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는 중관촌. 하드웨어는 심천’
중국 정부는 80년 대부터 혁신 클러스터를 설립해 인프라 구축에 열중해 왔다. 이과정에서 탄생한 곳이 중국 청년창업의 상징과도 같은 중관촌(中关村)과 각 지역에 ‘소프트웨어 파크, 하이테크 파크’ 등 명칭으로 들어선 혁신 산업단지이다.
2015년 베이징 중관촌과 심천 소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레전드스타’에 방문한 리커창 총리
베이징 중관촌은 우수인력과 정책지원, 자금이 몰리면서 중국 전체 창업투자의 1/3이 집중되고 있는 혁신 클러스터이다. 북경대, 칭화대 등 40여 개 대학과 200여개의 국가 과학 연구소, 국가지정 실험실·연구센터가 있으며, 과기원, 유학생창업단지, 창업 유관시설이 통합된 중창공간(众创空间)이 조성되어 있다. 중국 정부에서는 중관촌에 창업과 관련된 기금조성, 해외진출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청년 및 기술창업 활성화를 위한 혁신거리(이노웨이innoway) 조성,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유사한 인큐베이팅·투자·미디어 등 창업지원 서비스 플랫폼 등이 구축되어 있다.
심천(선전)과 상하이, 청두 등은 창업 거점으로 중국 정부의 전략적 지원을 받고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2선 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경제 활성화 지원책을 내놓는 중이다. 이러한 정책 속에서 2선도시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소프트웨어 파크’, ‘하이테크 파크’ 등으로 불리우는 산업단지, 창업특구이다. 심천 소프트웨어 산업단지, 청두 티엔푸 소프트웨어 파크 등 창업특구는 지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저렴하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창업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 정치인들 상다수가 이곳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베이징 중관촌이 소프트웨어의 중심이라면, 심천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가장 주목하는 지역으로, 개방형 제조인프라 및 네트워크 기반을 쉽게 활용하여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심천은 스마트기기 제조기반이 구축되어 있고 부품수급과 소규모제품 생산이 수월하여 최단기간 내 제품제작 테스트 및 완성이 가능하고, 하드웨어 창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 및 500여 개 창업지원공간이 소재하고 있다.
올해로 6회 행사를 맞이하는 메이커페어 선전은 원조격인 미국의 행사규모를 뛰어넘는 글로벌 메이커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더불어 산자이(짝퉁) 천국에서 메이커 온상으로 변모한 심천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 사진 = 플래텀DB
1980년대 후반까지 중국 심천은 인구수 몇 만의 어촌도시였다. 이 도시가 급발전은 이룬 것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 영향이다. 그렇게 시작한 심천은 20년 간 급속한 변화를 거쳐 인구 1200만 명 규모의 대도시가 되었다.
경제특구로 계획된 심천에는 글로벌 제조기업 800여사의 제조공장이 존재한다. 3대 물류항, 우수한 제조 인프라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더 규모가 커진 세계 최대 IT 만물상 화창베이 전자상가, 파격적인 정부 지원 등 세계 하드웨어 분야 기업에게는 우호적인 여건이다. 때문에 하드웨어 창업을 꿈꾸는 개인과 스타트업이 중국 심천으로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천에 스타트업이 몰리는 이유는 단순히 제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곳에는 산업 디자인과 기구 설계와 전자회로 설계를 아웃소싱할 수 있는 수십, 수백 개의 디자인 하우스가 있고, CNC 및 진공 주조 등을 통해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는 공장도 즐비하다. 시 정부와 민간이 협업해 ‘디자인 도시’라는 색깔이 덧입혀지는 중이다.
경제성장 및 실업률 등 이유로 중국 정부가 창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에 호응하는 민간영역의 화답이 없었으면 현재와 같은 열기는 없었을 것이다. 중국 대표 IT기업인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샤오미 등도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적극적 투자를 진행하며 창업 4.0에 일조하고 있다. 대기업으로 성장한 ICT 기업들이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유망 스타트업에 적극 재투자하는 선순환 창업 문화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심천 남산구 ‘소프트웨어 산업단지’에 위치한 레전드스타 인큐베이팅 공간 / 사진 = 플래텀DB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창업자보다 많다?
이런 환경에서 전문적으로 창업자 및 초기 기업을 돕는 기획사 ‘액셀러레이터’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창업자보다 엑셀러레이터가 더 많다’는 농담이 들릴 정도다.
특히 심천에는 창업지원공간 뿐만 아니라 액셀러레이터가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은 지역의 우수한 하드웨어 인프라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실제 비즈니스로 성장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아이디어를 빠르게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할 수 있게 돕고 실제 상품의 생산/유통을 지원한다.
큰 리스크없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창업에 의지를 둔 중국 청년들에게 크게 어필되는 부분이다. 더불어 중국 창업자들에게는 알라바바 마윈과 샤오미 레이쥔 등 확실한 롤모델이 존재하기에 동기부여 또한 크다.
심천에는 총 500개가 넘는 창업 지원 공간이 있다. 심천이 인구 2천만 명이 살고 있는 대도시임을 감안해도 많은 수다. 그중에 난산지구는 베이징시의 중관촌와 같은 창업거리가 조성된 곳으로 이곳에서만 100여 개가 넘는 창업관련 기관들이 모여있다.
중국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는 어떻게 돈을 벌까?
중국의 엑셀러레이터나 인큐베이터는 기본적으로 창업자에게 공간제공, 교육, 투자유치 연계, 네트워킹, 마케팅 등 기본업무를 진행하는 한편 각 기관마다 운영기업의 특성에 맞게 특화된 영역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들어 텐센트와 징동의 경우 유저 트래픽이나 확산채널, 온라인 마케팅 측면에서 강점이 있는 엑셀러레이터다. 중국계 엑셀러레이터는 아니지만, 심천을 기반으로 하는 하드웨어 엑셀러레이터인 헥스(HAX)의 경우 선정된 배치팀의 하드웨어의 설계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함께한다. 또한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점에는 실리콘 밸리로 건너가 투자자와 미디어를 대상으로 데모데이까지 진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의 하드웨어 엑셀러레이터가 중국 VC와 미디어를 대상으로 변주해서 운영하고 있다.
액셀러레이터들은 입주팀 중 시장성이 높다고 자체 판단한 기업, 개인에게는 직접 투자를 한다. 보통 10~30만 위안(한화 1,700만~5천만 원) 규모의 시드 머니다. 투자하며 받는 지분은 10~20% 수준이다.
또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돕는다. 킥스타터와 같은 해외 주요 플랫폼에서 모금을 진행할 경우, 홍보 영상이나 상세 페이지 제작, 홍보 등에 약 1억 원의 비용이 소진된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목표 모금액을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제품 양산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에 액셀러레이터마다 다르겠지만, 영상 제작과 상세 페이지 디자인 등을 지원함으로써, 초기 기업이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지 않도록 하는 곳도 있다.
다만, 징동 크라우드펀딩 등 중국 현지 플랫폼 내에서도 충분한 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에 킥스타터와 같은 해외 플랫폼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다는 것이 중국 액셀러레이터들의 말이다.
중국 최고 하드웨어 액셀러레어터로 불리우는 ‘잉단’ / 사진 = 플래텀DB
상장사가 만든 액셀러레이터
심천 내 액설러레이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잉단(硬蛋, IngDan)’이다. 2013년에 설립되어 직원 수만 700여 명이 넘는 잉단은 하드웨어 창업과 서비스 컨셉만 가져오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의 창업 지원 공간의 성격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는 경우이고 두 번째로는 민간에서 창업 지원 공간을 기업형으로 직접 창업한 경우다. 잉단은 중간적인 성격이다. 잉단의 모회사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시총 2조 기업인 오픈마켓 코고바이(Cogobuy)다. 주요 협력사로는 바이두, JD, 360,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브로드콤, 샤오미까지 다양하다.
잉단은 보편적인 액셀러레이터 형태와는 다르다. 연결된 스타트업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을 돕는 네트워커이자 컨설턴트에 가깝다.
잉단 관계자는 ‘한 달 평균 방문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만 300여개 사다. 우리에게 제품 컨셉만 가져오면 디자인, 부품사 연결, 제조, 마케팅, 유통 등을 원스톱으로 서비스가 가능하다. 더불어 미국 크라우드펀딩 서비스와 연계되어 효율적으로 론칭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즉 창업자가 컨셉을 가지고 오면, 디자인과 프로토타이핑 및 이후 대량 생산까지 연계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잘 갖추어진 심천 인프라와 만 개에 달하는 자사 네트워크(협력사)를 설명한다.
리시펑 잉단CTO는 “잉단의 특징으로는 IoT 창업자를 위한 원스톱 공급망 플랫폼을 지녔다는 점이다. 1만 개 이상의 혁신적인 프로젝트와 1천만 명의 팬, 5천 개 이상의 공급사를 지녔으며 중국 내 IT 대기업들과 IOT 오픈형 에코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이런 특징을 기반으로 잉단은 제품 컨셉만 있으면 제조, 마케팅, 유통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 핵스 내부 전경 / 사진 = 플래텀DB
하지만 처음부터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가 성업한 것은 아니다. 심천 최초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라고 할 수 있는 핵스의 벤자민 조프 GP(General Partner)는 “심천 지역 제조 회사들이 스타트업 수요 수준에 맞지 않아 어려웠다. 게다가 당시 헥스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발로 뛸 수 밖에 없었다. 현지 협력 업체들을 돌아다니며 ‘스타트업의 제품 수요량이 많지 않지만 추후 성장가능성과 위탁 스타트업이 다양해질수록 협력 업체 또한 더 좋은 기술력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요지로 그들을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문제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마련하며 내부적으로 역량을 키웠다는 것이다.
2016년 핵스 배치팀으로 참가한 더알파랩스 이준희 대표는 “처음 입주했을 때는 딱히 좋은 점을 몰랐다. 근데 좀 지내다 보니 왜 여기가 성공의 땅인지 알 거 같았다. 이곳에서는 항상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다. 쉼과 업무의 경계가 없다. 일이 진행되는 속도의 차원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소재 하나 구하려면 용산, 구로로 나가야 하니까 하루, 이틀이 소모된다. 여기는 5분만 걸어가면 용산 전자상가의 10배 규모인 화창베이가 나온다. 금형 하나 제작하는 데에도 비용 차가 어마어마하다. 한국 비용에서 0하나를 떼면 된다. 소량 생산도 말만 잘하면 한 개부터도 가능하다. 만약 영어랑 중국어가 동시에 된다면, 일의 속도는 2배로 빨라진다. 핵스의 핵심 매니저들이 제공하는 멘토링과 네트워크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의 의의를 설명했다.
심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다양한 재료를 싸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화창베이 전자상가다.
심천은 규모의 경제로 가는 스타트업의 시장검증 무대이기도 하다. 모바이크와 오포 등 공유자전거 서비스는 1년이 채 되지않은 현재 심천 교통수단의 20%를 점유하고 있을만큼 급성장중이다. / 사진 = 플래텀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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