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텀 이가은) 각자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사업을 맹렬히 진행 중인 부부가 있다. 배달의민족을 서비스 중인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와 베이비프렌즈 설보미 CDO(전 우아한언니들 대표)가 그들이다. 평범한 소개팅으로 인연이 된 그들은 5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렀고, 현재 열 살배기 한나와 다섯 살배기 주아를 슬하에 두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배포한 무료폰트 한나체와 주아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결혼 후 그들은 한 번의 사업 실패를 경험했다. 김대표가 현재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하기 전, 자신의 디자인을 제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한 가구디자인사업에서였다. 고객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6개월 만에 전세 자금을 다 날렸다. 사업가의 고달픔을 곁에서 지켜 봤음에도 설보미 CDO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의 사업에 도전한다.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김봉진-설보미 부부에게 그들의 첫 만남부터 프로포즈, 현 사업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어봤다. 다소 여성지스럽다. 이해해 달라.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왼쪽)와 베이비프렌즈 설보미 CDO
우선 지난 9월, 베이비프렌즈와 우아한언니들의 합병을 축하드립니다.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설보미 베이비프렌즈 CDO(이하 설보미): 베이비프렌즈 CDO 설보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이전에는 우아한언니들에서 대표를 맡고 있었어요. 엄마들을 위한 폐쇄형 SNS인 수다마마를 서비스하고 있었고요. 합병 이후 베이비프렌즈로 단일화 하기 위해 현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베이비프렌즈는 수다마마와 성격이 많이 비슷한데 시작점이 조금 달라요. 타겟층을 조금 더 좁혀서 깊게 들어가는 서비스로 가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에 베이비프렌즈로 단일화하는 것을 결정했어요.
<베이비프렌즈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메신저. 육아맘들의 친구를 찾아준다는 개념이다. 수다마마는 ‘엄마들의 비밀 놀이터’라는 별칭을 가진 폐쇄형 SNS. 육아 정보와 이슈들을 제공한다. 기자 주>
김대표님은 설보미 CDO의 서비스를 어떻게 보시나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이하 김봉진) : 2년 전에 준비했어요. 우리 슬하에 아이가 둘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필요한 서비스를 만든거죠. 본인에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 지인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비전에 대해서 무척 공감해요. 그래서 옆에서 어떻게 발전시켜나가는지 쭉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어요. 사실 저희가 각자 서비스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 하지 않아요.
암묵적인 규칙인 셈인가요?
김봉진 : 맞아요.
그러고보니 두 분이 동업을 하실 법도 한데 그러지 않으셨네요.
설보미 : 일하는 스타일은 잘 안 맞아요. 남편으로서 김대표님은 너무 좋고, 존경하지만 일 하는 건 정말 안 맞더라고요. (웃음) 바라보는 것도 다르고요. 결과까지 가는 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요.
김봉진 : 서로 일에 대한 욕심이 강해요. 어떤 걸 하나 진행하면 이렇게 해야겠다, 저렇게 해야겠다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한 사람은 받아주고 한 사람은 끌고 가야 하는데, 서로 자신의 의견이 강한 거죠. 둘 다 일을 할 때는 무척 강하게 하는 편이거든요. 더구나 둘 다 직업이 디자이너이다 보니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예민하게 보게 돼요. 그러다 보니 충돌이 많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저희가 충돌이 나면 옆에서 일하는 사람도 불편해지고요.
설보미 : 이를 테면, 저는 뭔가에 꽂혀서 ‘이거야’ 하면, 몇 일이 됬든 잠 안자고 밥 안 먹고 붙들고 있어요. 제 머릿속에 생각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 아프죠. 반면 김대표님은 목표를 설정해놓은 뒤 정말 꾸준하게 가요. 컨디션 조절을 하면서 하니까 길게 갈 수 있고요. 그러니 김대표님 입장에서는 제가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없죠. 걱정이 되니까. 그런데 또 완급조절하라는 잔소리가 들어오면 저는 ‘파이터’가 되어 버려요. 저는 그걸 기다리는 게 더 힘들거든요. 사실 회사에 있을 때는 이러지 않았어요. 회사 내 스케줄이라는 게 있고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주변 상황 상 자연스레 조절이 돼요.
저희가 웃긴 게, 서로 잔소리를 하면 그걸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소심하게 복수를 해요. 특히 제가 좀 그게 심해요. (웃음) 아무튼 몇 번 겪고 보니 확실히 일하는 스타일은 서로 안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게 반복되다 보면 집안으로 가지고 오게 되더라고요. 평소에는 주변에서 병원에 가보라고 할 정도로 금슬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데, 일을 하게 되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인정했죠. ‘우린 일로는 안 된다, 사랑만 하자’고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김봉진 : 뭔가 대단한 스토리를 기대하시겠지만, 그냥 15년 전에 소개팅으로 만났어요.
설보미 : 2001년이에요. 소개를 주선한 분이 근 1년간 엮어주려고 하셨고요.
어떤 분이 소개시켜 주신건가요?
설보미 : 저에게는 동호회 오빠였고, 김대표님에게는 직장 사수였어요. 그 분이 보시기에 저희 둘 이미지가 비슷했나봐요.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소개해주겠다 말씀 하신 거죠. 처음에는 이성보다는 일에 관심이 있어서 건성으로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둘 다 만나겠다고 해서 만나게 된 거죠.
첫 만남 기억하시나요?
김봉진 : 첫 만남보다는 두 번째 만남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번째 만나는 날, 제가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신용카드를 쓰지도 않을 때였고, 하필 월급 전 날이었던 거예요. ATM기에서 돈을 빼려고 보니까 진짜 만 원도 안 되는 돈만 있는 거예요. 만원 이하는 출금도 안 되잖아요? (웃음) 다음에 만나자고 해야 하나 하다가 약속은 약속이니까 나갔죠. 빈털터리로 가서 ‘저 돈이 없어요’ 라고 했더니, 보미씨가 뭐라 그랬더라?
설보미 : 용감하다고 했어요. 좀 색다르기도 했고요. 두 번째 만남에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만나자마자 그 말을 했으니까요. 본인은 고해성사한 거죠. ‘만나자고는 했는데, 제가 돈이 없다. 미안하다’ 라고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럴 때 급한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다음에 만나자고 했을 텐데 말이에요.
김봉진 : 돈이 없다가 아니라, 그날 쓸 현금이 없다고…
설보미 :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였어요. (웃음)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설보미 : 그날 데이트 비용은 다 제가 냈죠. 그런데 오히려 기분이 좀 좋았던 게요. 이 남자가 돈이 없어도 나를 만나고 싶어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봉진 : 이런 부분이 서로 맞는 것 같아요. 사실 같은 상황이라도 남자, 여자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쟤는 진짜 돈도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걸 이해해주는 모습이 무척 좋았어요.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 5년을 만났죠.
그 과정에서도 믿음이 갔던 게요. 저희 집이 기독교인데, 왜 그런거 있잖아요. 세례 받지 않은 여자는 우리집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는 거. 그래서 ‘엄마가 세례를 안 받으면 결혼 허락 안 하신대요, 어떡하죠?’ 했더니, 보미씨가 교회를 다니고 세례를 받아왔어요.
설보미 : 어릴 때 교회를 다니긴 했어요. 그러다 제가 푹 빠져있다보니 아버지가 못 다니게 하셨고요. 제 입장에서는 이것도 무척 고마운 부분이에요. 다시 종교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거니까요.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봉진 :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자연스러원던 것 같아요. 원래 반말을 했었는데, 결혼할 때쯤 보미씨가 먼저 존대말을 쓰자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서로 존대말 쓰고 있고요.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설보미 : 깊은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제가 성격도 좀 욱하는 게 있고, 무엇 하나에 빠지면 굉장히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뾰족한 게 있어요. 흑백논리도 좀 있고요. 5년 간 이이를 만나며 많이 완화가 됐죠. 제 주변 사람들이 놀라워할 정도로요.
김봉진 : 그리고 제가 까칠해졌죠. (웃음)
설보미 : 김대표님은 원래 허허실실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이고 싫은 소리도 잘 않고요. 오히려 뾰족하게 구는 다른 사람을 잘 달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많이 배웠고요. 저에게는 그냥 멘토이자 소울메이트에요. 이런 존재가 그저 친구라면 가벼울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조금 더 무게를 싣기 위해서 존대말을 썼으면 했어요.
실제 대화를 하더라도 반말을 쓸 때와 존댓말을 쓸 때의 태도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또 결혼을 앞두고 생각해보니까,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가 어떤 대화를 하는지 보고 아이도 배울 것 같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싫어했던 게, 서로 ‘너’, ‘야’ 와 같은 호칭을 쓰는 거였어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저는 그게 많이 거슬리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이야기할 때도 ‘봉진씨’, ‘보미씨’라고 불렀어요. 존대를 하면 호칭도 자연스레 달라지잖아요.
김봉진 : 보통 본인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밖에서 이야기할 때 ‘걔’라고 하잖아요. 자기가 ‘걔’라고 부르면 옆에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럴 때 이름을 부른다거나 ‘내 여자친구는, 보미씨는’ 이렇게 말하게 되면 자연스레 존중하게 되고요. 어른들이 볼 때도 좋아요. 장모님이 보실 때 제가 보미씨에게 존대말을 쓰면, 우리 딸이 결혼해서 사위에게 존중받고 산다고 느끼실 테고 반대로 저희 어머니도 마찬가지이실 테고요.
프로포즈는 어떻게 하셨나요?
김봉진 : 통장에 계좌이체를 하면 보내는 사람에게 뭔가 메시지를 쓸 수 있잖아요. 같은 은행끼리 하면 여섯 자리를 쓸 수 있는데요. 그렇게 특별한 날마다 2년 간 계좌이체를 했어요. 금액은 만 원을 보내기도, 오천 원을 보내기도 했고요. 빼빼로데이에는 11원 보내기도 했고. 마지막 메시지에 ‘같이 재미있게 살자’는 말을 넣고 통장정리를 하지 않은 채 프로포즈하는 날 가져갔죠.
2년 동안 통장에 편지를 쓴 것이군요.
김봉진 : 그렇죠. 돈을 이체시킬 때마다 여섯 자리 메시지를 넣었고, 이어서 읽으면 하나의 편지가 되는 거였어요. 보미씨에게 이걸 가지고 ATM기에 가서 통장정리를 해달라고 했어요. 보미씨는 금액을 확인하러 갔을 수도 있겠지만요. 돈은 얼마 안 됐어요. (웃음)
‘사랑은 ATM기를 타고’ 인 셈이네요. 통장 프로포즈를 받고 어떠셨나요?
설보미 : 펑펑 울었어요.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아요. (웃음) 모든 프로포즈가 그렇듯 결혼하는 신부의 입장에서는, 그게 크든 작든 내가 결혼할 남자가 나를 위해 준비해줬다는 자체만으로 눈물이 날 수밖에 없잖아요. ‘드르륵’하고 통장에 찍히는 소리가 날 때 봉진씨가 ‘돈을 엄청 많이 모아서 금액으로 어필하려는가?’ 라는 생각도 했어요. (웃음) 그런데 편지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2년 간의 편지를 보니까 숫자는 안보이고 내용만 보였어요. 그렇게 읽어 내려가다가 마지막 메시지를 읽는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말하면 울먹울먹하는데… 너무 감동이었죠.
울먹거리지 않게 할 수 있는 질문이 있어요. 금액은 얼마였나요?
설보미 : 100만 원이 조금 넘었던 것 같아요.
김봉진 : 아냐, 200만 원은 됐어요. 그런데 그 돈은 어쨌어요?
설보미 : 임신했을 때 야금야금 빼서 간식 사먹었어요. 태교하는데 잘 썼죠.
김봉진 : 잘했어. (웃음) 결혼하기 전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하나 더 있어요. 제가 4형제 중에 막내인데, 어머니가 저랑 제일 잘 맞아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결혼 약속을 한 뒤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다고 말을 했는데, 보미씨가 흔쾌히 동의해줬어요. 지금도 모시고 살고 있고요.
설보미 : 부모님이 오히려 저희 걱정을 많이 했어요. 신혼인 저희가 많이 불편할 거라고요. 그런데 저에게는 가장 1순위가 신랑이에요. 신랑이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면, 언제가 됐든 할 거잖아요. 그럼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살림이 자리가 잡힌 뒤 새로 합치면 더 어려울 수 있으니까 익숙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합치고 시작하는게 낫겠다고 판단했고요. 그래서 이견은 없었어요.
다만 저는 엄청 편한데, 시부모님들은 불편하셨을 거예요. 제가 며느리라고는 하지만 살뜰히 챙기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일하는 저를 오히려 더 챙겨주세요. 슬하의 자식들 챙기는 것도 힘드셨을 텐데, 이제 며느리와 손녀들까지 챙겨야 하니까요. 무척 감사하죠.
고부간의 갈등도 없이 너무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입니다.
설보미 : 어디 가서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요. 왜 불만이 없느냐고요. 다소간의 불편한 건 있었죠. 그런데 나머지 것들이 그런 것을 다 상쇄시켜주고도 남아요. 그리고 집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신랑도 일하거나 집에 있을 때 편잖아요? 저한테 기준은 그거예요. 이이가 편하게 일하고, 집에서도 편하게 있을 수 있게 하는 거요. 드라마에서 보면, 중간에 끼인 사람이 제일 힘들잖아요. 신랑은 중간에 낄 수밖에 없거든요. 주변에 잡음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사람인데, 집에 문제가 있으면 불편하잖아요.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것 같아요.
김봉진 : 제가 사업에 한 번 실패했잖아요. 그 때 옆에서 보미씨가 잘 도와주는 걸 부모님이 보셨기에 많이 믿어주고 계세요. 같이 산지도 이제 9년이네요. 내년이 결혼 10주년이거든요.
한나와 주아, 두 따님이 있으신데요. 자제분 교육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김봉진 : 저도 그렇고 보미씨도 그렇고, 한국 교육에 안 맞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공부를 못했어요. 꼴찌도 해봤죠. 저희 두 사람의 생각은 한국정규교육에 맞춰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잘 찾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요. 이것이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제라고 보고요.
설보미 : 저희가 원하는 걸 아이한테 강요하지 않는 것, 이게 1원칙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더라도 주입식 교육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김봉진 : 두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나야, 아빠가 누구를 제일 사랑한다구?’ 하면, ‘나! 한나!’ 이런 이야기를 무척 자연스럽게 하고 있죠. 또 하나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언젠가 아이가 자아를 찾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부모가 지원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저희 성장에도 신경을 써요.
설보미 : 정말 이기적이죠? (웃음)
김봉진 : 내가 잘 돼야 우리 가족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거죠. 아이가 스무살이 되어서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빠가 정년퇴직을 준비하고 있다든가 하는 어려운 상황이면 부모가 지원해주는 것이 어려울 수 있을 수 있잖아요? 더불어 엄마와 아빠가 자신의 일을 정말로 사랑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끔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나와 주아에게 계속 이야기 하고 있어요. ‘정말로 한나와 주아를 너무 사랑하고, 아빠와 엄마 인생도 멋지게 살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항상 하죠.
아무래도 사업을 하게되면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김봉진 : 그런 이야기 많이 듣는데요. 하루에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문제라고 봐요. 저희는 아이들과 규칙을 정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일하는 시간, 주말은 아이들과 온전히 보내는 시간으로요. 주말엔 이메일 정도 확인하는 것 말고는 일을 안 해요. 아이들하고만 보내고 있죠. 그렇다보니 평일엔 아이들이 안 찾아요.
설보미 : 이렇게 되기까지 저희도 시행착오가 많았죠. 정말 다행이었던 건 시부모님이 도와주셨다는 거예요. 시부모님 없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
김봉진 :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죠. 양가 부모님 중 한 쪽의 희생이 없으면, 스타트업을 하든 맞벌이를 하든 둘 다 경제활동을 한다는 게 정말 어렵잖아요.
설보미 : 사회적으로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예요.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걱정이라 말은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에 대한 해결책은 없어요. 아직은 더 끌어안고 감싸 안아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도요.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환경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예전과 지금은 아이를 기르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품앗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업주부가 많았고, 길가에서 놀아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세상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큰 애들이라도 혼자 놀이터에 보내려면 불안해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큰 딸이 초등하교 3학년인데도 집 앞 놀이터 놀러간다고 하면 불안한 마음부터 들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엄마들이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 사회활동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육아에 대한 짐들이 엄마, 개인에게만 너무 많이 지워져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건 제도적으로 푸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기업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기고 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업에서 그걸 한다면 정부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우아한형제들 경우는, 내부에서 그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실제 직원분들 중에 결혼하신 분들도 생기고 임신한 분들도 생기니까 제도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걸 많이 고민하는 거죠. 부러울 정도로요. 많이 퍼져서 답습하는 회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설CDO님은 김대표님의 사업실패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셨음에도 본인의 사업을 결심하셨어요. 이것도 평범한 접근은 아닌듯 싶어요.
설보미 : 기질적으로 누구 밑에서 수동적으로 일 하는 걸 잘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한다해도 오래가지 못할듯 싶고요. 회사생활을 많이 해봤지만, 항상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어요. 구체화되어 있진 않지만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었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강했죠. 경제적 상황이 있어서 주아를 낳기 2주 전까지 회사에 나가서 일을 했어요. 그때 정말 절실히 느꼈죠.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요.
설대표님이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김대표님은 어떠셨나요?
김봉진 : 원래 일하던 사람인지라 일을 하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는데요. 스타트업을 하겠다는 건 저도 좀 고민이 되었죠. 옆에서 실패하는 사례도 워낙 많이 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시작했거든요. 하면서 배운 거죠. 그래서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면서 배워보세요’ 라고 했어요. 엄마로서의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부분에는 크게 공감했고요. 한 1년 넘게는 저희 사무실에서 같이 있었어요.
이후 수다마마를 서비스 하다가 9월에 베이비프렌즈와 합병하셨는데요. 류대표님과 합병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설보미 : 베이비프렌즈 류민희 대표님은 이전에 그루폰 유아동 분야에서 오래동안 일을 하셨고, 그 과정에서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이 생긴 분이예요. 처음엔 프로젝트 단위로 엄마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는 지, 한번 친구를 맺으면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가는지부터 조사를 시작하셨어요. 그러면서 엄마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쥐고 흔든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실제로 육아뿐 아니라 남편의 셔츠부터 양말까지 하나하나를 다 엄마가 구매를 하잖아요? 절대 망하지 않는 산업분야 중 하나가 바로 유아동 시장인 거죠.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커머스에 접근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을 이해해보자는 것의 연장선에서 시장성도 발견한 경우죠.
류대표님은 발로 뛰는 걸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예요. 이 사업을 조금 더 키울 방법을 찾으면서 VC 등 도움이 될 만한 분들 정보를 수집해서 메일을 다 보내기도 했죠. 회신을 주신 분들은 일일이 찾아뵙고요. IDG벤처스코리아 이희우 대표님도 그렇게 만나게 됐어요. 류대표님이 이대표님의 강연이나 쫄투(쫄지말고 투자하라)를 계속 찾아간 거죠. 그렇게 눈도장을 계속 찍던 어느 시점에 술 한 잔 하면서 투자의 연이 됐고요.
우아한언니들하과도 그런 식으로 맺어졌어요. 류대표님이 먼저 찾아오셨죠. 당시 우아한언니들은 안에서 관리하는 스타일이었고, 베이비프렌즈는 뛰는 스타일이었어요. 저희는 수다마마만 신경 썼지, 다른 서비스를 서치하거나 하는 것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어요. 사전 조사도 없이 서비스를 만들고 엄마들이 어떻게 쓸까, 어떻게 들어올까만 봤거든요. 베이비프렌즈라는 서비스가 있는지도 몰랐고요. 그런데 류대표님이 찾아오셔서 말씀 하시기를, ‘수다마마가 뭔가를 계속 하는 것 같은데 모임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알지도 못해서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하시더라고요. 류대표님이 두 달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찾아오시더라고요. 오셔서 별 이야기도 안 해요. 어찌 지내나, 동향은 어떤가, 서비스는 어떤가 그런 이야기였거든요. 그러다 두 달이 지나니까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교집합이 많이 생겼기에 이제 결정을 하는 게 좋겠다고요. 저희 구성원들도 류대표님의 적극성에 완전 빠졌거든요. ‘저희는 이런 부분이 부족해요, 베이비프렌즈는 이런 게 부족해요, 그럼 둘이 같이 하면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요?’ 이렇게 시작됐어요.
서로 부족한 부분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설보미 : 저희의 경우는 서비스가 얼마나 예뻐 보이고, 정갈해 보이고, 사람들이 보기에 편리해 보이느냐가 중요한 기준이었어요.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거였죠. 그런데 이 과정이 정말 오래 걸리는 작업이에요. 자금을 넣는다면 시간을 조금 줄일 순 있겠지만, 어쨌든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드는 거죠. 이것에 속도를 붙이려면, 제가 IR도 하고 홍보도 하면서 서비스를 계속 이슈화시켰어야 했는데, 저는 이 안에서 운영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거든요. 반면에 베이비프렌즈는 사내 대부분의 이사님들이 다 밖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예요. 네트워크 쌓고, 베이비페어 참가하고, 산모교실이나 엄마 등 고객을 1:1로 만나러 찾아가고요. 다만 발로 뛰는 것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데, 안에서 밀도 있게 운영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 부분이 서로 부족한 부분이었는데, 양사가 만나니 시너지가 나더라고요. 합병 결정을 잘했다고 봐요.
합병이후 현재 어떻게 진행중인가요?
설보미 : 앱 단일화를 진행 중이에요. 시간은 조금 더 걸릴 거 같고요. 두 서비스가 개발 언어 자체가 다르기에 바로 붙이는 건 어려움이 있거든요. 현재는 베이비프렌즈에 집중하고 있어요. 수다마마는 자체적으로 운영되게끔 두고 있는 중이고요. 수다마마 컨셉을 베이비프렌즈에 어떻게 녹여낼지를 고민해 내년에 베이비프렌즈 2.0을 오픈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김대표님은 이 과정들을 옆에서 지켜보셨을 텐데요. 느낀점이 있다면요?
김봉진 : 이야기는 계속 들어왔지만, 따로 제 의견을 말한적은 거의 없어요. 그저 비슷한 스테이지의 다른 스타트업 사례를 이야기 해주거나, 제가 경험한 것에 근거해 VC 관점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 정도였죠. 진지하게 말했다기보다 툭툭 던져준 셈이죠.
설보미 : 연못에 돌멩이를 하나 던지듯 툭 던지고 가세요. 그럼 혼자 생각하죠. ‘아, 그런가? 그럼 이 시점에서 뭘 준비해야 하지’ 하고 생각하게 돼요. 그걸 가지고 다시 저희 식으로 해석하는 시간을 가지고요. 그렇게 방향을 잡고 있어요.
김봉진 : 류대표님과 보미씨가 함께한다고 했을 때 애초에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잘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어요. 이번에 이희우 대표님이 사외이사로 합류하신 것도 그 중 하나이고요.
배달의민족 이야기도 좀 해보고 싶어요. 요즘 수상 소식이 참 많이 들리는데요?
김봉진 : 대한민국 광고 대상에서 대상 두 개를 수상했고요. 청년기업인상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게 됐어요. 광고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지표나 성과로도 나왔기에 관심을 주신 것 같아요. 그에 대해 무척 감사히 생각하고 있고요. 한국광고홍보학회에서도 올해 최고의 광고상으로 배달의민족을 선정했는데요. 작년에 디자인상을 받았다면 올해는 광고, 마케팅 쪽으로 상을 받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많이 즐겁고 재미있어요. 지인들은 대통령 표창을 받는 것에 놀라는 게 아니라, 제가 ‘청년’이라는 것에 놀라요. 왜 청년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인 거죠. (웃음) 데뷔 12년차가 신인상받는 것 같다고도 하고요.
린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말하듯, 숫자를 정교하게 다루어서 빠지는 것 없이 ROI를 잘 맞춰야 한다고 하죠? 저희 회사 내에서도 그 부분을 열심히 다루고는 있지만, 결국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잘 잡느냐의 관건인것 같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 배달의민족이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죠. 사업이라는 게,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설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잖아요? 그게 증명이 되었을 때 무척 기쁘고요. 증명된다는 것의 지표가 여러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건 제가 생각했던 가설들이 하나씩 입증되어가고 있다는 작은 증거라고 보고요.
일부에서는 저희처럼 사업하면 위험하다고 걱정을 많이 하시기도 해요. ‘광고도 저렇게 광고하면 안 돼, 제품의 특장점을 이야기 해야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가 무슨 광고야, 재미외엔 없어, 실제 지표와는 무관할 거야’ 라는 이야기예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단초가 될듯 싶어요. 더불어 HS애드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고요.
류승룡씨를 모델로 발탁하면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김봉진 : 처음 모델 선정할 때, 류승룡씨가 다음 작품을 뭘로 하는지를 봤어요. 우선 표적은 류승룡씨의 매력을 잘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연기력이 워낙 뛰어나신 분이시니까요. 그 다음 영화로는 명량을 하고 있대요. 이순신 장군 일대기를 그린 웅장한 영화라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류승룡씨가 이순신 역할이 아닐 거라 생각 못했어요. ‘천만 배우인데, 당연히 이순신이구나’ 하고 정말 대박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개봉한 뒤 보니 왜장이시더라고요? 광고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1편의 메시지는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였잖아요. 좀 묘한 상황이 된거죠. 영화 예고편이나 광고 포스터가 붙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저희에겐 류승룡씨가 이순신이라는 게 너무 당연했으니까요. 그러고 영화를 보러갔는데, 류승룡씨의 목이 베어져서 걸려있는 거예요. 다른 분들은 이순신 장군의 비장함을 보고 우는데, 저는 그게 너무 슬펐어요. ‘아니, 우리 배우가 목이 배어서 걸려 있어…’하면서요.
설보미 : 그 장면 나올 때 정말, 김대표님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제 손을 꼬옥 잡으셨어요. 어떡하느냐고요.
김봉진 : 지나고나니 류승룡씨가 왜장이었어도 연기를 너무 잘했기에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에도 류배우님 보면서 진짜 ‘의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고주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정말로 파트너십을 가지고 해주는 모습이 멋졌죠. 저희가 따로 이야기한 건 한 번도 없는데, 시사회 나가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멘트 해주신 부분이 어필되기도 했고, 아이스버킷챌린지 할 때도 저희 티셔츠입고 해주셨죠. 저희가 하는 것들 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말씀 한 마디도 무척 따뜻하게 해주셨어요. 특히 이번 2편 경우는 CF모델로서 많이 힘든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2박 3일 동안 여러 장소를 옮겨가면서 찍었거든요. 그 과정을 저희 구성원들이 다 옆에서 지켜봤는데요. 다들 멋지고 존경스럽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인간적인 매력이 무척 많으신 분인 것 같아요.
우아한형제들의 사업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김봉진 : 우아한형제들이 함께 하고 싶은 회사,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회사가 되길 바라요. 그렇게 하다보면 좋은 기회들이 계속 생기리라 생각하고요. 라인을 통한 일본 진출도 저희가 계획했던 것 아니예요. 지난 인터뷰 때 말씀드렸듯,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이슈는 전혀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우리 일을 하고 있는데, 라인에서 ‘지금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을 일본에서도 해 볼 생각 없느냐’고 제안해주셔서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사업 계획 보다는 우리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멋진 조직을 만들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좋은 기회는 찾아올 것이고 그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게끔 내공을 키우고 체력을 단련시키자는 거죠. 이게 저희 회사의 철학이에요.
베이비프렌즈는 어떤가요?
설보미 : 베이비프렌즈의 가장 큰 장점은 구성원들의 끈기에요. 구성원들이 모두 유부남, 유부녀인데 항상 저희가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일을 하고 싶지만 경력단절이 된 엄마들. 그로 인해 힘들어 하는 남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그 분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그 분들의 가정이 조금 더 화목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만들자’는 거예요. 직접 우리가 만들어서 ‘이거 할 수 있는 거야, 단지 시간이 조금 걸리고 돈이 조금 필요하고 의지가 필요한 것 뿐이야. 그때까지 버티는 힘만 있으면 돼’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내년도 목표라고 한다면, 지금 이런 마음, 근성과 끈기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법인 설립은 마쳤으니 베이비프렌즈 2.0 준비하는 것에 박차를 가해야죠. 문제없이 잘 론칭하고,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서 사용자가 많아지길 바라고 있고요. 글로벌 진출도 생각하고 있기에, 그 기반을 닦는 해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긴다면요?
김봉진 : 늘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해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많이 저를 믿어주고 변화시켜 준 사람이 보미씨예요. ‘여자의 지조는 남자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나타나고, 남자의 지조는 남자가 모든 것을 얻었을 때 나타난다’고 하잖아요? 당장 내년이 결혼 10주년인데요. 좋은 곳에 같이가려고 해요.
설보미 : 저 해외여행 가는 건가요? (웃음) 이이를 만난 15년 동안 제가 정말 사람이 많이 됐어요. 곰에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일을 하면서 신랑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는 거예요. 흰머리도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사업 4년째 되어가면서 머리가 많이 하얘졌거든요. 솔직히 마음이 많이 쓰여요. 건강을 좀 지켰으면 좋겠어요.
제가 늘 이야기 하는 게, ‘나이 들어서도 손잡고 같이 산책했으면 좋겠다’예요. 저희 결혼할 때 사진 찍은 것 중 하나가 둘이 앉아서 꼿꼿하게 서서 카메라 쳐다보며 찍은 건데요. 그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쓴 글이 ‘50년 후에도 이와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 너무 사랑해서 맺어졌는데, 이 첫 마음을 50년 뒤에 다시 되새겼으면 좋겠다’ 예요. 내년 10주년인데 지금같으면 50년 뒤에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건강을 우선시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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