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가 시작됐다. 거리에는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들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가 벽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벽면의 포스터 속 그들은 모두 미소 짓고 있다. 마치 자신만이 진정한 미래를 가져다줄 사람이라고 말하듯이. 이제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자신이 당선되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그러나 말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있다. 우리는 그 거리를 어떻게 좁혀갈 것인가. 두 대통령 후보가 발표한 10대 공약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그리는 미래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의 김문수 후보가 공식 선거 운동 첫날, 각자의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닮은 듯 다른 미래, 흥미로운 공통점
두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눈에 띈다. 두 후보 모두 첫 번째 공약에서 경제를 강조했고,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 강화와 관련 전문 인력 양성을 이야기한다. 정치적 노선은 달라도, 미래의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는 똑같이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은 ‘AI 대전환(AX)’을 선언하며 AI 예산 비중을 확대하고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K-콘텐츠 지원 강화로 글로벌 빅5의 문화강국을 실현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창작의 전 과정에서 국가 지원을 강화하고 OTT 등 K-컬쳐 플랫폼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문화와 기술을 동시에 끌어안은 모양새다.
반면 김문수는 ‘AI 전 주기에 걸친 집중 투자’와 ‘AI 전문인력 20만 명 양성’을 약속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AI 산업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고 ‘원전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는 점이다. 기술과 에너지를 연결시킨 것이다. 과학기술 강국 구현을 위한 과학기술부총리 신설과 과학기술인 처우 개선 방안도 포함됐다.
두 후보 모두 인공지능을 외치지만, 그 뒤에 숨은 철학은 미묘하게 다르다. 하나는 문화와 함께, 다른 하나는 에너지와 함께 기술을 이야기한다.
정치인들의 공약은 때로 시대의 징후를 보여준다. 그들이 앞다투어 인공지능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이제는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후보들의 공약은 그 변화의 속도를 쫓아가기 위한 처방전일 수도 있고, 단순한 유행어 따라하기일 수도 있다.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공약 속에서도 두 후보의 근본적인 차이는 분명하다. 그 차이는 단순히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과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방식에 있다.
이재명의 2호 공약은 ‘민주주의 강국’이다. 그는 “내란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해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시 국회의 계엄해제권에 대한 제도적 보장 강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을 약속했다. 군정보기관 개혁과 검찰·사법개혁도 언급했다.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과 견제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국방문민화 및 군정보기관 개혁으로 군 체질개혁”이라는 표현은 군에 대한 민간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현 정부에서 시작된 개혁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 공약은 시민의 참여와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담고 있다.
반면 김문수의 공약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방향성이 보인다. 9호 공약 ‘특권을 끊는 정부, 신뢰를 세우는 나라’에서 공수처 폐지, 대공수사권의 국정원 환원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이재명 방지 감사관제’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정치적 공세를 공약에 녹여냈다.
이는 기관의 자율성보다 중앙 집중적 감시와 통제를 중시하는 접근법이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 사법 방해죄 신설, 선관위 감사원 감사 등의 공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존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개혁 의지가 담겨 있지만, 그 방향은 이재명과 다르다.
두 후보의 정치적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그들이 인식하는 현실과 해법은 정반대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정책의 차이를 넘어, 국가와 사회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다. 한쪽은 다양한 권력 주체 간의 견제와 균형을, 다른 한쪽은 중앙 집중적 감시와 통제를 중시한다.
미래의 청사진
경제와 정치 외에도, 두 후보는 저출생 위기 극복, 청년 지원, 재난 대응 체계 강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약을 제시했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김문수는 청년 주택 정책으로 ‘3·3·3 청년주택 공급 방안’을 내놓았다. 결혼하면 3년, 첫 아이 3년, 둘째 아이 3년, 총 9년간 주거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하고 기억하기 쉬운 공약이다. 매년 10만호씩 청년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구체적인 숫자도 제시했다.
6호 공약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나라, 안심되는 평생복지’에서는 청년·신혼·육아 부부 주거지원 확대를 위해 매년 2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임신부터 육아까지 지원을 확대하고, 주요 질병 예방접종 국가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의료시스템 재건도 취임 6개월 내에 약속했다. 구체적인 숫자와 시간표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또한 김문수는 GTX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임기 내 A, B, C 노선을 모두 개통하고, D, E, F 노선을 착공하겠다고 밝혔다. 김문수가 경기지사 시절 추진했던 사업으로, 그의 행정 경험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의 공약들은 대체로 구체적인 숫자와 일정을 담고 있다. 마치 실행 계획을 미리 세워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재명은 좀 더 포괄적인 방식으로 ‘저출생·고령화 위기 극복 및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 돌보는 국가 수립’을 약속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세종 행정수도와 5극 3특(5극: 수도권, 동남권, 대경권, 중부권, 호남권/3특:제주,강원,전북) 추진’이라는 공약은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노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실현’이나 ‘생활안정으로 아동·청년·어르신 등 모두가 잘사는 나라 추진’과 같은 공약들은 포괄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국민참여형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재난 대응에 있어서도 재난현장지휘권 강화로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사회 재난 발생 시 사고조사위원회를 즉시 설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스템과 제도 개선에 중점을 둔 접근법이다.
두 후보의 공약에서 눈에 띄는 차이점은 구체성의 정도다. 김문수가 숫자와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반면, 이재명은 큰 방향성과 가치를 강조한다. 마치 한 사람은 실행 계획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은 비전을 제시하는 듯하다.
안보와 국방, 두 후보의 접근법
안보 문제는 대통령 선거에서 항상 중요한 쟁점이다. 두 후보는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이재명은 4호 공약으로 ‘외교안보 강국’을 내세웠다. “튼튼한 경제안보를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목표 아래, 국익을 최우선하는 전략적 통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형 탄도미사일 성능 고도화 및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고도화, 한미동맹 기반 아래 전시작전권 환수를 약속했다. 경제안보와 군사안보를 함께 다루는 포괄적 접근이다.
김문수는 10호 공약으로 ‘북핵을 이기는 힘, 튼튼한 국가안보’를 내걸었다. 북핵 억제력 강화로 국민이 안심하는 국방을 약속하며, 한미동맹 핵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 한국형 3축 체계 강화로 선제적 억제능력 확보, 핵 잠재력 강화, NATO식 핵공유 방안을 제시했다. 핵추진 잠수함 개발 추진과 글로벌 K-방산 등의 공약을 통한 ‘세계강군 구현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군복무 여건 개선 및 수당 현실화, 군복무 가산제 도입, 군복무 중 사상자에 대한 보상 및 보훈 확대, 예비군 수당 현실화 등 군에 대한 공약도 제시했다.
두 후보의 안보 공약에서도 각자의 성향이 드러난다. 이재명이 경제안보와 평화를 함께 이야기한다면, 김문수는 더 직접적으로 북핵 대응과 군사력 강화를 강조한다.
말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화려한 공약을 내놓는다. 마치 선거가 끝나면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는 것을. 실제로 당선된 후 얼마나 많은 공약이 지켜지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그 공약들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공약 발표에서 “‘회복·성장·행복’ 등 3대 비전으로 국민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과제를 10개 분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내란 위기 극복을 통해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급변하는 대외환경, 저출생,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 ‘성장’에 집중해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김문수 후보는 “미중 무역전쟁 등의 경제 위기와 국내 정치적 혼란의 시기에 ‘자본, 기술, 노동의 3대 혁신’으로 경제를 대전환하여 함께 잘사는 새로운 성장과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처럼 두 후보 모두 화려한 수사와 함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약의 내용보다, 그 공약이 어떤 철학과 가치관에서 비롯됐는지다. 후보자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다. 그들이 말하는 ‘회복’과 ‘성장’과 ‘행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그 문장 이면의 의도를 읽어내야 한다.
선거 공약은 흔히 정치적 수사와 함께 포장된다. 그 안에서 진정성을 발견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무엇이 실현 가능한 약속이고, 무엇이 단순한 선거용 레토릭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화려한 말의 향연에 현혹되어 실망과 배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국 선거는 미래에 대한 선택이다. 어떤 미래가 더 나은 미래인지,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단순히 공약의 내용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후보자의 과거 행적, 성격, 가치관, 리더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선거는 시작됐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공약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진정성과 실현 가능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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