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스타트업 창업기]②공동창업자를 구한다는 것
이전 편 [가상 스타트업 창업기] ①창업 결심을 하기 까지
멋진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경험해주는 스타트업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잘 할 수 있고, 잘 될 것이란 자신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확신도 잠시였다. 현실에서 사업을 검토하면 할 수록 막막함이 커졌다. 혼자 하는 것에 부족함이 느껴졌다. 팀이 아니라 비전을 같이할 사람이 절실해졌다. 관련 업계 지식이 풍부한 사람과 함께 한다면 사업 방향이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실리콘 밸리의 어떤 창업가 말이 떠올랐다.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공동창업자”라고 조언했다. 이어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만큼 쉽게 지칠 수 있는 만큼 같은 목표를 가진 공동창업가와 함께 해야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공감했다. 현재 나는 아이디어만 있고 이를 구조적으로 만들어 줄 공동창업자가 절실했다. 나의 세르게이 브린과 스티브 워즈니악, 데이브 패커드를 만나고 싶었다.
구글 캠퍼스 서울의 대표적인 창업 지원 프로그램 ‘엄마를 위한 캠퍼스(Campus for Moms)’
하지만 공동창업자를 만나기 전 현실적인 어려움이 먼저 보였다. 사회구조부터 불안정한 운영 자금 등 이유도 다양했다.
▲거시적 문제-유리천장에 가로막힌 여성 창업
투자유치가 성공적인 스타트업 운영의 지표가 될 순 없다. 그러나 업력과 업종, 투자 유치 규모와 성비 등이 조사된 투자 관련 보고서를 살펴보면, 2016년 투자유치한 기업은 총 244개, 그 가운데 여성 창업 기업은 16개사다. 총 1조 724억 원이 투자된 스타트업 중에서 여성 기업은 450억 원을 투자 받았다. 그나마도 1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에잇퍼센트(145억 원)와 더파머스(170억 원)등 단 두곳에 불과했다. 2015년에 비해 2016년이 여성이 기업을 운영하기 한결 나아진 상황이라고는 하나 도긴개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 투자유치 금액과 투자유치 기업의 수도 소폭 상승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남성 대표의 투자 유치 및 생겨난 기업 규모는 대폭 성장했다. 사업하기에 녹록지 않은 환경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국내 사정뿐만 아니라 국외 사정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하기 좋다고 일컬어지는 북미권과 중국에서도 여성 창업률이 썩 높은 수치는 아니다. 2016년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여성 CEO는 단 4명뿐이었다. 결국 여성이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는 세계 어디에서나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투자 유치에 성공한 모 기업 여성 대표는 투자 심사 과정에서 꽤나 당황스러운 피드백을 받았다고 토로하는 등, 여성들이 창업을 하는 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또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탈 업계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돼있다는 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스스로 사업을 접을 것인가? 정말 내가 창업에 성공할 순 없을까?
▲미시적 이유- 동업자에게 사업 철학을 설득할 수 있나요
사업의 단꿈을 꾸기 전에 냉정하게 판단해보기로 했다. 사업은, 망하든 잘되든 결국 내가 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잘’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했다. 다행히 주위에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국내 및 해외의 유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큐레이팅 경험이 있는 지인이 있었다. 기본 회화 작품에서부터 공예품에까지 그녀는 다양한 작품을 해왔다. 현재에도 작품 매입 및 전시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그녀를 사업의 동반자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사업 철학을 설명해야 했다.
어떤 회사든 비전이 존재한다. 나 또한 운영하고 싶은 서비스엔 3가지의 키워드가 있었다. ‘존귀함, 합리적임, 편리함’이 그것이다. 즉, 한 사람이 열정을 담아 만든 ‘존귀한’ 작품을 알아봐 줄 고객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부담없이 즐기는 것’이 우리 서비스를 정의하는 한 문장인 것이다.
친구는 3가지를 물었다.
- 1. 존귀한 작품의 가격은 얼마로 매겨지나?
- 2. 고객들이 합리적일 거라 판단하는 근거가 있나?
- 3.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이 사업에 합류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첫 번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지인들의 소개로 실제 졸업작품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5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짧은 설문지 형식으로 60명에게 물어 질문을 했다.
5명을 인터뷰한 이유는 ‘스프린트’를 참고했다. 제이컵 닐슨이 발견한 ‘단 5명에게서 85%의 문제를 발견한 사례’가 근간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본격적인 프로토타입 제작에 앞서 전체적인 과정을 검토해보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실제 고객에게 서비스가 운영될 것을 가정하고,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한 뒤 답을 찾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수립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나와 결코 관련이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로 선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모르는 사람들에게 취재를 요청하면 타겟팅이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와 관련 없는 학교의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한 때의 추억이자 짐으로 전락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동시에 낮은 가격이라도 빠르게 처분되길 원했다. 그들은 신인 작가 데뷔도 미처 치르지 못한 ‘견습생’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했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에 자신들의 작품이 걸린다면 큰 기쁨이 될 거라고 답변했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가격대와 이들이 원하는 판매가 사이의 접점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도 연관해 답변할 수 있었다. 60명은 대부분 아주 적게는 만원, 많게는 수십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답을 내놨다. 평균치를 내본 결과, 고객들은 5.7만원 정도의 가격선에서 쉽게 구입할 거라고 밝혔다.
세 번째 질문에 대답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너가 정말 필요해’인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잘 다니는 회사를 두고 나와 함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반대로 내게 동업 제의가 들어온다면? 나조차도 쉽게 내리지 못할 결정이다. 동업자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나는 친구에게 사업 철학을 말하며 설득했다. 어느 순간 짐이 되고마는 것들을 누군가에게 또한번의 기쁨을 주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싶다고 말이다. 15년 알고 지낸 사람에게 도박 같은 이 제안을 하는 건 그만큼 너를 믿고 있으니 부탁한다고도 덧붙였다. 만약 풀타임을 함께 할 수 없다면, 파트타임에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다. 작품 수급과 영업은 내가 할 테니 그 외의 시간엔 작품 큐레이션을 해달라고 말이다.
본인이 하던 일의 연장선이고, 현재 직장에서 일하는 데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던 친구는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합류 의사를 밝혔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여성 창업자 및 고용비율 비교 도표 /출처 :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백서
▲대표님, 돈 있나요?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큐레이션 담당자가 결정됐다. 하지만 처우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는 한달마다 급여를 준다. 제대로 된 회사가 아니라고 해도, 무급 상태로 함께하고 싶진 않았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1인 가구의 정서적 마지노선이라 느끼는 최소 비용은 200만원이라고 생각했다. 신생 IT 업체의 신입연봉도 그 정도 선에서 형성돼있다. 그리고 현재 부족한 회사 사정에, 나 하나 믿고 따라와준 팀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다.
한달 월급 200만원 *12개월, 2400만원+나의 최소 비용 100만원*12개월+운영비=약 5천만원
두 명만 해도 일 년에 5천만원이 드는 일이다. 그 마저도 팀원 한 명을 더 영입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최소 사업 자금은 다들 그렇듯 전셋방 보증금을 빼서 시작한단다. 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일년동안 열심히 영업해 입소문 나고, 서비스 성장하면 그때 투자유치도 타진하고 싶었다. 월급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더 크게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그렇게 마음 단련하고 시작하기로 했다. 잘 할 수 있을거란 긍정적인 마음과 막막하고 눈 앞이 캄캄한 기분이 반반이었다. 다들 이런가 싶다.
▲비개발자는 개발자를 영입할 때 두배는 어렵다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는 기업의 ‘꽃’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나 또한 개발자를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디어와 기획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은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서비스를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완성도 높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본인이 원하는 개발을 하기 전까진 만족하지 못하는 일에 몰입하는 인재가 필요했다. 또한 디자인 감각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한’ 개발자를 바라고 있는 거다.
그런 인재가 우리와 함께 하면 정말 좋겠지만, 모래 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당연한 이치지만 막막하다. 사업을 막 시작할 당시엔 개발과 관련된 전공을 했든 따로 길을 열여 배웠든 간에 직접 개발을 하는 대표가 많다. 처우를 맞춰줄 수 없거나 사람이 없어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 형국에 코딩 지식이 덜한 비개발자 출신이 개발자를 설득하기 위해선 힘을 더 많이 들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외부에서 제작을 맡기는 외주 방식도 고려해봤다. 당장 회사로 모실 수 없다면 그 방법밖엔 없을 것 같았다. 허나 1년 안에 성과를 내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던 계획에 외주는 그다지 큰 힘이 되주지 못할 거라 판단했다. 어떻게든 개발자를 억지로라도 모셔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는 현재 대학원에서 학업을 잇는 중이다. 그 친구의 지인을 수소문했다. 그러다 한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현재 IT회사에 일 하고 있으며 미술 작품 감상, 평소 남는 시간엔 동호회에서 앱 개발을 하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당장은 전업으로 영입할 수 없어 파트타임직을 제안했다. 그는 동의했고 그렇게 팀은 꾸려졌다.
이렇게 생각만으로 그칠 뻔 했던 나의 아이템은 그럭저럭 사업 모양새가 갖춰지는 것 같다. 계획한 1년 동안의 자금 운용을 위해 정부 지원 사업과 엔젤투자, 시드머니 투자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봐야 할 때가 됐다.
<③편에서 계속됩니다>