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기술 너머의 공감, 삶의 난제를 푸는 세 개의 이야기

5월 28일 오전 11시, 역삼역 인근 구글코리아 본사에서 ‘창구 프로그램 7기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빌딩숲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가운데, 세 명의 창업가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들의 목소리엔 기술에 대한 열정보다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7년간 써내려온 성장의 서사
캐런 티오 구글 아시아태평양지역 플랫폼 및 디바이스 파트너십 부사장 (c)플래텀

캐런 티오(Karen Teo) 구글 아시아태평양지역 플랫폼 및 디바이스 파트너십 부사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창업의 ‘창’과 구글플레이의 ‘구’를 따온 창구 프로그램의 여정을 되짚어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2019년 출범 이래 660개 스타트업을 지원했고, 이들이 유치한 투자 규모는 1,772억 원에 달합니다.” 처음 발표한 177.2억 원을 정정하며 웃음을 자아낸 순간이었다. 창구 6기 참여 기업들은 전년 대비 매출 60% 증가(318.6억→515억 원), 수출액 130% 증가(57.9억→131.7억 원)라는 눈부신 성과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 7기 선정 기업 중 46%가 AI 기업으로, 2년 전 대비 3배나 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AI 기능 도입에서 벗어나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적인 AI 솔루션 개발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테오 부사장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했다.

(왼쪽부터) 김준배 아이클로 대표, 권서현 무니스 대표, 김정은 잼잼테라퓨틱스 대표 (c)플래텀
1,772억 원의 기적,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

잼잼테라퓨틱스의 김정은 대표가 자신만의 특별한 동기를 털어놓았다. 뇌성마비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게임 업계에서 12년을 보낸 후 창업의 길을 택했다.

“편마비 아이가 바지를 올리지 못해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어머니가 계셨어요.” 김 대표의 목소리에 잠깐 떨림이 스쳤다. “집중치료를 몇백만 원씩 받아도 6개월은 걸린다던 것이, 저희 게임을 일주일만 해도 주먹을 쥘 수 있게 됐죠.”

그녀가 개발한 ‘잼잼400’의 핵심은 단순함이었다. 별도의 고가 장비 없이 태블릿이나 스마트폰만으로도 손의 움직임을 정밀 분석해 맞춤형 재활 운동을 제공한다. 구글 미디어파이프 모델을 기반으로 22년 차 재활치료사들과 협업해 만든 이 시스템은 놀라운 경제적 효과를 보여줬다. 1회 대면 치료 비용으로 최대 380회의 운동 훈련이 가능해 재활 치료비를 무려 22배나 절감시켰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3명 중 1명이 재활치료가 필요하지만, 재활치료사는 100만 분의 1도 안 된다. 이 절망적인 수치 앞에서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희망의 도구가 됐다.

“하루에 600번, 700번씩 아이들이 스스로 재활 동작을 해요. 엄마가 ‘잼잼 게임 할래?’ 하면 알람까지 맞춰놓고 기다리죠.” 7월 출시 예정인 ‘핑크퐁과 잼잼 프렌즈’는 인기 IP를 접목해 더 많은 아이들에게 다가갈 계획이다.

2,424만 명이 찾는 치과, 그 뒤의 숨은 불평등

아이클로 김준배 대표는 지체장애가 있는 지인 자녀의 망가진 치아를 본 순간 창업을 떠올렸다.

“2022년 전체 국민의 47.1%인 2,424만 명이 치과 외래 진료를 받았습니다. 치과 진료비만 5조 2,213억 원이죠.” 김 대표가 제시한 수치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저소득층, 장애인, 고령층일수록 구강 질환에 더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어요.”

전 국민 대상 구강검진을 시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지만, 건강검진 수검률 80%에 비해 구강검진은 25%도 안 된다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홈덴 앱의 핵심 기술은 20년 이상 경력의 현역 치과의사들이 라벨링한 천만 건 이상의 치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알고리즘이다. 충치, 치석, 마모, 파절 등 10여 개 구강질환을 98% 이상의 정확도로 진단한다. 단순한 진단을 넘어 환자에게는 세컨드 오피니언을, 의사에게는 사전 진료 계획을, 보험사에게는 부정 청구 예방 효과를 제공한다.

“수익보다는 뿌듯함이에요. 기술로 조금이라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광주광역시와 AI 원격검진 협약을 맺고 취약지역 무료검진을 진행하는 그의 얼굴에는 진심이 어려 있었다.

70만 명의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처방전

무니스의 권서현 대표는 자신의 불면증에서 출발했다. 약물 부작용 때문에 탈모까지 경험한 그녀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 탄생한 ‘나이틀리’는 2022년 4월 출시 직후부터 입소문을 타고 현재 누적 가입자 80만 명을 보유한 서비스로 성장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저희에게 알려주시면, 가장 비슷한 고객을 찾아서 그들에게 효과적이었던 수면 소리를 재생해드려요.” 나이틀리의 차별점은 개인 맞춤화된 모노럴비트 조합이다. 사용자의 기분과 활동 내역을 분석해 뇌파를 동조시키는 뇌과학 기반 솔루션을 제공한다.

한국 앱스토어 헬스·피트니스 앱 부문 1위를 꾸준히 기록하며 누적 수면 서비스 700만 시간을 돌파한 성과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경찰대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이 합격 소식을 전해왔고, 해군 장병은 와이파이 없는 바다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멜라토닌을 오래 복용하기 어려운 분들, 화학 반응 없는 지속 가능한 솔루션을 원하는 분들이 찾아오세요.” 작년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의 여성 파운더스 펀드(Women Founders Fund)에 선정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진출 첫 달에 앱스토어 헬스 피트니스 카테고리 8위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글로벌을 향한 꿈, 그리고 현실

세 기업 모두 해외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잼잼테라퓨틱스는 서울아산병원과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유럽과 미국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며 글로벌 임상 파트너십을 확대할 예정이다.

무니스는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일본은 진출하자마자 바로 순위권에 들었지만, 미국은 이미 성숙한 시장이라 차별화 포인트를 고민하고 있어요.”

아이클로는 치과 인프라가 부족한 해외 시장을 겨냥한다. “미국은 치과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예요. 충치의 단계별 진단은 전 세계 어디나 동일하니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의 주제처럼, 이들의 기술에는 따뜻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복잡한 알고리즘 뒤에 숨어 있는 건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였다. 장애 아동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 불면에 시달리던 이가 깊은 잠에 빠지는 순간, 치과 공포증 환자가 안심하고 검진받는 장면. 기술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세 명의 창업가가 그리는 미래 지도 위에는 국경도, 장벽도 없었다.

창구 프로그램 7기 미디어 라운드테이블 현장 (c)플래텀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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