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남쪽 끝, 싱가포르와 다리 하나로 이어진 인공섬에 이상한 학교가 하나 있다. 네트워크 스쿨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젊은이들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코딩을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호주산 립아이 스테이크를 썰어 먹고, 오후에는 ‘어떻게 하면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토론한다. 저녁이면 상업용 헬스장에서 땀을 흘린다.

말레이시아 남단 인공섬의 한 호텔. 이곳에서 전 세계 테크 기업가들이 모여 코딩을 하고, 고급 스테이크를 먹으며,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바로 기존 국가 시스템을 뒤흔들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국가’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곳은 전 코인베이스 임원 발라지 스리니바산이 세운 ‘네트워크 스쿨’이다. 그는 『네트워크 국가』라는 책을 통해 영토보다는 공통된 가치관으로 뭉친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제시했다. 그리고 지금 그 이론을 실제로 테스트하고 있다.
지난달 홍콩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 스리니바산은 이렇게 선언했다. “18세에 대학을 고르듯, 앞으로는 18세에 자신이 살 국가를 고르게 될 겁니다. 스타트업 사회들이 이미 그 시작을 알리고 있어요.”
황당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실험장인 포레스트시티에는 이미 4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한 달에 1500달러(약 200만원)를 내고 숙식을 해결하며, 오전에는 코딩을, 오후에는 ‘국가 만들기’ 이론 수업을 듣는다.
포레스트시티는 원래 중국 개발업체가 1000억 달러를 들여 건설하려던 미래도시였다. 하지만 계획은 참담하게 실패했고, 현재는 계획 인구의 50분의 1도 채 살지 않는 유령도시나 다름없다.
스리니바산이 하필 이곳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임대료가 싸고, 싱가포르와 가까우며,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곳을 살리기 위해 면세혜택까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패밀리 오피스(초부유층 투자회사)에는 세금을 아예 면제해준다.
네트워크 스쿨의 일과는 독특하다. 아침엔 제품 개발과 코딩, 오후엔 메이지유신부터 싱가포르 국정운영술까지 배운다. 미국 장수 구루 브라이언 존슨의 ‘죽지 않기’ 철학을 따라 단백질 위주 식단을 유지하고, 상업용 헬스장에서 빡빡하게 운동한다.
“우리 모두 몸짱이 되고 있어요.” 암호화폐 스타트업 창업자인 학생 프라드 누칼라의 말이다.
하지만 진짜 목표는 따로 있다. 스리니바산은 이곳에서 개발한 ‘템플릿’을 마이애미, 두바이, 도쿄 등 전 세계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최종 목표는 기존 국가들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받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비판도 만만치 않다. 매사추세츠대 교육정책센터의 잭 슈나이더 소장은 “테크 엘리트들의 오만함”이라고 꼬집었다. “자신들이 시스템을 재설계할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방식에 대한 독특한 통찰력도 있다고 믿는 충동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실험들은 줄줄이 실패했다. 피터 틸이 후원했던 ‘바다 위 인공국가’ 시스테딩 프로젝트나, 온두라스의 사설도시 프로스페라는 모두 법적 분쟁에 휘말리거나 투자자들이 손을 뗐다.
하지만 학생들은 만족해한다. 호주에서 온 앨리스 수는 “트랜스휴머니스트 모임에서 시작해 장수 연구 펀딩까지 하게 됐다”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시너지가 크다”고 말했다.
포레스트시티 지역 투자청의 리 팅한 의원도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몰려와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과연 이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은 부유한 테크 괴짜들의 값비싼 놀이로 보이지만,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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