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쯤 중국에서 QR코드를 활용한 서비스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을 보고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언제적 QR코드야’라는 상념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한물 간 트랜드였고, 기술적 새로움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QR코드가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 결제수단으로까지 확산되는 것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을 이롭게하는 것이라면, 혁신적 기술은 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통한 확산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 QR코드의 합법화는 지난해 하반기가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그간 QR코드 결제를 통한 핀테크 서비스는 법 테두리 밖에 있었던 것이다. 2014년만 하더라도 중국 정부는 QR코드 결제 서비스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 모바일 결제 서비스 업체 및 은행 등에 QR코드 지불 관련 업무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금지가 아니라 권고 수준이었기에 명맥이 이어졌고, 쉽고 빠른 서비스의 유용성과 4억 명이 사용하는 확장성,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안전성이 증명되자 정식으로 인정되었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보완하는 형태로 귀결된 것이다. 꽉 막힌 국가라 여길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합리적이다. 네거티브 규제였기에 가능한 부분이겠다.
아울러 중국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 성장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될 법한 서비스에 단기간에 자금과 인재가 몰려 규모의 경제로 진입한 기업, 서비스가 된다는 것이다. 택시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이 그랬고, 근래에는 모바이크 등 자전거 공유 서비스가 그렇다.
네이버랩스 심천지사 최문용 지사장은 이러한 중국의 역동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 지사장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 기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제대로 관찰해 내재화 한다면 우리 기업에게 더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하 심천 소프트웨어 산업단지에서 만난 최 지사장과의 일문일답.
최문용 네이버랩스 심천지사장
심천의 대외적 위상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심천은 하드웨어 인프라는 발달된 지역이다. 글로벌 제조사가 스마트폰 하나 개발하는데 1년 정도 걸린다면, 심천에서는 같은 제품을 3개월 정도면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환경이 좋아진 배경에는 글로벌 기업들이 심천에 공장을 지으며 품질이나 기술 등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중국 회사들이 짝퉁제품을 만들기 위해 우후죽순 설립되었다. 다만 근래 환경이 변했다. 6~7년 전에는 삼성 등 메이커가 연간 2~30개 모델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연간 내놓는 제품의 수가 많지 않다. 베낄 제품이 없어져 심천에 있는 짝퉁 제조 기업들의 일이 줄어들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축적된 기술을 활용해 색다른 제품을 내놓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심천에서 나오는 제품들을 보면 기존 메이커가 만든 신제품에 이들이 새롭게 추가한 기능이 접목된 형태다. 어떻게 보면 또다른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다. 과거 화창베이 전자상가를 가보면 애플이나 삼성 짝퉁이 다수였지만, 현재는 ‘이 제품에 이걸 접목했네?’싶은 신기한 제품을 자주 본다. 더불어 심천을 기반으로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 중국 제조사들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회사가 화웨이, 오포, 비보, ZTE, TCL 등이다.
심천은 하드웨어 창업과 관련된 인프라도 발달해 있다.
심천은 계획도시다. 자그만했던 어촌이 경제특구가 된거다. 역사적인 도시는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인프라가 좋다. 심천은 시제품 제작, 디자인 제공을 하는 회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A부터 Z까지 제공해주는 회사도 있고, A부터 C까지 해주는 회사도 있다. 제품을 개발할 때 필요한 요소가 다 갖추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창업자 입맞에 맞춰 선택할 수 있고, 하고자하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구현시켜주는 환경인 거다.
더불어 아이디어만 있다면 그것의 구체화를 돕는 ‘메이커스페이스’들이 다수 있다. 컨설팅 개념이라고 보면 될텐데,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제조사, 디자인 회사, 부품 회사를 연결해 준다. 그런 메이커스페이스가 민간에만 40여 군데 있다. 정부쪽 지원도 잘 되어있다.
한국의 IT기업이나 벤처기업에게 심천과 중국기업과의 협업은 어떤 의미가 있나?
최대한 빨리 나와야 한다고 본다. 같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한국에서 하는 것과 심천에서 하는 것은 절대적인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빨리 내놓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해야 한다.
일례로, A라는 한국 기업이 어떤 하드웨어 샘플을 만들일이 있었다. 비딩을 통해 한국 제조사에서 받은 견적이 4대 만드는데 8000만원 이었다. 하지만 같은 스펙으로 심천 중국 기업에서 견적을 받아보니 300만원이라고 하더라. 재미있는 것은 데모보드도 같았다는 거다. A기업은 심천 중국 기업과 계약하고 2개월 만에 샘플을 제작해 받았다.
심천이나 중국에서 놀라운 기술이라 여겼던 기술이나 제품이 있었나?
기술의 혁신도 혁신이지만 확산을 보게된다. 대표적인 것이 QR코드를 활용한 페이먼트 기술의 대중화와 모바이크와 같은 공유자전거 서비스다. 중국 사람들은 현재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모바일로 거의 모든 결제를 한다. 과일을 파는 가판이나 채소가게에서도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를 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이용하는데 불편한 것이 없다. 중국은 더 이상 낙후된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못 하는 이유는 기술이 없어서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다. 그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모바이크의 활성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모바이크가 처음 등장한 것이 작년 10월 메이크페어 행사 때였다. 당시 행사장에 샘플 몇 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후 한 달 만에 심천 전역에 깔렸고 현재 33만 대가 운행되고 있다. 이후 모바이크는 몇몇 과도기 이슈를 거쳐 현재 지하철, 버스, 택시에 이어 심천 대중교통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서비스가 되었다. 굉장히 빠르게 대중에게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만큼 중국은 다이나믹한 변화를 하고 있다. AR이나 VR 등이 대세라고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나 개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업이 어떤 인프라를 통해 확산하느냐다.
중국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특징은 뭐라고 보나?
같이 먹고사는 것에 익숙하다. 예를들어, 어떤 아이디어가 있어 기획자와 엔지니어 디자이너가 모여 창업을 결심했다고 치자. 이들은 철저하게 서로에게 이익이 가게 분배하며 사업을 진행한다. 특히 어떤 것을 더 만들어야 할 때 내부 인원으로 부족하면 인원을 뽑아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하는 곳과 협업을 진행한다. 어떤 사업 아이템이 유망하다고 해서 혼자 독식하려 하지 않고 함께 커가는 것을 선택한다. 자연스럽게 같이하고 같이 나누는 협력 문화에 익숙하다. 시장의 크기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배울 부분이라고 본다.
기업 문화도 우리와는 다른점이 있다. 어떤 시사점이 있을까.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여러 회사를 인수하지만, 합작회사를 만들어 키우는 전략을 취하지 기업 바운더리 안에 그 회사를 넣지 않는다. 내 것이라기 보다 더 큰 것을 보는 관점이다. 어떻게 보면 실사구시다. 그렇게 해야 더 큰 돈을 번다는 것을 아는거다.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과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중국 기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제대로 관찰해 내재화 한다면 우리 기업에게 더 큰 발전이 있을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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