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딥테크’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
연이은 벤처 산업 성장세 속 원천기술 기반의 ‘기술창업’이 주목받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2021년 연간 창업기업 동향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정보통신업, 전문과학기술업 등의 창업 건 수가 역대 최초 23만을 돌파하면서 업계 내 유망 산업으로 촉망받는 추세다.
‘딥테크(Deep Tech)’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소개되는 자리가 마련됐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이하 블루포인트)의 9번째 데모데이가 12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개최됐다. 블루포인트의 오프라인에서 데모데이는 2019년 카이스트에서 열린 5회 행사 이후 3년 만이다.
블루포인트의 데모데이는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사를 비롯해 창업 유관기곤, 예비 창업자, 연구원, 학생 등 1000여 명이 참석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행사 중 하나다. 블루포인트는 2014년 설립 이후 지난달까지 총 255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피투자 기업의 기업가치를 합하면 약 4조458억 원에 달한다.
올해 데모데이는 ‘딥 임팩트’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지구의 소행성 충돌 위기를 다룬 1998년 영화 ‘딥 임팩트(Deep Impact)’에서 따 왔다. 영화 속 소행성처럼 갑작스럽게 다가올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혁신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블루포인트가 ‘딥테크 액셀러레이터’를 표방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블루포인트는 초기 기술 기업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기존 데모데이가 초기 스타트업의 가능성에 방점을 뒀다면, 이번 행사에 나선 12개 스타트업은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성’에 초점을 맞췄다. 직전 해 투자 기업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데모데이의 관행과는 달리 이번엔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이 무대에 오른 것.
이날 행사에 나선 스타트업은 미래의 위기를 환경, DT(디지털 전환), 산업, 주거 등에서 혁신하는 기업들로 구성됐다. 참여 스타트업은 인투코어테크놀로지, 위미트, 뉴트리인더스트리(이상 환경), 랩노트, 뒤끝, 이너버즈(이상 환경), 퀀텀캣, 크라이오에이치앤아이, 알티엠(이상 산업), 스페이스웨이비, 케이엘, 리브애니웨어(이상 주거) 등이다.
인투코어테크놀로지(대표 엄세훈)는 2014년 KAIST를
위미트(대표 안현석)는 식물성 대체육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위미트는 육류 소비가 가속화되면서 발생하는 윤리적, 환경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고기’를 제안한다. 그 첫 번째로 위미트는 2021년 버섯을 이용하여 닭고기 식감을 살린 100% 식물성 치킨 위미트 프라이드를 선보이며, 치킨도 닭고기 없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가장 앞글자인 ‘환경’은 당대의 화두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는 80%가 폐수로 이뤄져 처리가 어렵다. 뉴트리인더스트리(대표 홍종주)는 음식물 폐기물을 활용해 곤충 사육을 자동화했다. 음식물 쓰레기에 영양분을 첨가해 곤충 먹이로 만들어 수분을 없애고, 더 나아가 동물의 사료로 재활용을 할 수 있게 했다. 바이오컨버전 기술을 이용해 환경위기에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앤트(대표 최종윤)는 KAIST 출신 대학원생들이 설립한 바이오, 나노, 화학 분야에 최적화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기술 및 솔루션 개발 전문 기업이다. 회사의 대표 서비스인 ‘랩노트’는 바이오, 나노, 화학 분야 연구 데이터 통합 기록, 관리 솔루션이다. 랩노트는 데이터 통계 및 시각화, 연구 및 실험 프로세스 관리, 템플릿을 활용한 실험 계획서 및 결과 보고서 자동화, 데이터 연동을 통한 QA 시스템화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에이에프아이(대표 권오현)가 제공 중인 ‘뒤끝’은 국내 최초의 게임 서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다. 회원가입, 확률 관리 등 게임 개발에 필요한 서버 기능들을 클라우드 API 형태로 제공한다. 이를 통해 게임 개발자는 서버 지식이 없어도 게임 서버와 서버 기능을 손쉽게 구축할 수 있다. 뒤끝은 2018년 정식 론칭 이후 게임 서버 개발에 대한 수요를 바탕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올해 9월 기준 뒤끝의 누적 가입 개발사는 2800여 곳으로, 작년 동월(약 2000개) 대비 40% 확대됐다. 누적 게임 유저 수는 4900만 명에 달한다.
최근 이슈가 된 메타버스는 가장 가파르게 성장하는 신산업 분야로 여겨진다. 이 영역에서 이너버즈(대표 임정혁)는 딥러닝 기반 메타휴먼 제작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이너버즈는 디지털 휴먼 디자인 및 컨텐츠 기획, 디지털 휴먼 구현 및 촬영, 편집 등의 원스톱 영상 제작 솔루션을 제공한다. 특히 베테랑 연구 인력이 상주한 가운데 고도화된 딥러닝 기반 디지털 휴먼 제작 기술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퀀텀캣(대표 강신현)은 상온 촉매를 활용안 고농도 VOC 제거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퀀텀캣이 개발한 금 나노촉매는 고온에서만 작동하는 기존 백금족 촉매의 한계점을 극복하여 상온에서도 유해물질 제거가 가능한 아직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최신의 신소재로, 이를 직접 개발하고 제품화 한다는 것이 강점이다.
국내 유일의 초저온 냉각기술 보유 업체 크라이오에이치앤아이는 극저온 냉동기를 만드는 회사다. 주요 생산품인 크라이오진공펌프는 20K(-253℃)에서 기체 분자를 차갑게 해 운동 에너지를 없애고 펌프 내에 얼려 붙잡아 둔 뒤 제거하면서 진공을 만드는 방식이다. 산소나 수분에 취약한 첨단 공정에 이 기술이 활용된다. 반도체에선 이온 임플란트(Ion implant)과 메탈 스퍼터링(Sputtering) 공정에, 디스플레이에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과 옥사이드 스퍼터링 공정에 이 방식이 쓰인다.
알티엠(대표 성기석)은 인공지능 기반 첨단 제조 공정용 스마트 팩토리 공정 진단 솔루션을 개발한다. 2018년 설립한 알티엠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최첨단 제조 산업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이슈를 AI 기술을 도입해 보다 효과적이고 정확한 제조 프로세스를 운영하도록 솔루션 개발 및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0년 반도체 건식 제거(Dry Strip) 장비시장 점유율 세계 1위인 피에스케이와 ‘실시간 공정 제어가 가능한 원자층 식각(ALE) 장비 개발’ 과제에 참여하며 반도체 제조 산업에서 이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LG전자, 현대모비스, 서울반도체, 엘오티베큠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 속한 기업들과 협업하며 혁신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
스페이스웨이비(대표 홍윤택)는 모듈러 건축 시스템 기술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주거공간 및 숙박시설을 개발하는 OSC(탈현장건설·Off-site Construction) 콘테크(Constrution+Technology) 스타트업이다. 모듈러주택 자체 브랜드인 ‘웨이비룸’은 올 3분기에만 80채를 계약했다. 단독주택, 전원주택, 세컨하우스 등으로 활용하려는 3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 연령대가 주고객이다. 독채펜션 등 숙박시설과 타운하우스 등 주거단지를 개발하는 시행사도 웨이비룸을 찾고 있다. 스페이스웨이비는 주거 공간인 ‘웨이비룸’ 외에도 집을 접어서 수출할 수 있는 ‘웨이비홈’, 공도를 주행할 수 있는 이동형 공간 ‘웨이비휠’ 등도 개발 중이다.
케이엘(대표 이길원)은 주택하자 점검 서비스 ‘홈체크’ 운영사다. 홈체크는 2018년 2월 케이엘이 출시한 주택 점검 서비스로 전문적인 하자 점검 서비스를 통해 주택 품질 토탈 솔루션을 제공한다. 3인 1조로 구성된 건축 기술자들이 주택 유형과 연식에 상관없이 모든 주택 및 시설물을 점검한다. 고객들은 전용 앱을 통해 진단 솔루션을 받을 수 있다.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재택근무 및 한달살기가 트랜드가 됐다. 이러한 트렌드와 함께 발빠르게 업계에서 성장을 이뤄나가는 회사가 바로 리브애니웨어(대표 김지연)이다. 리브애니웨어는 2020년 6월 와그트래블 출신 김지연 대표가 설립한 한달살기 숙소 추천 서비스이다. 장기숙박-단기임대차의 콘셉트를 계약서 시스템으로 연결함으로써 시장 구성원인 게스트와 호스트들의 애로사항을 해소해주고 있다. 서비스 론칭 2년 여 만인 지난 9월 기준 리브애니웨어 앱 다운로드 수는 100만을 돌파했고, 설립 첫 해 매출 대비 올해 매출은 40배 이상 증가가 예상된다.
이날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는 “‘2번째 지구는 없다’ 같은 당위성을 강조하는 메시지와 개인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소프트 솔루션’만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며 “근본적으로는 기술을 통한 극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블루포인트의 데모데이를 거친 스타트업들은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2016년 1회 데모데이에 참여했던 의료기기 스타트업 플라즈맵은 내달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또 4회 데모데이에선 불가사리 활용 친환경 제설제 스타트업인 스타스테크와 민간 우주 발사체 개발사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소개되기도 했다.
스타스테크는 해양 폐기물로 알려진 ‘골칫거리’ 불가사리 골편에 이온을 흡착하는 성질이 있다는 점에 착안, 저부식성 친환경 고상 제설제 ‘ECO-ST1’ 개발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제설제는 차량 및 도로 부식 현상과 사람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분질 날림도 해결해,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대표적인 ESG 딥테크 스타트업으로 꼽히고 있다. 스타스테크는 지난해 4월 시리즈B 투자 유치를 마치고 친환경 액상비료 및 불가사리에 함유된 콜라겐 성분을 활용한 의료용 미용제품 등의 사업을 확장하며 친환경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이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 유일 메탄 기반의 액체 우주로켓을 만드는 로켓 개발 스타트업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모빌리티 산업 속 우주 인공위성 분야의 성장을 견인하는 곳이다. 페리지는 기업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쉽고 빠르게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주고, 기업은 이를 통해 제품의 성능 확인 후 다시 개발에 들어가는 사이클이 빨라져 업계의 페인 포인트(불편함) 공략 및 초소형 로켓에 대한 수요도 충족하고 있다. 페리지는 지난해 말 제주도에서 국내 스타트업 최초 액체 로켓 발사 실험에 성공하고 본격적인 우주 발사를 위한 연구 개발에 들어가 업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25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오다 보니, 진짜 기술은 성능과 경제성, 라이프스타일이 다 맞아야 시장에서 환영을 받을수가 있더라”며 “경제적 여건이 녹록지는 않지만, 반드시 주기성을 갖고 회복되는 만큼 스타트업의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