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테슬라’ 중국에는 ‘비야디(BYD)’ 그리고 그 곳의 한국인
일설에 의하면 생전 등소평이 홍콩에 방문한 뒤 ‘왜 우리는 이런 도시가 없나’라고 개탄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계획도시가 심천(深圳, Shenzhen)이라는 것이다. 80년대 후반까지 심천은 어업이 주류였던 인구 1만 명 수준의 어촌이었지만, 지난 20년 간 급속한 변화를 거쳐 현재는 인구 2000만 명 규모의 도시가 되었다.
설을 떠나 심천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성장한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더불어 현재는 시진핑이 주목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시진핑의 창업정책의 키워드인 인터넷 플러스와 중국제조 2025의 핵심 도시이기 때문이다.
심천은 중국의 계획경제로 탄생한 경제특구로 소위 제조업에 특화된 도시다. 설계도 혹은 제품 샘플만 있으면 대량생산에서 소량생산까지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 2014년 기준 전세계 휴대폰의 약 50%를 생산하는 국가 중국에서 약 70% 생산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특히 심천에는 800여 개의 글로벌 메이커 공장을 비롯해 소규모 공장이 포진해 있어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각국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러시가 진행중이다. 각설하고.
심천에는 전기차와 IT,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거인이 있다. 바로 비야디(BYD, 比亞迪)다.
1995년 왕촨푸 회장에 의해 설립된 비야디는 배터리 제조 기업으로 세계 2위 자리에 까지 올라섰으나, 2003년 중국 국영기업 친추안 자동차를 인수하며 자사 배터리 분야 노하우를 접목해 전기자동차 시장에 뛰어든다. 이후 2008년 비야디의 이름을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F3모델을 선보인 뒤 승용차, 택시, 버스 및 관공서용 특장차 등을 생산하며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더불어 IT분야에서 삼성과 모토로라, 레노버, HTC, LG 등 기업에 ODM 공급을 하고 있으며, 친환경 뉴에너지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각설하고.
비야디에는 한국인 직원이 있다. 그것도 비야디에서 ‘모셔간’ 임원이다. 심천 비야디 헤드쿼터에서 최문용 중앙연구소 기술이사를 만나봤다.
비야디 이전 커리어패스를 이야기해 달라. 그리고 비야디와 어떻게 인연이 된건가?
비야디 이전에는 모토로라 코리아에 적을 뒀었다. 휴대폰 안테나 계통에서 잔뼈가 굵었고. 모토로라 코리아 시절 비야디(BYD)와 협업을 했었다. 신기술이 적용된 안테나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양사가 처음으로 하는 시도였음에도 성공적으로 출시를 하게 되었다. 그때 비야디 중앙연구소 소장과 인연이 되었다.
이후 모터로라 코리아가 한국에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연구소장이 스카웃 제의를 하러 한국으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원래 내 생각은 미국으로 가거나 한국에 남아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로간에 이야기가 통해 비야디로 오게 됐다. 그렇게 조인을 한지 3년 정도 됐다.
협력사 직원을 영입하기 위해 비야디의 연구소장이 정성을 기울인거다.
모토로라 소속으로 함께 일할 때 인상적이었다고 하더라. 재미있는 오퍼라고 생각하고 합류했다. 연구소장의 사내 위치도 제대로 알지는 못 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 보니 연구소장 밑으로 3천 명이 넘는 직원이 있더라. 임직원급이 직접 찾아와 오퍼를 준건데, 당시에는 몰랐다. (웃음)
합류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나?
한국까지 직접 찾아와서 나를 찾아준 것이 가장 컸다. 내 능력을 인정해 주는 곳에 가서 일을 하는게 의미가 있다고 봤다. 더불어 비야디에서 좀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판단했다. 만약에 내가 미국에 갔거나, 국내 대기업에 있었다면 이전 직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직에 뭍혀갔을거다.
직책이 중앙연구소 이사다. 임원인 셈이다. 회사에서 바라는 역할이 있었을듯 싶다.
연구소장이 나를 데려온 이유로 세 가지를 이야기 했다. 우선 휴대폰 안테나와 관련해 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달라고 했다. 두 번째로는 연구소 중국인 엔지니어들의 스킬업을 요구했다. 세 번째로 계약서에 명시된 역할이나 직원으로만 남지말고 인간적으로 관계를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그중에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중국인 엔지니어의 스킬업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비야디에 온 후 지난 2년 간 한 것이 팀 교육이다.
관련된 고민을 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 어떤 선배가 남긴 문구가 떠올랐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이해한 대로 이야기 하자면, ‘큰 고기를 잡으러 왔는데, 큰 고기를 잡으려다 작은고기도 놓친 것 같다. 하지만 고기를 낚는 법을 배웠다. 후배들도 그런 것을 학교에서 배우길 바란다’라는 내용이었다.
전 직장에서 정말 좋은 레퍼런스를 봤고, 그것을 내 것으로 응용하면서 많이 배웠다. 좋은 어부들의 고기 낚는 법을 나에게 맞게 체득한거다. 당시 동료들과 스터디나 세미나도 자주했다. 그것이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비야디에서도 그것을 하기로 했다. 비야디만의 ‘레슨런’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엔지니어들을 일일이 만나 그들이 문제를 해결했던 과정을 체크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DB로 만들어 공유하도록 했다. 그것이 하나 둘 쌓으면서 우리만의 레슨런이 구축되었다. 내가 아는 것을 일방적으로 알려주기 보다 직원들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별도의 서버를 만들어 엔지니어들과 공유했고, 현재는 폴더가 쌓이고 쌓여 스크롤을 꽤 내려야 할 정도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재산이 되고있다.
앞서 말했듯이 고기 낚는 법을 알려주려는 시도다. 그리고 계속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더불어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무리 좋은 자료라도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안 볼 수 있다.
강제적인 방식도 있다. 1년 52주 간 세미나 스케줄을 잡아서 진행하고 있다. 주제는 나와 발표자가 미리 정하고, 발표내용은 이틀전에 공유한 뒤 매주 진행한다. 처음에는 내가 주도를 했고, 휴대폰 안테나 책부터 시작했다. 이후에는 엔지니어에게 주제 발표를 시키고 있다.
세미나는 영어로 진행한다. 엔지니어들이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해 처음에는 본인이 하고싶은 말을 써와서 읽으라고 했다. 다만, 책에 있는 것을 읽지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 적어도 작문실력이라도 늘지 않겠나 싶었다. 그 다음에는 안 보고 하는 연습을 하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전문적인 교육 외 꾸준히 스킬업 미션을 줬다. 회사업무가 있어서 52주를 꽉 채우진 못하고 있지만, 매주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것도 DB가 쌓이더라.
대신에 엔지니어들에게 큰 부담은 안 주려 한다. 1시간 세미나를 한다면, 10분 정도를 엔지니어에게 맡기고 나머지 50분은 내가 발표를 한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해야 한다. 쉽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잘 이해하지 않겠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잘 하는 것을 찾아보고, 국내외에 잘 된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더 발전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격려해가면서 진행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세미나 등 교육을 통해 성장했던 직원 중 대표적인 사례를 이야기해 준다면?
레노버로 이직한 친구와 오포(oppo)로 이직한 친구, RFMD로 이직한 친구다. (웃음) 잘 따라오고, 키워놓은 친구들이 다른곳으로 이직을 한다. 좀 쓰린 부분이다.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 더 좋은 조건으로 옮기는 거니까. 하지만, 나한테 배웠다고 소문이 나서 역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레노버에 미팅을 갔더니 우리회사에서 그곳으로 옮긴 직원이 내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하더라. 비야디에서 원리부터 노하우까지 익힌 친구다. 관계자가 레노버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칭찬하더라. 흐뭇하면서도 아쉬웠다.
중국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은 것이 있다면?
인터뷰 하는 지금(오후 5시 30분) 아마 밖에 나가면 모두 퇴근했을거다. 고객이 내일까지 결과물을 달라고 했을 때도 직원들이 조급하지 않다. 이것이 중국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일은 한다. 다만 느릴뿐이다. 한국에서처럼 퇴근이후라도 일을 시켜서 결과물을 도출시키기 보다 이들의 행태를 인정하고 업무시간에 효율적으로 일을 배분하는 것이 이곳에서 리더의 역할이다. 일을 제때에 하게끔 버퍼를 가져다 주는거다. 나도 이 부분에서 꽤 힘들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말을 자주 바꾼다. 더불어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책임을 가지게 하려고 유도한다. 정 안되면 내가 책임진다고 한다. 그러면 안 하다가도 하더라. 그래서 시쳇말로 자주 지른다. 일은 해야하니까.
여담이지만, 비야디에 오기 전에 중국어는 할 줄 알았나? 혹은 통역이 별도로 있나?
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잘 하는건 아니다. (웃음) 알아듣기는 한다. 다만, 모든일은 영어로 하고 있다. 통역은 애초에 없었다. 중국어는 못 해도 재미있다.
심천에서는 비야디의 전기자동차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회사 이야기를 해보자. 외부에서는 비야디를 전기차 제조 기업으로만 보지만, 그외에도 주력사업이 2가지가 더 있다.
그렇다. 전기자동차 외 IT, 뉴에너지 분야가 있다. 비야디는 1995년에 설립된 회사다.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분야는 배터리 분야다. 미국 법인을 세우면서 휴대폰 부품 제조 사업에 진출했다.
2003년에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에 자체 모델 F3가 시장에서 히트를 치면서 영역을 확장 중이다. 현재 심천이나 시안, 상하이 등 시정부에 택시와 버스 및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특장차를 전략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올해 더 좋아질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홍콩에 택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홍콩 내 택시 대부분은 LPG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존 차량 유지비용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시장 공략을 하고있다.
비야디는 자동차를 만들 때 엔진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부품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IT분야와 뉴에너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야디는 중국내 휴대폰 분야 최대 ODM 공급기업이다. 관련 엔지니어만 2000명이 넘는다. 각종 IT 부품사업 외 어셈블리, 셀폰디자인 사업도 하고 있다. 메탈, 플라스틱 몰딩, 광학 등 카메라 쪽 사업도 하고있다.
ODM분야 우리 고객으로는 한국의 삼성과 LG를 비롯해, 노키아, HTC, 델, 도시바, 모토로라, 화웨이, HP 등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제조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는 고객이 디자인과 타켓을 정해주면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제조를 돕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샤오미 보조배터리 외장도 우리가 만든 것이다.
비야디의 성장과정을 수치로 이야기 해 준다면?
비야디는 95년 설립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연 6~70%이상 성장해왔다. 현재 매출은 82억 달러를 기록중이다. 현재 직원수만 18만 명이 된다.
앞서말했듯이 비야디 사업의 시작은 배터리다. 관련되어 자부심이 강하다. 게다가 중국정부의 지원도 크다. 유사시 중국이 압박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기름이다. 하지만 우리 사업은 기름이 없어도 되는 분야다. 비야디가 민영기업임에도 그 부분에서 정부와 상성이 맞는 것이다.
뜬금없는 질문이겠지만, 비야디는 워렌버핏이 투자한 회사다. 투자 외 경영부문에서 도움이 되는 부분은 뭐라보나?
관련해 정확한 것을 말해주기는 어렵다. 내가 아는 부분도 적고.
비야디의 조직이 광범위하다 들었다.
우선 비야디의 헤드쿼터는 중국 심천과 LA 두 군데에 있다. 더불어 중국 내 베이징, 시안, 상하이를 비롯해 11군데의 공장과 사업조직이 있다. 한 부문에 특화된 지역도 있지만 전기자동차, IT, 뉴에너지 분야가 혼합되어 공존하는 지역도 있다.
그리고 해외 타겟 지역마다 서포트 조직이 있다. 미국에는 샌호세 쪽에 IT분야와 관련해 애플과 아마존을 서포트하는 조직, 시카고에는 모토로라를 서포트하는 조직이 있다. 한국에도 두 군데가 있다. 용인쪽에 삼성, 가산쪽에 LG를 서포트 조직이다.
글로벌제조사들이 완제품을 만드는데 서포트를 해주는 역할(ODM)을 하고있다. 충분히 기술력이 된다고 보는데, 자체적으로 스마트폰을 출시한다는 계획은 없었나?
비야디로 왔던 초기에 그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우리 연구소장 왈 “우리가 스마트폰을 안 만들면 모든 회사가 고객이지만, 스마트폰을 만드는 순간 모두의 적이된다. 회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려면 포기해야 한다”라고 하더라. 동감했다.
더불어 몇 년 전 비야디의 주요고객과 지금의 고객이 다르다. 또 다음세대에는 어떤 기업이 우리의 고객이 될지 모른다. 우리에게 적합한 포커싱이라 본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휘발유 차를 만들었다면, 차별화와 경쟁이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전기자동차는 다르다. 게다가 지금보다 앞으로 더 잘 팔 수 있다. 더불어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분야다.
비야디의 주요 사업영역.
비야디가 전기차 부문에서 한국진출 소식이 있다.
내가 맡은 분야가 아니라서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재 진행중인 것은 맞다. 제주도를 우선적으로 보고있다. 한국과 중국의 전기차 충전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있기에 모듈변경 관련해 변경승인이 필요하다. 한국쪽 기업(KCC)과 협업을 하고있는데, 승인작업을 마치면 올해 연말쯤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어떤 차종을 선보이나?
한국에서는 승용차보다는 관공서 차량, 특장차 분야를 보고있다. 참고로, 비야디 전기차는 3시간 30분에 풀로 충전이 가능하며, 완충된 상태에서 350km 운행이 가능하다. 더불어 급속충전을 했을 시 30분 만에 80%충전도 된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심천에 자리를 잡고있기에 어떤 전기차 택시는 이곳에 와서 급속 충전을 하고 간다. 비야디에서 하면 무료이기 때문이다.
비야디는 규모가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져있지는 않다. 한국기업과 미팅을 할 때 애로사항은 없었나?
일부 기업은 중국회사에서 왔다고 하면,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 회사가 글로벌 회사로 커가려면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인식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것을 중국의 실체라 믿는 부분도 있고. 중국에서 3년을 지낸 경험자로 어떻게 보나?
중국은 정말 다이나믹하게 변하고 있다. 한국을 뛰어넘었다 생각되는 것도 많다. 그런데 중국이 정말 무서운 것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임에도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 원석이 다듬어지는 순간 세계가 놀라게 될거라 본다. 우리 직원들만 해도 현재까지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많지는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퀄리티와 제품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노동자들의 레벨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뭐든지 배워서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것이 보인다. 비야디의 인재들 역시 파트너사와 일하면서 각 기업의 스타일을 배우고 습득하는 중이다. 중견기업 쪽에서는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해서 내놓는 제품의 퀄리티는 그리 낮지 않다. 그렇게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프로가 되고있다. 더불어 이쪽계통 이직률이 매우 높다. 그렇게 인재가 희석되면서 레벨업이 되는 양상이기도 하다. 13억 인구가 한국 수준 정도로 올라온다면 큰 변화가 있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