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 스타트업 A사는 늘 운전자금이 부족하던 차에, 이번에 투자사로부터 신규 투자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투자사가 보내 준 투자계약서 초안을 보니 여러 가지 조항들이 있는데, 담당 심사역은 관행적으로 체결하는 조항들이니 문제 없고 그냥 날인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투자를 받는 회사의 입장에서 투자계약서에서 대표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deal-breaker가 될 수 있는 독소조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이해관계인에 대한 손해배상/위약벌/주식매수청구권
일정한 조건이 달성되면 이해관계인(주로 대표이사)에 대하여 투자자가 손해배상청구나 주식매수청구(풋옵션)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투자계약서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조항입니다.
물론 거액을 투자하는 투자자로서는 투자금이 용도에 맞게 사용되고 궁극적으로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어느 정도 경영자를 감시 내지 통제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부 투자계약서는 계약 위반(대표적으로 진술과 보장 내용이 허위이거나, 투자금을 운영자금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을 넘어 “회사가 폐업하는 경우”, “회사가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는 경우”, “회사에 대해 소송이 제기된 경우” 등에 대해서까지 대표자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최근 피투자기업인 어반베이스의 대표이사에 대해 투자자인 신한캐피탈이 약 12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스타트업 업계에 파장을 몰고 온 일이 있는데, 바로 어반베이스가 법원에 회생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투자계약상 위와 같은 조항에 근거해 조기상환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처럼 투자가 실패하였을 때 그 책임을 대표이사나 경영자에게 묻는 조항은 자기책임의 원칙이나 투자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상당하며, 아직 1심이 진행 중인 위 신한캐피탈-어반베이스 사건에서도 해당 조항의 유효성을 놓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투자계약서의 문언에 따르면 일단 손해배상 및 주식매수청구권이 발생하였다고 해석되므로, 대표이사에게 매우 위험한 조항입니다.
사업이란 대표이사의 역량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잘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스타트업은 이른바 ‘대박’과 ‘쪽박’ 중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 지 알 수 없고, 현실적으로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들은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알고 다수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그 중 성공하는 소수의 기업으로부터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사업이 잘 되지 않았을 때의 책임을 이해관계인에게 묻는 조항에 대해서는 회사의 입장에서 절대적으로 거부해야 하고, 이 조항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로부터는 차라리 투자를 받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2. 투자자의 사전 동의
투자자는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감시하는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 사항에 대해 투자자의 사전 서면 동의를 받도록 투자계약서에 명시합니다. 그런데 이 조항이 과도한 경우 회사가 정상적인 경영 자체를 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통상 ‘합리적’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사전 동의권은 회사의 주요 자산의 양도, 주요 사업 영역의 변경, 회사와 경쟁할 수 있는 업체의 설립이나 경쟁사업에의 종사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넘어, 투자계약서에 “(일체의) 채무 부담 행위”, “(일체의) 자산의 양도”, “주주총회/이사회 의결 사항” 등 모든 경영상 의사 결정에 대해 사전 동의를 받도록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투자자일수록 회사가 성실히 사전에 동의 요청을 하여도 답변을 안 하는 경우가 많으며, 회사는 그렇다고 경영에 손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동의를 한 것으로 간주하고 업무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투자 초기나 투자자와의 관계가 좋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투자자와 껄끄러운 사이가 된다면 이 사전 동의 조항은 회사의 운신의 폭을 제약하는 강력한 독소조항이 될 수 있으니, 회사의 입장에서는 가급적 사전 동의를 받는 항목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결론
스타트업은 투자와 뗄레야 뗄 수 없고, 신규 투자는 당연히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투자를 받는다는 기쁨에 너무 사로잡혀 투자계약서의 독소조항을 간과해서는 곤란합니다. 실무상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조항들은 반드시 검토한 이후 투자계약서에 날인하여야 합니다. 스타트업 자문을 주로 드리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때에 따라서는 투자를 받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지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최앤리 법률사무소 윤현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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