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 등기를 마치면 자유롭게 이사를 하더라도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 관하여는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이를 활용하고 계신 듯합니다.
최근 대법원에서 임차권 등기가 완료되기 전에 이사를 하는 경우 기존의 대항력은 상실되고 등기시부터 새롭게 대항력이 발생한다는 취지의 중요한 판결(대법원 2025. 4. 15. 선고 2024다326398 판결)이 내려졌는데요. 임차권등기를 마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임차권의 대항력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임차권의 대항력: 임대차목적물의 양수인에게도 임차권을 주장하기 위한 요건
임차권의 대항력이란 임대차목적물이 제3자에게 양도되더라도 양수인에게 임차권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임차권은 원칙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양 당사자가 임대차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발생하고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는 그 효력이 미치지 않지만, 임대인이 임대차목적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경우 임차인이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양수인에게도 임차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택 임차권의 대항력이 발생하는 경우는 이렇습니다.
- 임대차의 등기: 임대차의 경우 등기를 할 수 없다고 오해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임대차도 임대차계약상 반대약정만 없다면 임대인의 협조를 받아 등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임대차의 경우 등기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 주택 인도(점유) + 주민등록(전입신고): 대부분의 경우 임차인은 임대차목적물에 이사한 후 전입신고를 마침으로써 다음날 0시부터 대항력을 취득하게 됩니다.
위 ②번 요건을 충족하여 임차인이 대항력을 획득한 경우, 임대차목적물이 제3자에게 처분되더라도 임차인은 양수인에게 임차권으로 대항할 수 있습니다. 즉 임대차목적물의 주인이 바뀌더라도 임차인은 임대차기간 동안 그대로 거주할 수 있고, 임대차계약이 만료될 경우 새로운 주인에게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보증금 우선변제권: 다른 채권자들보다 우선적으로 보증금을 변제받기 위한 요건
그런데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떨까요? 이 경우 임차인으로서는 임대차목적물을 경매에 넘겨 해당 경매절차를 통해 보증금을 변제받아야 하는데, 경매에는 임차인뿐만 아니라 임대인의 여러 채권자들도 참여하기 때문에 임차인이 대항력뿐 아니라 해당 채권자들에 우선하여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 즉 우선변제권을 취득하였는지가 중요합니다. 물론 법령이 정하는 일정한 금액(서울시의 경우 5,500만 원) 이하는 우선변제권을 획득하지 않더라도 경매개시결정등기 전 대항력만 갖추면 최우선적으로 보호되므로, 보증금이 해당 금액 이하라면 우선변제권 획득 여부는 문제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보증금이 해당 금액을 초과한다면, 초과된 부분을 경매에서 다른 채권자들보다 우선하여 반환받기 위하여는 위 ②번의 요건에 더해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부여받아야 합니다. 확정일자는 주민센터 방문 또는 인터넷등기소 온라인 신청을 통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아래 요건을 충족하면 대항력과 더불어 우선변제권을 취득할 수 있고, 우선변제권을 취득한 임차인은 후순위 권리자나 일반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경매대금에서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습니다.
주택 인도(점유) + 주민등록(전입신고) + 확정일자
3. 임차권등기명령제도
이때 주의할 점은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모두 한번 취득하였다고 하여 그 효력이 계속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각 요건들이 유지된 상태이어야 그 효력도 계속해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채로 임대차목적물에서 이사한다면 점유 요건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므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도 그와 동시에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임차인이 이미 새로운 집을 구하여 이사를 나가야만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 때문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권등기명령 제도를 두어,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 임차인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여 임대차목적물에 임차권을 등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임차인이 앞서 살펴보았던 ②번 요건(점유+전입신고)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법률에 기해 ①번 요건(등기)을 충족할 수 있도록 정함으로써 임차인을 보호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쉽겠습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의 집행에 따른 임차권등기가 마쳐지면, 임차인이 이미 취득하였던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이 그대로 유지되고, 이사를 하는 등 요건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그 효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4. 대법원 2024다326398 판결: 등기시까지 대항요건을 충족하여야 대항력이 유지됨
대법원 2024다326398 사건에서는, 원고(서울보증보험)가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여 그 등기가 마쳐지기 3일 전 임차인이 주택에서 이사하였는데 기존의 대항력이 그대로 유지될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습니다. 해당 사건의 제2심은, 현실적으로 임차권등기명령과 등기 기입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점, 근저당권자가 선순위의 임차권이 존재함을 알고 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한 점 등을 고려하여 임차권등기 전에 점유를 상실하였다고 하더라도 등기가 마쳐짐으로써 기존의 대항력이 유지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임차권을 등기하지 않더라도 등기와 동일한 효과를 부여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규정의 취지를 고려할 때 대항요건이 계속 존속하여야만 대항력이 유지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임차권등기명령이 내려졌더라도 임차인이 임차권등기 전에 이사하였다면 대항력이 상실되고 임차권등기가 마쳐진 때 새로운 대항력이 발생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사안에서는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이후 근저당권설정등기가 경료되어 결국 임차권등기의 대항력이 해당 근저당권에 우선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하여 원고는 경매를 통해 주택을 매수한 매수인인 피고를 상대로 임차권의 대항력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2심의 판단은 임차권등기가 경료되는 데에 시간이 소요되는 실무를 고려하여 임차인의 손을 들어준 판결인 반면, 대법원은 임차권등기명령제도가 임차인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인 만큼 그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어느 정도 임대인의 손을 들어준 판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임차권등기명령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임차권등기가 마쳐진 이후 이사해야 기존의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이 점을 꼭 유의하셔서 손해를 입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최앤리 법률사무소 전한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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