자고 요청하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어찌 보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받아들여주지 않는 상대방은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계약을 위반할 위험성이 가장 높은 상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앤리 법률사무소 전한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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